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제151장. 조금씩 열리는 서천(익주)의 문.
서릉성이 잿더미가 되었고, 원매는 아직 이곳에서 머물면서 병력을 재편성하고, 강하군 현령을 모두 불러모아 충성을 다짐받고 있었다. 동시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 서서, 사마의에게 계획을 세우라고 명령했다.
서서와 사마의는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여 합의사항을 도출하였고, 함께 원매를 찾아왔다.
원매는 그들에게 앉을 자리를 가리켰다. 그들에게 차를 따라 주고, 빙긋 웃었다. 서서가 죽간을 공손하게 바치며 보고를 시작했다.
“전하. 지금 강하군에 보병 16만, 기병 1만 8천이 있고, 강릉성에 보병 4만, 수군 1만이 있습니다. 대단히 많은 숫자이며, 둘로 나누어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병력입니다. 유비에게는 말미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조조를 계속 공격하면서, 틈을 보아 유장을 공격해야 합니다.”
“조조를 공격해야 한다는 것은 수긍하겠는데, 유장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시게.”
“예. 전하. 유장이 한중, 장안으로 이르는 잔도를 정찰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전하께서 유비와 조조를 상대하면서 상대적으로 그곳이 느슨해진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죠. 그들이 한중, 장안을 장악한다면 매우 부담스러워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처음에는 한중에서 그들을 격퇴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여기 사마중달과 의논한 결과 방향을 바꿨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서서가 기회를 제공하자, 사마의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저들이 한중군을 그리 원한다면 일부를 넘겨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유장이 더 많은 군대를 이끌고 올 것이고, 상대적으로 익주는 방비가 약해질 것입니다. 그때 수군과 보병으로 협동 공격한다면 많은 이익을 취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한중은 모두 내주는 것이 아니라 일부 지점을 꼭 잡고 있으면 나중에 반격할 수 있습니다.”
“유비도 익주를 노리고 있다 하지 않았는가?”
“기억하고 계셨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틈을 노려서 익주를 공략하면 유비도 깜짝 놀라서 급히 남쪽으로 치고 들어올 것입니다. 그때 주군께서 익주 북쪽의 파군, 광한군, 촉군을 얻으시고, 유비에게는 건위군, 월수군, 영창군을 넘겨주면 됩니다. 사실 건위군 빼고는 이민족들이 득세하는 곳이라 이득이 별로 없는 지역입니다. 전하께서 장강을 통제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유비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남쪽마저 모조리 장악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한중군으로 들어간 유장을 위아래서 동시에 공격해서 무너뜨려야 합니다.”
원매는 손가락으로 의자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유장이 그리 쉽게 넘어가 줄까? 그리고 한수가 어찌 움직일지도 모르고 말이야.”
원매의 우려를 알아챈 사마의가 차분하게 보충설명을 이어갔다.
“유비가 유장을 공격할 것으로 생각한 것은 바로 한수 때문이었습니다. 한수가 내부에서 도와준다면 가능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유장이 바보가 아닙니다. 분명히 한수를 데리고 북벌에 나설 것입니다. 일단, 주군께서 형주와 인접한 파군을 점령한다면 익주에 확실한 교두보를 확보하시는 것이고, 그때 유장이 돌아온다면 전투를 통해 하나씩 확보해나가시면 됩니다. 사실 험한 산지로 인해서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 일단 내부로 진입하면 매우 수월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익주는 부어사(서서)에게 맡기지. 부부어사(사마의)는 조조를 공략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주게.”
사마의는 실망하지 않고, 곧바로 원매의 명령에 수긍했다.
“부부어사 자네가 이번 익주 작전을 입안한 것은 아주 멋진 계책이야. 하지만, 그것을 매끄럽게 추진하려면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네. 그 부분에서는 부어사가 한 수 위야.”
