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제155장. 익주공략
문추와 서서는 대군을 이끌고 강릉성을 향해 급속행군을 거듭했다. 장수들은 말을 타고 이동하면서 체력소모가 적었지만, 병사들은 빠르게 걷고, 뿌연 먼지까지 들여 마셔야 했기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문추는 서서와 말머리를 같이하며 입을 열었다.
“서부어사. 익주는 산세가 워낙 험해서 형주에서 공략하기가 어렵소. 어떤 계책을 가지고 계시오?”
“장강을 통해서 공략할 예정입니다. 이엄이 이끄는 1만의 수군이 군량등 군수지원물자를 나르고, 병사들은 강을 따라 행군하면서 주요성을 공략하면 됩니다. 1차 목표는 파군의 치소이며 거점인 강주성을 함락시키는 것입니다.”
“흠- 좋은 계책입니다. 우리가 장강으로 접어들면 저들도 알 텐데, 어찌 나오리라 예상하시오?”
“시간 싸움이 되겠지요. 한 달 이내에 강주성을 점령해야 합니다. 저들이 성도에 전령을 보내고, 다시 한중으로 전령이 가는데 적어도 열흘은 걸리겠지요. 그 후, 한중에서 돌아오려면 최소 열흘입니다. 파장군이 뒤를 물고 늘어질 테니 5일은 지연될 것입니다. 저들이 성도로 돌아와서 병력을 보충하고 강주로 오는 데 5일이라고 보면 30일 정도 걸릴 것입니다. 아마, 제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30일 이내에 강주성을 함락해야지요.”
“유비가 따라오겠지요?”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항도 아니고요. 오로지 강주성 함락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문추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들어만 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저들이 온실 속의 화초라면, 원매군은 온갖 풍상을 겪은 들판의 잡초들이었다.
3일을 행군하여 강릉성에 도착하자, 이통을 비롯하여 이엄, 마대가 마중을 나왔다. 문추, 마초, 곽독, 서서는 말에서 내려 이통에게 일제히 군례를 올렸다.
“이도독(이통)을 뵙습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소.”
“전하의 명령서가 여기 있습니다.”
문추가 죽간을 내밀자, 이통은 허공에 예를 표하고는 조심스럽게 받아서 펼쳤다. 두 번이나 꼼꼼하게 읽고는 미소를 지으며 이엄, 마대에게 보라고 돌렸다. 모두가 원매의 명령을 인지하자, 이통이 입을 열었다.
“서부어사가 이제부터 고생 좀 하셔야겠어. 자- 이곳에서 머뭇거릴 시간은 별로 없소이다. 오늘은 늦었으니 하루를 이곳에서 쉬고, 내일 아침에 출병하겠소. 병사들을 쉴 자리를 만들어 주고 내 지휘 막사로 모이시오.”
이통이 간결하게 명령을 내리자, 장수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리며 복종했다.
오후 늦게 장수들이 모이자, 이통이 주위를 둘러보며 명령을 내렸다.
“지금 장사의 유비가 조용하긴 하지만,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가 없소. 그가 익주 남쪽을 공략한다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만약 이곳으로 칼끝을 돌릴 수 있다는 상황을 생각해야 하오. 해서 이곳 강릉은 곽장군(곽독)이 2만으로 지키시오. 강릉만 단단히 지킨다면 저들도 더는 어쩌지 못할 것이오.”
“도독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모두 아시겠지만, 이번 전투는 수륙합동작전입니다. 이장군(이엄)이 누각선 3척, 주가 2백 척에 수군 1만과 군수지원물품을 실어서 강수(장강)를 따라 익주로 진군하시오. 그동안 보병 9만, 기병 1만 3천은 육로를 개척하여 강주성을 향해서 진격하겠소. 경계지대에 있는 어복현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고, 그다음에 있는 구어현이 문제요. 그곳에는 엄안이란 장수가 버티고 있는데, 용맹과 지략을 두루 갖추었소. 이곳을 얼마나 빨리 점령하고 강주성으로 향하느냐가 중요하오.”
“이도독! 일단 구어현으로 진격하시고, 그곳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성을 빙 둘러 돌아가는 방법도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일단 강주성이 점령되면 그들은 고립되니까요.”
서서의 진언에 이통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수긍했다.
“그렇게 합시다. 시간 싸움이니 맹렬하게 공격하고, 안되면 돌아가야지. 그래도 수군이 군수지원물품을 이동시켜주니 가능한 계책이 되겠군.”
이통은 확신이 선 듯,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마초, 마대. 두 장군께서는 기병을 이끌고 선발대로 출발하여 통행로 상의 정찰을 철저히 하시오.”
“예. 도독!”
