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제170장. 전풍田豊의 강렬한 등장.
성도앞 평원에서 벌어진 전투는 결국 이통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수적으로 우세하고, 정예병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몰랐다.
이통이 기병을 이용하여 보병의 전열을 무너뜨린 후, 보병을 이용해 유장군을 압살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기세가 꺾인 만큼 쉽게 마무리가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투는 의외로 지루하게 늘어졌다.
충성심으로 단단히 무장한 유괴를 비롯한 장수들은 전세가 기울어졌지만, 끝까지 싸웠다. 그들이 무너지면 유장의 시대가 끝이 난다는 절박감이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유장이 지원군을 보내지 않은 것은 충성심 강한 그들에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이것이 전투를 길게 늘어 뜨렸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결국 유장군은 죽거나 도주하거나 항복했다. 유괴, 장예, 등현은 끝까지 싸우다 죽음을 맞이했고, 오란, 정기는 항복했다. 기병 3천 3백, 보병 2만 4천이 항복했다.
이통군의 피해는 마대와 마초의 맹활약 덕분에 많이 줄어 들었다. 기병은 1천 8백, 보병은 2만 2천이 죽거나 전투불능이 되었다. 워낙 치열한 접전이었던 만큼 이통도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통은 병사들을 위로하면서, 전장정리를 명령했다. 또한, 항복한 유장군을 철저하게 재교육할 것을 명했다.
며칠 후. 이통치소.
"이도독. 감축드립니다. 이 부근에 있던 유장군은 완벽하게 격퇴시켰습니다. 이제는 성도를 포위하고, 북쪽에서 유장의 지원군이 내려오는 것을 격파하면 됩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유장이 항복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소. 방심은 금물이지. 그간 서부어사도 고생했소."
이통은 감개무량한지 눈을 반쯤 감으며 얼굴색이 홍조를 띄었다.
"유장군의 재교육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조조나 유비군처럼 전투에 닳고 닳은 병사들이 아니라 교육이 좀 더 수월합니다. 이들이 완전히 전향을 하게 되면, 보병 9만 2천, 기병 1만 7천 5백을 보유하게 됩니다. 수적으로는 오히려 조금 늘었습니다."
"고생했소. 유비는 어떡하고 있소?"
"그는 장가군에 이어 익주군을 병합하고는 조용히 익주군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영창군과 월수군은 훨씬 더 험하고 이민족의 기세가 드센 곳이라 말만 익주이지 이민족의 땅입니다. 그래서 조용히 내실을 다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느 정도 기반을 다졌다고 생각되면 군사를 다시 일으킬 것입니다."
"내게 군사를 돌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겠지?"
"안 그런다는 장담을 드릴 수는 없지만, 확률상 매우 희박합니다. 설령 저들이 공격하더라도 강주성, 강양성을 단단히 지키고 있기 때문에 병사들을 보내서 격파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걱정마십시오."
"고생했소. 이제는 북쪽에서 내려올지 모르는 병력에 대해 집중해 주시오."
"예. 이도독!"
이통이 익주를 장악하기 위해서 고심하고 있을 때,
성도.
유장은 패배소식을 듣고는 충격에 빠져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정도로 처참하게 패배할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간 유장 곁에서 갖은 계책을 헌상하던 비관도 이제는 입을 다물었다. 맹달만이 병사들을 지휘하여 수성전을 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장송은 전투패배로 성안의 상황이 뒤숭숭하자, 몸을 움츠리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는 낮을 이용하여 산책을 한다는 핑계를 대고 성 주위를 한바퀴씩 돌곤했다. 유유자적한 그의 행동에 의심을 품는 이는 드물었다.
'맹달이 성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누가 이 정도로 수성전을 대비하겠는가? 성도가 쉽게 무너지는 일은 없겠구나. 나중에 결정적인 상황이 닥쳤을 때, 나도 법정처럼 무언가를 해야 할 텐데.'
맹달이 수성전을 대비하여 단단하게 성을 경계할 수록, 장송은 그것의 빈틈이 없는지를 확인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익주는 불안전하지만, 평화를 되찾고 있었다.
구강군 수춘성.
정욱은 자신의 탁자 위에 올려진 죽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보게. 집사. 이게 무엇인가? 누가 가져왔어?"
고운 비단으로 포장한 죽간을 정욱이 거칠게 흔들며 묻자, 집사는 황급히 부복하며 아뢰었다.
"소인도 처음 보는 무장이었습니다."
