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제143장. 전과를 확대하다.
돌격하는 원매에게 달려드는 병사들이 간혹 있었지만, 모두 저세상으로 보내졌다. 기병 중 제일 강력하고 충성심이 높은 자들이 원매의 호위기병이었기에 그 삼엄한 경계를 뚫고 원매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관우, 장비는 서쪽으로 돌격하는 부대를 막아라!”
조조의 준엄한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곽가가 간언했다.
“주군. 전방과 동쪽에서도 기병 돌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비부대를 모조리 뺀다면 나중에 그들을 어찌 막으려고 그러십니까? 일단 관우부대는 예비로 남겨놓으시고, 장비부대로 막게 하셔야 합니다.”
“이런 쳐죽일!”
조조는 분통을 터트렸지만, 딱히 곽가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해!”
“예. 주군!”
조조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곽가는 재빠르게 명령서를 작성해서 전령을 통해 장비에게 보냈다. 조조의 직인 찍힌 명령서가 아니면 절대로 부대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조의 명령을 받아든 장비는 말에 올랐다. 호위 기병이 약 50이었고, 일만의 보병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의 표정은 매우 비장했다. 일만의 보병으로 수천에 이르는 정예기병을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유비와 함께 유주에서 공손찬 휘하에 있을 때, 그와 관우는 기병을 운용했고, 그 당시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한 보병들은 기병의 돌격만 이어져도 두려움에 벌벌 떨며 지레 무너지곤 했다. 물론 지금의 보병은 그때보다 훈련도 많이 받아 상황 대처능력이 더 뛰어났지만, 아직도 정예기병을 상대하기는 너무나도 버거운 게 현실이었다.
“가자! 나를 따르라!”
장비가 앞장서자, 1만의 보병이 창과 방패를 굳게 쥐고 뒤를 따랐다. 방원진을 쳐서 대항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지만, 바로 접었다. 장비가 방원진을 친다면 원매는 그대로 스쳐 지나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죽으나 사나 붙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장비는 길목을 막아서고는 방패를 이용하여 막아섰다. 우회를 막기 위해서 길게 늘였다. 방어에 취약해지는 위험성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운은 달려오다가 손을 들어 정지신호를 보냈고, 뒤에 신호병이 붉은 깃발을 높이 들자, 기병들이 속도를 줄이며 결국 멈췄다. 조운이 날카로운 눈으로 장비부대를 주시하다가 이를 악물었다.
‘장비. 네놈이 감히 나를 막아서겠다는 것이냐? 오냐. 어디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보아라!’
조운이 냉담한 얼굴로 옆의 신호병에게 지시를 내리자, 그가 깃발을 크게 흔들었고, 5백의 기병들이 창을 길게 앞으로 늘어뜨리며 앞으로 나왔고, 그 뒤를 같은 형태의 기병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공격하라!”
짧은 명령에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울려 퍼졌고, 5백의 기병이 일제히 돌격을 개시했다. 비록 5백이었지만, 지축이 흔들릴 정도였고, 맨 앞에서 방패에 의지해 대항하고 있던 병사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장비가 워낙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놓아 도주하는 병사가 없을 뿐이었다.
5백의 기병이 점차 가까워지면서 병사들의 공포는 더욱 커졌다.
“활을 쏘아라!”
슈슈슈슉-
장비의 명령에 일제히 수천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직사로 쏘지 않는 이상 기병에게 타격을 주기는 어려웠다. 5백의 기병 중 일부가 화살에 맞아 꼬꾸라졌지만, 나머지는 돌격을 이어갔다.
쾅- 쾅-
화살을 뚫고 들어온 기병이 그대로 방패와 부딪치거나 그대로 도약하여 넘어섰다. 순식간에 여러 곳이 터져나가며 흔들림이 감지됐고, 조운은 2차, 3차로 5백씩 끊어서 계속해서 돌격시켰다.
연속되는 돌격에 강인함을 자랑하던 장비군도 서서히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3천의 기병이 모조리 투입되었고, 1만의 장비군은 끝까지 장렬하게 싸웠지만, 점차 수세로 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수많은 병사의 목을 벤 조운의 갑옷은 온통 피가 묻어있었다. 그의 반짝이는 눈에 장비가 들어왔다.
“장비야- 내 창을 받아라!”
조운이 범종이 울리는 듯한 목소리로 외치며 달려들자, 장비도 드잡이질하던 기병 하나를 그대로 보내버리고 달려들었다.
