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
제175장. 중과부적衆寡不敵
수춘성 조조치소.
조조는 순욱을 찾았다. 계책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던 순욱은 어두운 안색으로 조조에게 다가갔다.
"주군. 찾으셨습니까?"
"오셨는가? 특별한 정황은 없는가?"
"없습니다."
순욱은 답답해 하는 조조를 보며 안타까웠지만, 딱히 보고할 만한 내용이 없었다. 원매군에게 수춘성이 겹겹이 포위당하면서 사실상 정찰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서황, 장료, 만총과 연락이 끊어졌음은 물론이고, 주유의 지원군이 왔는지도 알수 없었다.
"일단 기병 6천과 보병 2만은 언제든 출병가능하도록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외곽에서 원매군을 흔들어 준다면 한두번의 기회는 오지 않겠습니까? 그 때를 대비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손했지만, 단호하게 대답하는 순욱에게 조조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 없이 노려보았다.
"그것 말고는 없는가? 이래서야 무얼 하겠어?"
"여기서 기다리시면서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노리셔야합니다. 그걸 잡지 못하면 끝입니다. 회하 건너편에 서주도호부가 있지 않습니까? 수군도 있고요. 그놈들까지 가세할 것이 뻔한데, 현재로서는 방법이 나오지 않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지만, 단 한번의 기회에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조조가 탄식을 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지만, 순욱은 입을 닫았다. 할 말도 없었고, 해 봐야 안 된다는 말이 나올 테니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둘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수춘성 안에서는 하후연과 기병 6천, 허저/조홍이 보병 2만을 거느리고 신속하게 출병할 수 있도록 간단히 준비를 한 상태에서 대기했다. 이전은 1만 5천의 보병을 거느리고 성 방어를 책임졌다.
수춘성 외곽 원매치소.
급히 달려오는 전풍을 원매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뭔가 중요한 일이 터졌구나하고 생각은 했지만, 전풍답지 않다라는 생각에 실소가 났다.
"전하. 우루성을 버리고 잠적했던 서황부대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그래? 어딨소?"
"안풍현 남쪽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수춘성으로 합류하려다가 그것이 불가능해지자 그곳에 잠시 머물면서 상황을 살피는듯합니다."
"잘됐군. 이 기회에 서황을 잡읍시다."
"물론입니다. 1만 정도라고 하니 장료/만총에게 합류하기 전에 끝장내야합니다. 장군 안량에게 기병 6천을 주어 길게 우회시켜 서쪽에 매복시켜 놓고, 장군 장비에게 보병 3만을 주어 북, 동, 남쪽에서 동시에 압박하면 됩니다. 그러면 서황부대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 전투는 각개격파가 제 맛이지. 그대로 시행하시오!"
"예. 전하!"
장비와 안량은 원매의 명령을 받고는 곧바로 준비에 착수했다. 안량이 빠르게 기병을 점고하여 먼저 움직였고, 장비가 3만을 이끌고 한참 후에 천천히 움직였다.
장비는 3만을 세개 부대로 나누어 올가미 치듯 압박해 나갔다. 서황이 조조의 맹장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놓치지 않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한 상태였다.
'내가 욕심을 버려야한다. 서황을 잡겠다고 서두르면 놓칠 수가 있다.'
장비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호승심을 최대한 억누르며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수춘성에서 출발한 장비군은 3일 동안 행군하여 안풍현에 도착했다. 안풍현이 굉장히 넓은 지역이었지만, 평탄한 지형이었기 때문에 1만에 달하는 서황군이 숨을 만한 곳은 없었다.
서황과 장비가 서로의 존재를 눈치챘다.
서황은 선임교위로부터 묵묵히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온한듯 보였지만,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까 3만으로 추정되는 병력이 사방에서 조여오고 있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매우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기에, 그 틈을 비집고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험한 지형이 아니니 오래 숨길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어. 하지만, 저놈들의 생각이 무엇일까? 3배나 많은 병력을 가지고도 신중하게 움직인단 말이지? 골치 아프게 생겼구나."
"장군. 어찌 해야 할지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그놈들이 이곳까지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릴 것으로 생각하느냐?"
