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91화 (191/253)

# 191

제191장. 곽가의 계책.

업성 승상부 호조.

사마의가 이곳에 배치된 지도 벌써 5일이나 되었다.

"주와 군의 군량이 정확하게 맞지 않잖아?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인가?"

두기가 죽간을 내려놓으며 싸늘하게 질책하자, 사마의는 뭐라 변명이 나오지 않았다. 부상서라는 직함을 떡하니 받아 이곳에 왔고, 오자마자 두기는 군량부분을 맡겼다. 처음에는 군량이라는 중요한 것을 맡기니 기분이 좋았지만, 그것에 며칠동안 매달리자 '아차'하는 심정이었다.

주-군-현-정으로 이어지는 지방행정조직에서 각기 올리는 내용과 업성의 분량을 확인하고 일일이 대조해야 했다. 틀리거나 잘못되면 당연히 사람을 보내 확인해야 했다. 두기는 군량부분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에 한눈에 잘못된 것을 파악하고 질책하는 것이었다.

"왜 말이 없는가?"

"두상서. 저는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업무파악할 시간을 주셔야지요."

"그래? 밑바닥부터 하나씩 파악하고 싶다. 이거지? 그러면 종사관으로 내려줄까?"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너무한 것 없어. 군량은 조금도 틀리면 안 돼. 변명할 시간에 면밀하게 파악하고, 분석하고, 확인해. 5일 후에 다시 보고하게."

두기가 축객령을 내리자, 사마의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며 간신히 예를 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명문가의 자제인 사마의는 이렇게까지 수모를 당한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치소로 와서 자리에 앉자 제어되지 않는 눈물이 떨어졌다.

'이놈이 나와 무슨 억하심정이 있길래 이리 몰아붙인단 말인가? 어디 두고보자. 내가 사마의다. 이제껏 살면서 두뇌로는 져본 적이 없는 사마의란 말이다.'

사마의는 눈물을 훔치고는 종사관을 불러서 함께 확인작업을 시작했다. 하나 하나 꼼꼼하게 처리해서 다시는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두기치소.

"이 사람아. 자네의 부탁이니 해주긴 했는데, 좀 안됐더군."

"하하- 죄송합니다. 전하께서 사마의가 뛰어난 인재니 전반적인 업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조치를 명하셨습니다. 그러니 강하게 키워야지요."

"전하께서 기대하시는 인재란 말이로군. 흠- 그런데 말이야. 내 괴팍한 성미를 아실 텐데, 어찌 자네를 통해 이런 명을 내리셨단 말인가? 어차피 내 휘하로 오면 일하느라 곡소리가 나는 판국인데?"

두기는 중얼거리다가 눈을 반짝였다.

"요놈! 공명 네놈의 술책이렸다?"

"술책이라기 보다는 전하의 심중입니다. 전하께서는 그를 강하게 키우길 원하십니다. 물론 처음부터 강도 높게 다그치라는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기의 중추적인 인물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계시죠. 두상서께서도 처음에 저를 호되게 야단치며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알겠다. 에휴- 네놈들 다툼에 내가 중간에 왜 끼어 있단 말이냐? 원래 내 밑으로 오면 고생하니까 이제 신경끄고 가승상께 가봐. 일 해야지?"

"예. 그럼."

제갈량은 싱긋 웃으며 자리를 물러났다. 사마의를 괴롭히려고 이리 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극한의 궁지에 몰려야 숨겨진 잠재능력이 발휘되기에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한달 이내에 뭔가 나오겠지. 그걸 보면 내 경쟁상대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을 거야. 능력도 없으면서 못 된 성품만 가지고 있다면 가차없이 무너뜨려주마.'

제갈량은 다시 환한 표정을 지으며 승상치소로 향했다.

원매치소.

업성에서의 생활은 조금 따분했다. 오전에는 원소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오후에는 신하들과 국가정책에 대한 토론을 한 후, 밤에는 퇴청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잘 꾸며진 도로 위를 달리는 것처럼 특이점 없는 일상이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이것 참. 나중에 황제가 되면 이런 일의 반복일 텐데. 벌써 이런 생각이 들면 어쩌란 말인가?'