“문장군과 부어사는 나와 함께 보병 9만을 이끌고 진군합시다. 자- 모두 돌아가서 준비하시고, 내일 아침에 일찍 조반을 먹고 출병하겠소.”
이통의 명령에 장수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리고는 밖으로 향했다. 이통은 조금 답답했다. 익주를 공격할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했지만, 들어가는 길이 너무 험했기 때문에, 실패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까지 쌓아놓은 공이 헛수고로 돌아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마초와 마대가 이끄는 기병 1만 3천이 먼저 출발했고, 이통, 문추, 서서가 이끄는 보병이 그 뒤를 따랐다. 이엄이 이끄는 수군은 물품을 적재 하느라 하루 늦게 강릉성을 출발했다.
유비치소.
유비는 남군 출신으로 충성심이 뛰어난 지용겸비의 무장 부융(부동으로 많이 표기하고 있지만, 부융이 옳음)을 얻었다. 이야기를 많이 나눈 유비는 부융에게 일군을 맡기며 그를 격려했다. 그렇지 않아도 장수감이 부족했기에 부융의 합류는 그에게 큰 힘을 주었다.
“주군- 급보입니다.”
방통이 급히 달려오며 급보라고 외치자, 유비의 안색이 굳어졌다.
“부장군은 군대를 점고하시게.”
“예. 주군.”
부융이 물러나자, 방통은 그에게 잠깐 시선을 옮겼다가 유비에게 돌렸다.
“무슨 일이길래 이리 서두르는 것이야? 설마 원매가 쳐들어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원매는 여강에 있고, 지금 강릉에 주둔하던 이통이 수백 척의 배와 10만으로 추산되는 병력을 이끌고 강수를 따라 서진하고 있습니다.”
“뭐? 강수를 따라 서진해? 그럼. 익주를 공략하러 움직였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강릉성에서 4~5일이면 익주와의 경계지대에 도착합니다. 당연히 익주를 공략하러 움직이는 것입니다.”
유비는 인상을 찌푸리며 탄식을 쏟아내고는 질문을 쏟아냈다.
“유목사와는 사사로이 형제 관계를 맺었고, 그가 나를 돕고 있어. 이제 어떡하면 좋겠는가? 당연히 원매의 후방을 급습하여 익주공격을 무산시켜야 하는데, 그랬다간 그놈들이 장사로 밀고 들어올 테고, 걱정이구먼. 자네는 어찌하면 좋겠는가?”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유목사와의 의리를 생각하여 강릉성을 공략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잠시나마 영토는 넓어지겠지만, 얼마 안 가 원매의 공격을 받을 것이 자명하므로 위험한 계책입니다. 둘째는 남쪽의 산을 넘어 부릉현으로 진격하시는 것이지요. 이통은 파군, 촉군을 점령하려고 할 테니, 주군께서는 남쪽의 건위군을 점령하십시오. 이통도 유목사를 상대하기 바쁘니 주군께는 칼끝을 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후에 틈을 보아 월수, 익주, 장가, 영창군등 남쪽을 병합하면 지금보다 훨씬 큰 세력을 이룰 것입니다.”
“익주 남쪽을 얻는다? 오랑캐가 득실거리는데, 얻는다고 득이 있을까?”
“이곳 장사, 영릉, 계양도 산월족 때문에 피곤하지 않습니까? 아쉽지만, 주군께 남은 땅은 오랑캐가 득실거리는 이런 땅밖에 없습니다. 이통이 유장을 공격하는 동안 남쪽이라도 얻으셔야 합니다.”
“휴- 세상 사람들이 이 유비에게 온갖 비난을 다 하겠구나.”
유비가 낮게 탄식을 터트리자, 방통은 입을 닫았다. 할 말은 다 했고, 이제 유비가 결정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유비가 고민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팔자가 기구하여 이런 식으로 의형의 뒤통수를 치게 되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그럼. 익주남쪽을 공격하는 계책을 작성하여 올리겠습니다.”
유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통이 물러가고, 유비가 탄식하며 정원을 거닐 때, 뒤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곽도가 눈을 반짝이며 유비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한수와 모의하여 유장을 치려고 한 것을 알고 있거늘. 어찌 저런 말이 술술 잘 나온단 말인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나도 독하고 모질다지만, 더 독하고 모진 자가 있었구나. 허허허- 나 참.’
곽도는 고개를 흔들며 돌아섰다. 유비는 3일에 걸쳐 출정준비를 마친 후, 장사에 1만, 무릉군에 1만을 남겨두고 곽도에게 이곳을 지키게 했다. 그 후, 방통, 관우, 부융과 보병 5만, 기병 2천을 거느리고 익주로 출병했다. 그들은 원매군과 혼선을 피하고자 장강 이남인 장가군으로 방향을 잡았다.
