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제161장. 순욱 사마의를 압도하다.
십만에 이르는 대군이 일시에 후퇴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항상 승승장구했던 원매군이었기에 더욱 낯설은 일인지도 몰랐다. 여기저기서 혼란이 일어났고, 병사들간에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까지 일어났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다.
장수, 장비, 곽준, 방덕등이 강하게 질책을 하고, 질서있게 후퇴할 것을 독려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더욱 심각했다.
"이놈들 정신 차리거라!"
병사들이 대열을 갖추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자, 장비는 냉혹한 성질이 그대로 튀어 나왔고, 그들은 채찍에 피가 나도록 맞았다. 모질게 두드려 맞은 병사들은 두려움에 눈을 내리깔고, 벌벌 떨었다.
"어서 후퇴하란 말이다. 어서!"
이미 급하게 후퇴를 하는 상황에서 장비가 채근하자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하며 병사들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원매군 곳곳에서 빨리 후퇴하려는 병사들 틈에 바닥에 깔리어 죽거나 다치는 병사들까지 속출했다. 원매군 지휘부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원매는 일마장(약 400m)정도 후퇴하면서 비로소 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2마장은 더 후퇴를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면 전투를 벌이더라도 수적우세를 펼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지 못했단 말인가?'
원매가 스스로 자책할 때, 사마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급히 진언을 올렸다.
"전하. 당장 후퇴하는 것을 멈춰야합니다. 지금 대열이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곳곳에서 깔려 죽는 병사까지 속출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기습을 받는다면 승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들은 겨우 절반이 건너 왔을 뿐이야. 우리가 멈춤다면 다시 되돌아 갈 것이 아닌가?"
"설령 약속을 뒤엎는 한이 있더라도 멈춰야합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없습니다. 저들을 물리친다는 생각을 잊으시고, 부대를 재정비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어서요. 전하."
"이런! 이런!"
원매는 안타까움에 발을 굴렀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덥썩 물었는 데, 그게 이런 교묘한 함정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정지시켜! 대열을 다시 맞춘다!"
정지명령이 떨어졌고, 요란하게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급히 전령을 장수들에게 보냈고 북을 치긴 했지만, 상황은 더욱 꼬였다. 후퇴명령을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정지 명령이 내리자 병사들이 더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황했던 것이다.
하급장교들도 급히 장수들을 찾아 명령을 재확인하는 소동을 벌였다.
혼란한 와중에 병사들 틈으로 파고들은 만총은 눈을 반짝였다.
'역시 순별가(순욱)께서는 앉아서 천리 밖을 내다보시는구나. 어찌 원매가 후퇴를 하다가 혼란이 일어나면 그것을 추스리기 위해서 정지명령을 내린 것을 예측한단 말인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로다.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내 임무를 시작해야지.'
삐익-
낮게 호각을 연이어서 불자, 주위에 퍼져있던 부하들이 고개를 돌려 만총을 쳐다보았다. 만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호각을 가늘고 길게 불었다.
여러 번 호각 소리가 났기에 평시라면 의심을 받을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극도의 혼란스러움에 자연스럽게 묻혔다.
만총은 일부러 목소리가 우렁찬 병사들을 선발했는데, 그들은 두 명씩 조를 이루어 일제히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군이 패배했다!"
"사방에서 적들이 기습하여 선발대가 전멸했다!"
"전하께서 적들의 칼에 돌아가셨다!"
10개조를 이룬 목소리 큰 만총의 병사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자, 조금씩 안정을 찾던 원매군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최악의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하급장교들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후퇴명령이야 정식적으로 내려왔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갑자기 하달된 정지명령에 하급장교들까지 혼돈이 일어난 상황이었기에, 만총의 부대가 퍼트리는 유언비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흩어지고, 떼로 뭉쳐 도주하기 시작했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압사하는 병사들이 또다시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심각한 상황을 인지한 장수들이 하급장교들을 다그치며 혼란을 잠재우려고 노력했다.
