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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52화 (152/253)

# 152

제152장. 한중의 여우.

익주 성도 유장치소.

유장은 비관으로부터 면죽관에서 한중군, 장안에 이르는 잔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잔도의 상태는 괜찮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상인들이 지속해서 오가서 그런지 일렬로 이동한다면 충분히 대군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백성들을 일부 뽑아 그곳으로 보내서 보수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잔도의 상태가 그리 좋다니 다행이로군. 장안까지는 먼 길이니까, 한중군을 점령해서 중간기착지로 사용하면 좋겠는데, 양평관이나 파산을 넘는 길은 어떤가?”

“파산을 넘는 길도 험하고, 양평관도 견고합니다. 사실 가장 큰 문제가 양평관입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힘으로 부딪친다면 엄청난 손실을 각오해야 합니다.”

“엄청난 병력손실을 겪으면 무너뜨릴 수 있다. 이거지?”

“쉽지 않습니다. 워낙 험난한 요새이고, 그 앞에 면수가 흐르는데 상당한 급류입니다. 병사들이 주둔지를 설치할 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습니다. 확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아무 소용없잖아! 무슨 생각으로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는 거야?”

유장이 분노를 터트리자, 비관은 불끈하고 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것을 억지로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양평관을 지키는 장수가 양앙인데, 원매가 한중을 점령하면서 천민으로 강등시킨 양송의 인척입니다. 욕심이 많고, 그리 병법이 뛰어나지 않은데 능력보다 중용 받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허락하신다면 많은 재물을 약속해서 설득하겠습니다.”

“빌어먹을! 그런 새끼한테도 재물을 퍼부어야 한다니.”

유장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전쟁하려면 물자가 무한정으로 필요했는데, 양앙이라는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이는 장수에게 쏟아부으려니 아까웠다. 하지만, 야망이 큰 유장은 결국 허락했다.

비관은 누구를 보낼까 하다가, 곧은 성정과 지략을 지닌 정탁을 보내기로 했다. 한직에 머물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정탁은 곧바로 짐을 꾸려서 길을 나섰다. 재물과 황금을 가져가야 했기에, 수행하는 인원만 20여 명에 달했다.

성도에서 정탁이 출발했을 때, 묘하게도 파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중으로 들어오는 제일 좋은 입구가 양평관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몰랐다.

‘양앙이가 내 말뜻을 잘 알아들어야 할 텐데. 그리 똑똑하지 않은 위인이라 걱정이 되는구나. 만약 저들을 제대로 속이지 못한다면 거대한 계획이 수포가 될 것이다. 어쩐다?’

파재는 고민을 하다가 남정현에 있는 장부치소로 향했다. 장부(장로 장남)는 파재가 왔다는 말에 급히 달려 나왔다.

“아니 연통도 안 주시고 어쩐 일이십니까?”

“잠시 조용한 곳으로 가시지요.”

장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 사람을 물리쳤다. 그들은 밀폐된 실내가 아닌 넓은 뜰로 자리를 옮겼다. 멀리서 본다면 그저 차를 마시는 것으로 보일 테고, 한중의 정치와 군사를 책임진 자가 의논하는 자리로 생각할 것이다.

“전하께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장부는 조심스럽게 죽간을 받아 허공에 예를 표하고는 차분하게 읽고 또 읽었다. 죽간을 돌돌 말은 그의 얼굴은 찌푸려져 있었다.

“한중을 유장에게 내주다니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잠시 내어주는 것입니다. 성고성을 단단하게 움켜쥐고 있으면 나중에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한중군에서 유장의 발을 묶어 놓는 사이에, 익주를 공격하여 점령할 계획을 세우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 계획이 성사된다면 장태수께도 큰 포상이 있을 것입니다.”

“아버님(장로)께서 이곳을 어찌 개척했는지를 잘 알고 있는데, 난감하군요.”

“전하의 명령이니 따라야 합니다. 한중에서 일이 어그러진다면 후에 전하의 분노를 어찌 감당하려고 그런 말씀을 서슴없이 하십니까?”

장부는 얼굴이 핼쑥해지며, 두 손을 모아 사과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저들이 올 수 있는 길은 양평관과 파산을 넘어오는 길,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수월한 길이 양평관으로 오는 길입니다. 그곳의 관주를 이서로 임명해주십시오.”

