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제189장. 미운 아들. 이쁜 아들.
업성으로 가는 준비과정은 의외로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조조의 옛영토인 구강군과 여강군을 관리할 양강도호부를 만들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양강도호부는 강력한 수군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였는데, 이는 1~2년 뒤를 내다보고 주유를 공략하기 위한 준비였다. 그래서 이것을 만드는데 원매가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회하에 머물던 문빙/감녕이 이끄는 선단을 합비성 인근에 있는 소호로 이동시켰고, 그곳에 거대한 선착장과 배 제조시설을 만들어야 했다. 소호는 강수와 연결되어 있고, 잔잔한 넓은 호수였기에 수군을 양성하고 조련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보병을 남겨두어 수춘성의 자재를 합비성으로 가져가 보강공사하는 작업도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골치 아픈 작업이었다.
원매치소.
"만총도 마음을 돌렸다고요?"
원매가 믿기지 않는 듯 되묻자, 전풍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조조에 대한 충성심에 강하게 버티었지만, 이제는 모두 항복하는 등 상황이 변했으니까요. 곽가가 노력 많이 했습니다."
"잘 됐습니다. 만총은 뛰어난 인재입니다. 그리고, 합비성 보강공사를 하후돈에게 맡기자 이 말입니까?"
"예. 전하. 하후돈은 전투보다는 보급지원이나 후방안정시키는데 능력이 있습니다."
"그건 알고 있소. 하지만, 수춘성의 조조의 치소였고, 황궁이 있는데 그 자재들을 뜯어다가 합비성을 보강공사하는 겁니다. 재능과는 별개로 감정이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은 아닌지."
"하후돈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선선히 승낙했습니다. 그도 마음이 아프겠지만, 언제까지 과거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하후돈이 수춘성을 해체하는 작업을 맡으면서 다른 조조의 옛신하들도 한에 대한 생각을 차차 잊고, 기의 신하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양강도후부에 왕충, 주령을 놓자 이겁니까?"
"예. 지금 전하의 약점은 수군입니다. 특히 수전에 능한 장수들이 절대 부족합니다. 문빙과 감녕, 이엄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왕충과 주령을 이곳에 배치하여 수군장수로 키우려고 합니다. 계획대로 성장해 준다면 큰 소득이 있을 것입니다."
원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양군도호부.
도독-문빙.
부도독-감녕.
장수-왕충,주령.
병력-수군 2만. 조조군 항병 2만 충원. 도합 4만.
계획대로 된다면 수군 4만을 양성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다면 충분히 주유와도 일전을 겨룰 수 있을 것이다.
원매는 수춘성에서의 일을 마무리 짓자, 곧바로 신하들과 병사들을 이끌고 업성으로 출발했다. 병사들이 대부분 하북 출신이었기에 그들에게 쌀등을 포상으로 내주어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수춘성에서 배를 이용하여 회하를 도하했다. 업성까지는 평지였기에 이동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병사들까지 함께 움직이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기에, 원매는 기병들을 이끌고, 문신들과 함께 먼저 이동했고, 병사들은 곽준과 장패에게 권한을 주어 뒤를 따르게 했다.
원매는 빠르게 달려 10일 만에 업성에 도착했다. 미리 전령을 통해 전갈을 보냈기에 업성에서는 원매의 소식을 듣고는 대대적인 환영행사가 준비되었다. 원소는 여러 신하들을 이끌고 성문밖까지 마중을 나왔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경거망동은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예. 폐하."
원매를 기다리던 원소가 원담에게 강하게 주의를 주었다. 장자인 원담이 연금되어 술로 날을 지새우는 것이 안타까웠기에 이번 기회에 어떡하든 원매와 화해시키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있겠냐만은 원담은 특히나 더 아픈 손가락이었다.
원담은 술로 지새운 나날이 많아서인지 얼굴이 까칠어졌고, 체격도 볼품없어졌다. 눈빛도 탁했다.
"쯧쯧- 이놈아. 어찌 이리 못났느냐? 그럴수록 더 노력을 해야지."
