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제192장. 일단 밑밥을 먼저 던져두고.
원매는 고람과 마주하고 앉았다. 이번에 새롭게 조조의 부하들을 얻었고, 병사들도 많이 상했기에 새롭게 재편해야 했고, 오늘에서야 고람이 다시 계획을 확정하여 가지고 온 것이다.
"흠. 장도독(장패)은 장안으로 돌려보냈고, 기존의 보병은 장비, 곽준, 위연, 견초를 중심으로 하여 허저, 이전을 붙이고, 기병은 방덕에 하후연을 붙이자 이거요?"
"그렇습니다. 특히 곽준의 발굴은 놀랍습니다. 공격과 방어에 능한 이런 인재는 정말 드문데, 전하의 홍복입니다. 업성 근처인 하내군에 주둔지를 마련하고 훈련시켜 강병을 육성한다면 유비와 주유를 물리치고 천하통일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입니다. 또한, 방덕이 이끄는 기병에 하후연의 기병을 합류시킨다면, 힘이 배가 될 것입니다. 하후연의 용병술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정평인 나있으니, 서로간에 상승작용이 있을 것입니다."
"좋소. 가승상과 협력하여 하내군에 커다란 훈련장을 만들고 강병을 조련하시오. 전쟁을 오래 끌고 싶지 않소이다. 빨리 끝내고 병사의 수를 줄여야 백성들의 고통도 줄어들 테니 말이오."
"물론입니다. 전하. 장담하건데, 반드시 그리 될 것입니다."
"그럼. 수고하시고, 특이사항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시오."
"예. 전하."
원매는 고람과 군대개편에 대한 교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그래. 허저와 하후연의 합류로 다른 장수들도 긴장할 거야. 그럼 서로 긴장하는 효과도 있고,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구만.'
기분이 좋았던 원매는 곽가가 내놓은 계책을 생각하자,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좋은 계책이었지만, 곽도를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원가분란을 야기한 곽도였기에 원소가 반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가만 주유 이놈을 끌여 들어서 서로 싸우게 해서 양패구상을 시키면 어쩔까?'
생각해보니 좋은 방안인듯 싶어서 이것저것 따져보다가 생각을 접었다. 주유의 기반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매 눈치를 보고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만 보내게 될 것이고, 그 사이에 유비가 문제를 해결한다면 기회는 날아가는 것이다.
'그래. 이건 시간 싸움이야. 유비가 곽도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내가 그것을 이용해서 관우를 죽이고, 형남을 잡은 연후에 유비를 물리쳐야 해. 좋아. 그럼. 아버님을 만나뵙고 시작해보자.'
원매는 결정이 되자, 빠르게 움직였다.
"폐하. 신 원매입니다."
"태자 왔느냐? 아침에도 왔었는데 늦게 어인 일이냐?"
"예. 형남을 차지할 좋은 방안이 생겨서 이렇게 찾아 뵈었습니다."
"말해봐.내가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 있는가 본데, 가능하면 모두 허락해야지. 흐흐."
원매는 곽가와 이야기한 관우와 곽도의 이야기를 가능한 자세하게 풀었고, 곽도를 이용하면 병사들의 피해가 적은 상태에서 유비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곽도는 지나가듯 슬쩍 묻어가고, 병력의 적은 희생을 강조했지만, 원소의 얼굴을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원매는 표정이 굳은 원소를 보자, 마음이 아팠다. 건강이 안 좋은 원소에게 혹여 쓸데 없는 짓을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에 원소의 입이 열렸다.
"곽도를 어찌할 것이냐? 네 계획대로라면 그는 공신이야."
"공신이 맞으니 관직과 재물을 내려줄 계획입니다. 다만, 중앙관직이 아닌 태수를 내리려고 합니다."
"태수라? 그럼 연주나 서주의 중간 정도 크기의 군을 맡기는 것이 좋겠구나. 그래야 감시도 유용할 것이야. 그런 놈은 죽을 때까지 잘 지켜 봐야 해."
원매가 곽도를 태수로 보내면서 서로 마주치지 않는 방책을 내놓자, 원소가 억지로 승낙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한 얼굴이었다.
"폐하. 죄송합니다."