"전하께서 돌아가셨다! 도망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병사속으로 파고든 만총의 병사들은 악랄하게 빈틈을 계속 파고들며 유언비어의 강도를 높여갔다.
"어떤 놈이 거짓을 선전하느냐? 당장 목을 베어라!"
방덕과 장수가 잇달이 추상같은 명령을 내리며 그들을 잡아 죽일 것을 명령했지만, 극심한 혼란속에 파묻힌 그들을 찾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후방에서 시작된 혼란은 이윽고 중군까지 흔들었다.
원매의 얼굴도 딱딱해졌다. 조운이 급히 호위기병 2천을 불러 모아 원매를 에워쌌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여 조운과 호위기병은 경직된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선두에 있던 위연이 소리쳤다.
"적군을 막아라!"
위연의 명령에 2만의 병사들은 일제히 창을 세우고 앞으로 전진했다. 조조군이 공격해 오는 상황에서 그 자리에서 방어를 한다면 밀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방장군은 앞으로 나와 하후연기병을 물리쳐라!"
위연군과 조조군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자, 원매는 급히 방덕을 찾았다. 전령이 급히 달려가서 방덕을 찾아 명령을 전달했지만, 방덕의 기병도 흔들렸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급히 기병을 모아, 5천을 이끌고 앞으로 진군했다.
대열을 맞추고, 군기를 세우기 위해서 계속해서 독려하고 또 독려했다. 중군에서 그들을 이끌고 선두로 나왔을 때, 상황은 심각했다. 장료, 서황이 이끄는 3만의 보병과 하후연이 이끄는 7천의 기병이 위연군을 덮친 것이다.
조조군은 파죽지세로 밀어붙였고, 위연군은 후방의 혼란을 인지하여 흔들리던 상태였기에 일방적으로 밀렸다. 더군다나 하후연의 기병이 측면을 돌파하면서 곳곳이 시산혈해가 되었다.
"네 이놈! 내 칼을 받아라!"
방덕이 5천의 기병을 이끌고 하후연의 기병을 공격했다. 평소 극강의 공경력을 자랑하던 방덕의 서량기병이었지만, 승세를 타고 강하게 맞받아치는 하후연의 기병앞에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방덕으로서는 이런 결과가 낯설었고, 참기 힘들만큼 분하고 또 분했다. 그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 최후의 수단으로 호위기병을 이끌고 하후연에게 달려들었다. 적장을 죽인다면 희망이 생길 것 같았다.
캉-
방덕이 힘껏 내지른 대도를 하후연이 침착하게 막았다.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했는지, 하후연의 도에서는 거침없는 힘이 느껴졌다. 수십합을 겨루면서 하후연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놀란 쪽은 방덕이었다. 마초를 빼고는 누구도 자신 있다고 여겼는 데, 생각도 못한 놈이 자신의 앞을 막고 나선 것이다.
방덕의 기병과 하후연의 기병이 어우러지며 대혼전을 벌이는 동안 위연은 조조군 기병/보병 연합공격에 대패를 당하고 후퇴했다.
원매가 급히 후방의 장비와 장수, 곽준까지 모조리 불러냈다. 극심한 혼란을 뚫고 장비가 7천을 추스려서 제일 먼저 나타났다. 평소 냉혹한 표정이던 장비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다.
"장익덕!"
장비는 앞으로 치고 나가려다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원매였다. 그는 급히 군례를 올리자, 원매의 단호한 명령이 떨어졌다.
"지금 치고 나가면 모조리 몰살당한다. 조금 기다려서 병사들을 모은 후에 공격하라!"
"시간이 없습니다. 전하."
"명령대로 시행하라! 일단 위연군을 수습해서 방어하라!"
"예. 전하!"
