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제145장.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강하군 안륙에서 벌어진 전투는 원매의 대승으로 끝이 났다. 그 넓은 들판이 전투로 폐허가 되었고, 항복한 병사들만 4만에 이를 정도였다. 워낙 압도적인 기병 전력을 이용해서 추격 의지를 꺾어버린 탓에 많은 항병이 생겼다.
원매는 죽거나 다친 병사들을 파악할 것을 지시하면서, 전장 정리와 항병 재교육을 주문했다. 4만이나 되는 항병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고, 조조를 추격했다가 이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볼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추격을 포기하고, 전력을 다해 재교육에 임하고 있다.
원매군영.
원매는 골치가 지끈거렸다. 관우와 장비를 생포했는데, 항복하지 않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비의 사람 다루는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군. 죽음도 불사하고 저리 버티니 말이야.”
그는 한숨을 짧게 내쉬며, 관우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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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군! 나는 자네가 내 오른팔과 같았던 조독을 죽인 것도 용서했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 내 성의를 무시하는가?”
불같은 원매의 뜨거운 시선을 받자, 관우는 난감한 듯 고개를 돌리며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장군······. 아니. 전하. 사실 조독은 제게 친동생 같았고, 저도 형님의 지시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전하께서 제게 그 죄를 물어 자결하라고 하셔도 곧이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형님을 두고 항복을 할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유장군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자네도 그 이후에 유장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지켜보지 않았는가? 어찌 이리 답답한 소리만 하시는가? 이 정도 충성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관우는 휴-하고 짧게 탄식을 터트렸다.
“사람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셨지요. 하지만, 그것은 곽도가 부추겨서 그리된 일입니다. 저희는 비록 친형제는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의리가 굳건합니다. 죽여주십시오. 그리고, 조독을 죽인 일은 사죄드리겠습니다.”
관우는 엎드려 절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반듯하게 앉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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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관우, 장비를 생포하면 뭐 하는가? 차라리 죽겠다고 저리 버티고 있는데.”
원매는 물론이고, 주요장수들까지 나서서 설득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원매가 인상을 찌푸리며 밖으로 나오자, 조운이 급히 그 뒤를 따랐다.
“조자룡! 자네는 저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지 않은가?”
“유장군과는 친분이 있지만, 관우, 장비와는 악연이 더 많습니다. 제가 너무 올곧게 처신할 것을 요구해서 그들이 진절머리를 냈거든요. 오히려 제가 설득하면 더 역효과가 날 것입니다.”
원매는 조운이 자신에게 온 경위를 기억해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최악의 경우 둘 중 하나라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고, 잘못하면 둘 다 죽여야 할판이었다. 저 둘을 살려서 유비에게 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양보해도 한 명은 내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전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원매는 고개를 돌렸다. 서서였다. 그는 한달음에 달려와 군례를 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신가?”
“이번에 생포한 관우와 장비를 둘 다 얻는 것은 어려울듯합니다.”
“아픈 곳을 찌르는구먼. 그렇다고 둘 다 죽일 수도 없잖은가? 그냥 죽이기엔 너무 아까워.”
“이렇게 하시지요.”
서서는 조곤조곤 자신의 계책을 풀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원매의 표정은 약간 반신반의했고, 조운은 찬성하는 표정이었다. 조운이 곰곰이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가 그들의 성격을 잘 아는데, 부어사가 맥을 제대로 짚었습니다. 한번 시도해보시지요.”
“좋아. 부어사 자네가 책임지고 해보게.”
“명을 따르겠습니다.”
서서는 원매로부터 흔쾌히 승낙을 얻자, 생각을 정리하며 장비가 연금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원매는 장비와 관우를 묶지도 않고, 그들에게 도망치지 않는다는 약조만 받고 연금장소에 내버려 뒀다. 자존심이 강한 그들이 도망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실제로 그들도 원매의 요구에 부응하여 도주하려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 다만, 원매를 따르는 것을 거부하니 그것이 문제였다.
“장장군. 식사는 하셨습니까?”
서서가 허리를 숙이자, 장비가 어두운 얼굴로 예를 표하며 말했다.
“저를 설득하실 요량이면 돌아가십시오.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형님들을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
“압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다른 것입니다.”
