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제159장. 서서히 무너지는 익주.
강주성 성벽에는 빼곡하게 병사들이 배치되어 원매군을 노려보고 있었다. 교위와 사마들이 연신 병사들을 독려하는 소리가 성 밖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장임은 경직된 표정으로 망루에 올라 성을 에워싼 원매군을 꼼꼼하게 지켜보았다.
“장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장임이 고개를 돌리니 교위 양조가 깊숙이 군례를 올렸다.
“무슨 일이야?”
“병사들에게는 결사항전을 지시했고, 지금도 정신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다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기 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군량은 어찌해야 할지 하교해 주십시오.”
군량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내자, 장임의 표정은 한층 어두워졌다. 백성들을 포함하여 6만이 성안에 있었는데, 군량은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곳은 그간 전쟁이 없던 지역이라 중원처럼 성에 몇 달 치를 대규모로 저장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심각하더냐?”
“저들이 이곳으로 밀려 내려온 후, 보름이 지났습니다. 성안에 군량은 한 달 치가 고작이었고, 부족하면 성도에서 배를 이용해 공급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백성들은 시장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해 장군께서 군량 일부를 풀어서 배를 곯지 않게 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랬지.”
장임은 휴-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양조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백성들을 내칠 수는 없지 않으냐?”
“백성들을 내친다 하더라도 그리 오래 버티긴 어렵습니다. 이미 군량이 많이 소모되었으니까요. 냉정하게 병사들에게만 공급하더라도 10일 정도 버티면 군량이 고갈될 것입니다.”
장임은 난감해졌다. 군량이 빡빡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장임은 입을 다물었다. 백성들에게 소량씩 제공하던 것을 끊는다 하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고, 설령 그것을 끊는다면 과연 백성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와아아아아-
엄청난 함성 때문에 장임과 양조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장임이 눈을 돌리자, 원매군이 일제히 크게 함성을 질러대고 있었고, 발석거는 돌을 장전하고 있었다. 장임이 항전한다고 판단한 듯했다.
“공격하라!”
둥둥둥둥-
성 밖에서 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장임의 얼굴도 굳어졌다. 양조도 급히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달려갔고, 장임은 계속해서 북을 치면서 항전을 독려했다.
슈우우욱- 쾅!
발석거에서 날아온 돌은 거세게 성벽을 때렸는데, 병사들에게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성벽이 많이 부서지는 일은 없었지만, 전투경험이 부족한 병사들은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그그극-
공성탑 세대가 서서히 다가왔고, 연신 화살이 쏟아졌다. 본격적인 공성전이 전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겁먹지 마라! 물러서는 놈은 내 칼에 죽을 것이다!”
장임이 다시금 병사들을 독전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격렬한 공성전이 시작되면서 애를 끊는 비명이 사방에서 난무했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원매군은 유장군의 반격에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궁수부대가 활을 쏘며 지원했지만, 공성전은 아무래도 수성 쪽에 유리했다.
“활을 쏘아라! 돌을 던져서 막아라!”
장임은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독려했고, 하급장교들도 분주하게 움직이며 독전했다. 많은 병사가 화살에 맞아 다치고 죽었지만, 예비대를 투입하여 공백을 최소화했다. 아침부터 이어진 공성전은 오후가 되어 이통이 퇴각을 알리는 징을 치면서 종료되었다.
장임은 힘이 빠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병사들이 성벽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고통스러운 신음이 귀를 후벼팠다. 전쟁의 고통스러움에 장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통군영.
이통은 장임의 완강한 저항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엄안을 통해 장임의 성정을 알았기 때문이었고, 지원군이 격파된 마당에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망루에 올라 강주성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서서가 항복한 장수 오의를 데려왔다. 오의는 긴장한 듯 딱딱하게 경직된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신가?”
“여기 오장군께서 이도독께 보고드릴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오장군 말씀해보시오.”
