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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87화 (187/253)

# 187

제187장. 신념. 그리고 이어지는 행동.

곽가는 원매에게 받은 죽간을 품고 수춘성으로 말을 몰아갔다. 곽가를 확인하자 성문이 열렸고,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조조의 죽음은 비밀로 해야 했지만, 신하들의 울음소리와 눈치 빠른 종사관/내관들을 통해 은밀하게 성안으로 퍼져나갔다.

곽가는 웅성거리는 그들을 멀리하고 곧바로 치소로 들어섰다. 조조가 누워있던 자리에는 병풍이 쳐져 있었고, 그 앞에 향이 피워져 있었다. 대부분의 신하들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나 곽가가 그대들에게 할 말이 있소이다."

곽가가 중앙에 서서 힘을 주어 말하자 그들은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에게 모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곽가는 이를 악물었다.

"기冀의 전하께서 청을 수락해 주셨소이다. 주군의 자제분들도 대부분 살려주시고, 신분격하, 재산몰수 없이 초현에서 평온하게 살 수 있도록 조치주셨소. 여기 계신 분들은 일정한 심사를 거쳐서 일부는 기冀의 신하가 될 수 있을 것이오."

"이보시오. 곽좨주. 그걸 자랑이라고 떠드시오? 기의 신하라니? 주군께서 돌아가신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런 말이 술술나오다니 기가 막히는군. 주군께서 특별히 그대를 총애하셨는데, 그대의 얼굴은 새로운 관직을 얻어서 기쁜 얼굴이구려."

진군이 냉혹하게 곽가를 비난했지만,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저는 기의 신하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입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약조를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전하의 명령을 수행한 후에 다시 관직을 달라고 요청할 생각입니다."

탕!

꼬장꼬장한 정욱이 탁자를 내리치며 분노를 터트렸다.

"이 자가 미친 것이 아닌가? 주군께서 저기 계시거늘 어찌 이런 망발을 한단 말인가?"

대다수의 신하들과 정욱, 진군처럼 반발하는 가운데,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때 순욱이 조용이 입을 열었다. 곽가가 성을 나설 때, 치소로 향했던 그는 어느새 이곳으로 돌아와 있었다.

"곽좨주께서 고생이 많소. 여러분! 너무 그를 몰아붙이지 마시오. 살아남은 주군의 자손들을 돌봐야 하는 의무가 남아 있소. 여러분중 일부라도 관직에 있어야 그분들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도움을 줄 수 있소이다. 그러니 관직을 내려주면 거부하지 마시고 받아 주시오. 아직도 전하주변에는 주군의 자제분께서 온전하게 살아 계신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중신들이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할 것이오."

순욱이 명확하게 설명하자, 치소안은 다시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곽가에게 향하던 분노의 시선은 어느정도 가라 앉은 상태였다.

"방금 전에 주군 자제중 대부분이 산다고 했는데, 정확하게 말해 주시오."

하후연이 예리하게 파고 들었다. 시선이 다시 곽가에게 모아졌다. 모두 그 부분을 알고 싶었지만, 차마 질문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도 몇 명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한 만큼, 그것을 아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곽가가 안색을 굳히고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대공자(조비)와 이공자(조창)를 빼고는 모두 초현으로 돌아갈 수 있소이다."

예상보다는 많이 살아 남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는지 여기 저기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되었구려. 고생하셨소이다."

하후연은 무겁게 입을 닫았다. 이제는 항복이 현실이 되었고, 확정되자 분위기는 조금 미묘하게 변했다. 항복해서 관직을 받는 것이 비난받을 일이 아니란 것을 순욱이 확인시켜주니 더욱 그랬는지도 몰랐다. 자신의 충성심도 중요하지만, 이들은 가문을 대표했기에 가문도 중요하게 생각해야했다.

영특한 이들이 이것을 예상하지 못 했을 리가 없다. 조조에 대한 의리나 세간의 비난이 두려워 모른척했을지도 모른다.

"폐하는 어찌 되시는 겁니까?"