원매는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신하들을 모아 놓고, 폐하와 함께 업무를 주관할 때는 정말 짜릿했어. 모두를 내 발밑으로 놓는 기분은 정말이지 엄청난 쾌감을 준단 말이야. 이래서 사람들이 권력에 집착하는 것인가?'

그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내관이 조심스럽게 들어와 곽가가 왔음을 알렸다.

"전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서 오시게. 자- 이리로 앉아."

곽가는 예를 다시 취하고는 원매가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원매는 차를 따라 건네면서 입을 열었다.

"자네와 나는 참 묘한 인연이야. 처음에는 악연이었는데, 이제는 군신의 관계로 바뀌었으니 말이야."

"하늘이 정한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전하의 신하이니 최선을 다해 모실 것입니다."

"무슨 일로 왔는가? 급해 보이는 얼굴은 아닌데."

"주군의 자제들이 초현에 무탈하게 정착했습니다. 재산을 몰수하지 않았고, 신분이 격하되지도 않아서 비교적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도 마음의 무거운 짐을 덜어낸 것 같아서 마음이 가볍습니다."

"자네가 그들을 자주 확인하면서 혹시라도 다른 생각을 갖지 않도록 만들게. 혹여 주위에서 부추키는 놈들이 없는가도 확인하고. 그들이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면 그때는 끝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지금도 사람을 붙여서 감시하고 있습니다. 멍청한 짓으로 조대장군의 제사를 끊을 수는 없습니다."

단호한 의지가 섞인 곽가의 말에 원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또?"

"예. 제가 어사대에 있으면서 첩보를 확인해보니 형남이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형남? 관우가 있는 데를 말하는 군. 관우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더라도 나를 공격하지는 못할 거야.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훨씬 앞서니까. 공격은 내가 하는 것이고, 그에게는 그런 선택사항이 없지."

"다른 의도에서 말씀 드린 것입니다. 관우가 곽도를 매우 괴롭히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부터 아주 사이가 안 좋았는데, 관우가 상관으로 들어섰으니 불화는 뻔하지 않겠습니까?"

"흠- 유비가 어찌 그런 멍청한 인사를 했을까? 사이가 안 좋은 놈들을 묶어 놓다니. 그거 참."

"유비의 약점이 제대로 된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관우와 곽도라면 무와 문에서 최고의 인재이니 한 지역을 믿고 맡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소 사이가 벌어졌더라도 묶어 놓은 것이지요. 다만, 이 정도까지 심각해질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고심한 인사라 이거지?"

"예. 그리고 유비의 관우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또한 인사를 변경하지 못하는 요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곽도를 들쑤셔서 한번 흔들어 볼까 합니다."

원매는 대답하지 않고, 손가락을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겼다. 곽가의 그림을 대충 알아차리기는 했는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자네의 뜻은 알겠어. 그러면 곽도가 공신이 되서 돌아오는 상황이 되는 데, 이게 영 못마땅하단 말이야."

"대의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처음에 저도 주군과는 악연이었지 않습니까? 곽도도 그런 것이지요. 형남을 그의 노력으로 병력 손실 없이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해 볼 만한 계책이라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곽도문제는 예민해. 자네는 조맹덕(조조)의 신하였으니 나를 화나게 할 수 있었지. 그게 조맹덕에 대한 충성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곽도 이놈은 큰형님(원담)과 나를 이간질시켜서 원가를 뿌리 채 흔들었네. 이게 쉽지가 않아. 폐하께서도 그놈을 받아들이실지도 모를 일이고."

"가능한 방향으로 생각해주십시오. 유비를 궁지에 몰아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형남과 익주남부가 개발이 안되있다고 하지만, 이대로 몇 년 지나가면 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곽도를 이용해서 형남을 빼앗고, 관우를 죽인다면 유비는 극심한 정신적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유비와 관우의 관계는 의형제이지만, 진짜 형제 못지 않은 의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네 생각은 곽도를 이용해서 형남을 흔들고, 관우를 죽이자 이 말 아닌가? 그리고 형남을 내가 차지하면, 유비가 분노하여 앞뒤 안 재고 나를 공격할 테고, 그러면 그때 유비를 완전히 무너뜨리자 이 말 아닌가?"

