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제181장. 갈등. 갈등.
원매가 조조를 궁지에 몰아 넣고 마지막 목을 조르고 있을 무렵.
강동 말릉성 주유치소.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도대체 태사장군 자네는 무슨 짓을 하고 온거야?"
주유는 황망하여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병사 3만을 보냈는데, 9천이 돌아왔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성과라도 있다면 위안을 삼겠지만, 아무런 이득도 없이 대패를 하고 돌아온 것이다.
"입이 있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봐."
주유의 다그침에 능조, 하제는 급히 엎드려서 죄를 청했고, 대장인 태사자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입이 열개라도 주군께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원매의 역습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패배하였습니다. 억울하고 분하여 그곳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려고 했으나, 그것이 최선이 아님을 알기에 이리 구차한 목숨을 구해서 강동으로 돌아왔습니다. 죽여주십시오."
"죽여주십시오."
태사자가 죄를 청하며 눈물을 쏟자, 능조와 하제도 죄를 청하며 이마를 바닥에 두드렸다. 주유는 몇 마디 말만 듣고도 상황이 짐작되었다.
"조대(대장군조조)는 가망이 없는가?"
"그렇습니다. 수춘성은 포위되었고, 외부에 있던 병력은 모두 원매군에게 격파되었습니다. 성을 겹겹히 포위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항복하거나 굶어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저희들이 이곳으로 후퇴했습니다."
주유는 충격을 받고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장소가 어두운 얼굴로 진언을 올렸다.
"조조가 무너진다면 원매는 반드시 강동으로 칼끝을 돌릴 것입니다. 이미 중원의 대부분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는데, 강동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오?"
"국력이 10배가 넘게 차이가 나고, 조조라는 방패막이 곧 사라집니다. 이제는 원매가 대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쾅-
주유는 분노한 얼굴로 탁자를 내리쳤다.
"닥치시오! 아직 한번도 전투를 치루지 않았는데, 벌써 항복을 논한단 말이오? 그대가 제정신이오?"
"강동의 백성이 모두 전화에 휩싸여 죽을 수는 없습니다. 당장 그러자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해두셔야 합니다."
현실론을 설파하는 장소 때문에 주유가 불편함을 드러내자, 태사자가 분기탱천했다.
"이보시오!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강동은 넓고 사람이 많소이다. 더군다나 주군께서는 네개군을 강하게 틀어쥐고 있고, 병사들은 강인한데, 어찌 항복을 논한단 말이오? 당장 집어치우시오!"
"원매는 실제로 8개주를 지배하고 있소이다.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번에 2만이 넘는 병사가 죽었는데, 이를 어찌 보충할 생각입니까? 경제력이 바탕되지 않는데, 어찌 강한 군대를 유지할 수가 있겠소이까? 그냥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장소가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지 않고, 태사자와 말싸움을 벌였다. 현실적인 제약사항을 하나씩 짚어가며 말하는 장소를 태사자가 당해내질 못했다.
"주군. 장별가(장소)를 당장 내치십시오. 항복을 주장하는 것을 보니 원매의 간자임이 분명합니다."
태사자는 도저히 말로는 안된다 싶자 색깔론을 꺼내 들었다. 장소가 멈칫하자, 먹혔다고 생각한 태사자는 목소리를 높혔다.
"장별가는 지금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으려는 수작입니다. 이는 역모입니다."
색깔론에 이어 역모까지 들먹이자, 장소는 기가 막혀 입을 닫았다.
"그만들 하시오. 아무리 현실이 힘들더라도 선주(손책)께서 물려주신 강동을 원매에게 내줄 수는 없소이다. 그러니 장별가는 항복에 대한 말을 더는 하지 마시오."
주유의 준엄한 일갈에 장소는 짧게 탄식을 터트렸다. 전투를 하지 않으면 바보취급을 받고 심지어 역적 취급까지 받는 현실이 가슴 아팠던 것이다. 장소가 탄식을 터트리며 실내를 벗어나자, 주유는 태사자를 가까이 불렀다.
"자네가 볼 때, 원매군의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육지에서의 전투능력은 대단했습니다. 북방의 기병까지 통솔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저들이 강동으로 들어오려면 강수(장강)를 건너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수군이 강하니, 저들의 도하를 저지만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흠- 그러니까 저들이 도하를 하게 되면, 승산이 적다 이말인가?"