정욱이 다시 물었을 때, 순욱은 나쁜 결과를 예상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곽가는 선선히 대답했다.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순욱의 두 눈에서는 결국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충성스러운 한漢의 신하인 순욱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당연히 황제의 목숨을 구할 수도 없었다.

하후연과 하후돈과 함께 일어섰다. 왕충, 주령, 이전도 무표정한 얼굴로 일어섰다. 하후연은 이를 악물었다.

"내가 원양(하후돈)형과 함께 황궁으로 갈 테니, 이장군께서 왕장군, 주장군을 데리고 대공자 처소로 가시오."

장수들이 둘로 나뉘어 움직이자, 신하들도 자연스럽게 둘로 나뉘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장수나 신하들이나 모두 비참한 표정이었다. 이것이 최선이고 해야 하니 하는 것 뿐이다. 조조의 자식들을 모두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전이 장수들과 일부 문관들을 데리고 조비의 처소에 도착했다. 조비가 밖으로 나오자 모여있던 조조의 부인들과 조비의 동생들이 우루루 몰려 나왔다.

"대공자를 뵙습니다."

"어인 일로 이리 몰려 오셨소."

"기의 전하께서는 항복을 받아들이시고, 삼공자부터는 초현으로 돌아가라 하셨습니다. 재산몰수, 신분격하도 없을 것이고, 관직의 길도 열어 주셨습니다."

삼공자부터란 말에 조비는 아득해졌다. 그럼에도 조비가 부들거리면서도 냉정함을 유지했지만, 조창은 달랐다.

"안 돼! 안 돼!"

그는 괴성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아직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조비와 조창의 모친인 변씨는 조창을 잡고 연신 눈물을 쏟았다.

이전이 이를 악물고 길게 자른 흰 비단 두 개를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조비는 안색이 파래지고 몸이 부들 부들 떨렸지만, 최대한 의연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비단을 받아 들었다.

"이장군. 고.... 고생했소이다."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고는 모친 변씨에게 큰절을 올렸다.

"소자를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용서하십시오."

그제야 엎드려 북받치는 울음을 터트리는 조비를 변씨가 끌어안고 통곡했다. 모두 눈물을 훔쳤다. 조창은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조비가 흰비단을 들고 들어서자, 왕충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변씨는 문을 잡고 그저 울기만 할 뿐이었다. 아들의 죽음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하는 그녀의 슬픔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비와 대조적으로 조창은 주령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며 울음을 터트렸다.

황궁.

내관들과 호위병들은 하후연과 하후돈이 군사를 이끌고 오자 바짝 긴장한 얼굴로 경계태세를 유지했다.

"무슨 일이시오?"

호위대장이 용기를 쥐어짜서 소리쳤다. 하후연이 냉막하게 입을 열었다.

"한이 망했고, 이제는 기의 세상이 되었소. 망국의 황제가 황궁에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자진하시오!"

"하후장군! 이럴 수는 없소이다."

"안 한다면 강제로 내가 집행하겠소."

남아 있는 조조의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하후연은 이를 악물었다. 호위대장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양측의 병사들이 모두 칼을 뽑아들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후연이 천천히 대도를 뽑았다.

"어차피 쉽게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따르지 않는다면 모조리 죽일 수밖에."

하후연이 말을 마치자마자 호위대장에게 달려들었고, 이를 신호로 하후돈과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들며 백병전이 벌어졌다. 전투는 싱겁게 끝이났다. 수많은 전투로 단련된 조조군을 황제호위군이 당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관은 두 팔을 벌리고 문을 막았다. 그는 죽음을 각오한 듯 한 표정이었다.

"이얍-"

하후연 뒤에 있던 병사가 달려 나와 그대로 베어 넘겼다.

"가자!"

하후연이 앞장서자, 하후돈과 병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중간에 앞을 막아서던 내관이나 병사들은 그대로 황천행으로 직결됬다.

쾅-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렸다. 하후연과 병사들이 피묻은 칼을 그대로 들고 황제의 치소로 들어섰다. 황제 유협은 떨지 않았다. 동탁, 이각을 거치며 수없이 죽음과 접하고 살아온 그는 어찌보면 평안한 얼굴이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소. 둥지가 땅바닥에 떨어져 깨졌는데, 그 안의 알이 무사할까? 자진을 할 터이니 비단을 주시게. 그 정도는 해 주겠지?"