"네 이놈! 처음 보는 놈이 아무 것이나 준다고 넙죽 받아온단 말이더냐?"
"용서하십시오. 복장을 보아하니 높은 직위로 보였고, 거기장군께서 특별히 보내는 연통이라 하였습니다."
진땀을 흘리며 변명하는 집사를 보자, 정욱은 혀를 찼다. 그 후 말 없이 잠시 노려보다가 돌려보냈다.
'하긴 주군의 연통이라는데, 어느 놈이 의심을 품고 꼬치꼬치 캐묻는단 말인가? 더군다나 이 비단이나 죽간을 묶은 매듭이 보통이 아니로구나. 집사가 충분히 그럴만 했어. 대체 어떤 놈이 무슨 목적으로 보낸거야?'
정욱은 소도를 이용하여 매듭을 잘라내고, 죽간을 펴서 차분하게 읽다가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의 얼굴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 쳐 죽일 놈의 새끼!"
그의 입에서 밑도 끝도 없는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그는 곧바로 준비를 하고는 조조치소로 향했다. 급히 걷는 그의 발걸음에서는 조급함이 느껴졌다. 평소 강직하고 지략이 높은 정욱이었지만, 이번은 웬지 성급해 보일 정도였다.
"주군! 중덕(정욱의 자)입니다."
"들어오게!"
정욱은 치소로 들어서자 조조에게 공손하게 예를 올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순욱이 약간 경직된 얼굴로 조조곁에 있었다.
"주군. 이것을 봐주십시오. 원소 놈이 이 곳에 손을........."
"그 말 멈추시오!"
순욱이 소리치자, 정욱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순욱은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서서 정욱을 노려보다가 다른 대신들을 모조리 밖으로 물리쳤다. 정욱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더불어 모욕감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조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원소가 보낸 죽간이지? 가져와 봐!"
"아니...... 주군. 어찌 아셨습니까?"
조조는 죽간이나 빨리 달라며 손짓으로 재촉했다. 정욱이 급히 바치자, 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지시했다. 조조가 그것을 훑어보고는 순욱에게 건네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어때? 내용이 똑같지?"
"그렇습니다. 아주 교묘하게 대신들의 틈을 타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땅이 대부분 연주, 예주에 있으니 이런 모략에 충분히 흔들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리 차단했어야 했는데, 휴- 이제는 성 안의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군요."
순욱이 탄식을 터트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정욱은 조조와 순욱의 이야기를 듣고는 깨닫는 게 있었다. 순욱이 왜 소리를 쳤는지도 알았다. 조조가 나지막하게 정욱을 나무랬다.
"이봐. 정중덕. 자네의 실책을 알겠는가?"
"물론입니다."
"말해 봐."
"예. 주군. 원소가 보낸 죽간은 대신들을 흔들려고 보낸 것이므로 이곳의 여러 대신들에게 동시에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아까 떠든 말이 어떡하든 새어나갈 테고, 그리하면 충성심이 낮은 자들은 흔들릴 가능성이 높고, 세작질을 하던 놈들은 더욱 그것에 몰두할 것입니다. 어떡하든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퍼지는 것을 막았어야 했는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급히 달려와서 보고한 제 실책입니다."
"그래. 충분히 실수할만 했어. 하지만, 오늘 일은 정중덕 답지 않아. 그러고 저러고 간에 이제 어쩌면 좋겠어?"
조조는 고개를 돌려 순욱에게 물었다.
"이젠 어쩔 수 없습니다. 대소신료들을 모두 집합시켜놓고, 원소가 우리를 분열시키기 위해 이런 죽간을 내렸다. 만약 이것에 부화뇌동하는 자가 있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라고 강하게 압박하십시오. 나중에는 반발할지 모르나, 일단은 눌러 놓아야 합니다. 아무래도 경험 많은 책사가 원매와 주군의 전투에 개입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자네 말대로 하지. 그런데, 그 경험 많은 책사가 누굴까? 누구기에 이렇게 대담하게 나온단 말인가?"
"순유는 섬세한 유형이니 제외하고, 가후는 승상을 맡고 있으니 제외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정도를 감당할 자는 전풍과 저수가 남는데, 저수는 군사작전에 특화된 책사니 제외해야 합니다. 그럼 결국 남는 자는 전풍입니다. 그가 분명합니다."
"전풍이라? 골치 아프겠어. 시작부터 조짐이 안좋아. 주유에게 즉시 지원군을 요청하게. 분명히 무슨 일이 터질 게 분명해."
"예. 주군."
