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57화 (157/253)

# 157

제157장. 상황이 반전되다.

유장의 고집은 하루째 이어지고 있었다. 원매의 십만대군에 대비하여 따로 병력을 빼낼 곳이 없는데, 한중의 병력을 빼지 않았다. 그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다 잡은 한중을 놓으려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하지만, 지금 익주가 넘어가게 생겼는데, 한중에 집착하면 어쩌란 말인가?

비관은 유장의 고집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원매를 너무 얕잡아 봤어.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구나. 이렇게 당하고 보니까 힘의 차이가 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한중의 군대를 되돌려서 원매군을 물리쳐야 한다. 더는 시간도 방법도 없다. 원매가 익주로 들어와서 교두보를 확보한다면, 익주는 더는 천험의 요새가 아니다. 시간은 없는데, 참으로 답답하구나.’

비관은 하는 수없이 유장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고, 하루가 더 지나서야 한중철수명령이 내려졌다. 귀중한 시간 이틀을 날린 것이다.

강주성.

장임은 병사들을 단속하며 방어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을 지키는 병사가 1만이었지만, 백성 중에서 건강한 자를 1만이나 선발하여 대거 충원했다. 과연 이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엄안의 전령이 지나가면서 알렸기에, 장임으로서는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이는 행운이었다.

“장군.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교위 양조가 급히 보고하자, 장임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양교위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자 수천으로 보이는 기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 이들은 이통이 먼저 보낸 마초와 마대의 기병이었다.

“성문을 닫고, 경계를 강화하라!”

양교위는 장임의 엄명에 복종하며 물러났고, 강주성은 한층 경계가 강화되었다.

마초와 마대는 화살이 닿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며 성을 정찰하기 시작했다. 1만 3천에 달하는 기병이었기에 적들이 성문을 열고 공격한다면 언제든지 되받아쳐 줄 생각은 하고 있었다. 물론 장임이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할 리는 없을 것이다.

강주성에서 성도로 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였다. 하나는 장강을 따라 건위군을 거쳐 성도로 가는 길로서 배를 타고 간다면 편하지만, 육로로 가기에는 우회해야 하는 길이였다. 또 다른 길은 장강의 거대한 지류인 한수를 거슬러 올라가 광한군을 거쳐 성도로 가는 길로서 전자보다 훨씬 빠르고 평탄한 길이였다.

마초는 두 개의 길을 모조리 차단했다. 각각 기병을 3천씩 두어 경계병으로 배치했고, 주변의 나무와 돌을 이용하여 장애물을 쌓아서 지원병력이 오는 것을 막았다. 그 후, 나머지 7천의 기병을 이끌고 성 주변을 맴돌며 자신이 놓친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마초가 온 지 이틀이 지나자, 이엄이 이끄는 수군이 나타났다. 엄청난 규모의 배들은 천천히 강수를 가로질러 강주성 인근에 정박했다. 구어성 일대보다는 유속이 느리고, 강폭이 넓었기에 이엄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강주성.

망루에서 마초와 이엄의 부대를 꼼꼼하게 지켜보는 장임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수군이 나타났으니 조만간 보병이 나타나겠구나. 십만이라? 빨리 지원군이 도착해야 한다. 그래야 저들을 물리칠 수가 있어. 그때까지는 반드시 성을 사수할 것이다. 반드시!’

장임은 착잡한 마음속에서도 유장이 반드시 지원군을 보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고, 그때까지는 반드시 저들에게 성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엄이 도착한 지, 며칠이 지나자 드디어 이통의 대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통은 도착하자마자, 정찰보고를 들었다. 차단지점에 병력을 3천씩 보내어 기병들과 교대를 시켜주었고, 마초에게 성도로 가는 두 갈래 길을 모두 정찰할 것을 명령했다.

마초와 마대가 정찰하기 위해 떠났고, 하급장교들이 주둔지를 편성하는 동안 장수와 책사들은 지휘소로 모였다.

