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제172장. 조조 궁지에 몰리다.
수춘성 조조치소.
전풍이 서현에 도착하여 계책을 강구하고 있을 때, 조조도 원매와의 전투가 임박했음을 느끼고 순욱에게 대책강구를 지시했다. 순욱은 무수한 고민으로 날을 새웠지만 좀처럼 계책을 완성하기 힘들었다. 수적으로 열세인 것이 그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노련한 전풍이 오면서 먼저 수춘성을 흔들어 놓았기에, 그 전과 같은 계책은 통하지 않을 것이 자명해진 상황이었다.
'큰일이로구나. 병력의 열세가 심하니 가능하면 야전을 피해야 할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거듭하던 순욱은 곽가로부터 주유가 지원군을 보낼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곧바로 조조를 찾았다. 조조는 순욱을 반갑게 맞이하며 자리를 가리켰다.
"어서오게. 계책은 생각해 보셨는가?"
"주유의 지원군은 이끌어냈습니다. 정확한 인원은 알려주지 않았는데, 2~4만은 되지 않을까 추산합니다."
"잘됐군. 잘됐어. 그건 그렇고. 원매가 분명히 공격해 올거야. 대책은 세웠는가?"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지난번에는 원매주변에 노회한 책사가 없었기에 얕은 수를 써서 성공했지만, 이번은 다릅니다. 야전을 벌인다면 수적으로 열세이고, 수성전을 하자니 저들이 응해줄지 그것이 걱정입니다. 현재로서는 육양성과 합비성, 우루성을 강하게 지키면서 저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좀 실망스럽군."
조조는 혀를 차며 불만을 터트렸다. 그간 어려울 때마다 순욱의 계책으로 위기를 탈출했기에 이번에도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자, 자신도 모르게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어쩔 수 있습니까? 세 개의 성이 있으니 공성전을 하여 한개성을 점령하고, 그 후에 다른 성을 점령하여 점차 영토를 점령하거나 아니면 점령한 성을 발판으로 하여 곧바로 수춘성으로 진격해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들의 행동을 보고 계책을 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긴 이 상황에서 자네라도 뾰족한 수를 내긴 어렵겠지. 현재 병력현황은 어떤가?"
"예. 우루성에 서황과 1만, 육양성에 장료와 1만, 합비성에 만총과 6천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지에 흩어져 있는 경계병력을 합치면 2만입니다. 수춘성에 예비병력으로 보병 3만 5천, 기병 5천 5백이 있습니다."
"휴- 주유가 지원군을 보내더라도 겨우 10만이겠군."
"사실 경계병력은 회하를 따라서 서주의 원소군을 경계하는 병력이라 빼기 어렵습니다. 그들을 뺀다면 원소군이 회하를 건너서 압박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보병 6만 1천, 기병 5천 5백이 전부입니다. 주유의 지원군은 언제, 얼마나 올지 알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전을 하긴 어렵고 수성전을 하면서 상황에 맞춰 대책을 입안하겠다고 보고를 드린 것입니다."
조조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침묵을 지키자, 순욱이 이빨을 깨물으며 마무리 진언을 올렸다.
"우루, 육양, 합비성에 경계강화지시를 하달하고, 예비대에게는 언제든지 출병대기를 지시해 놓겠습니다. 회하경계부대에게는 경계철저를 하달하겠습니다. 다른 지시사항은 있습니까?"
휴- 조조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순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말이야. 관도에서 원매에게 대패하고 허창으로 쫓겨 내려올 때, 마음속으로 다짐했어. 이 원한을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원매 이 자식 나중에 내 손에 걸리면 산채로 찢어 죽이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하면서 분통을 터트렸는지 몰라. 그런데 어째 다 수포로 돌아가는 느낌이야."
조조의 눈은 어느새 붉게 충혈되었고, 굵은 눈물 한방울이 떨어졌다.
"순문약(순욱)! 그 빌어먹을 원가를 한 번도 넘지 못한단 말인가? 어째서 하늘은 모든 것을 원가에 다 쏟아붓고, 내게는 쥐꼬리만큼준단 말이냐 이거야?"