순욱이 예를 올리고 물러나자, 정욱도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혼자 남은 조조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탁자를 내리쳤다.
"어찌 이런 여우짓을 한단 말인가? 아무리 단속을 해도 흔들리긴 할 텐데, 지나치게 흔들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조조는 그날 오후에 대소 신료들과 장수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넓은 치소 안이 신하들로 꽉찼지만, 조조의 무거운 표정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치소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했다. 조조는 그런 그들에게 원소가 죽간을 보내 일부 대신을 회유하려 했지만, 불발되었다는 내용을 전파하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조조의 서슬 퍼런 위세에 신료들은 급히 엎드리며 충성을 맹세했다. 조조는 확실하게 그것을 몇 번이나 지적하고 나서야 그들을 물리쳤다.
"빌어먹을! 시작도 하기 전에 흔드는 구만."
전풍은 조조진영을 흔들어 놓고 군사를 이끌고 여강군 서현성에 도착했다. 업성에서 출발한지 꼭 12일 만에 도착했다. 원매는 장수들을 거느리고 성 밖으로 나섰고, 전풍이 장수들을 대표하여 예를 올렸다.
"태자전하! 강녕하셨습니까?"
"오- 전태부 어서 오시오. 오느라 고생하셨소이다. 장장군(장패), 견장군(견초), 안장군(안량)도 고생하셨네. 자- 안으로 들어 가시게. 간단한 다과라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지. 술이 있어야 제격이겠지만, 내가 조조 이놈을 격파하기 전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결심했네. 그러니 자네들이 양해를 하게."
"태자전하의 뜻이 그러하다면 따라야지요."
안량이 종이 울리는 듯한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원매는 싱긋 웃고는 그들을 성안으로 이끌었다. 안량과 원매가 대화를 하며 앞서 나가자 전풍의 눈이 반짝였다.
"자네가 중달(사마의)이로군."
"처음 뵙겠습니다. 사마의, 중달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이 사람아. 누가 누굴 가르칠지는 두고 봐야지. 허허허허-"
"과분한 말씀입니다."
"전하께서 그간 자네의 자랑을 많이 하셨어. 굉장히 영특하다고 말이지. 이번 일에 너무 낙심하지 말게. 조만간 자네와 같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서 전하를 모실 날이 올 것이네. 배움을 게을리하지 마시게."
"조언 감사드립니다. 자- 들어가시지요."
원매는 안량과 이야기를 나누며 치소로 향하다가 슬쩍 곁눈질로 사마의와 전풍을 바라보곤 미소를 지었다. 일부러 그들이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안량과 이야기를 나누며 먼저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그날 치소에서는 업성과 장안에서 온 장수들의 환영식이 열렸고, 병사들에게는 돼지, 닭등을 잡아서 배불리 먹였다. 빠르게 오느라 피곤한 그들을 원매는 오래 붙잡지 않고 돌려 보냈다.
다음날.
전풍은 사마의를 찾았다. 사마의는 상좌를 양보하고는 그간 조조를 파악한 내용을 정리한 죽간을 바쳤다. 전풍은 하나씩 읽으면서 궁금한 점을 질문했고, 사마의는 세세하게 보고했다. 아침부터 시작한 그들의 대화는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수고했네. 이 정도로 첩보를 잘 파악해 놓았으니, 이번 전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야. 자네는 계속해서 첩보를 획득하는 데, 주력해 주게. 내일은 나와 함께 정찰을 하도록 하지."
"명을 따르겠습니다."
전풍은 사마의의 노고를 치하하고는 쉬도록 했다. 그가 사마의 치소를 나와 자신의 치소로 향하려 할 때, 누군가가 그를 불러 세웠다. 원매였다.
"전하! 어인 일이십니까?"
"중달과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같아서 잠시 기다렸네."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전태부가 상황파악을 하는 것이 내 궁금증을 푸는 것보다 중요하니까. 내가 기다리는 게 맞네. 그대는 중달을 어찌 보시는가?"
"매우 영특한 인물입니다. 업성에 있는 제갈량도 영특하지만, 사마의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다만, 제갈량이 밝다면 사마의는 조금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대로 성장한다면 전하를 보필하는 대신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나도 그것은 느꼈네. 그에 대한 대비책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전태부께서는 이번에 확실하게 잘 가르쳐 주시게. 한 번이면 충분할 것이야."
"예. 명을 따르겠습니다."
원매는 전풍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전풍의 등장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든든했다. 이제 조조에 대한 반격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