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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95화 (195/253)

# 195

제195장. 어둠 속의 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록 60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한수가 말을 모는 솜씨는 참으로 일품이었다. 어릴 때부터 말과 함께 생활하여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부하들인 성공영과 기병 1천도 굳은 표정으로 열을 흐트리지 않고 한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쉬지 않고 달려 6일 만에 업성에 도착했다.

원매는 예상밖으로 일찍 한수가 도착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수를 자신의 치소로 부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50을 넘은 노인일 텐데, 체력 하나는 대단하구나. 더욱 경계해야겠어.'

한수는 충성을 표시하기 위해 매우 빠르게 달려왔지만, 오히려 이것이 원매의 경계를 사게 되는 예상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전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한수입니다. 강녕하셨습니까?"

한수는 태자치소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한수(58)]무력:77, 지력:81, 정치력:62, 통솔력:83

고르게 잘 갖춰진 능력치를 확인한 원매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능력치가 더욱 좋았던 것이다. 그동안 환경적인 것이 받쳐주지 않아 크게 빛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자- 이리로 앉으시오."

"예. 전하."

원매는 한수의 손을 이끌고 의자에 앉혔다. 찻물을 직접 따라서 건네주자, 한수가 급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찻잔을 받았다.

"나이가 있으신데, 기개가 참으로 놀랍소이다."

"과찬이십니다. 늙도록 욕심을 버리지 못했으니 추한 것이지요."

한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는 찻물을 들이켰다.

"그런데 전하에게서 풍기는 기운도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간 전하와 전투를 하면서 간접적으로는 느낀 바는 지용을 겸비한 장수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무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청납니다.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천하의 한장군이 이렇게 아부를 하시오이까?"

"아부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그대로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고맙소이다. 이곳으로 오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소? 좀 서운했을 터인데."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사람이 아니겠지요. 더구나 저처럼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는요. 하지만, 이곳으로 달려오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나 온 날들을 되돌아 보았고요. 이제는 젊은 날의 한수가 아닙니다. 힘이 빠진 늙은이일뿐이지요. 세상에 순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한수는 노련하게 원매가 원하는 대답을 했다. 실제로 본인의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나이도 나이지만, 이통과 유장의 사이에서 심한 고생을 하면서 삶의 회의까지 느꼈던 그였기에 이제는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이다. 그래서 마초를 통해 항복한 것이다.

"잘 하셨소. 한장군이 나이가 많으니 전선으로 내보낼 수는 없소이다. 그래서 북쪽 유주의 탁군으로 가시오. 그곳은 땅이 넓고 마을이 큰 곳입니다. 장합이란 장수가 그 일대를 모두 관할하는데, 그의 통제를 따르면 되오이다. 섭섭치 않게 대우할 것이오."

"명을 따르겠습니다."

한수는 흔쾌히 대답했다. 자신에게는 별로 선택지가 없음을 알고 있기에 선뜻 받아들인 것이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한수는 천천히 원매 치소를 나왔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제법 선선한 기운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주군!"

성공영이 급히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한수는 말없이 그를 보다가 탄식을 터트렸다.

"내가 자네에게 참으로 미안하구먼. 제대로 된 주군을 만났다면 크게 빛을 보았을 텐데."

"저는 오로지 주군을 받들 뿐입니다. 다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충직한 성공영의 두 눈을 보자, 한수는 '그래도 헛살지는 않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쉬고, 내일 탁군으로 가세. 이틀이면 충분할거야. 이곳만큼은 아니지만, 서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번화한 곳이라더군."

"명을 따르겠습니다."

성공영은 군례를 올리고, 곧바로 기병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수는 충직한 성공영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204년 1월. 건안 9년.

형주 장사군 곽도치소.

북쪽 기주는 매서운 추위가 몰아쳤지만, 남쪽인 이곳은 그래도 참을 만했다.