"3시진(6시간)이내로 생각합니다."
서황은 생각에 잠겼다. 상대방이 서두른다면 기습을 해보겠지만, 신중하게 나오는 만큼 그것이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나자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뭔가 저들의 계략에 말려드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좀처럼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한 만큼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했다.
"서쪽으로 정찰병을 보내라! 정찰을 하면서 단계적으로 후퇴한다!"
"예! 장군!"
선임교위가 급히 복명하며 물러났고, 일단의 정찰병들이 급히 서쪽으로 출발했다. 그 후, 재빨리 기본적인 군수지원물품을 회수하여 철수가 개시되었다.
장비가 도착했을 때는 서황부대가 머물렀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주변을 매섭게 훑어보고는 계속해서 진군명령을 내렸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도망가고 추격하는 양상이 지속되었다. 원매군 매복에 대비하여 조심스럽게 후퇴하다보니 장비와의 간격이 좀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여강군 요현.
요현은 안풍현과 경계를 한 한적한 시골이었다. 안량은 기병 6천을 이끌고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는 정찰을 통해서 서황이 정찰을 하며 신중하게 퇴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흐흐흐흐- 이놈! 역시 전태부의 헤아림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제 딴에는 머리를 쓴거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경기병을 이용하여 정찰결과를 무력화시켜주마! 네놈이 내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경기병추격권안에 들어섰을 때다.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안량은 중기병 2천, 경기병 4천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경기병을 이용하여 먼거리에서 단시간에 거리를 좁혀 서황을 붙잡아 둔 후, 중기병을 이용하여 대열을 무너뜨릴 계획이었다. 대열만 무너지면 보병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오합지졸이었다.
'어서 와라! 유주기병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안량은 이를 갈며 서황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였다.
수춘성.
순욱은 원매군의 상당수가 서쪽으로 이동한 것을 눈치채고는 우려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딱히 어떤 조치를 취하진 못했다. 병력이 빠진 것과는 상관없이 5만의 대군이 탄탄하게 목지점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순욱이 기다리는 틈이 발생하지 않았다.
'주유지원군과 장료, 만총이 합류했다면 한 번. 한 번의 틈이 만들어질지 모른다. 그게 아마도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순욱은 상념을 떨치고는 다시 첩보서류더미에 파묻혔다. 현재로서는 첩보를 통해 원매군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조조의 도움을 받기 어려워진 서황은 최선을 다해 장비의 포위망을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한 번 만들어진 포위망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정찰을 포기하고 그대로 도주를 했다면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신중한 서황이 그런 무모한 짓을 할 리는 없었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떤 자식이기에 이토록 치밀하게 조여오는 거야? 삼면에서 조여오는 것을 보니 매복이 있는 게 분명한데, 어찌 정찰병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단 말인가?'
서황은 부하들을 독려하며 서쪽으로 이동하면서도 의문을 떼지 못했다. 요현으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정찰조장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장군! 서쪽에서 뿌연 먼지구름이 보입니다."
서황은 급히 호위기병을 거느리고 대열을 벗어나 낮은 구릉 위로 올라갔다. 멀리서 먼지구름이 일어나는 것이 그의 눈에도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제야 서황의 의문이 풀렸다. 매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경기병을 이용해서 장거리 매복을 한 것이다. 지금은 거리가 멀지만, 곧 따라잡힐 것이 분명했다.
서황은 '아차-'하는 심정이었다.
과거 양봉휘하에서 기도위를 지낸적이 있었다. 1천기병을 지휘하면서 나름대로 기병전술을 익혔지만, 조조에게 항복한 후 보병을 맡으면서 보병전술에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보병전술이 익숙해졌고, 결정적인 순간에 오판을 하게 만든 것이다.
'경기병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내가 큰 실책을 범했구나. 먼지구름을 보면 수천은 돼 보이는데....... 과연 대비를 했어도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 어찌한다?'
시간이 없었지만, 고뇌는 깊어졌다. 기병을 막으려면 방원진을 펴고 창을 앞으로 내민 채 버텨야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기병이 공격하지 않고 같이 대치한다면 포위망을 좁혀오는 장비부대가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도주를 하자니 경기병을 따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완전히 당했구나. 이놈들은 처음부터 기병으로 타격할 심산이었어.'