유비가 진군을 시작했을 때, 이통은 익주경계지대인 어복현을 점령하고 있었다. 어복현이 요충지는 아니었기에 현령은 엄청난 대군을 보자 곧바로 항복했다. 이통은 현령을 위로하고 그날 하루를 이곳에서 머물고는 바로 구어현으로 출병했다.
어복현에는 교위 한 명과 2천의 군사를 남겨놓아 만약에 대비했다.
구어성 엄안치소.
망루에는 중년의 장수가 어두운 표정으로 동쪽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부진 체격과 날카로운 눈매의 소유자인 그는 구어성을 책임지고 있는 엄안이었다.
‘이거 큰일이로구나. 주군께서 일을 너무 크게 벌리셨어. 지금 구어성에 겨우 6천이 있는데, 어찌 저 엄청난 군세를 당해낸단 말인가? 세작의 보고에 의하면 10만이 넘는다고 하던데, 허허- 기가 막히는구나. 기가 막혀. 성도에 전령을 보냈는데, 언제나 지원병이 온단 말인가? 그때까지 버틸 수는 있을까?’
엄안은 답답한 마음에 몇 번이나 망루에 올랐지만,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휴우-”
짧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멀리서 수많은 배가 강수를 뒤덮으며 나타났고, 육로로는 기병이 진군해오는 것이 보였으며, 뿌연 먼지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먼지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병력이 진군해오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적이 나타났다. 경계 조치를 강화하라!”
엄안의 짤막한 명령에 둥-둥-둥- 북소리가 이어졌고, 사마들은 병사들을 성벽에 배치하고 방어를 준비했다.
마초와 마대가 이끄는 기병은 성 주위를 빙빙 돌며 지형의 특이사항을 정찰했고, 이엄이 이끄는 선단은 구어성을 지나쳐 유속이 늦고 깊은 곳을 찾아 배를 정박시켰다.
기병이 길목을 막아서며, 지속적으로 정찰결과를 이통에게 알렸고, 이통은 하루 늦게 본대를 이끌고 나타나 성을 포위했다.
상대가 워낙 대군이었기에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을 한다거나 싸운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못했다.
이통의 명을 받은 보병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사다리를 만들었고, 배에서 분리된 공성탑과 발석거를 꺼내서 조립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마초를 불러 항복을 종용케 했다.
“나는 기병대장 마초요. 우리는 이곳에 10만이 넘는 병력을 이끌고 왔소이다. 저항한다면 애꿎은 목숨만 날아갈 터이니, 항복하시오. 그 길만이 그대와 병사들이 살길이오.”
피융-
성벽에서 엄안이 쏜 화살은 마초에게 곧장 날아갔다. 거리가 멀었기에 결국은 화살의 힘이 떨어졌고, 마초는 칼을 들어 쳐냈다.
“썩 물러가거라! 내가 죽으면 죽었지 결코 항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엄안으로부터 단호한 의지를 전달받은 마초는 그대로 뒤돌아 이통에게 달려갔다. 이통은 마초로부터 상황을 전달받고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벽지에 뛰어난 장수가 있었구나. 어쩔 수 없지. 공격하여 무너뜨리는 수밖에. 고생했네. 이제부터 이곳은 내게 맡기시고 기병을 이용하여 강주성까지 이르는 길을 정찰하여 알려주시게.”
“예. 이도독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마초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물러나자, 이통의 얼굴도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다.
“반드시 구어성을 무너뜨린다. 안되면 돌아가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겨우 수천이 지키는 이 작은 성을 넘지 못하고 어찌 익주를 얻는단 말인가? 끝장을 볼 것이다.”
엄안의 단호한 행동이 이통의 승부욕을 자극한 셈이 되었다.
며칠에 걸쳐서 사다리 천 개와 공성탑 2개, 발석거 30대를 만들어 놓자 그렇지 않아도 좁은 성 주변이 꽉 찼다.
이통은 준비가 완료되자, 발석거로 돌을 쏘면서 공성전을 개시했다.
쾅- 쾅-
무거운 돌이 날아와서 성벽을 때리자, 병사들은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고 감히 밖을 내다보지 못했다.
그그그그-
거대한 2개의 공성탑은 듣기 싫은 굉음을 내며 천천히 성벽으로 다가갔다. 불화살 공격에 대비하여 물을 뿌려놓았지만, 이통은 조금 불안했기에 곧바로 보병공격을 개시했다.
“공격하라!”
짧은 한마디에 둥둥둥둥-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문추가 4만의 보병을 이끌고 공성전을 개시했다. 그렇게 익주공방전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