"다 끝났습니다. 폐하께서도 오로지 매만 아끼지 않습니까?"
"이놈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 "
원소는 갑자기 속이 답답한지 말을 잇지 못하고 의자에 앉았다. 급히 어의가 다가와 진찰을 했고, 주변의 대신들이 급히 몰려들었다. 잠시 후, 원소는 안정을 찾았지만, 대신들의 따가운 눈총은 원담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봉기는 원담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참으로 식충이같은 놈이로다. 제 동생은 황태자가 되어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거늘, 저놈은 하는 게 뭐란 말인가? 죽일 놈같으니라고.'
원소의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원담이 갉아 먹는다고 생각하자, 원담이 밉고 또 미웠다. 원소는 오랫동안 친우였기에 다른 신하들에 비해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진심으로 기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고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눈에 금군을 통솔하고 있는 거대한 사내가 들어왔다. 금군대장 사마구였다. 봉기는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사위지만, 참으로 대단해. 저렇게 땅 속에 묻혀 있던 인재를 어찌 찾아내셨단 말인가?'
이때였다. 맨 앞에 있던 금군이 크게 소리쳤다.
"태자전하께서 오십니다."
원소를 비롯한 신하들이 웅성거리고 시작했고, 사마구가 길을 왔다 갔다 하며 통제를 시작했다. 원소가 마지막에 있었지만, 신하들이 앞으로 나서서 눈을 가리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점처럼 작아 보이던 원매는 어느덧 사람의 형상을 띠어갔고, 이제는 얼굴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태자전하 천세!"
"태자전하 천세!"
백성과 금군들이 일제히 천세를 외쳤다. 원매가 조조를 정벌했고, 형주북부와 익주북부, 구강/여강군을 점령하는 등 큰 공을 세웠기에 백성과 금군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받으며 원매가 환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환호를 받으며 미소를 지었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간간히 손을 흔들며 그들의 응원에 대답했다. 조운은 경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곳이 업성이었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수춘성에서 공융을 막지 못하여 원매가 상처를 입은 후로 크게 자신을 자책했다. 호위대장으로서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 후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래서 업성이었지만, 결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태자전하 전공을 감축드립니다."
"고맙소이다."
신하들이 일제히 축하를 건네자, 원매는 그들을 위로했다. 원소가 보이자 그는 급히 말에서 내렸다. 조금 걸은 후 원소에게 엎드려 절을 올렸다.
"폐하. 신 원매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전투에 승리하고, 영토를 크게 넓혀서 폐하의 위명을 드높일 수 있어서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일어나라. 너는 누가 뭐래도 자랑스런 내 아들이다."
"예. 폐하."
원매가 일어서자, 원소가 친히 걸음을 옮겨 그의 손을 잡았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다친 팔은 어떻더냐?"
"괜찮습니다. 보십시오. 상처가 모두 아물었습니다. 소자가 부주의하여 아버님께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자- 안으로 들어가자. 너를 위해 성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
"예. 폐하."
원매는 원소를 부축하여 조심스럽게 황궁안으로 들어갔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가후, 제갈량, 고람, 저수등과 눈인사를 하였다. 참으로 보고 싶던 인재들이었다. 진정으로 자신을 반기는 사람들을 보며 헛살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보기 싫은 얼굴이 등장했다.
"매야..... 아니.... 태자전하. 전공을 감축드리.... 옵니다."
원담이 떨떠름하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원소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이놈! 똑바로 하거라! 어서!"
"태자전하. 감축드립니다."
"형님. 고맙습니다."
"태자야. 현사(원담)도 그동안 많이 노력했다. 반성했고, 좋아졌다."
원소는 짧은 말로 원담에 대한 걱정을 전달했다. 어떡하든 다시 데려다가 쓰고 싶었다. 그 뜻을 바로 알아들은 원매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모든 것은 폐하의 의지대로 움직입니다. 원하시면 형님을 장군에 봉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래야겠지? 그래도 현사가 군사를 지휘하는 능력은 뛰어나. 태자도 그것은 인정하지 않느냐?"