서황은 결사항전하기로 다짐했다. 수천의 경기병을 상대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방원진을 펼쳐라!"
서황의 명령에 병사들이 급히 동그랗게 방원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교위들은 심각한 상황을 눈치채고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서황이 급히 독려하며 진형을 마무리 짓고 있을 때, 안량이 이끄는 경기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먼거리를 달려온 경기병은 가뿐 숨을 몰아쉬며 바로 달려들지 않고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쏴라!"
슈슈슈슈슉-
서황의 명령에 일제히 화살이 발사되면서 앞에서 얼쩡대던 일부 경기병이 그대로 꼬꾸라졌다. 안량은 급히 호각을 불어 그들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언제든지 틈이 나면 돌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서황은 방원진을 풀지 못했다.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서황의 눈에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중기병 2천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빌어먹을! 아주 작정을 했구나.'
중기병은 말까지 갑옷을 씌웠기에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일직선으로 돌격하는 게 전부였다. 중기병은 대열을 특히 중시했고,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쇠사슬로 묶기 까지 했다. 일직선 돌격 밖에 모르는 중기병이 두려운 이유는 돌격 후에 보병대열이 와해되는 데, 그 틈을 타고 경기병이나 보병이 들어 와서 전과를 확대하기 때문이었다.
서황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수춘성을 향해 공손히 예를 보냈다. 그리고는 도끼를 굳게 말아 쥐었다.
중기병은 경기병 뒤에 위치한 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시진(두시간)후 장비가 이끄는 3만의 보병이 나타났다.
"공격하라!"
둥둥둥둥-
장비의 명령에 3만의 대군이 일제히 돌격했고, 곧 처참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삼만이 동시에 공격하면서 서황군의 대열이 조금씩 틈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량은 그것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돌격명령을 내렸다.
중기병이 우측에서 돌격하자 장비군은 급히 물러났다. 행동이 굼뜬 병사들은 말발굽에 밟히거나 옆으로 나가 떨어졌다. 장비군과 격전을 벌이느라 대열이 무너진 틈으로 중기병의 일직선 돌격이 감행되었다. 중기병은 칼을 휘두르며 병사들을 죽이기보다는 그저 묵묵히 달렸다.
서황군 내부로 뻥-하고 고속도로가 뚫렸고, 안량이 이끄는 경기병이 들이 닥쳤다. 이후 이어지는 것은 목불인견의 대 살육이었다. 경기병은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둘러 살상을 했다. 행동이 자유로운 경기병은 수십 명씩 몰려다니면서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마무리는 장비의 몫이었다. 대군으로 도망치는 놈들마저 모조리 죽이거나 항복시켰다. 끝까지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저항하는 서황에게 안량이 달려들었다.
창- 창-
대도와 도끼가 날카롭게 부딪쳤고, 놀라운 힘에 서황은 도끼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
'내가 병사들을 지휘하느라 지치지만 않았더라도 이리 밀리지는 않았을 텐데. 억울하다!'
분하게도 싸움이 거듭될 수록 안량은 힘을 냈고, 서황은 위축되었다. 안량이 갑자기 뒤로 물러나더니 호각을 불었다. 서황이 '뭐지?' 하는 순간 주위에 있던 안량기병이 일제히 오랏줄을 던졌다. 순식간에 서황호위기병이 끌려나왔고, 서황의 말이 오랏줄에 걸려 넘어졌다. 여러 개의 창날이 서황의 목을 향했고, 그렇게 전투는 끝이 났다.
"죽이시오!"
서황은 두 눈을 감았다. 장비는 얼굴에 묻은 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닦아내며 안량에게 말했다.
"안장군. 이자를 데리고 전하께 먼저 가시오. 나는 이곳을 정리하고, 항병들을 데리고 가겠소."
"알겠소이다. 수고하시오."
안량은 장비에게 예를 갖추고는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서황을 데리고 귀환한다! 준비하라!"
그렇게 원매는 수춘성포위 후 첫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