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제188장. 믿음을 이끌어내다.
"전하. 어서 저들을 모두 심문하라는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감히 전하의 옥체에 상처를 입힌 자들입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전풍이 다신 간했고, 사마의가 동참했다. 조운을 비롯한 장수들마저 같은 주장을 반복하자 원매는 조금 난감해졌다. 그는 말없이 조조의 옛신하들을 돌아 보았다.
그들은 두려움에 가득한 눈으로 원매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조가 자살을 한 마당에 굳이 이렇게 나올 이유가 있을까? 이렇게 하여 얻을 이익이 무엇일까? 하후연등 장수가 기습했다면 장담못 할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왜 늙고 고집불퉁인 공융이었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만, 생각할 수록 안개속을 걷는 것처럼 모호해졌다.
"공융을 심문하라! 조조의 신하들은 혐의가 벗겨질 때까지 잠시 이곳에서 연금한다. 단, 그들은 손님의 자격으로 예를 다하라!"
이 기회에 골치 아픈 놈들을 제거하려던 전풍은 쓴 입맛을 다셨다.
"조자룡! 그대가 공융을 심문하라! 강하게 하여 빠른 시간내에 모든 정황을 확인하여 보고하라!"
"예. 전하!"
조운의 호위병들이 공융을 이끌고 옆의 막사로 이동한 가운데, 사마의가 조조의 신하들을 커다란 막사로 안내하였다.
"이곳에서 잠시 쉬시오. 밖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보고하고 움직이시오. 독단적인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화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알려드리겠소."
"이보게. 중달."
사마의가 고개를 돌리자, 진군이 아는척을 했다. 진군의 부친 진기와 사마의의 부친 사마방은 친분이 있었기에 진군과 사마의도 안면이 있었다.
"말씀하시오."
"우리는 공융이 벌인 행동과는 관계가 없네. 이런 짓을 벌여서 얻을 이익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주군의 자제가 모두 죽어서 그분의 제사가 끊어지는 불충을 저지를 바보가 아닐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소이다. 다만, 전하께서 그대들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오. 아직은 불편한 시선이 있으니 자중하고 자중하시오. 공융을 심문한 결과 혐의가 벗겨진다면 전하께서 그전에 약속하신 부분을 실행하실 것입니다."
사마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막사를 벗어났다. 조조의 신하들은 다소 안도한 표정이었다. 무장들은 공융을 죽였어야 했다며 뒤늦은 울분을 터트렸고, 문관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쫙- 쫙-
화가 난 조운이 모질게 내리치는 째찍질에 살갗이 떨어져 나갔다. 공융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기절했다.
"찬물을 끼얹어라!"
촥-
"으으으윽-"
공융이 신음을 터트리며 정신을 차리자, 조운이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왜 그랬느냐? 감히 이런 짓을 하고도 목이 성할 줄 알았느냐?"
"나는....... 한의 신하다. 원매..... 죽일 놈이 한을 무너뜨렸는데, 어찌 보고 있으란 말이냐?"
"이런 불순한 놈을 보았는가?"
또다시 가혹하게 채찍질을 이어가자, 공융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2시진(4시간)에 이어진 심문 끝에 모든 것을 밝혀냈다. 어차피 안 되면 죽인다는 생각으로 가혹하게 밀어붙였고, 공융은 온몸이 너덜너덜해졌다.
"전하. 조운입니다."
"들어오게."
조운은 군례를 올리고는 조심스럽게 심문결과를 작성한 죽간을 바쳤다. 원매는 차분하게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의 단독소행이다 이거지? 기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한의 충신이기에 이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미친놈이 틀림없습니다.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도 진술이 일관된 것으로 보아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원매는 죽간을 전풍과 사마의에게 돌려서 읽게 했다. 전풍이 읽고는 아쉬운 표정으로 사마의에게 넘겼다.