“이장군을요? 지금 양장군(양앙)이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그를 이해시켜야 합니까? 지금은 정기적인 인사도 아니잖습니까? 그렇다고 그에게 전하의 죽간을 보여줄 수도 없고요.”

“당연하지요. 비밀은 많이 알면 더는 비밀이 아닙니다. 성고성에서 예비대를 맡으라고 하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서라면 지략이 있으니, 몇 마디 말만 해도 알아들을 것입니다.”

“그리하지요.”

장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취하고는 치소로 돌아갔고, 파재는 곧바로 이서를 찾았다. 이서는 파재를 보자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파재는 그를 가까이하고는 주위를 살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는 죽간을 슬그머니 보여주었다. 이서는 매우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파장군.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를 위한 일인데 무엇인들 못 하겠습니까? 저놈들이 의심 없이 들어오게끔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이래서 이장군을 선택했소.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전하께서 후한 포상을 하실 것이니, 최선을 다하시오. 장태수가 양평관주로 임명한다는 명령을 내려줄 것이니 그것을 들고 가서, 양앙과 교대하시오.”

“예. 장군.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이서는 남정현에서 출발하여 하루 만에 양평관에 도착했다. 양앙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장부가 내린 보직이동 명령서를 보았다. 파재밑으로 가면 이것저것 참견할 것이 뻔했기에 양앙은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왜 이런 명령이 내려온 것입니까?”

“난 들 알겠소? 장태수와 파중랑장께서 명령을 내리셨으니 따를 뿐이지요. 자- 시간이 없습니다. 양장군께서도 내일부로 이곳을 떠나셔야 합니다. 파중랑장께서 하루라도 지체하지 말고 성고성으로 오라는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양앙은 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속으로만 생각해야 할 욕이 튀어나온 것이다. 이서가 서늘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양장군의 서운한 마음을 아니 내가 여기까지는 참겠소. 만약 한 번 더 그런 말을 입에 올린다면 파중랑장께 보고하겠소.”

“실수였습니다. 내일부로 떠나겠습니다.”

양앙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떴고, 그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성고성으로 이동했다.

이서는 곧바로 보직을 개편했다. 정예병을 예비대로 돌리고, 힘없고 늙은 병사들을 전면 경계병으로 배치했으며, 하급장교들도 능력이 부족한 교위와 사마를 전면에 배치했다.

병사들의 군기는 하루가 다르게 흐트러졌고, 이를 지적하는 교위와 사마의 의견을 이서는 뭉개버렸다. 오히려 그들이 술을 먹어도 못 본 척 방조했다.

이서의 부단한 노력으로 양평관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허술한 부대로 바뀌어 있을 때, 정탁이 20명의 일행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들은 상인으로 위장해서 양평관을 통과하려고 했다.

“통행료를 내놓으시오.”

늙은 병사가 대놓고 돈을 요구하자 정탁을 이맛살을 찌푸렸다. 술 냄새도 풍기는 듯했다. 그는 돈을 지급하고 성안으로 들어서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혀를 찼다.

‘이거야 원.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구나. 오히려 잘됐다. 이런 놈이 양평관주라면 구워삶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백성들에게 물어서 이서의 치소로 향했다. 종사관의 안내를 받아 그의 치소로 향하자,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서가 기생을 끼고 술을 마시다가 정탁과 눈을 마주치자, 오라고 손짓을 했다.

“뭐야? 뭐하러 날 보자고 했는가?”

“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정탁이 엎드리며 살짝 황금을 내비치자, 이서의 눈이 욕심으로 물들었다. 그는 재빨리 기생과 다른 자들을 물리치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정탁이 바닥에 내려놓은 금을 빼앗듯 가져가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뭐든지 해주겠어. 원하는 게 무엇인가?”

“저 같은 장사꾼이 다른 게 있겠습니까? 앞으로 이곳을 자주 드나들 텐데, 잘 도와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익주와 장안을 오가면서 장사를 하시는 게요?”

“그렇습니다.”

“그런 대가치고는 황금이 많은데.”

이서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정탁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황금을 더 얻을 수도 있습니다.”

“황금을 더 얻을 수 있다면 내가 뭐든지 하지.”

이서의 탐욕스러운 눈을 보자, 정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익주의 유목사께서는 애타게 인재를 찾고 있습니다.”

“인재라······. 나는 돈이나 밝히는 놈이지. 인재와는 거리가 멀어. 혹시 내게 원하시는 게 있으신가?”

