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94화 (194/253)

# 194

제194장. 성장하는 마초.

익주 성도 유장치소.

유장은 벌개진 얼굴로 술병째 입에 대고 술을 들이켰다. 그는 술병을 흔들어 술이 떨어졌음을 확인하자, 휙- 집어던졌다.

쨍그랑-

술병은 산산조각났다.

"빌어먹을! 저 놈의 술병 신세가 내 신세처럼 처량하군."

"주군 천천히 드십시오. 그러다가 몸에 큰 무리가 갑니다."

"무리? 이제 촉군하나 남았어. 이거 뺏기면 내 목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몸에 무리가는 것이 중요한가? 이런 되지 않는 충고할 시간에 어서 이통을 물리칠 계책을 연구해 와!"

비관은 갈수록 난폭해지는 유장을 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그가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병사들의 전투능력에서 차이가 크게 벌어졌기 때문에 야전을 치르는 족족 패배했다. 그러니 더는 계책을 내놓지 못하고, 주요 성을 지키면서 방어로 일관하고 있었다.

다만, 익주 남쪽을 차지한 유비가 이통을 견제해 주면서 평화 아닌 평화가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남쪽을 빼앗은 이통과 똑같은 놈이지만, 이제는 동지였다.

"왜 말이 없어? 니가 사위니까 여기까지 올라온거야? 알아?"

유장의 모욕적인 발언에 비관은 얼굴이 시뻘개졌다. 발끈하려던 그는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참았다. 유장이 원래 공격적이긴 했지만, 최근 전투에 모두 패하면서 더욱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걸 아는 비관으로서는 화도 났지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나가! 마음에 드는 놈이 하나도 없군."

유장은 비관을 비롯하여 모두를 쫓아버리고 치소에 홀로 남았다. 그는 눈에서는 흉광이 쏟아졌다.

익주 광도현 이통치소.

"지금 뭐라고 하셨소? 다시 말해 보시오?"

이통은 자신이 잘못들은 것은 아닌지 볼을 꼬집었다. 그만큼 마초가 한 이야기는 중요한 이야기였다.

"한수가 항복을 청해왔습니다. 한수는 서량에서 경쟁관계에 있던 인물로 야망이 큰 자입니다. 그만큼 군사통솔능력도 뛰어나고요. 틀림없이 전하께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자는 배신을 밥먹듯이 한자입니다. 또다시 배신하지 말란 법이 없소이다."

"맞습니다. 수없이 배신을 했지요. 왜냐하면 서량에 강한 기반을 가지고 있는데,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으니까요. 만약에 항복을 한다면 주거지를 기주로 옮겨버리면 됩니다. 기주는 유주기병의 텃밭이지요. 서량기병위주인 한수가 큰 힘을 쓰기 어렵습니다. 설령 역적 모의를 하더라도 이놈 저놈 엮어야 할 텐데, 말투가 완전히 중원과는 달라서 금방 탄로날 것입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십시오."

이통은 대답하지 않고 마초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초가 이렇게 똑똑했었나?'

이통은 잠시 생각하더니 사과를 먼저 했다.

"내가 그동안 마장군을 과소평가한 것 같소이다. 이렇게 생각이 깊으신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한수에 대해서는 오늘 고민을 해보고 다시 답변을 드리겠소이다."

"하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배움의 끝이 있습니까? 겨우 책 몇 권 읽었을 뿐인데, 과찬이십니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며 물러가겠습니다."

마초가 물러가자 이통은 물끄러미 그가 나간 곳을 지켜보았다.

'그것 참. 칼질만 할 줄 아는 백정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제법 쓸만하군. 잘됐어.'

이통이 마초에 대한 평가를 수정하고 있을 때, 마초는 기분 좋은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그가 자신의 처소로 발걸음 가볍게 걷고 있을 때, 누가 그를 불러 세웠다.

"마장군. 일은 잘 진행되셨습니까?"

"아- 서부어사. 어서 오시오. 하하- 내가 서부어사가 시키는대로 말했더니 이도독의 눈이 동그래졌소이다. 이야 이거 맨날 칼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도 글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더이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오늘 밤부터 제게 오시지요. 한시진씩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영특하시니 배움의 속도가 빠를 것입니다."