서서는 넉살 좋게 웃으며 자리를 잡고 앉았고, 장비도 뚱한 표정으로 따라와 앉았다.
“유장군, 관장군, 장장군. 매우 우의가 두텁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 소문이 실제보다 훨씬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약 끝까지 거부하신다면 두 장군께서는 전하의 노여움을 사실 것이고, 그렇다면 필시 죽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지요. 누누이 말씀드렸다시피 내 목을 내어드릴 수는 있어도, 형님을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두 분이 죽으면 유장군께서 얼마나 힘들지는 생각해보셨습니까?”
장비는 유비를 걱정하는 듯,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
“관장군이라도 살아 돌아가셔서 유장군을 보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장장군께서 마음을 돌리신다면, 전하께서는 관장군을 몸 성히 돌려 보내주겠다고 약조하셨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십시오. 진정으로 유장군을 위한다면 두 분 모두 여기서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한 분이라도 살아 돌아가서 보필해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장비는 눈이 흔들렸다. 결국은 둘 다 죽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런 제의를 받을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유비를 거론하며 설득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면 둘째 형님도 거부하실 것이오.”
“또한, 전하께서는 올해는 장사를 공략하지 않고 말미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유장군께서도 한숨을 돌리시고 관장군과 함께 다른 일을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두 분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전하의 노여움이 장사로 향한다면 그 화를 어찌 감당하려고 하십니까? 이런 것은 냉철하게 판단하셔야 합니다.”
장비는 한동안 말이 없었지만, 그의 두뇌는 냉철하게 서서의 말을 분석하고 있었다. 생각을 마치고는 그의 입이 조용히 열렸다.
“둘째 형님께는 말해봐야 안 통할 테니, 내게 오신 것이구려.”
“그렇습니다. 이것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관장군께서는 성정이 불같으므로 이런 제안을 한다면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며 뿌리쳤을 것입니다.”
“휴- 어찌 이리 내 팔자가 사나울까? 그저 처음에는 형님들과 천하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 마음뿐이었거늘.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어찌해야?”
장비는 자조적으로 탄식을 쏟아냈다. 서서는 끈질기게 참으며 장비가 제대로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냉철한 장비라면 말이 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둘째 형님이 알면 큰 반대를 할 터인데, 어찌 생각하시오?”
서서는 반색했다. 장비의 마음이 조금은 열린 것이다.
“오후에 전하께서 두 분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때, 제가 한 이야기는 하지 마시고, 그냥 이곳이 좋아서 남는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전하께서 관장군께 의향을 물어보시고, 거절하면 추방할 것입니다. 물론 이로 인해 장군께서 오해를 받으시겠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장비는 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둘째 형님이라도 큰형님 옆에 계셔야지. 둘 다 죽는다면 어쩌란 말인가? 세상의 비난은 이 장비가 지고 갈 것이다.’
장비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는 서서의 제안을 수락했다.
반 시진(한 시간) 후.
원매는 관우와 장비를 치소로 불렀다. 관우와 장비는 문 앞에서 만나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들어갔다. 원매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 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장장군. 이번에 나를 따르면 식읍을 2 백호 내려주지. 그리고 중랑장의 자리도 주겠네. 어떤가? 내가 이 정도 호의를 베푸니, 못 이기는 척 따라주게.”
관우는 장비가 거절할 것으로 예상하고, 자신에게 제안하더라도 냉정하게 거절할 것이라며 굳게 마음을 다질 때, 장비가 모질게 입을 열었다.
“전하의 제안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따르겠습니다.”
“잘했소. 잘했어. 하하하하-”
원매가 장비의 손을 잡고 너털웃음을 터트리자, 관우의 두 눈에서 분노가 쏟아지며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네 이놈! 익덕아- 형님께서 계시거늘 어찌 배신한단 말이냐?”
“궁핍하게 사는 것도 지겹소. 중랑장도 제수받고, 식읍도 받았소. 더 노력하면 높은 직위도 주실 것이니 난 전하를 따르겠소. 형님도 알량한 자존심 버리고 전하를 따르시오.”
“우아아아아-”
관우가 몹시 흥분하여 장비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장비는 막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관우에게 맞아서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솟았다.
