# 197
제197장. 궁지로 몰아넣다.
우걱- 우걱-
벌컥- 벌컥-
호거아는 밥과 국을 목구멍에 쏟아붓듣이 소리내어 먹었다. 곽도와 곽가는 호거아의 놀라운 식성에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잘 먹었습니다. 이제야 살겠군요."
호거아가 배를 살짝 치며 고마움을 표하자, 곽가가 빙글 웃었다.
"역시 호걸답소이다. 그 커다란 덩치를 어찌 유지하나 했더니, 먹는 것부터 남다르군요."
"하하하- 술을 먹으면 더 먹습니다. 먹는 만큼 힘을 쓸 수 있습니다. 전장에서 싸우다보면 결국은 덩치싸움입니다. 기술이 좋아도 힘에서 밀리면 당해내기 어려울 때가 많으니까요."
"호오- 그렇군요."
"그만-"
이야기가 딴 방향으로 흐를 기미가 보이자, 곽도가 낮게 소리치며 잘랐다. 그가 매서운 눈초리로 둘을 노려 보고는 입을 다시 열었다.
"봉효. 다음을 준비해야지. 계책을 이야기해 봐."
"제가 호장군을 만난 기쁨에 잠시 중요한 것을 놓쳤습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아까 슬쩍 조루가 다스리는 병사들을 보니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듯 합니다."
"하긴. 이 정도 살기를 풍기는데 이상한 걸 못 느끼면 그게 더 이상한거지."
곽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호거아가 진언을 올렸다.
"그럼 차라리 오늘 밤에 지휘부를 급습해 버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면 큰 싸움이 날 수도 있고, 우리측 병력이 너무 상합니다. 이렇게 하시지요. 조금 후에 부도독의 명으로 조루, 이홍등과 사마 5명을 모두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를 호장군이 병사들을 이끌고 덮쳐서 무장해제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 후에 항복한 자는 살려두고, 거부하는 자는 죽여서 병력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곽가의 계책에 곽도가 적극 지지했다.
"그게 좋겠군. 호장군은 어떠시오?"
"좋습니다. 병사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다면 저는 찬성입니다. 비겁이니 이런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죽은 다음에 그런 것은 아무 소용없으니까요."
"좋아. 이로서 모두의 의견이 일치한 셈이군. 그럼 바로 시작하지."
곽도는 상을 물리고는 호거아에게 작은 말로 병사들을 숨겨 놓으라고 지시한 후에, 종사관을 불러서 조루와 하급장교들을 모두 불렀다.
조루와 이홍은 야밤에 자신을 찾는 것이 내심 찜찜했지만, 성안에서 곽도가 부도독의 명으로 부르자 아니갈 수가 없었다.
"조장군(조루).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사마들에게도 모두 단도를 안에 품으라고 했습니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제가 시간을 벌 테니, 장군께서 피신하시어 관도독에 이상황을 알리십시오."
"자네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글쎄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입은 거짓말해도, 몸이나 행동은 절대 못하거든요. 장수나 병사들은 행동으로 말합니다. 저자들은 정예중의 정예병들입니다. 이건 분명합니다. 곽씨문중에서 농사나 짓던 무지랭이 장정이 아니란 말입니다."
"휴- 모르겠군. 모르겠어."
조루는 이홍의 말이 이해가 될듯, 말듯 했다. 이홍을 신뢰하라는 관우의 말을 돌이켜 보면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했지만, 이곳에서 곽도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목을 내놓아야 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곽도를 향해 칼을 뽑아드는 하극상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가보세. 자네 생각이 기우였으면 좋겠구먼."
조루가 앞장서자, 이홍은 사마들을 이끌고 뒤를 따랐다.
"부도독. 조루입니다."
"어서 들어오시게."
"네."
조루와 그의 부하들이 방안으로 들어섰을 때, 간단한 다과상이 차려져 있었다.
"자- 조장군과 이장군은 안쪽으로 앉으시고, 다른 사마들은 그 뒤로 앉으시게. 내 사람도 소개시킬 겸, 정세에 대해서 이야기도 할 겸, 겸사겸사 불렀다네."
"이 밤에 부를 급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홍의 불만어린 말투에 곽도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바꾸고는 입을 열었다.
"중요한 정세에 대해서 논의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교위 왜 이리 서두르시는가?"
오만한 곽도가 화를 참으며 웃는 모습을 보이자 이홍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도 모르게 오른 손이 허리춤으로 갈 때였다.