"영특하다는 말은 처음 듣소. 칼질 잘하는 백정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흐흐흐. 물론 내 앞에서 백정이라고 했다가는 목이 달아나겠지만서도."

마초는 매우 유쾌했다. 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도 굉장한 짜릿함을 선사했지만, 이런 부분도 쏠쏠한 묘미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마초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치소로 돌아갔다. 서서는 호탕하게 소리치며 걷는 마초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천생무인이다. 충효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만 가르친다 하더라도 많이 좋아질 것이다. 전하께서 마장군을 높이 들어 쓰려고 하시는데, 글을 전혀 모른다면 되겠는가?'

서서는 밝은 미소를 짓고는 치소로 돌아갔다.

이통은 마초의 제안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법정을 불렀다. 익주로 들어와서 법정과 호흡을 맞췄는데, 몇 번 말을 해보니 잘 맞았다.

"효직(법정)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마장군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똥개도 제 집앞에서 크게 짖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주변에서 자신을 알아주고 지지해줘야 힘이 나는 법입니다. 기주로 가면 절대 딴 생각을 못할 것입니다. 유주, 병주기병 또한 대단하니까요."

"그럼 모두의 생각이 일치하는 군요. 그렇게 합시다."

이통은 생각을 정리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법정이 슬그머니 다가와서 진언을 올렸다.

"도독. 그런데 너무 여유를 부리시는 것 아닙니까?"

"여유? 아- 걱정마시오. 전하께서도 신중을 당부하셨소."

"시간을 주면 줄수록 유장은 힘을 낼 것입니다. 물론 유비가 남쪽에서 압박하니 힘드신 것은 알지만, 어떡하든 수를 내야 하는 것아닙니까?"

젊은 법정은 이 기회에 더 큰 공을 세우고 싶었던 것 같다. 이통이 빙그레 웃고는 죽간을 건넸다.

"효직만 알고 계시오. 이것은 주요 장수들만 아는 내용이니 함부로 발설하면 안됩니다."

법정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죽간을 받아들어 차분하게 읽어 내려갔다. 곧 그의 얼굴에는 감탄이 서렸다.

"참으로 기발한 계책입니다. 상대의 불화를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요. 곽가란 책사가 머리도 좋지만, 배포도 굉장한 자로군요."

"곽가는 영천출신으로 조조의 책사였던 자입니다. 이번에 전하께서 조조를 무너뜨리면서 그를 책사로 영입했다고 들었소이다. 순욱이라고 아주 뛰어난 자가 있는데, 그는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죽었을 것이오. 참 안타까운 일이오."

"지금 전하께는 인재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책사라도 한 명이 대세를 돌릴 수는 없습니다. 순욱이 없다 하더라도 전하께서는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감히 어떤 자도 전하께 상대가 되지 못할 겁니다."

이통은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이통을 보며 법정은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도독은 재물 욕심도 적고, 명예욕도 없는 것같다. 그렇다면 전하에 대한 충성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인데, 참으로 특이한 사람이로구나. 전하의 홍복이랄 수 있지. 뭐, 욕심 많은 나로서는 흉내도 못낼 일이지.'

법정을 상념을 떨치고는 이통에게 진언을 올렸다.

"이도독. 제게 촉군정찰을 맡겨주십시오. 서부어사와 별개로 움직이겠습니다. 나름대로의 인맥이 있으니 잘 하면 좋은 정보를 얻지 않겠습니까? 최대한 현령들을 흔들겠습니다."

"좋소. 부탁하겠소. 그리고 종종 와서 이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시다."

"저야 내치지만 않는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법정이 물러가자 이통은 자리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했다. 이윽고 마무리가 되자 서서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렇소이다. 한수가 마장군을 통해서 항복을 타진했소이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결정하셨습니까? 제 생각에는 큰 도움이 될거라 판단합니다."

"이거...이거.... 이제야 알겠군. 마장군 뒤에 서부어사가 있었어. 어쩐지 갑자기 안 쓰던 말을 해서 이상하다 했지. 흐흐흐흐. 잘 하셨소. 그래도 글줄이라도 읽어야 높은 직위에 오르지 않겠소. 잘했소."

"그럼 마장군께 가서 한수를 데려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곧바로 업성으로 보내실 생각입니까?"