"어쩌겠습니까? 최선을 다해서 원매를 물리쳐야지요."
"물리치면. 그놈은 또 어디서 병력을 끌어오겠지. 나는 다 죽어서 없는 데 말이야."
"힘드신 것 압니다. 그래도 냉정을 유지하십시오. 주군께서 이러시면 수하들이 흔들립니다. 오늘은 일찍 퇴청하셔서 쉬십시오. 제가 명령을 내려놓고, 방어준비에 대해서 조치를 해 놓겠습니다."
얼음장같은 얼굴로 냉정하게 대답하는 순욱을 보며 조조는 입을 닫았다. 순욱이 예를 마치고 물러나자, 조조는 물끄러미 순욱이 나간 그 자리를 지켜 보았다.
'순욱. 너같이 냉정한 놈이 어찌 야망은 없고, 오로지 한漢에 대한 충성심만 남아 있단 말이냐? 만약 네가 나 만큼만 야망을 가졌더라면. 그래 네가 나였다면 원가를 무너뜨렸을지도 모르지.'
조조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상념을 떨쳤다.
'답답하구나. 이 조아만(조조)이 부질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참으로 나약해졌어.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차리리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
그는 눈을 번뜩이더니 칼을 뽑아 탁자를 내리쳤다. 얇은 탄탄한 탁자는 처음에는 버텨냈지만, 조조가 힘껏 여러 번 내리치자, 결국 쪼개져 버렸다.
원매군이 공격을 개시했을 때, 아직 주유의 지원군은 도착하지 않았다. 곽준과 견초는 각각 1만의 병사들을 이끌고 육양성과 합비성으로 향했다.
육양성 장료치소.
원매군이 육양성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보고에 장료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경계강화지시를 내렸다. 또한, 본인은 망루 위에 올라 꼼꼼하게 적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군의 행렬을 보며 장료는 치를 떨었다.
"이놈들이 우루와 합비를 제쳐두고 여기(육양성)를 목표로 삼은 게 틀림없구나!"
그는 재빨리 죽간을 작성하여 수춘성으로 상황을 보고했다. 전령이 출발한 지 한시진(두시간)후에 선발대가 주요 길목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장료는 그들의 의도를 몰라 조심스럽게 지켜봤다. 선발대 뒤를 따라 10만이 넘는 대군이 진군중이었기에 장료가 따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지켜보면서 틈이 생긴다면 야간을 이용하여 기습하는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장료는 망루에서 내려와 십만이 넘는 원매군과 수성전을 대비하여 병사들을 재촉하여 지상의 무기들을 모조리 성벽으로 올렸고, 가마솥을 걸어 물끓일 준비를 하는 등, 수성전 준비에 만전을 기울였다.
몸서 나서서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을 때, 망루에 있던 정찰병이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장군. 적들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직접 올라가셔서 보십시오."
굳은 얼굴의 정찰병을 보고는 장료는 즉각 망루로 뛰어 올라갔다. 그가 가뿐 숨을 몰아 쉬고는 원매군에게 눈길을 돌렸다. 꼼꼼하게 살피던 그의 입에서 '악-'소리가 터져나왔다.
"이 죽일 놈들이 뭐 하는 짓이냐? 어째서 우회를 한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분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원매군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원매군의 행동은 곳곳에 적을 방치하고 수춘성으로 곧장 진격하는 형태였고, 그렇다면 보급선이 길게 늘어져서 약점이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장료는 곰곰히 원매군의 의도를 생각하다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제야 저들의 의도를 눈치챈 것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전령을 급히 수춘성으로 보내서 알려야 했지만, 육양성을 촘촘하게 포위당했고,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원매군 행렬이 계속해서 수춘성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곽준은 1만으로 육양성의 주요 목지점을 차단했고, 방책을 세워 검문소를 설치했다. 또한, 검문소간에 봉화를 설치하여 위급상황에 대비했고, 수시로 기병을 운용하여 연락을 주고 받았다.
