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제162장.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卽生 倖生卽死
조순은 곧바로 측면에 있는 장수를 쳤다. 장수는 통솔력이 뛰어나고 무예가 뛰어난 무장이었지만, 현재 병력이 4천이 안 되는 상황에서 그의 능력은 상당히 제한되었다. 위연, 장비에 비해 장수가 무예가 뒤떨어지는 부분도 아쉬웠다.
장수군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흔들리는 보병 4천이, 승세를 탄 정예기병 4천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수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각오한 듯 원매가 있는 곳을 향하여 군례를 흘리고는 굵은 눈물을 흘렸다.
'이제까지 후회없이 살아온 인생이다. 전하. 이 장수는 먼저 갑니다. 부디 태평천하를 이루십시오.'
창-
창을 버리고는 칼을 뽑아들은 그는 호위기병 일백을 이끌고 조순에게 달려들었다.
"나를 따르라! 서량의 기백을 보여주마!"
장수를 따라 호위기병이 뒤를 이었다. 장수는 그대로 조순의 호표기를 뚫고 들어갔다. 미친듯이 칼을 휘두르며 상대기병을 베고 또 베었다. 그는 온 몸을 피로 뒤집어 썼고, 손에서 조금씩 힘이 빠져 나갔다. 이제는 칼을 잡기도 힘들었다. 핏물이 그의 눈으로 자꾸 들어가며 눈앞이 희미해질 때, 목이 섬뜩했다. 그리고 그의 목이 하늘로 솟았고, 몸은 힘없이 고꾸라졌다.
"이런 지독한 놈 같으니라고. 원매군은 하나같이 이토록 독하단말인가?"
조순은 장수의 목을 말 안장에 챙기고는 남아 있는 호위기병을 몰살하도록 명령했다. 장수의 호위기병은 순식간에 몰살되었다. 그 후로 조순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장비의 부대마저 급습했다.
장비와 위연은 결국 당해내지 못하고 후퇴했고, 방덕 또한 일부를 하후연에게 제물로 바치며 후퇴했다. 뒤에 남겨진 병사들은 조조군에게 잔인하게 학살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낮은 언덕 위에서 원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하. 후퇴하셔야 합니다. 저들이 기병을 숨겨 놓았다가 급습했습니다. 더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옥체를 보중하십시오."
사마의가 땅바닥에 엎드려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곡히 진언을 올리자, 조운도 같이 진언을 올렸다.
"부부어사(사마의)의 말이 옳습니다. 전하 후퇴하셔서 전력을 재정비한 후, 다시 조조를 도모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원매는 말 없이 전방을 노려보았다. 병사들의 애 끊는 비명이 계속 들려왔고, 기병의 습격으로 연이어 패배하여 후퇴하는 모습도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그는 독하게 표정을 굳히고는 반월도를 뽑아들고 칼집을 땅바닥에 버렸다. 칼집을 버린다는 것은 목숨을 건다는 의미였다. 사마의와 조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죽기를 각오한 자는 살을 것이고, 요행으로 살기를 원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必死卽生 倖生卽死)! 나는 이곳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 조자룡! 준비하라! 출병한다!"
"전하-"
"더는 말을 말라! 내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예. 전하! 출병을 준비하라! 돌격한다!"
우아아아아아-
원매가 출병소식에 호위기병 2천은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최강의 정예기병인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었다. 원매의 명령이 이어졌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라! 그래야 뒤로 물러났던 병사들이 다시 올라올 것이다! 그때까지 저들을 상대한다! 조자룡! 그대는 지금부터 병사들이 내 이름을 연호하며 돌격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
"전하. 어찌 존함을....."
"당장 시행하라!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는 방법은 그게 최상이다. 당장!"
원매가 단호가게 명령을 내리자, 조운이 이빨을 깨물며 군례를 올리고는 사마(400지휘장수), 도백(1백지휘장수)을 불러모아 강경하게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사마와 도백들은 당혹했지만, 원매의 명령을 곧바로 따랐다. 그들에게는 원매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했다.
"가자! 원매를 따르라!"
"원매!"
"원매!"
원매가 앞장서서 달려나가자 조운이 2천의 호위기병을 이끌고 달려나갔다. 그들은 원매! 원매!를 외치며 달려나갔다. 2천이 한입으로 외치는 소리는 확연하게 멀리까지 전달되었다.