"이교위! 손을 탁자 위로 올리시게! 오해를 쌓는 행동은 옳지 않아."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자네가 생각하는 게 맞네. 나는 자네에게 살 길을 열어 주고 싶네."
"이 놈들이......"
이홍의 말은 중간에서 끊어졌다. 어느새 호거아의 시퍼런 단도가 그의 목을 휘감았기 때문이었다. 사마들이 단도를 급히 뽑아들며 우왕좌왕할 때 문이 열리며 호거아의 정예병들이 들이 닥쳤다.
"단도를 내려 놓아! 어서!"
곽도의 단호한 명령에 사마들이 이홍을 바라보며 우물쭈물하자, 다시 한번 곽도의 호통이 떨어졌다.
"네놈들이 진정 죽고 싶은 것이더냐? 더는 말하지 않겠다. 내 말이 끝나기 전까지 칼을 들고 있는 놈들은 적으로 간주하고 모조리 저승으로 보내주마! 어서 단도를 내려 놓아!"
툭- 툭-
대세가 뒤집혔다고 생각하자, 사마들은 단도를 던지고 무릎을 꿇었다. 조루와 이홍은 칼이 바짝 목에 대여 있어 입을 열기 어려웠다. 곽도가 눈짓을 하자 호거아와 병사가 그들의 목을 풀어 주었다.
"부도독!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주군께서 그대를 얼마나 아끼셨는데, 역적질을 하는 것이오?"
조루가 급히 따졌지만, 이미 공허한 메아리였다. 곽도가 귀찮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일일이 대답하기 귀찮다. 말해라. 죽을 것이냐? 나를 따를 것이냐?"
조루는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결코 항복하지 않았다.
"죽어도 네 놈의 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죽여라!"
일말의 여지도 없이 곽도의 입에서 참혹한 명령이 떨어졌고, 조루는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다. 조루마저 죽자, 이홍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력에서는 조루보다 훨씬 강했지만, 신념에서는 그를 따르지 못하는 이홍이었다. 그는 조루가 한 것 처럼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없었다.
"이홍! 네 놈은 어쩔 것이냐?"
이홍은 말을 못하고 눈이 흔들렸다.
"잘 생각해 봐. 관우가 네 놈을 부려먹기만 했지 잘해준 적이 있다더냐?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관우냐? 나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죄 없는 네 가족들도 생각해서 대답하거라!"
그래도 대답을 못하자, 곽도가 매섭게 명령을 내렸다.
"여봐라. 이홍의 가족들을 모조리 잡아 들여서 목을 쳐라!"
"예. 부도독!"
병사들이 명을 수행하기 위해 일어서자, 이홍이 급히 엎드려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부도독을 따르겠습니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그래야지. 잘 선택했어."
뒤에 물러나 있던 곽가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이홍이 실질적으로 성안의 군권을 쥐고 있었기에 그를 설득해야 일이 쉬웠다. 그가 조루처럼 끝까지 저항했다면 군권을 장악하는데 정말 애를 먹었을 것이다.
곽도는 신속하게 군권을 재편했다. 호거아를 대장으로 임명했고, 이홍과 사마의 직위는 그대로 유지했다. 또한, 그들에게 호위병을 3명씩 주어 경호를 핑계로 감시를 붙였다. 순식간에 성안의 군권이 곽도에게 넘어간 것이다.
곽도는 제일 먼저 관우에게 보내는 군량을 끊었다. 군량은 매일 배를 이용하여 출발했는데, 그것을 끊은 것이다.
"관우 이놈! 이제 똥줄이 탈 것이다. 흐흐흐흐-"
곽도는 군량을 끊음과 동시에 익양성 근처에 위치한 나현성마저 손에 넣었다. 1천의 군사가 버티고 있던 나현성은 곽도가 보낸 부대란 말에 의심없이 성문을 열었다가 그대로 점령 당했다. 이로서 관우의 퇴로는 완전히 끊겼다.
관우군영.
습진의 의도대로 관우와 익양성의 습굉이 기각지세를 이루면서 원매군과 대치가 이어졌다. 기병에서 열세를 인정한 관우가 함부로 나서지 않으면서 대치가 길어졌다. 성질 급한 관우였지만, 습진의 만류에는 별 수 없었다.
"빌어먹을! 저런 애송이들과 지루하게 대치를 하려니 짜증이 나는군."
"잘하셨습니다. 조금만 더하면 저들도 군량이 부족해서 퇴각할 것입니다. 강릉성에서 이곳까지 군량을 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야 치소인 임상성이 가까우니 문제 없습니다."