원매의 명령에 장비는 급히 패주하는 위연군을 수습했고, 그 사이에 장수가 4천의 군대를 이끌고 합류했다. 그렇게 모은 군사가 2만이 조금 안 되었고, 후방에서는 곽준이 죽을 힘을 다해서 병사들을 수습하는 중이었다.
"공격하라!"
위연군을 격파하면서 힘을 얻은 장료와 서황은 병력을 이끌고 그대로 장비군을 들이쳤다.
"물러서지 마라! 도망치는 놈은 내 손에 죽는다!"
병사들이 흔들리자 장비가 독하게 병사들을 질책하며 동요를 막았다. 대열이 흐트러진 상태에서는 공격도 방어도 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방어를 전환하며 대열을 계속 정비했다.
장료와 서황이 이끄는 병사들이 가까이 이르자, 장비가 명령을 내렸다.
"쏴라!"
슈슈슈슈슉-
3백의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쏘자, 조조군의 기세가 잠시 주춤해졌다. 하지만, 그뿐. 그들은 계속해서 승기를 잡고 밀려들었다.
"공격하라!"
이대로는 힘들다고 판단한 장비가 독하게 이빨을 깨물며 공격명령을 내렸고, 좌우에 포진해 있던 장수, 위연도 공격으로 전환하여 장료, 서황과 맞붙었다.
곧 처절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다행히 하후연의 기병을 방덕의 기병이 막고 있었기에 처음에 위연군이 대패했던 것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병사들을 독려하는 장비에게 서황이 큰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장비가 이를 악물며 장창을 끼고 달려 나갔다.
"건방진 놈!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캉- 캉-
연신 창과 도끼가 강하게 부딪치자 불꽃이 튀었다. 서황이 조조군 내에서 손 꼽는 무장인 것은 분명했지만, 불행히도 상대는 장비였다. 30여합을 절묘하게 어우러지던 서황은 힘겨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50여합을 넘기면서 결국 뒤로 물러났다.
장비는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서황을 추격하지 않고, 병사들을 계속 독려했다. 여전히 혼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병력에서 우위에 있고, 승기를 점한 조조군이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아까 그 적장 놈을 죽였다면 상황이 조금 나아졌을 텐데.'
장비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는 대단한 활약을 벌여 중앙에서 강력하게 버티었다. 그러자, 측면의 위연, 장수도 힘을 받아 버티기 시작했다. 밀리긴 했지만, 패배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더욱더 분발해 싸워야 했다.
다행히도 곽준의 노력 덕분에 후방에서 1천, 2천씩 병사들을 재 편성하여 전방으로 보내면서 상황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장료는 원매군이 점차 안정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곳곳에서 조직적으로 강하게 저항하는 것을 알아 차렸고, 이제는 위연군을 격파할 때처럼 쉽게 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조순의 호표기를 투입해야겠구나. 기가 막히구나. 어찌 순별가는 여기까지 읽고 조순의 호표기를 숨겨놓으라고 했단 말인가?'
장료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상념을 떨치고는 호각을 길게 불었고, 불화살을 연속으로 쏘아 올렸다. 호각소리는 날카롭게 전장을 퍼져나갔다. 모두 백병전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강 건너 숲속에 매복하며 전장을 예의 주시하던 한 장수에게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렸다. 조순이었다.
"출진한다!"
조순은 짧고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고, 4천여기의 호표기는 그대로 얕은 관수를 도하하여 밀려 들어왔다. 팽팽하게 어우러지던 백병전은 조순이 이끄는 호표기의 난입으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조조군 최강의 기병은 조순이 이끄는 호표기였다. 원매는 하후연의 기병이 이곳에 나타났기에 조순이 이끄는 호표기는 수춘성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 데, 그 예측이 완벽하게 어그러졌다. 조순이 이끄는 호표기 4천이 등장한 것이다.
호표기의 등장으로 겨우 비등하게 전세를 유지해 가던 원매군은 최악의 상황으로 직면하며 궁지에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