"조장군! 공융 그 놈이 거짓에 속은 것은 아니오?"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도 일관된 진술을 한다는 것은 진실을 의미합니다. 제가 이제까지 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다 보면 공포에 찌든척 거짓을 연기하는 놈과 정말 공포에 찌든 놈은 단번에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절대 제 눈을 속이지는 못합니다."
확신에 찬 조운의 답변에 전풍이 짧게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원매는 사마의에게 눈길을 돌려 의견을 물었다.
"저는 조장군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래. 그럼 만장일치가 된 셈이로군. 내일 아침 일찍 주요 간부들을 소집한 가운데, 공융의 죄를 선포하고 참형에 처하도록 하지. 그리고, 다시는 한을 운운하는 놈들에게 한번은 용서하지만, 두번째는 가혹하게 법을 집행할 것을 알리게."
"참형은 가볍습니다. 오마분시로 하시지요. 감히 전하의 옥체에 상처를 낸 자입니다."
조운이 참혹한 오마분시를 건의하자, 전풍과 사마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원매도 많은 사람을 죽였고,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오마분시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지나치게 잔혹했기 때문이었다.
"참형으로 하지. 더는 말을 말게."
다음날.
조조의 신하들과 원매의 주요장수들이 공터에 모인 가운데, 중앙에 공융이 꿇어 앉아 있었다. 사마의가 앞으로 나서 공융의 죄상을 낱낱이 추궁했다.
" ...(생략).... 공융은 이미 무너진 한을 추종하는 미친 자로서 감히 전하의 옥체에 상처를 입히는 대역무도한 죄를 저질렀다. 이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또한, 다른 이들과의 연계를 추궁했으나, 독단적인 범행임이 밝혀졌다. 이에 공융을 참형에 처한다 ...(중략).... 또한, 이를 계기로 여기 있는 모든 자들은 다시는 한을 입에 올리는 일이 없도록 엄중히 경고하는 바이다."
사마의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조조의 신하들은 짧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원매가 작정하고 뒤집어 씌우려고 했다면 수 많은 자들이 올가미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전하께서 올바른 판단을 하셨소이다."
진군이 낮은 목소리로 정욱에게 말하자, 정욱도 고개를 끄덕였다.
"배려가 느껴집니다. 합리적인 분이란 판단도 들고요. 주군의 자제들에게도 관직을 내려주신다고 하셨는데 확실히 선의란 것이 느껴지는 군요."
진군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조조의 신하들이 대부분 이런 생각이었다. 그들도 어제 원매의 신하들이 보여준 강경한 태도에 매우 긴장했기 때문에, 원매의 결정에 호감을 갖게 된 것이다.
공융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악화일로로 치달을 뻔 했던 사건은 오히려 조조의 신하들의 믿음을 이끌어 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공융이 참형에 처해졌다. 그의 시체는 들판에 버려졌으며, 머리는 효수되었다.
"모두 잘 들으시게."
원매가 앞으로 나서며 마무리 발언을 이어갔다.
"이제는 모두 하나야. 옛것을 잊고 새롭게 하나로 뭉쳐서 기冀가 태평성대를 이루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야. 이후로 서로 반목하는 것은 내가 용서치 않겠어. 또한, 앞으로는 한漢을 들먹이는 자는 반역죄로 다스릴 것임을 엄정하게 공포하는 바이오. 모두 아시겠소이까?"
"예. 전하."
"잘 됐어. 이곳에 며칠 머무른 연후에 업성으로 올라갈 것이니 모두 준비하시오. 곽봉효!"
"예. 전하."
"이제는 자네들도 기의 신하야. 업성으로 모두 올라갈 것이니 휴식을 취하며 준비토록 하게."
"예. 전하."
원매는 곽가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또한, 전풍에게 앞으로의 진행사항에 대해 중신들과 회의를 하고 결과를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자리를 파한 연후에 전풍의 주관으로 회의가 진행되었고, 조조의 신하들은 정해진 장소로 이동하여 휴식을 취했다. 원매는 하후연과 하후돈을 따로 불렀다. 그들은 긴장한 기색으로 원매의 지휘소로 들어와 군례를 올렸다.