창- 창-
두 개의 창이 힘차게 부딪치면서 거친 소리를 토해냈다. 평소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두 장수는 전력을 기울여 격렬하게 싸움을 이어갔다. 장비가 극강의 맹장이었지만, 조운 역시 만만치 않았다.
둘의 싸움은 누구도 끼어들지 못할 만큼 매우 험악했다.
일반적으로 보병이 기병과 싸우면 매우 불리했지만, 장비가 그간 혹독하게 조련을 해놓아서 3천의 기병을 상대로 1만의 보병이 어느 정도 선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원매가 3천의 최강 정예기병을 이끌고 난입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아무리 뛰어난 정예라 하더라도 1만의 보병으로 정예기병 6천과 난전을 벌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장비는 역시 장비였다. 팽팽하게 전개되던 싸움을 결국은 장비가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조운은 자존심이 상해서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지만, 한번 기울어진 열세를 만회하기 힘들었다. 장비를 상대로 2백 합이나 버틴 조운을 칭찬해줄 상황이었지만, 조운은 억울함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으랏차-”
장비가 장창을 휘둘러 조운을 물러나게 하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조운은 장비의 힘에 꺾여 뒤로 밀리자, 감히 달려들지 못하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노려보았다.
이때 원매가 장비에게 달려들었다.
고생하는 놈 따로 있고, 챙기는 놈 따로 있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원매는 힘 빠진 장비를 몰아붙였고, 장비는 제대로 대응조차 못 하고 밀리기 바빴다. 마초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든 원매였는데, 조운과의 전투로 힘이 빠진 그가 당해낸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장비의 눈은 불신감과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처음 원매를 봤을 때, 무예가 대단할 것으로 생각했고, 다른 장수의 말을 들어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지만, 직접 맞붙어보니 상상 그 이상이었다. 과연 힘이 있는 상태에서 맞붙어도 이길 수 있을까 할 정도였다.
“천하의 장익덕이 이 정도인가?”
원매의 조롱 섞인 발언으로 도발하자, 장비는 있는 힘을 짜내어 강하게 맞섰다. 원매의 얼굴은 기분 좋은 미소로 가득 찼다. 이 정도의 맹장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그에게 있어 양보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다.
조운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기병을 인솔하여 장비의 부대를 격파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장비는 50합을 죽을 힘을 다해 상대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발로 말의 배를 강하고 쥐고 있었는데, 그 다리에서 쥐가 날 지경이었다. 하늘이 노래지는 가운데 원매의 장창이 그대로 찔러왔고, 무심결에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그 순간 창이 방향을 바꾸며 한 바퀴 돌아 그대로 장비의 몸통을 후려쳤다. 장비는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당장 포박하라!”
원매는 명령을 내린 후, 장비를 포박하는 호위기병을 내려보다가 범종을 울리는 듯한 커다란 목소리로 크게 소리질렀다.
“장비를 사로잡았다! 항복하라! 항복하지 않으면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일 것이다!”
장비가 잡혔다는 말에 보병들이 동요했다. 그들은 간절하게 장비가 반론을 제기할 것을 원했다. 하지만, 원매의 쩌렁쩌렁한 외침에도 장비는 대답이 없었다. 장비의 병사들은 하나둘씩 무기를 버리고 그 자리에 엎드렸다. 이제 살길은 목숨을 구걸하는 길밖에 없었다.
원매와 조운이 장비군을 대파했을 때, 조조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다.
전선은 완전히 무너졌고, 문추와 위연이 이끄는 보병은 주유의 지원군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마초, 방덕이 이끄는 기병이 난입하자 어쩔 수 없이 아끼고 아끼던 하후연과 5천의 기병을 투입했는데, 그것이 결정적인 실책이 되었다.
마초와 방덕은 보병공격을 중단하고 양쪽에서 하후연의 기병에게 돌격한 것이다. 1만 4천의 정예기병이 5천의 정예기병을 양쪽에서 급습하자, 얼마 안 가서 하후연의 기병부대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하후연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독려했지만, 물량우세를 당해내지 못했다.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며 어떡하든 활로를 열어보려는 하후연에게 마초가 들이닥쳤다. 서량의 맹장 마초는 하후연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원매가 마초와 대련을 꾸준히 가지면서 무예가 급성장했는데, 이때 마초 또한 많은 깨달음을 얻어서 처음보다 훨씬 정교하게 창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후연에게는 불행이었다.