“이도독. 저들은 군량 문제가 심각할 것입니다. 이곳은 오랫동안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성에 많은 군량을 쌓아두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백성들이 대부분 시장에서 쌀을 사서 먹는데, 그것마저도 고갈되었을 테니, 조만간 군량 부족으로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엄장군은 이 부분에 대해서 별말이 없던데, 오장군은 어찌 그리 잘 아시오?”
“엄장군이 지킨 구어현은 외지의 작은 성이고, 성도에서 멀어서 자급자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주성은 익주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큰 도시이기에 구어성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중앙에서 공급을 받고, 시장에 의존하는 상황이지요. 저는 중앙에 있으니 알지만, 엄장군은 알기 어려운 위치입니다.”
이통은 매우 기뻐하며 오의의 두 손을 맞잡았다.
“참으로 귀중한 말씀을 해주셨구려. 고맙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오의가 고개를 숙이자, 이통이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걸 진작 알려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왜 이제야 말씀하시는 겁니까?”
“항장으로서 처음부터 의견을 제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군요. 고맙소이다.”
“그럼.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오의가 물러나자, 이통은 밝아진 얼굴로 서서를 바라보았다.
“서부어사. 계책은 가지고 왔겠지요?”
“물론입니다. 저들이 군량 부족인 것을 알았는데 무리하게 공격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오장군에게 이야기를 듣고 계산을 해봤는데, 길어봐야 보름이면 강주성의 군량은 완전히 고갈됩니다. 그때 가서 회유하면 될 것입니다. 그동안 지친 병사들을 쉬게 하시지요.”
“보름이라. 차라리 그사이에 주위의 현들을 공략하는 것은 어떻소?”
“이곳의 중심은 강주성입니다. 주위 현령들은 지금 중앙보다는 강주성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니, 우리가 강주성을 확실히 장악하면 알아서 항복할 것입니다. 이 기회에 확실하게 휴식을 주고, 다친 병사들을 회복시켜서 다음을 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알겠소. 이 상황을 작성하여 전하께 보고를 하시오.”
“명을 따르겠습니다.”
서서가 군례를 올리고 물러나자, 이통은 의자에 앉으며 생각에 잠겼다.
‘보름 정도 정비하면서 강주성을 함락하고, 그다음에 광한군을 공략하면 될 것이다.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 유비도 움직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어찌하는지 모르겠구나. 뭐, 우리의 목적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서로 싸울 일은 없겠지.’
익주 장가군 야랑현.
유비는 험한 산을 넘어 장가군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곳은 만족과 한족이 섞여서 사는 지역인데, 한족은 대부분 현의 치소 부근에 거주했고, 넓은 계곡과 들판에는 만족이 살고 있었다.
유비는 산을 넘어 고차란, 무렴 두 개현을 점령했다. 이곳은 전쟁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에 유비가 5만 대군을 이끌고 나타나자 곧바로 항복했다. 유비는 백성들을 모아서 그들을 위무하고, 만족들에게도 차별하지 않을 것을 선포하며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각각 1천의 병사들을 현의 치소에 두고는 곧바도 야랑현으로 진군했다.
야랑현은 장가군에서 가장 큰 현이며, 중심지였다. 이 당시 유장은 이민족이 들끓는 익주 남부를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하고, 그쪽의 실력자를 인정하고 세수를 받는 공생관계를 취하고 있었는데, 장가군도 마찬가지였다.
주포는 야랑현에 머물면서 실질적으로 장가군을 지배하고 있었다.
주포는 새까맣게 밀려들어 오는 유비군을 보고는 기가 질렸다. 그는 정찰병을 보내서 실체를 확인하게 하였고, 성문을 닫아걸고 병사들을 배치하여 방어에 열을 올렸다. 얼마 후, 정찰을 나갔던 병사가 돌아왔다.
“그래. 어서 말해 보거라. 어떤 놈들이냐?”
“유비의 부대라고 하는데, 5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또한, 고차란, 무렴 두 개 현은 벌써 항복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뭐야? 5만이 넘어? 아니 온통 산밖에 없는 장가군에 뭐가 볼 게 있다고 5만이나 이끌고 온단 말인가? 유비 이놈이 제정신이란 말인가?”