"죄송합니다. 폐하. 용서하십시오."

하후연이 군례를 올리고는 품에서 비단을 꺼냈다. 곳곳에 핏물이 배인 비단은 섬찟했다. 유협이 비단을 받아 들었을 때, 비단 찢는 듯 한 여인의 괴로운 고성이 터졌다.

"폐하- 안 됩니다. 폐하-"

동귀비였다. 유협은 다시 하후연을 바라보았다.

"하후장군. 내 목 하나로 끝을 내주시오."

"그리 하겠습니다."

"동귀비. 나를 잊고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그대가 있어 행복했소."

"폐하. 흐흐흑-"

동귀비가 엎드려 울음을 터트리자, 하후연이 부하를 시켜 끌어냈다. 하후돈이 직접 움직여 비단 끈을 석가래에 걸었고, 얼마 안 가 모든 것이 끝이났다.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이렇게 비참한 것이다.

곽가가 세 개의 수급을 상자에 담아 성문을 열고 나섰다. 그 뒤를 신하들과 장수들이 따랐다. 곽가는 계속해서 고개를 돌려 수춘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안타까움이 흘러 나왔다.

'문약(순욱)형. 잘 가시오. 내가 더 열심히 살면서 주군의 자제들을 잘 보살피겠소. 황후도 고향에 내려가서 잘 살 수 있도록 조치하겠소. 마지막 가는 길에 너무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소. 누구도 형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오. 보고 싶을 것이오.'

곽가는 눈물을 닦았다.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에게 유독 매정하게 야단을 치고, 어떨 때는 인간취급도 하지 않던 순욱이었지만, 이제는 보고 싶었다. 그가 왜 그랬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곽가 일행은 한참을 걸어서 원매치소에 도착했다. 원매는 부드러운 얼굴로 마중나와 그들을 격려했다. 곽가가 내민 수급상자는 전풍이 확인하고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완료된 것이다.

"나는 조대(대장군조조)와 아무런 악감정이 없소이다. 그저 난세의 비정함이 이렇게 만든 것이오. 그대들에게도 관직을 내어주겠소. 나와 함께 업성으로 올라갑시다."

신하와 장수들이 고개를 숙였고, 원매가 한 명씩 그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죽어랏!"

갑자기 원매를 향해 한명이 달려들었다. 그는 품속에 숨겨두었던 날카로운 소도로 원매를 찔렀다. 가까운 거리였기에 피할 수 없자, 원매는 급히 왼팔을 들어 소도공격을 막았다.

푹-

소도가 팔뚝에 꽂혔지만, 강인한 근육덕분에 관통은 면했다. 원매는 오른주먹으로 그의 면상에 날렸다. 그는 한방에 그대로 고꾸라지며 뒤로 넘어졌다. 조운이 달려와 발로 차고는 급히 칼을 뽑아들었다.

"죽이지마라! 배후를 밝혀야 한다!"

전풍이 재빠르게 조운을 제지했고, 의원들이 급히 원매의 팔뚝을 치료했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았다. 곽가를 비롯한 신하와 장수들은 매우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했다.

"누구냐?"

"공융입니다."

곽가가 급히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자, 신하와 장수들도 무릎을 꿇었다.

"전하! 저희는 공융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행동입니다."

묘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원매는 잠시 눈을 감고 역사를 되돌아 보았다. 공융은 건안 칠자의 일인으로 언변이 뛰어났고, 한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다.

'내가 관대하게 처분한 것이 이렇게 독이 되서 돌아오는가? 아니야. 아니야. 의심하고 죽이려고 하면 끝이 없어. 공융은 고지식하고 독선적인 놈이야. 거기에 황제가 죽었으니 제정신이 아니었겠지.'

"전하. 당장 공융을 비롯하여 이자들을 모두 심문하고, 죄를 추궁해야 합니다."

전풍을 비롯한 신하들이 일제히 강력한 대처를 주문하고 나서면서 상황은 묘하게 꼬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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