"물론입니다. 저도 형님의 지휘통솔능력에 감탄을 했으니까요."
원소는 원매가 자신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자, 얼굴이 환해졌다.
"현사야. 어떠냐? 장수로서 다시 나서 보겠느냐?"
"예. 폐하. 맡겨만 주십시오."
연금이 풀리고, 다시 관직에 오른다는 생각에 원담의 표정은 밝아지고 목소리는 커졌다. 일희일비하며 생각을 얼굴에 드러내는 원담을 보며 원매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형님은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은혜를 베풀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황궁에서 크게 잔치가 벌어지고 있을 때, 사마구는 금군을 이용해 경계강화를 지시하고는 부금군대장 조운을 호출했다. 조운은 경직된 얼굴로 사마구치소로 들어섰다. 그의 예상대로 사마구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너 뭐하는 놈이야? 이 멍청한 놈아!"
원매를 만나 글을 배우고 읽으며 지용을 갖춘 장수로 성장한 사마구였다. 하여 말을 하더라도 문인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옛날의 산도적 때로 돌아간 것처럼 험악한 말이 쏟아져 나왔다.
"태자전하를 호위하라고 보냈더니 감히 옥체에 상처를 입혀? 네놈이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더냐? 내 기분대로 한다면 네놈의 목을 베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조운은 무릎을 털썩 꿇었다.
"분이 풀리실 때까지 때리십시오. 저는 죽을 때까지 태자전하를 보필하며 그 죄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조운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분함의 눈물이었다.
"어이구. 이 한심한 놈같으니라고."
사마구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고, 발로 차며 분노를 표현했지만, 조운을 때리지는 않았다.
"일어나!"
조운은 일어섰고,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며 노란 별이 반짝였다. 그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사마구가 가차없이 그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오늘은 이걸로 끝낸다. 하지만, 명심하거라! 한번만 더 태자전하께 불충을 저지른다면 그때는 네놈의 목을 반드시 벨 것이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가봐."
조운은 군례를 올리고는 물러났다. 사마구는 안타까운 눈으로 조운이 나간 곳을 바라봤다.
'조자룡. 다시는 실수하면 안된다. 또다시 이런 실수를 한다면 저태위(저수), 가승상(가후), 고병조(고람)의 분노로부터 너를 지켜주지 못 할 것이다. 조심하고 항상 태자전하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거라.'
사마구는 그들의 분노를 달래느라 엄청나게 노력을 해야 했다. 원매가 공융의 기습으로 상처를 입었다는 소식에 대신들이 안타까워했고, 그 안타까움은 호위대장 조운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원매를 처음부터 보필했고, 병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고람의 분노는 특히 컸다. 사마구가 옛정까지 운운하며 간신히 막았던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 한번 더 이런 일이 생긴다면 무슨 일이 터져도 터질 것은 자명했다.
원매는 늦은 저녁이 되어 만취해서 처소로 돌아왔다. 봉영은 오랜만에 원매를 보자 눈물이 글썽였다. 원패는 어느새 3살이나 되었고, 조금씩 뛰어 다녔다.
"아바마마!"
"오냐. 이리 오너라!"
원매는 팔을 활짝 벌려 원패를 꼭 끌어 안았다. 그의 거친 숨결에 원패는 간지러워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원매는 한손으로 원패를 안고는 봉영에게 다가와 안았다.
"그간 고생하셨소. 어찌 낭군이 왔는데 눈물만 흘리시는 것이오?"
"태자전하. 다녀오셨습니까?"
"어허- 낭군인데. 다시 말해 보시오. 사랑스럽게."
"상공 무탈하게 다녀오셨어요?"
"하하- 훨씬 듣기 좋구려. 내가 그말 한 마디를 들으려고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왔소이다. 자- 들어갑시다.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아요."
원매는 원패와 한동안 시간을 가진 후, 유모에게 맡기고 봉영을 마주했다. 그녀를 꼭 안았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