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46화 (146/253)

# 146

제146장. 다른 생각, 다른 행동.

강하군 서릉성.

치소가 설치되어있는 이곳 서릉성은 상당히 견고하고 큰 성이었다. 조조가 원매에게 대패한 후, 이곳으로 급히 들어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사이에 흩어졌던 장수들과 병사들이 모여들었고, 장료와 조순이 합류하면서 조조는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만약 장료와 조순마저 원매에게 당했다면 정말 앞이 막막했을 것이다. 서릉성에는 주유군 1만 2천, 조조군 3만 8천이 집결해있었다. 관우, 장비군이 대부분 항복했기 때문에 이 전투 최대의 피해자는 유비였다.

조조는 서릉성에서 밖을 바라보며 한탄했다. 전투결과가 억울했고, 또 억울했다.

“주군. 이곳에 상장 한 명을 남겨두시고, 수춘성으로 돌아가시지요. 성이 견고하니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원매가 다시 공격해 올 터인데, 주군께서 이곳에 계신다는 것을 안다면 큰 피해를 본다 하더라도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성을 함락시키려 할 것입니다. 만에 하나 성이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니, 수춘성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누구에게 맡기면 좋겠는가?”

“조인장군에게 맡기시지요.”

“조자효?”

“그렇습니다. 현재로서는 그가 적임자입니다. 그라면 반드시 성을 지켜내리라 생각합니다. 이곳에 1만 5천을 남겨주면 될듯합니다.”

조조는 말이 없었다. 성이 워낙 견고하니 원매는 상당히 곤혹스러워 할 것이다. 곽가 말대로 성이 워낙 견고하므로 조인이 죽을 각오로 수성을 한다면,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참, 답답하군. 이렇게 힘들어질 줄이야.”

조조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이곳에 조인을 남겨두고 떠난다면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 작별이 될지도 몰랐다.

결국, 조조는 결단을 내렸다. 조인에게 1만 5천을 주어 서릉성을 지키게 했고, 장료에게 1만 5천을 주어 여강군 서현성을 지키게 했다. 그 후, 나머지 2만의 병력을 이끌고 수춘성으로 돌아갔다.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주유군은 큰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를 따라 수춘성으로 돌아갔다. 조조는 그곳에서 급히 군사를 모아서 다시 원매의 공격에 대비할 계획이었다.

조조가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원매가 안륙에서 병력을 재정비하여 서릉성을 공격할 준비하는 동안, 유비는 유장에게 사신을 보냈다.

손건은 산을 넘고, 파군 부릉현에서 배를 타고 성도로 향했다. 장사에서 출발한 지 3일 만에 성도에 도착하자, 손건은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아쉬운 소리를 하러 왔지만, 유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지난번에 봤을 때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소식을 듣고 비관이 마중을 나왔다.

“이번 강하군전투에서 큰 손해를 보셨다고요? 그래도 주군의 의제가 되셨는데, 그 정도밖에 안 되냐고 주군께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십니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유장이나 그걸 그대로 전달하는 비관이나 손건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외교를 한단 말인가?

“원매군의 기습에 당해서 일시적으로 한발 물러섰습니다. 조조가 강하군 서릉성을 지키고, 주군께서는 장사에 머물면서 후일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여기 오신 목적이 도움을 청하러 오신 것 아닙니까?”

“유목사께 주군의 뜻을 전달해드리고, 말씀을 드릴 예정입니다. 비공께 모든 것을 먼저 말씀드리는 것은 부담스럽군요.”

“알겠소이다. 자- 나를 따라오시지요.”

비관이 쌩-하고 돌아서서 걷자, 손건은 불편함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인간들은 외교가 뭔지를 모르는가? 어찌 제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단 말인가?’

손건은 입을 꾹 다물고 비관을 따라 유장의 치소로 들어섰다. 유장은 손건이 내미는 죽간을 받아서 읽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탁자 위에 죽간을 내려놓았다.

“병력을 지원해달라 이건가? 아니 원매 한 명 처리 못 해서 쩔쩔매면서 지원해준다고 제대로 싸울 수나 있겠어? 나 참. 이런 걸 동생으로 두었다니.”

“말씀이 심하십니다. 전투의 패배는 병가의 상사라고 했습니다. 주군께서 일시적으로 곤궁함에 몰렸지만, 반드시 원매를 물리치고 재기하실 것입니다.”

