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제164장. 강주성. 그리고 전풍.
고패는 목소리 큰 병사들을 선발하여 연신 항복을 종용했고, 오의는 회유하는 글을 적은 죽간을 화살에 달아 쏘아 성안으로 보냈다.
군량이 바닥나자, 성안의 하급장교들이나 병사들이 항복종용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똑바로 들어라! 만약 저놈들에게 동조하여 항복을 논하는 자가 있다면 목을 벨 것이다. 나는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니 명심하거라. 알겠느냐?"
장임이 하급장교들을 모두 불러 놓고, 선제적으로 강하게 다그치자 그들은 두려움에 급히 고개를 숙였다. 장임이 한번 결정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었다.
이후 장임의 강한 질책이 섞인 다그침이 이어졌고, 하급장교들은 연신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한참 후에 그들은 식은 땀을 닦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밖으로 나섰다.
장임은 홀로 남게 되자, 짧은 탄식을 터트렸다.
'당장은 효과가 있겠지만, 얼마 안 가 또 불안감에 항복론이 기어 나올 것이다. 빌어먹을! 강수가 꽉 막혀버렸으니 방도가 없구나. 어쩌란 말인가?'
며칠이 지나면서 회유작전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고패가 더 많은 병사들을 뽑아서 더 크게 소리쳤던 것이다. 이제는 밤에도 항복을 권유했다.
"계속 더 크게 소리쳐라! 목이 아프면 보고해. 교체해줄 테니까."
고패는 병사들을 강하게 독려했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다독였다. 그는 장임이 항복하거나 성안에서 무슨 일이 터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배가 고파서 굶는 놈들에게 선택권따위는 없다. 굶어 뒤지게 생겼는데 무슨 충성이란 말인가? 개가 웃을 일이지.'
고패군 뒤에는 밤낮으로 1만의 보병이 교대로 취침하며 만일의 상황에 대기하고 있었다.
항복을 권유하기 시작한 지 7일째가 되자, 성안에서 화살이 은밀하게 고패군영으로 날아왔다. 고패는 그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이통을 찾았다.
"드디어 ...... 때가 되었어. 엄장군!"
"예. 이도독!"
"1만을 추가하여 2만을 준비해 두었다가 저들이 측면에 있는 작은 문을 열면 선발대를 투입시켜 그곳을 장악하고, 자네가 2만을 이끌고 들어가서 성을 점령하게. 할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병력이 부족하면 말하시게. 더 추가해 주겠어."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저들은 배가 고파서 힘이 없는 상황이고, 장임을 따르는 쪽과 반발하는 쪽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것도 처리 못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래. 어서 준비하게. 그리고 고장군도 계속해서 회유를 하시게. 갑자기 그만둔다면 장임이 눈치챌지도 몰라."
"예. 이도독!"
엄안과 고패가 군례를 올리고 물러가자, 서서가 인사를 건넸다.
"감축드립니다. 드디어 강주성이 떨어지는군요."
"아직은 아니야. 확실하게 내 손에 들어와야지. 흐흐흐- 그래도 기분은 좋군 그래. 전하께서 강주성을 점령하면 장임을 보내라고 하셨는데, 어떤 복안이 계신 것일까?"
"글쎄요. 도독이나 제가 신경쓸 일이 아닙니다. 강주성을 빨리 점령하고, 사후조치에 대해서 집중을 하시지요. 성을 점령하면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오반에게 맡기지. 오의의 종형제니까 배신하지는 않겠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미 유장을 배신했는데, 또 다시 돌아가봐야 좋은 대우를 받기 어렵습니다. 또한, 오의는 도독과 함께 건위군으로 이동한다면 오반도 다른 마음을 먹진 않을 것입니다."
이통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에 강주성을 함락한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 차린 문추가 달려왔다.
"이도독! 강주성을 오늘 밤에 공략한다고 들었는 데, 어찌 제게 귀뜸도 하지 않습니까?"