"그렇습니다. 육상전투는 저들이 워낙 경험이 많아서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장별가의 말이 그리 틀린 것도 아니군."
"틀리지 않다니요? 죽으면 죽었지 어찌 항복을 하겠습니까? 그런 자를 가까이 두시면 안됩니다. 전투를 한번도 벌이지 않았는데, 항복을 논하다니요. 참으로 간사한 자가 아닙니까? 절대 현혹되시면 안됩니다."
주유는 입을 닫았다. 두 사람의 의견에 모두 일리가 있었고, 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웠다. 다만, 장소말대로 하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자네를 수군도독에 임명할 테니, 지금부터 수군을 양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게. 알겠는가?"
"예. 주군. 명을 따르겠습니다."
태사자는 군례를 올리고, 능조, 하제를 데리고 치소를 물러났다. 능조가 태사자 곁으로 다가와 축하를 건넸다.
"장군. 참으로 잘하셨습니다. 장소 덕분에 주군의 분노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그 늙은이가 나서면서 우리의 허물이 자연스럽게 덮혀졌어. 더군다나 수군도독까지 얻었으니, 전화위복이 따로 없군. 하하하하-"
"감축드립니다. 장군. 앞으로도 장소를 적절히 이용하시면 좋은 결과가 도출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야지. 저런 놈들은 그저 역적으로 몰아 붙이면 돼. 멍청한 놈같으니라고. 가세."
"예. 장군."
태사자를 따라서 능조와 하제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익주 익주군 곡창현 유비치소.
유비는 장가군에 이어 익주군, 영창군, 월수군, 건위속국을 대부분 손아귀에 넣었다. 영창의 맹획, 월수의 고정, 익주 남부의 옹개까지 유비와 동맹을 맺었다. 유비가 익주에 머물면서 익주 남부를 관할하는 위치였지만, 맹획, 고정, 옹개, 주포(장가군)는 반 독립적으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형이 매우 험하고, 이곳에서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던 세력이었기에 일일이 격파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병사들이 죽을지 알 수 없었다. 하여 유비는 일정한 세수를 받는 조건으로 그들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묘안을 냈고, 만족스럽게 타협이 이뤄졌다.
맹획을 비롯한 그들은 유장에게서 유비에게로 배를 갈아탄 것에 불과했다. 유비가 유장보다 고분고분하게 대해주었기에 그들은 쉽게 전향할 수 있었다.
"주군. 익주 남부가 비록 험하기는 하지만, 형주 남부에 비해서 쓸모가 많은 땅입니다. 이곳의 백성들이 드세고 강인하니 그들을 모병하여 병사로 조련한다면 원매군 못지 않은 강한 군대를 육성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처음에 자네가 이곳을 추천했을 때, 너무 오지라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어. 그런데, 막상 이렇게 와보니 참으로 마음에 드는군."
유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의 높은 산들을 둘러보았다. 이민족이 많고, 맹획등 고개를 빳빳이 드는 놈들이 걱정이긴 했지만, 원매나 조조에 비한다면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방통이 다시 진언을 이어갔다.
"이곳은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았으니 형주로 관장군을 보내심이 어떻습니까?"
"운장(관우)을?"
"예. 그곳을 부군사(곽도)가 혼자 지키고 있는데, 많이 힘들 것입니다. 그가 병사들을 다룰 수는 있어도 원매 휘하의 맹장들을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관장군이 직접 병사들을 지휘하면서 원매를 상대하고, 부군사는 행정을 맡아 처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합니다."
"맞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리한 것이지만,사실 부군사 혼자 남겨 놓는 것이 영 불안했어. 그리하도록 하지."
유비는 방통의 진언에 동의를 하고는 관우를 호출했다. 관우는 그동안 새로 얻은 영토를 관리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유비를 보자 환한 표정을 지으며 군례를 올렸다.
"형님. 찾으셨습니까?"
"그래. 네가 참으로 고생이 많구나. 이곳에서 지내는 것은 어떠냐?"