이통이 상좌에 앉은 가운데, 서서, 문추, 엄안, 이엄이 자리를 차지했다. 이통이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강주성은 구어성에 비해 클 뿐만 아니라, 견고한 성이오. 쉽게 함락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이곳을 지키는 자는 장임인데, 성정이 차분하고 고지식해서 결코 유장을 배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곳이 사실상 익주의 관문인 만큼, 지원군이 올 때까지 격렬하게 버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하면 함락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엄안이 진언을 올리자, 장수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강주성이 난공불락이라 이 말씀이신가?”

“난공불락까지는 아니지만, 장임이 지용을 겸비한 무장이고 성이 크고 견고하니 함락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병사들의 희생이 크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엄안이 재차 진언을 올리자, 이통이 찌푸린 얼굴로 서서로 돌아보았다. 서서는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엄장군. 그럼 성의 군량 사정은 어떻습니까? 병력이나 백성들의 상황은 어떻고요?”

“병력은 1만 정도이고, 백성은 최소 5만은 될 것입니다. 군량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최근에 큰 전투가 없었기 때문에 대규모로 비축하지는 않았습니다.”

서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반짝이며 이통에게 진언을 올렸다.

“도독. 지금 성안에는 6만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군량은 넉넉하지 않다면 기다리는 것도 한 방책이 될 것 같습니다.”

“기다린다? 그러면 저들의 지원군이 올 터인데,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보시오.”

“예. 처음에 익주로 들어올 때는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강주성을 점령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와서 성을 보고, 엄장군의 말을 들어보니 쉽게 함락될 성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어설프게 공격했다가 함락시키지 못하고 병력손실을 크게 입은 상황에서 유장의 지원군과 맞닥뜨린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하여 저들의 군량을 소모하게 하면서 기다리다가 중간에 매복하여 지원군을 격파해버린다면, 강주성은 동요할 것이고 그때 공성전을 벌인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흐음-”

이통은 처음의 계획이 어그러진 것이 못마땅했지만, 서서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때 문추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면 기다리는 동안 서릉성전투처럼 똥을 투척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똥이라니? 무슨 말인가?”

이통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자, 서서가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상당히 효율적인 작전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작전은 성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서릉성은 대체할 다른 성이 많았기에 불태워버렸지만, 강주성은 틀립니다. 한수와 강수의 합류지점에 자리를 잡았고, 익주로 들어가는 입구일 뿐만 아니라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대체 가능한 성이 없습니다. 하여 최대한 성을 보존해야 다시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문추는 서서의 의견에 수긍하며 한발 물러났다. 이엄이 서서의 의견에 동조했다.

“서부어사의 말이 옳습니다. 지원군이 격파되었고, 군량마저 부족해지면 저들은 심리적으로 쫓길 것입니다. 그때 항복을 종용하면서 일제히 공격을 가하면 성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엄이 동의했고, 문추, 엄안도 동의하자, 이통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결론을 내렸다.

“좋소이다. 그럼 문장군께서는 성 주변을 철통같이 막아서 저들이 성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고, 엄장군이 이곳의 지리에 밝으니 군사들을 거느리고 매복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시오.”

“이도독. 두 갈래 길을 모두 탐색하겠지만, 광한군-한수로 이어지는 길로 올 확률이 높으므로 그쪽에 좀 더 중점을 두겠습니다.”

“좋소. 그럼 바로 움직이시오.”

장수들이 일제히 일어나 군례를 올리고 물러나자, 이통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한수와 강수의 합류지점에 자리 잡은 강주성은 위용이 대단했다.

‘그래. 서원직의 말이 옳아. 무리하게 공성전을 벌인다면 피해가 크겠어. 지원군을 격파하고, 성을 손에 넣는다면 나중에 익주를 공략하는 일도 무난하게 이뤄질 거야.’

이통은 마음을 조급히 갖지 말자며 자신을 달래고 또 달랬다.