딱-

죽간이 그대로 날아와 손건의 면상에 맞고 떨어졌다. 핏방울이 주르륵 흘러 떨어지자, 손건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닫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야! 이 새끼야- 뭐가 어쩌고 어째? 말이 심해? 원매에게 개 박살이 났잖아?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아?”

“주군. 참으십시오. 사신입니다.”

“에잉, 괘씸한 놈 같으니라고.”

유장이 고개를 홱 돌리자, 비관이 급히 손건을 다그쳤다.

“어서 주군께 사과하시오.”

손건은 모욕감에 몸이 떨렸지만, 지금 믿을 것은 유장 밖에 없었기에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용서하십시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유장은 손을 홰홰- 저으며 손건을 물리쳤다. 비관은 급히 달려 나와 하루를 기다려달라는 유장의 말을 전하고는 그대로 돌아갔다. 손건은 눈물이 솟구쳤지만, 차마 울지도 못하고 분을 삭일 뿐이었다.

유장은 손건이 물러나자 비관을 붙들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경솔하게 행동하던 유장이 아니었다.

“어찌하면 좋겠어? 손건 저놈이 저리 모욕을 당하고도 저리 순순히 사과하는 것을 보니 원매의 힘이 예상보다 강한 것 아냐?”

“강하군전투에서 조조와 유비가 입은 피해는 제가 파악한 것보다 훨씬 큰 것 같습니다. 이거 원매의 힘이 너무 막강한 것 같아서 큰일이군요.”

“그러니 자네에게 의견을 묻는 것 아냐?”

“원매가 공격하면 그때 지원해주겠다고 약조하십시오. 그리고, 나중에 그런 일이 발생하면 한 5천 정도 지원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상황을 봐서 괜찮으면 더 지원해주고, 못 버틸 것 같으면 지원해주시지 않으면 됩니다.”

“음- 좋아. 자네 뜻에 따르도록 하지. 그건 그렇고, 관중이나 한중을 공략하는 것은 어찌 되고 있는가?”

“길이 험해서 쉽지가 않습니다. 비밀을 유지하면서 계획을 세우다 보니 쉽지가 않습니다. 곧, 그쪽으로 보냈던 세작들이 돌아올 것이니 그때 계획을 작성하여 보고토록 하겠습니다.”

유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중과 장안을 점령한다면 원매는 매우 놀랄 것이다. 그의 대응이 늦다면 내친김에 관중을 모조리 점령할 생각이었다.

유장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는 손건을 불러서 지원 약속을 해주었다. 손건은 감사를 표한 후, 물러 나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유비가 원한 것은 당장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유장은 매우 급한 상황이 닥치면 지원해주겠다는 약속뿐이었다.

손건이 돌아오자, 유비는 방통만을 데리고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묵묵히 이야기를 전해 들은 유비는 방통을 바라보았다. 방통 역시 조금 난감한 표정이었다.

“역시나 쉽지 않군. 형님(유장)께서 한 번만 이 아우를 봐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유비가 낮게 탄식을 터트리자, 방통이 손건에게 질문했다.

“손공우(손건). 혹시 짚이는 것 없으시오?”

“글쎄요. 유목사나 비관이 꽤 거세나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지원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마음을 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것 같소이다.”

방통은 답답한 듯, 혀를 차고는 유비에게 진언을 올렸다.

“주군. 유목사가 도움을 주기는 줄 것 같은데, 이처럼 냉담한 반응을 보였으니 큰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어찌 됐든 여기서 최대한 빠르게 힘을 모으십시오. 그리고 틈을 봐서 익주를 공략해야 합니다.”

“이 사람아. 지금 원매에게 패해서 병력이 5만도 안돼. 믿을 수 있는 장수도 관우, 진도밖에 없고. 그런데 어찌 익주를 친단 말인가? 자네가 제정신인가?”

“제가 세작들을 익주에 보내서 확인을 해봐야겠습니다.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입니다. 틈이 나면 치고 들어가서 일부라도 점령하면 됩니다. 익주의 반이라도 차지하는 것이 이곳 장사보다 훨씬 낫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방통의 결연한 표정을 보고 유비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원매가 쳐들어온다면 얼마나 버틸지도 모를 일이었고, 유장은 전투경험이 적으니 틈을 노린다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유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관우, 진도를 불러서 신병을 확충하고 강훈련을 통해 정예군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업성 황궁 원소치소.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순유가 원소에게 인사 건의를 하고 있었다.