“이유 없이 야단을 맞는 아이의 마음처럼 당혹스럽군요. 제게 조조 공격에 대한 작전을 맡겨주시는 것만 해도 큰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원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마의를 다독이고는 서서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조조를 공격하는데, 집중할 테니 부어사는 강릉으로 이동하여 익주에 대한 작전을 총괄하게. 필요한 것은 선조치 후보고해도 괜찮아. 그것은 자네를 믿고 일임하지.”
“충심으로 명을 받들겠습니다.”
“아- 그리고 병력이 필요하면 즉각 요청하시게.”
“예. 전하. 그럼 한중군에 전령을 보내어 유장이 공격하면 유인할 수 있도록 먼저 조치를 하겠습니다.”
원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서서는 군례를 올리고는 곧바로 물러났다.
“이제 여강군 공략을 해야 하니, 자네도 준비를 해주시게. 이왕 칼을 뽑았으니 끝장을 내야겠어.”
“예. 전하.”
사마의마저 물러나자, 원매는 가슴 한쪽에 쌓아두었던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빠져나간 듯 홀가분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험한 산속에 숨어있는 유장을 어찌 처리 하나 골치 아팠는데, 어쩌면 아주 쉽게 해결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수춘성 조조치소.
“자효야-”
조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소금 상자의 뚜껑을 열었고, 소금에 절여진 조인의 수급을 보고는 엉덩이를 바닥에 털썩 찧으며 주저앉았다. 조인을 서릉성에 남겨놓고 올 때,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서릉성이 워낙 견고했기 때문에 겨울까지 버티기라도 한다면,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지친 원매를 협공하여 물리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하군에서 철수하고 한 달도 안 되어 조인은 죽고, 서릉성이 함락된 것이다.
“으흐흐흑-”
원래 본인의 감정에 충실했던 조조는 체통 따위는 던져버리고 눈물을 쏟았다. 이 현실이 꿈만 같았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이 멍청한 놈아! 겨울까지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더란 말이냐? 이런 천하의 못난 놈!”
조조가 연신 한탄을 하며 눈물을 쏟았기에, 대신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오로지 순욱만이 묵묵하게 조조의 곁을 지켰다.
한참을 넋이 나간 얼굴을 하던 조조가 순욱을 돌아보았다.
“이제 끝인가? 이 조조가 이렇게 힘없이 무너져야 한단 말인가?”
“정중덕(정욱), 곽봉효(곽가)등과 함께 계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매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소신이 그것을 찾아낼 터이니, 일단 기운을 차리십시오. 아직 주군께는 범 같은 장수들이 많이 남아있고, 병력도 10만이나 됩니다. 주유군도 돌아가긴 했지만, 위험하면 언제든지 지원군을 보내줄 것입니다. 버티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의연하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조조는 말이 없었다.
조인의 죽음은 그만큼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조장군은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르겠습니다. 좋은 자리를 잡아서 안장한다면 그분도 편안하게 쉬실 것입니다.”
“그래. 그리 해주게.”
순욱은 예를 표한 후, 조인의 수급이 담긴 소금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며칠 동안, 장례식이 엄숙하게 진행되었고, 조인은 수춘성 인근의 산에 안장되었다.
조조는 이번에 받은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냥을 나가는 등, 몸을 움직이며 잊고자 노력했고, 순욱등의 책사들은 원매를 물리칠 계책을 강구 했다.
장사군 유비치소.
“그러니까 유장이 군대를 북쪽으로 보내서 장안을 노리는 것 같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 험한 잔도를 계속해서 정찰하겠습니까? 원매의 대군이 이곳 형남에 집결해있으니까 기회를 노린 것이지요.”
유비는 방통으로부터 첩보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익주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첩보를 파악하게. 틈이 나면, 한수와 연합해서 익주를 점령해야겠어. 이곳 형남은 개발도 덜 되어있고, 원매가 군대를 이끌고 내려온다면 피할 곳도 없어. 그러니 반드시 익주로 들어가야겠어.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반드시 그리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방통은 유비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유비는 들뜬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토록 원하던 익주를 얻는 것이 더는 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조심하십시오. 원매는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기분 좋은 상상을 깨트려 버리는 말에 유비는 인상을 확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곽도가 예를 올리며 유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유비의 입에서는 냉랭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어쩐 일인가?”