"처음은 맞습니다. 제가 노린 것은 관우를 죽여 유비를 흔들자는 것이지요. 국력이 떨어지는데 설마 노련한 유비가 공격해 오겠습니까?"

곽가는 원매의 말이 논리적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유비가 조조에게 잠시 귀부를 한적이 있었는데, 순욱이 날카롭게 유비를 평가한 것을 기억해냈다.

-유비는 밑바닥부터 올라온 자이기에 행동을 예측하기 힘들다. 웃으면서 칼로 찌를 수 있는 소리장도를 시행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자가 유비이다. 차라리 죽여야 속이 편한 인물인데, 그러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가 그물을 찢고 세상으로나간다면 상상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주군(조조)께서는 아직 유비의 무서움을 모른다.-

곽가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다시 진언을 올렸다.

"전하. 유비는 냉철한 자입니다. 지난번에 장비가 귀부했는데도 큰 동요가 없었지 않습니까?"

"삼형제라고 하지만, 유비의 마음은 관우에게 기울어져 있다네. 장비는 은근히 견제를 당했지. 유비는 황손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밑바닥의 인물이고 관우도 마찬가지야. 그렇지만, 장비는 호족출신이지. 이 출신의 차이가 매우 크네. 그리고 성격도 한 몫 하지. 냉정한 성격인 유비는 자신과 비슷한 성격인 장비보다는 불같은 성격과 자신에게 절대 충성하는 관우에게 더 호감을 가졌어. 그래서 장비가 내게 귀부해도 동요가 작았지만, 관우가 죽는다면 엄청난 일을 벌일 거야. 관우는 유비에게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곽가는 설명을 듣고 나서도 좀처럼 이해를 하기 힘들었다. 최고 권력에 오른 유비가 의리에 얽매여 파멸할지도 모를 일을 저지를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원매가 빙긋 웃으며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이건 자네 잘못이 아니야. 자네같이 대호족가문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귀하게 자라면 결코 유비의 그런 어두운 면을 이해하기 힘들지. 사람이란 말이야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 보면 감정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지. 이성은 그저 감정이 판단한 것을 합리화시키는 도구에 불과해. 관우가 죽는다면 유비는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전쟁을 일으킬걸세. 장담해도 좋아."

"전하께서는 저보다 더 귀하게 자라셨습니다. 어찌 그런 심리를 소상히 아십니까?"

"나는 어려움이 많았네. 첩의 자식이라는 말을 들으며 큰형님의 노골적인 무시와 견제를 받았지. 업성에서 폐하의 자식으로 살았지만, 숨만 붙이고 살았어. 다행히 기회를 잡아 여기까지 올라왔네. 그간 평민이든 노비이든 능력과 충성심만 있으면 출신에 상관없이 무조건 데려다 썼지. 그러다 보니 그들의 심리가 보이더군. 이제는 이해가 되겠는가?"

"예. 전하."

"이것은 내가 좀 더 고민해 볼 테니, 자네는 계속해서 첩보를 획득하게. 폐하를 설득시켜야 하는 일이니 만큼 쉬운 일은 아니야."

"명심하겠습니다."

곽가는 원매의 치소를 나오면서 진땀을 닦았다. 원매를 처음에 봤을 때는 대단한 무장이라고 했고, 두번째는 지용을 겸비한 무장정도로 생각했다. 딱히 대단히 영리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틀렸다.

가까이서 지켜 본 자신이나 순욱도 이렇게까지 유비를 심도있게 분석하지 못했다.

'뭘까? 기의 첩보획득능력이 이 정도로 대단하단 말인가? 아니야. 아냐. 이건 가까이서 지켜보고 아는 부분이야. 더군다나 유비가 반드시 전쟁을 일으킨다고 단언을 할 때는 소름이 끼쳤어.'

곽가는 고개를 흔들었다.

' 일단 전하의 명대로 형남을 파악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겠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도 안되고, 모르겠군. 문약(순욱)형이 있다면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형! 보고싶소.'

곽가는 순욱이 그리웠다. 늘 구박하고, 자신의 잘못을 지적한 순욱이었지만, 조조와 함께 자신을 믿어 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날 곽가는 순욱을 애도하며 쓴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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