마초는 계속해서 하후연을 몰아붙였고, 지휘공백으로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기병부대는 방덕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무너뜨리고 있었다.
근근이 마초의 집요한 공격을 버텨내던 하후연은 40여 합을 넘기면서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한 힘에 정교함까지 더해진 마초의 공격은 그만큼 대단했다. 결국, 당해내지 못한 하후연이 호위기병을 마초에게 몰아넣은 후, 후방으로 도주했다.
하후연이 도주하면 연이어 길게 호각을 불자, 기병들이 차츰 알아듣고 하후연에게 합류했다. 협공당하여 살길이 막막했던 그들은 어떡하든 하후연에게 합류하기 위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도주했다.
마초는 하후연을 추격하는 대신 남아있는 기병들을 몰살시키는 데 주력했다. 남쪽에 있는 조조와 유비, 주유는 기병이 매우 귀했기 때문에 기회가 날 때마다 기병은 몰살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마초와 방덕이 하후연 기병을 격파하는 동안, 위연은 주태, 장흠의 군대를 연신 몰아붙였고, 문추는 조인, 서황의 군대를 밀어버렸다. 조인, 서황이 문추보다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수적열세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사방에서 혼전이 벌어지자, 관우의 1만 5천을 가까이 두고 지원 보내지 못했다. 그만큼 원매군의 공격은 동시다발적이고 집요했다.
원매는 장비를 사로잡고, 1만의 보병 중 7천을 항복시키자, 곧바로 후방의 예비병력 투입을 명령했다. 신호병이 붉은색 깃발을 흔들고, 불화살을 쏘아 올리자, 후방에 있던 서서가 알아보고 5천의 보병을 투입했다.
한 시진(두 시간) 후, 5천의 보병이 도착했다. 그동안 원매와 조운은 기병들을 점검하고, 출발할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
“전하, 교위 위홍입니다.”
“위교위! 여기 장비와 7천의 항병들을 후방으로 데려가라! 특히 장비는 잘 보살피어 상처를 입히면 안 된다. 알겠느냐?”
“명을 따르겠습니다. 전하!”
위홍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원매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조운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조조가 머무는 후방으로 돌격한다!”
“예. 전하!”
조운이 앞으로 나와 돌격명령을 내리자, 길게 호각소리가 연이어 이어졌고, 푸른색의 깃발이 계속해서 흔들었다. 선두의 기병부터 차례로 달리기 시작했고, 3천의 기병은 힘을 내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죽거나, 크게 부상당한 2백의 기병을 빼고, 원매는 2천 8백을 이끌고 내달렸다. 이제는 진짜 조조를 잡으러 가는 것이다.
장비군 중 일부가 조조군영까지 도망쳐왔다. 곽가는 그들을 심문하여 상황을 파악하고는 얼굴이 하얘졌다. 상황이 상상 이상으로 심각해진 것이다.
그는 상황을 종합하고는 곧바로 조조를 찾았다. 이미 조조도 망루 위에서 전투를 지켜보고는 절망적인 상황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곽가를 보자 그의 날선 목소리가 이어졌다.
“뭐야?”
“장비가 이끌고 간 1만 대군이 원매의 기병 수천에게 격파되었고, 대부분 항복했다고 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장비라면 손꼽는 맹장인데,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더냐? 아무리 기병이 보병보다 우위에 있어도 그렇지, 이렇게 빨리 장비가 죽고, 격파된단 말이냐?”
“장비의 생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를 꺾을 정도로 대단한 장수가 원매군에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는 후퇴할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결단이 늦으시면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쾅-
조조는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난간을 내리쳤다. 그는 쉽게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관우군영.
이곳에도 장비군 일부가 도망쳐왔다. 그들은 관우를 만나서 모든 사실을 이실직고했다. 관우의 얼굴은 수박처럼 새빨개졌고, 그의 입에서는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당장 부대를 모두 집결시켜라! 출병한다!”
조조군의 부장이 급히 제지했다. 그는 관우군에게 명령을 전달해주는 역할이었지만, 동시에 간자의 역할도 맡았다.
“주군의 명령 없이 절대로 군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허락을 먼저 맡으십시오.”
“지금 내 동생 익덕이 죽게 생겼는데, 무슨 소리냐? 당장 물러가거라! 그렇지 않다면 내 칼이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서슬 퍼런 관우의 분노에 조조의 부장은 도망쳐 조조군영으로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