주포는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차란, 무렴에서 저들이 어찌했다더냐? 현령을 죽이고, 약탈했는가?”
“현령들은 그대로 임무를 수행 중이고, 약탈은 일절 없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도 싸우기보다는 현령들을 설득하여 항복시켰다고 합니다.”
“5만의 대군인데 약탈이 없단 말인가? 이거 정말 무서운 놈이 왔구나.”
주포는 정찰병을 돌려보내고, 음울한 눈빛으로 멀리 보이는 유비군을 바라보았다. 성안에는 겨우 4천 5백의 병사밖에 없었다. 워낙 외지였기에 누구 하나 장가군을 빼앗겠다고 덤비지 않았는데, 유비가 점령군을 몰고 나타나니 당황스러웠다.
‘어찌한다?’
주포가 고민에 빠져있을 때, 진도가 이끄는 기병 1천이 빠르게 속도를 내어 성 앞에 도착했다.
“나는 유장군의 명을 받들어 온 진도라고 합니다. 인의로써 세상을 다스리고, 절대 백성들을 수탈하지 않으며, 이곳의 태수인 주장군도 그대로 인정하신다고 하셨으니, 나와서 유장군을 예로 따르시오.”
“그것을 어찌 믿으란 말인가?”
“여기 유장군의 친필이 적힌 죽간이 있소이다. 주장군 그대를 장가군 태수로 인정하고, 세수만 정확히 지급한다면 더는 그대에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소. 유목사(유장)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해주시면 됩니다.”
현실적인 유비의 제안에 주포는 망설여졌다. 그간 유장에게 대우를 받으며 잘살고 있었는데, 이제 배를 갈아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문제는, 과연 유비가 믿을 수 있느냐 그것이었다.
진도의 지속적인 설득에도 주포는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유비의 본군이 도착했고, 엄청난 군대가 성을 포위하자 비로소 겁이 덜컥 났다.
이때 유비가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입을 열었다.
“내가 이들을 책임지고 있는 유비입니다. 주장군의 허락 없이 장가군으로 군대를 이끌고 와서 참으로 면목이 없소이다. 나는 천하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데, 장가군이 유장의 밑에서 크게 고생하고 있다고 들었소. 이에 유장에게 속박된 그대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이렇게 항복을 제안 드리는 바이오. 주장군. 나와 함께 같은 길을 가십시다.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오.”
유비가 간절하고, 정중하게 항복을 요청하자 주포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유장군의 말이 참으로 마음에 와닿소이다. 진장군이 며칠 전에 말한 것이 참이오?”
“물론이오. 이 유비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소이다.”
주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성문을 열었다. 주포는 수하들을 이끌고 유비에게 무릎 꿇었다. 유비는 그를 급히 일으키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주장군을 얻다니 내가 복이 넘치는 것 같소이다. 앞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밝은 세상으로 바꾸는 데 우리 힘을 합칩시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꼭 지켜주십시오.”
“물론이오! 약속은 내 목이 떨어져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지키겠소!”
주포는 단호한 유비의 대답에 절을 올리고 부하가 될 것을 맹세했다. 유비는 크게 기뻐하며 주포를 장가군 태수로 임명했고, 넓은 장가군 현령들을 모두 불러들여 충성 맹세를 받았다.
이통이 전투하면서 고생스럽게 영토를 확보한 데 반하여 유비는 전투 없이 장가군을 점령했다. 이는 익주의 북쪽 지역은 한족이 많이 거주했고, 평야 지대가 있는 중요한 지역이었고, 남쪽은 산악지대가 많고, 이민족이 많아서 완벽하게 통치가 이뤄지지 않은 영향이 컸다. 아무튼, 유비로서도 최소한의 성과는 달성한 셈이었고, 장가군을 기반으로 월수, 익주, 영창, 건위군까지 손에 넣을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