"이렇게 독대를 할 때는 편하게 호칭하라고 했잖아?"
"예. 아버지."
원매가 아버지라고 표현하자, 원소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매야. 너니까 승낙을 하는 것이다. 곽도 그 놈은 담이를 구슬려서 원가의 분열을 획책한 놈이야. 사지를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이지."
원소가 분노로 몸을 떨자, 원매는 급히 그의 손을 잡으며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따뜻한 기운이 전해지자, 원소의 표정도 어두움이 풀어졌다.
"이것을 드십시오. 속이 편해질 것입니다."
원소는 원매가 내미는 탕재를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벌컥- 벌컥- 들이켰다.
"크흐- 참 쓰구나."
"입에 쓴 것이 몸에 좋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불편하시다면 이 계획을 취소하겠습니다. 이렇게 안 해도 유비와 주유는 물리칠 자신이 있습니다."
"아냐. 계획대로 해. 빨리 천하를 통일해야지."
원소는 힘없이 일어났다.
"쉬어야겠어."
"죄송합니다."
"사내자식이 죄송하다라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아냐. 확실하게 처리해. 알겠지?"
"예. 아버지의 믿음에 반드시 부응하겠습니다."
"가봐. 나는 네 어미에게 가봐야겠다. 너도 일 마치고, 저녁때 들리거라."
"예.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원소는 내관의 부축을 받으며 처소로 들어갔다. 원매는 허리를 깊숙히 숙였다가 일으켰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걷는 원소를 보며 원매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유비를 잡자고 아버지를 힘들게 하고, 죽일 놈의 곽도를 살려줘야 한단 말인가?'
원매는 정신을 굳게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아냐. 원매야 정신차려라! 이 기회에 유비를 무너뜨린다면 천하통일은 한발자국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원매는 이를 악물고 곽가를 불러 원소의 승낙을 받았으니 즉각 작전계획을 준비해 오도록 명령했다. 곽가는 미리 준비해 놓은 계획을 꺼내서 그 자리에서 바쳤다. 원매는 차분하게 읽고 또 읽었다.
"좋은 계획이야. 가장 중요한 게 곽도의 마음을 돌리는 일이군. 그건 누구를 보낼 것인가?"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자네가?"
"예. 전하께서 이렇게 노력해주셨는데, 제가 가야지요. 그리고, 곽도는 영특하지만, 사악한 자입니다. 웬만해서는 그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제가 가서 목숨을 걸고 설득하겠습니다. 관우를 잡을 수 있도록 기병 2만을 양양성에 집결시켜 주십시오. 그곳에서 상황을 보고, 세작을 통해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곽도만 협력하면 관우는 잡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리고, 전하의 뜻대로 유비가 움직인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니 그때 하북의 보병을 움직여서 격파하면 될 것입니다."
"조심하게. 애써 얻은 자네를 잃을까 걱정이 되는군."
"술도 먹고, 계집질도 하면서 살아야지요. 억울해서 빨리 못 죽습니다."
"사람하고는. 그래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면 자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준비가 되는 대로 출발하게. 고생하시게."
"예. 전하. 그럼 옥체 보중하십시오."
원매는 곽가의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했다.
곽가는 곧바로 준비에 착수했다. 호위기병 10명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달렸다. 계속 평지가 이어졌기에 열흘을 달린 끝에 형북과 형남의 중간 거점이 강릉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릉에서 하루 휴식을 취하면서 형남 상황을 전해들은 그는 그곳에서 배를 타고 장사군 치소가 있는 침현으로 들어갔다. 호위병중 8명은 근처에 대기시키고, 2명과 복장을 갈아 입은 후에 치소로 향했다.
"멈춰라! 웬놈들이냐?"
성문을 지키는 위병의 외침에 곽가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저는 영천에서 온 곽씨입니다. 문중에서 전하라는 연통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곳에 곽도어르신이 계시지 않습니까?"
"이 죽간을 곽부도독께 전해 드리란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위병은 곽도와 연관된 일이고, 죽간을 싼 고급비단이나 잘 묶은 매듭을 보고는 소름이 돋았다. 그렇지 않아도 곽도가 요즘 심기가 불편한데, 잘못했다가 자신에게 화풀이를 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잠시만 기다리시게. 저기 의자라도 앉아 계시게."