“흠- 부어사(서서)가 황태자를 따라갔으니, 새로운 인물로 채워놓자 이건가?”

“그렇습니다. 첩보를 담당하는 자리이니, 임무가 막중합니다. 황태자 전하를 모시면서 동시에 첩보를 담당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부어사를 한 명 새로 선발하고, 서원직(서서)에게는 전하의 책사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래. 새로 부어사를 할 사람이······. 가양도(가규)? 이자는 누구인가?”

“하동을 얻고 난 후에, 전하를 따른 사람입니다. 충성스럽고 업무 능력이 빼어납니다.”

“그리하지.”

원소는 인장을 찍어 순유에게 전해주었다. 순유는 예를 올리고 치소를 물러났다. 뒤에 기다리던 저수가 가까이 다가와 예를 올렸다.

“폐하. 전하께서 강하군전투에서 대승을 거뒀습니다. 감축드립니다.”

“그래?”

원소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저수가 내미는 죽간을 받아서 꼼꼼하게 읽어내려갔다. 원매가 직접 작성한 죽간에는 그간의 전투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처럼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또한, 원소의 건강을 걱정하는 말도 빼놓지 않고 쓰여 있었다.

“그놈 참.”

원소는 죽간을 조심히 돌돌 말아 내려놓고는 싱긋 웃었다.

“조조가 만만치 않을 텐데, 유비/주유와의 연합군을 격파했다는군. 항병만 4만이라는 것이야. 내 아들이지만 참으로 자랑스러워.”

“전하의 능력은 그전부터 검증되지 않으셨습니까? 이대로 나간다면 몇 년 안에 조조, 유비, 주유, 유장을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할 것입니다. 수군이 가장 문제긴 한데, 작년부터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서 그때가 왔으면 좋겠군. 그러면 내 자리를 물려주고 상황으로 물러날 생각이야. 훈수나 두면서 내 건강 챙겨야지.”

원소의 건강은 매년 조금씩 악화되고 있었다. 그간 좋은 탕재를 계속 복용하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6년 상을 치르면서 몸을 지나치게 학대했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그저 지나치게 나빠지지 않도록 노력을 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저수도 원소에게 더는 간언을 올리지 못했다.

“혹시 부족한 게 있다면 아끼지 말고 지원해주게.”

“예. 폐하.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그럼 물러갈 테니, 마음을 편안히 갖고 쉬십시오.”

원소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치소를 물러 나왔다. 매우 긴급한 일이 아니면, 대부분 승상(가후)의 손에서 전결했고, 5일에 한 번씩 보고를 듣는 선에서 끝냈다. 지금처럼 보고할 거리가 있어도 간략하게 끝을 냈다.

사례 하내군 온현.

온현에는 유명한 세도가가 있었다. 그곳의 땅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는 대호족이었으며, 한의 조정에 출사하여 낙양령, 경조윤등을 지낸 유서 깊은 집안이었다. 세도가의 집은 온현의 북쪽에 있는 거대한 장원이었다.

장원의 안쪽에는 정자와 작은 호수가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 노인으로부터 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세상이 말세로구나. 황제께서 살아계시거늘 어찌 기가 업성에서 건국되었단 말인가? 원소 이자가 진정 제정신이란 말인가? 그간 사세삼공을 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아 놓고는 이제 와서 한을 배신하고 감히 황제에 오르다니. 참으로 염치를 모르는 놈이로구나.”

노인의 얼굴은 매우 강직했고, 주위에서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는 기의 건국이 못마땅한 듯, 연신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버님. 이제는 대세에 따르셔야 합니다.”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노인은 인상을 확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네 이놈! 뭐가 어쩌고 어째? 대세를 따라? 중달仲達 네놈이 실성한 것이 아니더냐?”

노인 즉, 사마방이 불같이 분노를 터트리자, 사마방의 둘째인 사마의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지금 한의 황제께서는 조조가 수춘성에서 모시고 계신 데,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원매가 강하군에서 조조/주유/유비 연합군을 격파했다고 합니다. 천하 대부분이 원가의 손아귀에 들어왔으니, 이제는 대세를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쓸데없는 소리! 물러가거라!”

사마의는 부친인 사마방의 완고한 표정을 보고는 짧은 한숨을 지으며 자리를 물러 나오며 중얼거렸다.

‘소용없다. 한은 이미 끝났다. 이제는 기의 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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