곧바로 핵심을 짚어오는 이서의 말에 정탁은 긴장했다. 이제부터는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잘해야 한다.

“양평관을 한 번 만 열어주십시오.”

이서는 ‘으음-’하고 신음성을 흘리며 말이 없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황금을 얼마나 주시겠는가? 이곳을 넘긴 게 들통나면 파재가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내 목숨값인 만큼 최대한 받아야겠어.”

“황금 3관(약 11kg)을 드리겠습니다.”

“5관(약 19kg)!”

“헉!”

정탁은 깜짝 놀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생각보다 이서가 요구하는 양이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이서가 냉정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것은 내 목숨값이오. 이곳에 있는 땅들은 이제 다 쓸모가 없어졌소. 내가 어디든 도망쳐서 제대로 살려면 저 정도는 있어야지. 안된다면 없던 일로 하겠소.”

“그리하겠습니다.”

정탁은 급히 약조했다. 이서는 황금이 먼저 도착해야 성문을 열 것을 신신당부하고는 정탁을 돌려보냈다. 정탁이 물러가자, 이서는 식은땀을 닦았다.

‘휴- 설마 저놈이 내 속을 들여다본 것은 아니겠지? 이거야 원. 팔자에도 없는 멍청이 짓을 하려니 돌겠군. 앞으로 첩첩산중이다.’

이서는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면서 정탁 무리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들은 바로 물러나지 않고 이곳에서 3일이나 버티다가 물러났다. 신중하고 담이 큰 자가 틀림없었다. 정탁 일행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물러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지금까지의 상황을 면밀하게 작성하여 파재에게 연통을 띄웠다.

파재는 이서가 보낸 죽간을 확인한 후, 곧바로 강릉에 있는 서서에게 전령을 보냈다. 서서는 죽간을 확인하고는 다시 원매에게 보냈다. 이서가 전령을 보낸 지, 열흘 만에 원매의 손아귀에 죽간이 쥐어졌다.

원매군은 강하군의 일을 마무리하고, 여강군으로 진군을 시작하여 경계지대인 대별산 자락에 이르러 있었다.

“흠- 과연 파장군이야. 일을 정말 깔끔하게 처리하였어.”

원매가 죽간을 보고는 사마의에게 읽어보라고 주었다. 사마의는 공손하게 그것을 읽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파장군의 일솜씨가 매우 치밀하군요. 이 정도면 한중의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뛰어난 자를 한중군에 묶어 두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까?”

“파장군은 나이가 많아. 벌써 40대 중반이야. 그리고 황건적의 난 때부터 도피 생활을 많이 해서 그런지 건강상태가 썩 좋지 않아. 그래서 요지인 한중군을 내주고 지키게 하는 것이지.”

황건적 출신 장수가 중용된다는 말에 사마의는 어안이 벙벙했다. 능력만 있으면 등용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황건적 출신까지 이렇게 중용할지는 몰랐다. 이 시기에 대부분 제후가 황건적 출신 장수들을 자신의 부하로 등용했지만, 주위 시선을 염려하여 황건적 출신임을 알리지 않고 숨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원매는 당당하게 파재의 출신을 드러낸 것이다.

“전하. 혹여라도 파장군의 출신 때문에 다른 장수들이 질시하지 않습니까?”

“무슨 소린가? 능력이 있으면 출세하는 거지. 능력도 없으면서 그딴 말을 지껄이면 바로 파면이야. 내가 그런 놈들을 가만둘 것 같은가?”

“그러고 보니, 전하 주변에는 대호족 출신 장수들이 없군요.”

“아무래도 대호족 출신이 무장으로 성공하긴 어렵지. 대신 문관 쪽은 많으니 걱정하지 말게. 물론 그들도 능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등용된 거지. 사실 난 운이 좋아. 천하제일의 가문인 원가의 자제로 태어났으니 수많은 인재가 넘쳐나지 않는가? 그러니 선택할 수 있지.”

사마의는 미소를 지으며 동의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중원의 제후 중에서 원매만큼 대호족을 냉정하게 대하는 자는 없었다. 대부분 호족을 위한 정책을 폈지만, 원매는 데면데면하게 지내면서 건들지 않으면 나도 건들지 않는다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앞으로 천하가 통일되면 피바람이 불 것이다. 개혁이라는 핑계로 수많은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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