"아니. 이 사람아. 공은 자네가 다 세우려고 하는가? 그간 고생했으니 이번은 쉬시게. 엄장군이 해결할 것이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가 예비대를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예비대는 오의, 오반이 운용하고 있네. 자넨 할 일이 없으니 이번에는 푹 쉬게. 대신 건위군공략에는 자네에게 중책을 맡기겠네."
문추의 욕심에 이통은 실소를 터트렸다.
"문장군. 내 자리를 욕심내시는가?"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소장은 항상 전투 때 뒤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드린 것이지요.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이도독의 말씀대로 한발짝 물러나 있겠습니다."
이통은 문추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이번에 익주를 점령하면 도호부가 새로 생기겠지요. 그때는 제가 문장군을 강력하게 추천하겠소이다. 전하께서도 도호부가 5개라 문장군이 어쩔 수 없이 빠졌다고 아쉬워했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그리될 것이오."
"이거 참. 갑자기 보채는 어린애가 된 느낌이군요."
문추는 얼굴이 붉어졌다. 능력도 있었고, 욕심도 있었지만 도독이 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부분을 이통이 정확히 짚고 위로하자, 낯 뜨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문추는 군례를 올리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아직은 정치보다는 무장으로 있는 것이 편한 문추였다.
벌써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지만, 성안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엄안이 이끄는 2만의 대군은 기다리다 지쳤는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엄안도 오늘은 힘든가? 하며 포기하려고 할 때, 또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그리고 소리없이 천천히 동쪽의 작은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함매를 물어라!"
엄안의 명령에 병사들은 미리 준비한 나무를 입에 물었다. 하급장교들은 급히 졸던 병사들을 깨웠고, 진군 준비를 서둘렀다.
"공격한다!"
선발대 1천이 빠르게 달려갔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천씩 뒤를 이어 달렸다. 엄안은 그들을 보며 성의 변화를 유심히 살폈다. 혹시라도 거짓이라면 선발대는 전멸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1천이 열린 성문으로 들어갔고, 그 뒤를 이어 1천씩 병사들이 투입되었다. 엄안은 5천이 투입되었을 때, 그 뒤를 따라서 성안으로 진입했다.
곳곳에서 백병전이 벌어졌기에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장임에게 반발하는 자들이 엄안군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전투를 이끌고 있었다. 장임은 엄안군을 보고는 대노하여 친위대를 이끌고 대적했다.
배고픔에 많은 인원이 등을 돌렸고, 장임에게는 겨우 3천의 친위대만이 남았다. 아침이 되자, 장임의 친위대는 계속된 전투로 1천으로 줄었고, 결국 엄안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장장군. 항복하시오. 무모하게 싸워봐야 애꿎은 병사들만 죽일 뿐이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감히 주군을 배신하고 원매에게 빌붙은 주제에 말이 많구나."
"마지막이오. 항복하시오. 항복하지 않는다면 모조리 죽이겠소."
"내 죽을지언정 네놈처럼 항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임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엄안은 안색을 굳혔다. 가능하면 장임을 생포하라고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많은 병사들이 희생해야 생포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것은 원매를 비롯하여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겠다니. 할 수없지."
엄안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엄안의 행동을 보고 주변에 둘러싸고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화살을 장전하고 시위를 크게 벌렸다. 장임을 비롯한 병사들은 얼굴이 거무죽죽해졌지만, 항복하지는 않았다. 그저 창을 앞으로 뻗은 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쏴라!"
슈슈슈슈슉-
화살이 어지러이 쏘아졌고, 유장군은 화살을 맞으며 힘없이 고꾸라졌다. 화살은 비오듯 계속 퍼부어졌고, 일각(15분)동안 지속된 공격에 1천의 유장군은 전멸했다. 장임은 피를 쏟으며 마지막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는 허공을 허부적 거리다가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강주성이 완벽하게 점령되자, 이통의 비롯한 장수들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이통은 장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뿐이었다.
"고생했어. 병사들의 희생을 최대한도로 줄인 엄장군의 공이 참으로 크네. 장임은 사로잡으면 여강군으로 보내라고 했지만, 병사들을 희생시키며 사로잡을 수는 없지. 전하께는 내가 말을 잘 할 테니 걱정마시게."