"역시 서부어사야. 그렇소. 여기는 우리 병력으로 충분하오. 기주로 보내고, 기주의 기병을 전선으로 빼야지. 한수는 불평할지 몰라도 궁지에 몰린 그로서는 거부할 수 없을 것이오."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서서는 곧바로 물러 나와, 마초를 통해 한수를 불렀다. 근처에서 초조하게 대기하고 있던 한수는 기병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간의 고생이 심했는지 볼이 움푹 꺼져 있었다. 유장에게도 버림을 받고 이통에게도 쫓기다 보니 고생이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웠으리라.

한수의 오른팔이던 염행은 죽었고, 성공영만이 곁을 지켰다. 기병은 겨우 1천 남짓이었다.

마초는 확실히 강자의 위치로 올라와 있었다. 한수와 힘을 겨루며 다투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는 오연하게 약자 한수를 내려다 보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한장군. 성공장군. 어서 오시오. 지난 날의 원한은 모두 잊고 전하를 위해서 힘을 합칩시다."

"마장군. 고맙소."

"여봐라. 먹을 것을 가져오거라!"

마초가 소리를 지르자, 병사들이 커다란 솥을 열고 밥과 국을 먹을 수 있도록 담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저리로 데려 가서 식사를 하게 하고, 두 분께서는 이도독께로 가시지요. 말씀도 나누시고, 술도 한잔 하시지요. 축하주 한 잔 해야지요. 하하하-"

마초가 웃으며 이통의 막사로 향하자, 성공영이 재빠르게 하급장교들을 불러모아 질서정연하게 식사를 할 것을 지시했다.

"주군. 가시지요. 저들이 적의가 없으니 다행입니다."

"적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적수로 보지 않는 것이지. 참으로 많이 컸어. 불과 10년전만 해도 애송이에 불과했는데, 허허허- 이제 이 한수의 시대는 끝났구나."

"가시지요. 지금부터라도 잘 처신해서 한 지역을 차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원매가 만만치않단 말이지. 그게 문제야. 그게."

한수는 입을 닫고 천천히 이통의 막사로 향했다. 이통은 미리 식사와 술을 준비해 놓았다.

"어서 오시오. 환영합니다."

"이도독을 뵙습니다. 저희를 받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전하께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그래셔야죠. 전하께서는 훌륭한 인재라면 언제든지 환여하니까요.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이곳에서 3일간 휴식을 취하시면서 체력을 보충하시고, 길을 잘 아는 안내병을 따라 붙일 테니 전하가 계신 업성으로 가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말은 권유였지만, 명령이었다. 한수의 얼굴이 굳어지자, 성공영이 재빠르게 예를 취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제야 한수도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들의 식사는 조용하게 이뤄졌다. 간간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가운데, 마초가 연신 호탕하게 떠들어대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밖에서 듣는다면 마초의 목소리만 들릴 정도였다.

그날 조용하게 자리가 파했고, 다음날이 되자 마초가 한수를 찾아왔다.

"마장군. 어인 일이시오?"

"한장군. 서운하신 것 다 압니다. 이제 욕심은 내려 놓으시고 전하께 충성하는 마음만 남겨두세요.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이 초라해질지도 모릅니다."

"경고요?"

"충고입니다. 전하는 자기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발톱을 드러내는 자에게는 정말 모질어집니다. 한번 당해보니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 부친(마등)께서는 량주자사에 올랐습니다. 또한, 량주(서량)에 대한 모든 자치권까지 부여받았습니다. 이 정도로 충성을 다하면 모든 것을 챙겨줍니다. 조조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들었겠지요? 천하의 조조도 결국 그리 됬습니다. 그러니 쓸데 없는 자존심을 버리는게 좋을겁니다."

"맹기(마초) 자네 변했군."

"내가 언제까지 백정질이나 할 수 는 없지 않소이까? 하하하하-"

한수는 모든 부분에서 패한 느낌이었다. 이제까지 살아 온 세월이 허탈했다. 요령있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판 마등보다 한참 아래로 처져있었다. 더군다나 힘만 센 놈으로만 생각했지, 우습게 봤던 마초가 어느새 자신을 충고하는 위치까지 올랐으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

'이제 한수의 시대는 다 끝났구나.'

한수는 탄식을 터트리고는 굵은 눈물 한방울을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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