육양성포위가 완료되었을 때, 원매군은 벌써 합비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합비성의 만총도 원매군을 확인하자, 곧바로 수춘성으로 상황을 보고했다. 만총도 장료와 같이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며 수성전을 대비했고, 결국에는 원매군의 의도를 눈치채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며 주저 앉았다. 꼼짝없이 육양성과 합비성이 원매군에게 포위된 형국이었다.
물론 포위한 병력이 많지 않았기에 돌파를 하려면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많은 병력손실이 발생할 것이 뻔했기에 최악의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기 힘든 계책이었다. 안 그래도 병력이 부족한데 손실은 최대한 줄여야 했다.
수춘성 조조치소.
조조는 순욱과 머리를 맞대고 굳은 표정으로 의논하고 있었다. 육양성과 합비성에서 원매의 대군이 나타났다는 전갈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저놈들이 이빨을 드러냈어."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질 것 같습니다."
"어째서? 저들이 성을 포위하려는 모양새를 취한다고 했으니까 공성전을 벌이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던 최선의 상황이잖아."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 육양성에서 전령이 도착했을 때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에 합비성에서 같은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이는 원매군의 의도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좀 더 자세하게 말해 봐."
조조의 목이 타는지 찻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원매가 십만이 넘는 군대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동시에 두개성에서 공성전을 벌이기는 어렵습니다. 공성전을 하면서 병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바보같은 행동입니다. 더군다나 노련한 책사 전풍이 곁에 있는 데, 그런 계책을 내놓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의도는 명확합니다. 육양성과 합비성을 포위하여 묶어 놓고, 대군을 이끌고 수춘성을 공격하는 것이지요."
"완전히 당했군. 이젠 어쩔거야?"
"육양성과 합비성의 병력을 뺄 수는 없습니다. 무리했다가는 큰 병력손실을 볼 수 있으니까요. 일단 경계부대에 상황을 전파하여 대기를 시켜 놓고, 우루성의 병력을 빼서 수춘성으로 합류시키겠습니다."
"서황을 말인가?"
"그렇습니다. 서황과 1만이 합류하면 수춘성에는 보병 4만 5천, 기병 5천 5백이니 일단 수성전을 통해서 1년 이상 버틸 수 있습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아직도 그들의 의도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계속 살펴보면서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런데 말야. 좀 이상하지 않아. 아무리 육양성과 합비성을 포위해 놓았다 하더라도 이렇게 되면 보급선이 지나치게 길어지잖아?"
"둘 중 하나입니다. 늘어지더라도 지킬 자신이 있던가? 아니면 새로운 보급선을 만들었던가?"
조조가 생각에 잠긴 동안 순욱의 표정은 어두웠다. 새로 안정적인 보급선을 확보했다면, 이번 전투는 정말 최악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게 무엇일까 고민했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수춘성은 엄중하게 경계가 강화되었고, 사방으로 전령이 달려나갔다. 또한, 우루성의 서황에게는 성을 버리고 즉시 수춘성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조조는 망루에 올라 성 주변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주유가 보낸다던 지원군은 언제나 온단 말인가? 이래서야 원매군에 막혀서 제대로 도착도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삼엄한 경계속에서 하루가 지났고, 원매군의 선발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조조와 장병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게 밀려 오는 원매군의 모습은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한시진(두시간)이 지나자 선발대가 수춘성의 목지점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워낙 멀리 떨어져 검문소를 설치하고 있었기에 병력을 보내서 격파하려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끝없이 몰려오는 보병도 문제였지만, 검문소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기병이 더 문제였다.
답답하게 그들을 지켜보며 이제는 수성전에 총력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순욱이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달려왔다. 조조는 얼음장같은 순욱이 처음으로 인간다워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의 처한 무거운 상황과는 별개로 실소가 나왔다.
"별일이군."
"이제야 저들의 의도를 눈치챘습니다. 저들은 회하의 포구를 장악하고, 예주에서 군량을 보급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회릉현일대의 호수에 저들이 수군을 키우고 있으니, 문제 없습니다."
"그럼 서곡양인가?"
"포구는 많습니다. 수많은 포구중 어디를 선택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빌어먹을! 그럼 미리 알았다고 하더라도 막기는 어렵다는 뜻이잖아?"
조조는 허탈함에 말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