곽도와 관우의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어그러질대로 어그러졌다. 사실 둘 중 한명이 고개를 숙였다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달려오는 두 열차는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아이고."

곽도의 치소에서는 끙끙 앓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격한 무술수련을 하고 나니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형님. 이러다가 죽겠소. 왜 이리 미련하게 사는 것이오?"

"그럼 어쩌란 말이냐? 내가 그간 행실이 안 좋아서 사방이 적인데, 그나마 이곳에서는 내 능력을 인정해 주니 힘들어도 참아야지."

"참으시려면 관장군께 매달리시던가요. 아부도 하고요. 그러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을 것 아닙니까?"

"흐흐흐흐-"

괴소를 터트린 곽도가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봉효야. 너는 나를 잘 알잖아. 죽으면 죽었지 그리는 못 한다는 것을. 내가 주군께 아부를 하라면 하겠지만, 저 관우에게 만큼은 절대 못 한다. 나를 무시하는 놈에게는 절대 허리를 못 숙인다고."

곽가는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그럼 뒤엎읍시다. 저런 새끼 죽여버립시다. 형님이 왜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사셔야 합니까?"

"너...... 너......"

"관우를 죽이고 형남을 들어 바치면 형님도 크게 우대를 받을 것이오. 생각해보시오. 형남을 주는데, 누가 무시하겠소? 이리 수모를 받으며 사느니, 그렇게 합시다."

"네 이놈! 네가 감히......"

곽가가 급히 그의 입을 손으로 막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급히 걸어가 문을 확인하고는 다시 곽도앞에 앉아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나는 기의 태자전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이 형남을 차지하기 위해서요. 그러니 저와 함께 형남을 점령하고, 관우를 죽입시다. 이미 기병 2만이 양양에 주둔하고 있소이다. 강릉에는 1만의 보병이 있고, 합비성에는 2만의 보병과 4만의 수군이 있소이다. 우리가 틈을 만들어 준다면 양양, 강릉에서 군대가 내려와 도울 것이고, 그것으로 부족하면 합비에서도 지원할 것입니다."

곽도는 어- 어- 하며 말을 잇지 못 했다. 곽가가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이제 형님은 나와 같은 배를 탔습니다. 나는 이대로 계획을 진행하겠습니다. 형님께서는 절대로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없습니다."

곽도는 무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야멸차게 입을 열었다.

"내가 거부한다면 어쩌겠느냐? 지금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니, 고변을 한다면 나는 무사할 것이다."

"진정 그리 생각하시오? 지금도 형님을 못 잡아 먹어서 저리 안달인데, 이런 대단한 꼬투리를 스스로 바치겠단 말입니까? 그리고 저를 심문하면 저는 모조리 불 것입니다. 이곳에 4달이나 있었으니 모든 것을 함께 했다고요. 누구 말을 믿을까요? 설마 4달이나 함께 있으면서 아무 것도 몰랐다는 형님의 주장을 관우가 믿겠습니까?"

곽가가 곽도의 마지막 희망을 날려 버렸다. 곽도는 눈을 질끈 감고 말이 없었다. 전에도 가끔 민감한 그의 촉수가 곽가가 위험한 인물이라고 경고했지만, 그때마다 무시했다. 관우에게 시달림을 받으면서 힘들 때, 곽가가 곁에서 위로해주고 일을 도와주며 큰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놈아. 결국 이 형을 죽음으로 몰아 넣어야 시원하겠느냐?"

"왜 죽는다고 생각하시오? 형남을 넘기면 공신이오. 공신."

"흥. 공신은 개뿔. 원가에서 나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네 놈이 모른단 말이냐? 형남이 아니라, 익주남부, 강동까지 바쳐도 그들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장자인 원담을 망친 주범이 나라고 생각할 테니까. 하긴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변명하고 싶지도 않다."

곽도의 넋두리가 이어지자, 곽가는 추임새를 넣으며 그가 편하게 말하도록 기다렸다.