"감사합니다. 이도독!"
이통은 엄안과 병사들을 위로한 후, 죽은 병사들을 매립하고, 강주성안으로 군량과 병사들을 이동시켰다. 미리 준비를 해뒀기에 강주성정리는 착착 이뤄졌다. 삼일만에 모든 정리를 끝낸 이통은 건위군 정벌을 서둘렀다.
오반에게 3천을 주어 성을 지키게 하고는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건위군으로 진군했다. 강수(장강)가 U자모양으로 건위군에서 흐르고 있었는데, 강폭이 넓고 흐름이 완만했기에 이엄이 수군을 이끌고 군량등 군수지원을 맡았고, 이통은 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육로를 통해 행군했다.
한수와 강수를 끼고 강양현이 있었고, 한수를 따라 올라가면 건위군의 중심인 한안현이 나타났다. 이곳을 점령하면 성도가 있는 촉군이 지척이었다.
업성.
원매가 보낸 전령이 업성에 당도하여 전풍에게 죽간을 건넨 것이 어제였다. 전풍은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여 저수에게 자신의 일처리를 부탁한 후, 계책을 고민하였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오늘 원소를 찾았다.
"폐하. 신 태부 전풍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오- 어서 오시게."
"강녕하셨습니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업무를 줄이고 휴식을 많이 취해서 그런지 악화되지는 않는 것 같아. 어쩐 일인가?"
"예. 태자전하께서 연통을 보내셨습니다. 여기 있으니, 살펴보시지요."
원소는 원매가 보낸 죽간이라는 말에 급히 받아들어 펼쳤다. 친숙한 글씨가 쓰여져 있었지만, 내용은 아쉬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원소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한번쯤 이런 날이 올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분하고 아쉽군."
"이것이 전하께서 훌륭한 명군으로 성장하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니 성심을 편안하게 가지십시오."
"그건 그렇고. 자네를 내려 보내 달래는 데...... 어떤 준비를 하고 가시는가?"
"여강군의 상황은 그쪽으로 가서 살펴봐야 정확한 계책을 세울 수 있으니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대규모 전투를 통해서 단번에 승기를 잡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조조 부하들의 대부분은 연주, 예주, 사례의 호족들입니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그곳에 남겨 놓은 땅입니다.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서 내부를 흔들생각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생각중인 데, 아직 구체적이지 않아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조조는 내가 잘 알아. 임기응변이 강하고, 상황판단능력이 매우 뛰어나지. 대규모전투를 통해서 승기를 잡겠다는 생각은 아주 좋아. 내부를 흔든다는 것도 맘에 들고. 전태부 자네만 믿겠네. 조조만 물리치면 다른 제후들이야 큰 문제 없을 것이야. 안 그런가?"
"유비나 주유, 유장도 지형에 의지하여 버티고는 있지만, 조조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습니다. 폐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반드시 조조를 잡아서 폐하의 성심을 편안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고맙군. 그리고 견초, 안량, 장패를 모두 데려간다? 기주가 불안하지 않을까?"
"지용을 겸비한 전예가 버티고 있고, 유주에는 장합이 있습니다. 절대 부족하지 않으니 걱정마십시오."
"그래. 전예. 장합이라면 믿을 수 있지."
원소는 전풍의 말에 수긍하며 견초, 안량, 장패와 보병 5만, 기병 6천의 출전을 승인했다. 전풍은 예를 표하고는 치소를 물러 나왔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치소로 향하지 않고, 한미한 곳에 있는 방으로 들어 가서는 문을 닫았다.
전풍이 들어서자, 그곳에 있던 복면인 5명이 말없이 군례를 올렸다.
"이것을 전달해 주면 되네."
죽간과 함께 황금이 담긴 주머니를 건네자 그들은 말없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뒷문을 통해 방을 빠져 나갔다. 전풍이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조조 이놈! 내부에서 부터 흔들어 주마. 전투는 단지 승패를 확인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한 거야. 내부부터 흔들려서 수습이 안될 때, 비참함을 다시 맛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