그는 곧바로 상관에게 전달했고, 그는 몇 번 추궁하더니 곧바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부도독! 성문교위입니다."
"무슨 일이야?"
날카롭게 찢어지는 목소리에 성문교위는 몸을 움찔했다.
"저- 영천의 곽씨 문중에서 연통을 보내왔습니다."
드르륵-
곽도가 눈을 부라리며 나왔다. 그는 낚아채듯 죽간을 손에 쥐더니 면밀하게 매듭을 훑었다. 문중에서 대대로 행해지는 표식이 맞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들이라고 명령했다.
성문교위가 군례를 올리고 물러나는 것을 확인한 곽도는 다시 문을 닫고 자리에 앉아 단도를 꺼내 매듭을 풀었다. 비단을 풀자, 죽간이 나타났다. 기대를 하며 펼쳤지만, 놀랍게도 그것에는 글자가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다.
"어느 쳐 죽일 새끼가 감히 나를 농락한단 말인가?"
그가 죽간을 집어 던지며 문을 벌컥 열자, 멀리서 성문교위를 따라 오는 곽가가 눈에 들어왔다. 곽가를 한 눈에 알아 본 곽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요 여우같은 놈이 무슨 일을 꾸미려고 왔단 말인가?'
곽도가 매서운 눈초리로 곽가를 노려보았지만, 곽가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형님! 접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곽도는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래. 집안의 어른들은 안녕하시냐?"
"물론입니다. 어르신께서 전해드리라는 내용은 제 머리속에 있습니다. 형님- 오랜만에 사촌동생이 왔는데, 이렇게 밖에 서 있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곽도는 힐끔 성문교위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는 가보게. 이자는 내 사촌동생이야."
"예. 부도독!"
그가 군례를 올리고 물러가자, 곽가가 능청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야- 형님. 부도독이라니요. 정말 출세하셨네요."
"잡소리말고 들어와."
곽도는 쌩하게 몸을 돌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곽가는 능청스런 표정을 지으며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종사관에게 호위병을 챙겨달라고 부탁하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곽도앞에 태연하게 앉았다.
"무슨 일이냐? 어디 한번 이야기나 들어보자. 네놈이 나를 찾아올 이유가 있느냐?"
"에이- 형님. 왜 이러시유? 지난번에 원가에 쫓기어 올 때도 제가 유장군께 다리를 놔드렸지 않습니까? 저를 이리 박대하시면 서운합니다."
"그때는 고마웠다. 도대체 할 말이 뭐야?"
곽도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형님 배고픈데 밥 좀 주시오. 사촌동생이 왔는데, 너무하신 것 아니오?"
곽가가 뾰루퉁한 표정을 짓자, 곽도가 실소를 흘렸다.
"이놈이 넉살 좋은 것은 여전하구나. 공부하라고 해도 머리하나만 믿고 그리 놀러다니고, 그러더니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 그리고 조대장군께서는 어찌 되셨느냐? 원매에게 수춘성이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세상의 근심을 잊고 지하에서 쉬고 계십니다."
곽가는 다시 조조가 생각나자 눈물을 떨구었다. 곽도도 입을 닫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곽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대장군께서 그리 되셨으면 너는 뭐하고 있느냐? 갈 데 없으면 이곳에서 유장군을 모시는 것은 어떠냐?"
"그래도 되겠습니까? 제가 품행이 단정하지 못해서...... 하하-"
곽가는 쑥쓰러운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머리는 좋으니 충분히 태수는 할 수 있을 게다. 솔직히 여기에는 사람이 없다. 너 정도면 좋은 자리를 얻을 것이다. 대장군에게 있을 때에 비하면 부족한 게 있겠지만, 이곳도 사람사는 곳이다."
"저-형님. 며칠만 지켜보고 결정하고 싶습니다. 당분간 제 신분은 비밀로 해주십시오. 그냥......."
"알겠다. 사촌동생으로만 말하마."
곽도의 말은 많이 푸근해져 있었다. 그간 제대로 손발을 맞출만한 인재가 부족하여 혼자 고생했는데, 곽가가 도와준다면 훨씬 일이 수월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