"원담 그 새끼는 처음부터 개자식이었어. 정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힘만 센 놈이란 말이야. 내가 그 놈을 망친 게 아니라 그냥 혼자 나둬도 망가질 놈이었다고."

원담을 생각하자 분통이 터지는 듯했다.

"봉효야. 그런데 원가에서 나를 용서해 주겠느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더군다나 태자전하께서는 나를 극도로 증오하고 계시다. 이래도 내가 살 길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물론입니다. 이미 폐하는 물론이고 태자전하께서도 허락을 하셨습니다. 물론 기분 좋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승낙하셨습니다. 대의를 위해서 작은 원한은 잊은 것이지요. 태자전하께서도 화를 내셨지만, 결국 승낙하셨습니다."

곽가는 조심스럽게 작은 칼을 들어 겉옷을 풀고는 안을 조심스럽게 잘랐다. 그러자 그곳에서는 글씨가 적힌 비단이 나왔다. 비단조각을 조심스럽게 펴서 곽도에게 바쳤다. 곽도는 그것을 읽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이것은 태자전하의 친필입니다. 태자전하께서 폐하의 분노가 크기 때문에 중앙의 요직은 힘들지만, 연주나 예주의 태수자리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나중에 기회를 봐서 중앙의 요직을 주실 것입니다. 물론 많은 땅과 재물도 주실 것이고요."

곽도는 마음이 심히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곽가의 말이 마음에 깊게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승낙을 해주셨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봉효야. 너도 알다시피 이곳의 군권은 관우가 모두 장악하고 있어. 나는 빈 껍데기나 다름없단 말이다. 그걸 네 놈이 뻔히 알 텐데, 왜 부추기는 것이냐?"

"방법이 있으니까요. 잠시 귀를 좀."

곽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곽도는 신중한 얼굴이었다가 조금 환해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곽가를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요놈! 옛날부터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더니, 계책도 훌륭하구나. 좋다. 보장만 해준다면 관우에게 평생 이런 수모를 당하며 살 수는 없다. 그리 하자."

곽도는 곽가의 손을 맞잡았다.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곽도가 이 정도면 관우의 폭정에도 많이 참은 것이다.

이후에도 곽도는 평시와 다름 없이 일을 하며 관우의 눈치를 보고 살았지만, 속으로는 반역계획을 차곡차곡 진행시켰다.

첫째로 양양에 사람을 보내어 기병 2만을 강릉으로 불러 들인 것이다. 문중으로 보낸다는 명목으로 호위병을 보냈고, 서찰은 천조각에 써서 옷 안에 꿰매어 숨겼다. 곽도가 보내는 호위병을 감히 검문하기도 어려웠지만, 혹시를 대비하여 치밀하게 대처했다.

곽도는 힘겹게 버텼다.

마음이 떠나자 관우의 괴롭힘에 더욱 이가 갈렸다. 이제까지 어떡하든 이곳에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갈라선다고 생각하자 원한이 뼈에 사무쳤다.

곽가는 곽도를 안마해주며 입을 열었다.

"아야야- 살살 하거라."

"많이 아프시오?"

"이놈아. 니가 무술수업에 나가 봐라. 진짜 죽을 맛이다. 무장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강릉에 기병이 도착했소."

"그래? 잘 됐구나. 이제 관우만 꾀여내면 되겠구나."

"그런데 말이오. 관우는 명장인데, 살려서 태자전하께 바치는 게 어떻겠소?"

"안 돼! 그 놈의 목은 내 손으로 벨 것이다. 분명히 경고하는데, 만약 나를 막으려고 한다면 모든 것을 뒤엎을 거야. 알겠느냐?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당한 것은 반드시 되갚아 주었다. 절대로 관우를 용서치 못 한다."

"알겠소. 왜 그리 성을 내시오."

곽가는 입을 다물고 계속 안마했다. 관우를 생포했으면 하는 은근한 희망을 품었는데, 곽도의 표정을 보니 그것을 힘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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