“그만-”
원매가 관우의 팔을 움켜쥐었다. 그는 사납게 관우를 밀어내며 쏘아붙였다.
“장장군은 이제 내 사람이 되었으니, 폭행하는 것은 절대로 용서치 않겠네. 관장군은 어찌하시겠는가?”
“죽이시오! 나는 저놈처럼 표리부동한 놈이 아니오!”
“가라! 여기 장장군을 봐서 목숨을 붙여주마!”
관우는 불타오르는 눈으로 장비를 노려보았다.
“아우야- 진정 형님을 배신할 것이냐?”
장비는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렸지만, 그럴수록 더욱 냉정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둘 다 죽을 수는 없었다.
“나와의 인연은 끝났소. 고생이라면 지긋지긋하오. 이제는 마음 편하게 살겠소. 그러니 형님은 전하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어서 장사로 돌아가서 큰형님이나 잘 보필하시오.”
“이제 나는 네 형님이 아니고, 넌 내 아우가 아니다. 다음에 만난다면 반드시 목을 베어주마!”
관우는 싸늘하게 등을 돌려 치소를 나갔다. 장비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끊임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원매가 옆에 앉아 가만히 장비의 어깨를 두드리며 진정시켰다.
“내가 많이 원망스럽겠군. 이렇게 치졸한 방법까지 썼으니 말이야.”
“그렇지 않습니다. 둘째 형님이라도 옆에 계셔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큰 형님은 어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올해는 말미를 주신다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건 약속하지. 하지만, 내년은 어찌 될지 몰라.”
“난세니 이 정도 배려도 충분합니다.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장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원매에게 큰절을 올렸다. 원매는 그를 말 없이 끌어 앉았다.
관우는 원매가 호위병 10을 돌려주었고, 주가(배)를 제공하자 그것을 타고는 수수-면수-강수(장강)를 따라서 장사로 향했다. 물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었고, 면수, 강수가 워낙 컸기에 유비의 치소가 있는 곳까지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유비는 관우가 겨우 10명의 호위병을 데리고 도착하자 깜짝 놀라 버선발로 뛰쳐 나왔고, 그 뒤를 방통, 곽도, 진도등이 따랐다. 관우는 유비를 보자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 유비가 그를 부축해 세웠다.
“어찌 된 일이야? 말을 해봐? 그리고 익덕이는 어딨느냐? 그 많던 병사들은 다 어디 갔고?”
“원매에게 대패했소. 조조는 서릉성으로 쫓겨갔고, 그의 군사들이나 우리 군사들도 대부분 항복했소. 다 끝났습니다.”
유비가 하늘이 노래지며 쓰러지려 하자, 진도가 급히 부축했다. 그는 간신히 힘을 낸 후, 다시 물었다.
“이 조조 죽일 놈! 원매 하나 당해내지 못하면서 그리 큰소리나 치다니. 익덕이는 어찌 되었느냐?”
“그놈은 이야기도 꺼내지 마시오. 원매가 좋다고 그곳에 남았소.”
“무······. 무슨 말이냐? 익덕이가 그럴 리가 있느냐?”
“중랑장을 제수하고, 식읍을 몇백 호 내려주니까 바로 배신을 하더이다. 다시는 그놈을 찾지 마시오. 다음에 만나면 내 손으로 목을 베어버리겠소.”
방통은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는 유비에게 진언을 올렸다.
“주군. 관장군께서 피곤하실 터이니, 쉬게 하시지요.”
유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관우와 다른 사람을 물리치고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말해봐. 어찌 생각해?”
“제가 가만히 병사들에게 물어봤는데, 원매가 순순히 배까지 주며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그자가 그리 호락호락한 자가 아닙니다. 아마도 장장군과 원매가 모종의 거래를 한듯합니다.”
“모종의 거래라?”
유비가 인상을 찌푸리자, 방통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두 장군께서 모두 항복을 거부한다면 원매가 어찌 나오겠습니까? 둘 다 죽음을 면하진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장장군께서는 관장군이라도 살리려고 그러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야 배까지 내주고, 호위병 10명까지 내주겠습니까?”
유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눈물을 흐르는 것을 보여주기 싫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