원매는 측면에서 공격을 가했던 조순의 호표기를 덮쳤다. 4천의 호표기는 원매군의 뒤를 쫓으며 살육을 벌이느라 길게 대열이 늘어졌고, 원매의 2천 호위기병이 뭉쳐서 그 중간을 끊어 버리고는 격전을 벌였다. 조조 최강의 기병 호표기였지만, 하북 최강의 기병 원매 호위기병에게는 한 수 아래였다. 서량, 병주, 유주에서 고르고 골라 뽑은 호위기병이었다. 더군다나 체력면에서 월등하게 앞섰기에 순식간에 우위를 점했다.
"이건 또 무엇인가? 원매군에 아직 저정도의 저력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조순은 갑자기 들이닥친 2천의 기병에 호표기가 무기력할 정도로 당하자, 어안이 벙벙했다. 이 정도의 기병이라면 원매의 호위기병일 텐데,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원매를 호위해야 할 그들이 움직였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사방에서는 원매를 외치는 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때 한 자루의 검처럼 날카로운 예기를 자랑하는 장수가 일백여기의 호위를 받으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화려한 갑옷을 입은 그의 칼 놀림은 참으로 놀라웠다. 거대하고 두터운 반월도를 가벼운 검처럼 휘둘렀으며 그때마다 호표기의 목이 뎅강 뎅강 날아갔다.
조순은 그때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원매로구나!"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칼을 뽑아들고 원매에게 달려들었다. 원매는 칼로 비스듬히 조순을 내리치고는 엇갈렸다가 말을 돌려 그대로 옆구리를 찔러갔다. 조순이 칼로 막느라 틈을 보이자 반월도는 사정없이 몸을 찌르고 베었으며 조순은 20여합 만에 온몸이 피투성이 되었다.
"죽어라!"
원매가 내리친 반월도는 조순의 칼을 그대로 박살내며 몸통을 일도양단했다. 끔찍한 최후였다.
"조순이 죽었다!"
조순의 죽음이 울려퍼졌고, 호표기는 점차 그 수가 줄어들다가 결국 도주를 택했다. 원매의 기습공격으로 호표기 4천이 무너진 것이다.
"대열을 정비한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원매의 명령에 신호병이 고음의 호각을 길게 연이어 불자, 추격을 나갔던 기병들이 다시 돌아왔고, 조운을 중심으로 다시 재편되었다. 조운은 급히 원매에게 다가와 보고를 올렸다.
"전하. 옥체는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조순은 죽었어. 그래 기병의 상태는 어떤가?"
"지금 가용한 기병은 1천 6백입니다. 경상자와 중상자는 한곳에 모아 후퇴시키겠습니다."
"1백을 딸려보내서 돕게 하라! 1천 5백으로 다시 공격한다! 호표기는 완전히 퇴각했는가?"
"도주는 했지만, 아마 하후연에게 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1천이 넘게 죽거나 크게 다쳤으니, 확실하게 기세가 꺾였습니다."
원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중앙에 서서 반월도를 치켜 들었다.
"나 원매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여기 있는 너희들의 목숨은 결코 헛되이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나를 따르라!"
우아아아아-
원매가 다시 앞장서자, 기병들은 또 다시 원매를 외치며 그 뒤를 따랐다.
원매가 의도한 효과는 곧 나타났다. 호위기병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원매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은 하급장교들은 병사들을 다시 다독이며 한곳으로 몰려들었다. 곽준이 중앙에서 그들을 하나로 묶으며 부대를 재편했다. 지용을 겸비한 곽준의 능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곽준은 1만 5천을 급히 끌어모아 앞으로 진군했다. 장비, 위연, 방덕도 부대를 수습했다. 장비가 7천, 위연이 5천, 방덕이 기병 3천을 모았다. 아직도 수많은 병사가 어디론가 도망쳤지만, 이정도면 굉장한 선방이라 할 수 있었다.
"전하를 구하고, 조조군을 물리쳐라! 공격하라!"
곽준이 북을 치며 앞으로 진군하자, 장비, 위연, 방덕이 합류했다. 3만에 이르는 대군이 질서 정연하게 진군하자, 장료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원매군의 저력이 대단하구나. 원매가 저렇게 까지 나올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순별가도 이건 어쩔 수 없구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 더 전투를 치른다면 승패를 장담하기 어렵다.'