“주군. 제가 한번 실수를 했지만, 그간 세운 공이 있습니다. 저를 이토록 멀리하시는 것은 지나친 처사입니다. 부디 재고해주십시오.”
유비는 빤히 곽도를 바라보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말이 맞아. 지나친 처사지. 하지만, 자네의 실책이 너무 컸어. 그 때문에 자중하라고 놔둔 것뿐이야. 감히 내 말에 이래라저래라 토를 달지 마시게. 사람은 주제를 알아야 해.”
곽도는 모멸감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다시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아까 원매 이야기는 무슨 뜻으로 꺼낸 거야?”
“원매가 강하군을 점령했으니, 주군과 조조는 서로 연락하기도 지원하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각개격파뿐입니다. 다만, 군대를 여강군으로 돌릴지, 이곳 장사군으로 돌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익주로 들어가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원매의 촉수가 이곳뿐만 아니라, 조조에게도 뻗쳐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조만간 주군의 움직이나 의도를 알아차릴 것이고, 반드시 이용하려 들것입니다.”
“그럼 원매가 공격하는 쪽이 조조일까? 나일까?”
“아마도 조조일 것입니다. 장장군이 원매를 따르면서 관장군이 쉽게 풀려났고, 또한 바로 주군께 창끝을 돌린다면 장장군이 반발할 수 있으니 일단은 조조를 먼저 공격하리라 생각합니다.”
“익덕이가 생각이 깊어. 참으로 야속하구나. 한날한시에 죽기로 약속했거늘.”
“기회는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오는 법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방군사가 익주의 상황을 알아보고 준비하는 동안, 자네는 원매, 조조, 주유의 움직임을 낱낱이 감시해서 조금이라도 수상한 게 있으면 보고하게. 자네 말대로 조조를 먼저 공격했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가 익주로 들어갈 시간을 만들어 줄 테니까 말이야.”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래. 그간 내가 좀 서운하게 했더라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게.”
“예. 주군.”
곽도가 예를 올리고 물러가자, 유비는 다시금 장비에 대한 추억에 잠겼다. 냉정하긴 했지만, 잔정이 많은 장비였다. 옆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고 또 났다.
‘무심한 놈 같으니라고. 이 형이 보고 싶지 않더냐?’
한중군 파재치소.
파재는 한중군의 넓은 평야 동쪽 끝에 있는 성고성에 치소를 두고 치안을 책임지고 있었다. 만약 유장이 공격을 해온다면 서쪽 양평관을 통해서 들어오거나, 남쪽의 파산을 넘어서 올 것이다. 익주에서 한중으로 들어오는 길은 두 갈래 길뿐이었다.
그는 익주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고 양평관과 파산 일대의 경계를 강화하고 있었는데, 오늘 원매로부터, 정확히는 서서로부터 뜻밖의 연통을 받았다.
‘무슨 뜻인가? 한중으로 들어오는 길을 적당히 싸우다가 열어주라니. 그리고 성고성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라니?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파재는 연통을 받고는 한참을 서성이며 고민했다. 스스로 지장을 자부하는 파재였기에 고민 끝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한중군은 미끼이고, 전하께서는 이것을 기회로 삼아서 더 큰 것을 노리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익주가 틀림없을 것이다. 내 역할이 참으로 크구나. 유장이 의심하지 않도록 잘 패배하면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이거 참. 어쩐다? 양평관 일부를 허물어트릴 수도 없고. 이곳 성고성이야 워낙 단단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적어도 1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파재는 유장을 한중으로 입성시켜야 한다는 부분에서 머리가 아파 왔다. 의심받지 않도록 패배해야 하는데, 그게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파재의 고민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