[하후연(33)] 무력:91, 지력:78, 정치력:61, 통솔력:87
[하후돈(34)] 무력:87, 지력:61, 정치력:76, 통솔력:88
"자- 이리로 앉으시게."
원매는 그들을 자리에 앉힌 후, 차를 따라 주었다.
"긴장을 풀어. 이 사람들아. 전장에서 그리 용맹한 사람들이 내 앞이라고 이리 긴장하는 것인가?"
"저희는 대장군의 유명을 계승해야 합니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까 두려운 것입니다."
"하하하- 역시 묘재(하후연) 자네의 배포는 대단하군. 걱정마시게. 내가 약속을 뒤집을 정도로 그리 무식하지는 않다네. 대장군의 자제인 조충, 조식이 영특한 것은 자네들도 알고 있겠지? 지금 이대로 잘 성장한다면 내가 데려다가 쓸 생각일세."
"옳으신 선택이십니다. 두 분은 총명함이야 익히 유명했습니다.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원하는 직책이 있는가?"
하후연과 하후돈은 서로를 마주보며 눈빛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하후돈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묘재는 가능하다면 지금처럼 기병을 운용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제 동생이래서가 아니라 기병지휘관으로서는 최고의 역량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하지. 묘재의 재능은 나도 알고 있다네. 자네는?"
"저는 후방에서 나라를 안정시키는 일을 하겠습니다."
"그건 빛이 나지 않는 임무야. 솔직히 포상에서도 아래로 처지고. 그래도 괜찮은가?"
"그게 제 적성에 맞습니다."
하후돈은 머리를 긁적이며 선한 표정을 지었다. 하후연이 그러지 말라고 옆구리를 툭-쳤다.
"아- 괜찮아. 일찍이 원양(하후돈)의 성정을 내가 잘 알고 있었어. 원양은 후방지휘관으로 임명토록하지. 일단 둘 다 이곳에서 며칠 머물고 업성으로 올라갈 테니, 준비를 하고 있게."
"명을 따르겠습니다."
하후연과 하후돈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막사 밖으로 나왔고, 조조의 신하들은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원매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조조의 최측근인 하후연, 하후돈이 중용된다면 다른 자들도 능력에 따른 보상을 받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어두워져 조금 늦은 시각.
"주군. 전풍입니다. 주무십니까?"
"괜찮아. 들어오게."
전풍은 조심스럽게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회의를 마치고,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원매는 전풍이 내미는 죽간을 훑어 보며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
"수고했소. 수춘성의 자재를 활용하여 합비성을 강화시키자 이말이오?"
"예. 한황실이 있었는데, 그대로 두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참에 그곳을 부수어 자재를 합비성으로 가져가서 보강공사를 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잘 생각했소. 나는 불태워버릴까 생각했는데, 그게 좋겠소. 그리고, 서주 도호부를 하비성으로 돌려보내고, 여강군/구강군을 아우르며 주유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새로운 도호부를 만들자 이것이오?"
"예. 명칭은 양강도호부, 도독은 수군에 밝은 문빙이 좋을 듯 합니다. 감녕을 부도독으로 삼아 수군중심으로 운영할 방침입니다. 장수들과는 좀더 의견조율이 필요한 만큼 추후에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알겠소. 그리고, 공신목록을 빠짐없이 작성해 주시고, 옛 조조의 신하들에게 어떤 관직을 내릴지도 시간을 갖고 의논하시오."
"예. 전하. 더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없소. 이동하는데 만전을 기해주시오."
전풍은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막사를 벗어나려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전하. 공융을 처리한 방식은 참으로 영명하셨습니다. 덕분에 조조의 신하들이 전하께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맙소.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려고 노력했을 뿐이오. 기의 태평성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합시다."
"예. 전하.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원매는 자리에 앉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하자, 피로가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조조는 사라졌고, 한도 사라졌다. 주유, 유비, 유장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원매의 시대가 열렸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