장료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결심을 굳히자, 후퇴명령을 내렸다.
"후퇴한다!"
장료의 명령에 신호병이 징을 크게 치기 시작했고, 조조군은 일순 당황하는 듯 했지만, 곧 일사분란하게 후퇴를 시작했다. 서황이 그 뒤를 따랐고, 하후연이 기병을 이끌고 후방을 엄호했다.
원매는 조순의 호표기를 격파한 후, 또 다시 서황의 보병을 공격하다가 그들이 후퇴하자, 더는 추격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깊숙히 들어갔다가 오히려 역습을 당한다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조순을 공략한 것도 그가 측면에 위치했고, 원매군을 추격하느라 대열이 길게 늘어졌기에 기습을 했던 것이다.
제일 먼저 방덕이 이끄는 삼천 기병이 달려왔다.
"전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방장군. 일어나시게. 기병부터 점검해. 저놈들은 물러갔으니 도주한 기병부터 끌어 모아. 그리고 곳곳에 기병을 보내서 병사들을 다시 불러 들여. 시간 없어!"
"예. 전하. 명을 따르겠습니다."
방덕은 기병을 일백씩 쪼개어 30개 조를 만들어 사방으로 급파했다. 그 사이에 곽준이 이끄는 2만 7천의 보병들이 도착했다.
"전하. 신들을 벌하여 주십시오."
곽준을 비롯한 장수들은 말에서 내려 땅바닥에 엎드려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원매는 그들을 일일이 잡아 일으켰다.
"내가 경솔해서 이리 됐는 데, 누구를 탓하고, 죄를 묻는단 말인가? 다 부질없는 짓일세. 어서 도망친 병사들을 모으고, 주둔지를 새로 편성하게. 다친 병사들을 모아서 치료해야지. 한번 실패로 족해. 더는 안돼. 어서 움직여!"
"예. 전하."
장수들의 안색이 조금 밝아지며 병사들을 이끌고 주둔지를 편성하고, 방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다친 병사들을 의원을 불러모아 치료했고, 죽은 병사들은 매장하여 전염병이 돌지 않도록 조치했다.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도망쳤는지는 확인불가였다. 아마도 며칠은 지나야 될 것이다.
원매는 낮은 언덕 위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사마의는 얼굴이 핼쑥해져서 말이 없었다.
"이봐. 중달. 자네는 그런 표정이 어울리지 않아. 항상 자신만만한 표정이 어울리지."
"전하. 죄송합니다. 저의 판단 착오로 대군을 잃었습니다. 이 죄를 어찌 갚아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최종 판단은 내가 했으니, 책임도 내가 지면 되는 거야. 그러니, 당당한 모습을 보이게. 역시 조조야. 쉽게 무너지지 않아. 아무래도 기주에서 병력을 불러 내려서 끝장을 봐야겠어. 유비, 주유보다 조조를 먼저 멸망시켜야 해."
"이번 계책은 참으로 절묘했습니다. 조조의 책사 중 누구의 솜씨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알아볼 것 없어. 순욱이야. 곽가는 재능이 있지만, 치밀하지 못하고, 만총은 어려. 정욱은 이렇게 큰 계책보다는 자잘한 계책에 강하지. 이 정도로 섬세하면서 빈틈이 없는 계책을 세울 수 있는 이는 현재는 순욱밖에 없어."
원매는 단언을 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중달 자네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경험이 부족해. 업성에서 책사를 한 명 불러 내릴 테니, 옆에서 보고 배우시게."
사마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를 불러 내릴 생각이십니까?"
"가문화(가후)가 적격인데, 승상을 맡고 있으니 안 되고. 순공달(순유)도 바빠. 할 수 없지. 전태부(전풍)를 불러 내리는 수 밖에."
원매는 입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지금 즉시 업성에 명령서를 보내게. 태부 전풍. 안량과 기병 6천, 견초와 보병 3만, 장패 보병 2만을 이곳 여강군으로 보내라고 전령을 보내."
"명을 따르겠습니다."
사마의는 군례를 올린 후, 곧바로 명령서를 작성하여 원매의 인장을 찍은 후 전령을 업성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