한중 성고성.

이통이 강주성을 포위하고, 매복을 준비하고 있을 때, 성도에서 보낸 사신 왕루가 방희에게 도착했다.

방희는 좀처럼 함락시킬 수 없는 성고성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온 상태였는데, 왕루로부터 퇴각명령을 받자 울화통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성고성을 점령하려고 얼마나 많은 병력이 죽었는지 아시오?”

“압니다.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원매군이 구어성을 공략하고 있는데, 지금쯤이면 아마도 구어성을 함락하고 강주성으로 진군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방장군도 강주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빌어먹을! 비관 그 애송이 놈이 주군 곁에 붙어서 가벼운 입을 나불대더니 결국 이 사달을 내는구나.”

방희는 주먹으로 연신 탁자를 내리치며 분노를 표출했고, 왕루를 그런 그를 차분하게 달랬지만, 방희는 분이 안 풀리는지 한탄을 늘어놓았다.

“나도 왕별가(왕루)의 말뜻을 알아요. 하지만, 한중에서 2만을 넘는 병력이 죽거나 병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물러나야 한다니요? 또한, 이곳에서 쓴 물자가 엄청납니다.”

“시간이 늦어지면 강주성이 함락될지도 모릅니다. 방장군께서도 강주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시겠지요?”

방희는 짧게 탄식을 쏟아내고는 결국 왕루의 말에 수긍했다. 그는 곧바로 장수들을 불러모아 퇴각을 명령했다. 장수들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유장의 친필과 인장이 찍힌 퇴각명령서를 보여주자 방희의 명령을 따랐다.

방희는 오의에게 1만을 주어 파재의 후방공격을 막으라고 한 후, 한수에게 기병을 이끌고 선발대로 나설 것을 명령했다. 방희는 중군에 위치하여 행군을 개시했다.

성고성 파재치소.

유장군이 퇴각한다는 소식에 파재는 급히 망루에 올랐다. 오의가 이끄는 1만이 아직 성을 포위하고 있었지만, 기병1만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5만의 본대도 주둔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흐흐흐흐- 이놈들. 올 때는 쉽게 왔을지 몰라도 갈 때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장도독(장패)이 군대를 이끌고 출병했으니 잔도를 따라서 가는 길이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다. 물론 한중을 빠져나갈 때 나도 뒤를 따라가서 악몽을 선사해주마.”

파재가 복수를 다짐하고 있을 때, 장부가 다가왔다.

“파장군. 차라리 잔도를 중앙에서 끊어 버리고 공격하면 어떻소?”

“쥐를 몰더라도 퇴로를 열어주라고 했습니다. 끊어 버린다면 저들은 악착같이 버티며 항전할 것입니다. 지금은 저들이 병력에서 더 우세한 상황입니다. 잘못하면 큰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 매복하여 기습공격을 통해 저들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리하면 저들이 성도에 도착했을 때, 많은 병력이 꺾이고 사기가 저하된 오합지졸로 바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럼 조금만 기다리면 남정성과 양평관도 돌려받을 수 있겠군요.”

“한중을 철수해야 하니 남정성은 당연히 버릴 것이지만, 양평관은 자신들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서 끝까지 확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단 상황을 봐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저들이 험로를 통해 후퇴한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가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장태수께서는 남정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십시오. 다시 치소를 개설하셔야지요.”

“물론입니다.”

비로소 장부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파재는 곧바로 강합과 양앙을 호출했다. 그들은 현재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듯 매우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곳은 3천으로 내가 지킬 테니, 자네들은 유장군이 후퇴하면 추격할 준비를 하게. 저들을 추격하여 몰살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귀찮게 괴롭힌다. 이 정도만 생각하게. 부상자를 많이 만들어 놓으면 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물론입니다.”

강합과 양앙이 머리를 조아리자, 파재는 신중하게 당부사항을 전달하고는 출병준비를 명령했다. 이제 반격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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