"따뜻하니 참 좋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이놈아. 형한테 꼭 그렇게 사무적으로 말해야 겠느냐?"
"뭐. 이게 편하니까요. 어느 놈이 또 귀찮게 했습니까? 말씀만 하십쇼. 내 이놈들을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관우가 과장되게 행동하자, 유비는 실소를 머금었다. 함께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면 유주에서 호기롭게 의병을 일으켰을 때가 생각나기 때문이었다. 장비가 생각나자 금새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이내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상념을 떨쳤다.
"그래. 무거운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게 좋겠지. 이곳은 이제 안정이 된듯 하니, 형남으로 가는 것이 어떠냐? 곽도가 지키고 있는데, 아무래도 불안하기도 하고 말이야. 네가 가서 지키고 있으면 내 마음도 편안할 것 같아. 형남도독직책을 내려줄 터이니, 책임져 보겠느냐?"
"걱정마십시오!"
관우는 형남의 최고책임자로 임명한다는 유비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까지의 고생에 대한 보답을 받는 듯 해서 기분이 좋았다.
"녀석. 형은 떠나보내려니 마음이 아픈데, 너는 그렇지 않은가 보구나."
아쉬운 마음과는 별개로 관우가 든든했기에, 유비는 그를 격려하며 형주남부 장사군으로 보냈다. 관우는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 5일만에 장사성으로 들어섰다. 곽도는 관우를 보자 웬지 모를 불안감이 밑바닥부터 스물스물 올라왔다.
"관장군. 어서 오시오."
곽도가 최대한 정중하게 예의를 표했을 때, 관우의 콧방귀가 들려왔다.
"흥! 이거를 보거라!"
곽도는 관우가 던지듯 건네주는 유비의 명령서를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관우가 형남최고지위인 도독에 오르고, 곽도자신은 행정을 관할하는 부도독에 임명한다는 명령서였다. 곽도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관우를 올려다 보았다.
"앞으로 똑바로 처신하거라!"
거만한 관우의 말투에 곽도가 일침을 가했다.
"관도독께서 저보다 상관이지만, 나도 부도독입니다. 그리 아랫사람 대하듯 함부로 말하시면 안됩니다. 최소한의 존중을 해주셔야지요."
"존중? 개소리 하지마! 이 새끼야!"
관우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오자 곽도는 순간 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관우가 한손으로 그의 멱살을 틀어쥐고는 위로 끌어 올리자, 대롱대롱 매달린 애처로운 신세가 되었다.
"내가 이런 기회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네놈의 세치 혀놀림 때문에 동생같은 조독을 죽였어. 그리고 대공자 유기도 죽였지. 충신인 황충을 죽일 때,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그때부터 오로지 이때를 기다렸다. 개자식아!"
관우는 말을 하다 분통이 터지는지 욕설을 퍼붓고는 곽도를 내던졌다.
"평생 의협으로 살고자 했던 내가 네 놈 때문에 더러운 살수가 되었어. 내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아? 잘 들어. 이 새끼야. 한번더 내 성질 건들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주지. 알겠어?"
엄청난 공포에 곽도는 소변까지 실례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관우는 그대로 지나쳐 치소로 들어갔다. 그는 교위와 사마들을 집합시키고는 충성을 다짐받았고, 병사들을 집합시켜 사열을 받았다. 장사의 군사를 사열한 관우는 영릉, 계양, 무릉을 돌면서 장수와 병사들을 확인했고, 격려했다.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관우였기에 순식간에 그들의 마음을 휘어 잡을 수 있었다.
"빌어먹을!"
곽도는 홀로 술을 들이키며 욕설을 토해냈다. 관우의 노골적인 견제로 인해 요즘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걸핏하면 부하들 앞에서 모욕을 주는 통에 체면이 서지 않았다. 순식간에 군대를 장악한 관우를 보자, 감히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여남에서 죽을 뻔한 놈들을 구해준 것이 누구란 말인가? 내가 아니었으면 모두 원매에게 죽었을 놈들이 자존심만 살았구나! 이 빌어처먹을 놈들을 그때 구해주는 것이 아니었는데."
곽도는 또다시 술을 들이켰다. 어찌 된 일인지 술을 들이킬수록 정신은 말짱해졌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곽도의 고뇌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