"알았네. 자네 말이라면 따라야지."
관우는 애써 아쉬운 마음을 덮었다. 이때였다. 종사관이 하얘진 얼굴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저....... 습장군."
종사관은 관우의 눈치를 보며 습진을 불렀다. 습진뿐만 아니라 관우도 심상치 않은 상황을 눈치챘다.
"어서 말하거라! 무엇이냐?"
습진의 독촉에 종사관이 힘없이 대답했다.
"군량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임상성으로 추궁하는 전령을 보냈는데......"
"보냈는데?"
관우는 목이 탔다. 그는 거칠게 물을 벌컥- 벌컥- 들이켰다. 습진이 다시 재촉했다.
"곽부도독이 배신했습니다. 현재 임상성과 나현성이 점령되었고, 후방으로 가는 길이 모두 끊어졌습니다."
"뭐야? 곽도 이 개자식이 배신을 해?"
관우가 분노를 터트리며 노려보자, 종사관은 움찔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확인해줬다.
"그렇습니다. 두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습장군. 그대가 이곳을 지키시오. 내가 일단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임상성을 점령하고 곽도의 목을 베어야 겠소이다."
관우가 분기탱천하여 일어서자, 습진이 급히 그를 말렸다.
"관도독.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앉아서 차분히 생각하십시오. 임상성이 어떤 성입니까? 치소인 그 성이 얼마나 견고한지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단기간에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힘이 빠져있을 때 저들이 뒤를 급습이라도 한다면 그때는 끝입니다."
"우아아아아-"
관우는 괴성을 내지르며 탁자를 뒤엎고, 의자를 집어 던졌다. 놀라운 괴력이었다. 한참 후에 그의 입이 열리며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오? 이대로 있다가는 굶어 죽는단 말이야. 습굉이 지키는 익양성의 군량은 우리까지 합류하면 보름도 못 버텨."
"그럼 어쩝니까? 북쪽은 원매군이고 동쪽은 거대한 침수가 막고 있고, 남쪽은 곽도가 길을 틀어 쥐어 막았습니다. 서쪽은 사람이 살지 않는 밀림입니다. 매우 어려운 처지이니 신중하게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습진이 여러 종사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지도를 보며 대책을 강구하고 있을 때, 관우는 관평을 비롯한 장수들에게 병사들이 언제든지 출병할 수 있도록 준비하란 명령을 내렸다.
부하장수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관우는 치소 가운데 의자에 앉아 꼿꼿하게 버티며 생각에 잠겼다.
'분하구나. 분해. 곽도 이 쳐죽일 새끼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어. 습진의 말대로 갈 곳이 없다. 그렇다면 익양성의 습굉과 연합하여 원매군을 격파하는 수 밖에 없어. 기병에서 열세긴 하지만, 보병에서 앞서니 해볼만 할 것이다. 습진의 의견을 들어보고 특별한 것이 없다면 곧바로 전투를 벌일 것이다. 그수 밖에 없어.'
관우는 방법이 결정되자, 눈을 감았다. 흥분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제 전투를 벌여서 적을 격파하면 되는 것이다.
'그간 괜한 시간 낭비를 했어. 그대로 저놈들을 격파했어야 했는데.'
관우군영이 어수선해졌을 때.
하후연군영.
하후연은 곽독과 함께 의견을 조율하고 있었다.
"곽도가 드디어 성을 접수했소이다. 관우는 당장 군량일 끊기니 우릴 공격하지 않을까 생각하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생각하니 자신 있게 덤벼들겠지요."
"흐흐흐. 바보같은 놈들. 방장군이 이끄는 기병 1만 5천이 먼 후방에 대기하는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곽장군. 보병을 일자로 길게 늘어 놓아 저들과 전투를 벌이시오. 그러면 대열이 파괴되면서 밀릴 것이오. 그때 보병들은 다시 동그랗게 뭉쳐서 대항하고, 그 틈으로 내가 기병 5천을 투입시켜 지원하겠소. 그후, 혼전을 벌이면서 한시진(2 시간)정도를 기다리면 방장군이 기병을 이끌도 도착할 것이오. 그럼 전투는 끝납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곽독이 군례를 올리며 물러났다. 하후연은 홀로 군영에 남아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원매에게 항복한 후 첫번째 공을 세울 기회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맹덕(조조)형. 나를 응원해주시오. 나는 출세 욕심이 없소. 다만, 이렇게 해야 형의 자식들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오.'
하후연은 잠시 조조를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