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제142장. 전투는 절정으로 치달아가고.
“빨리! 빨리 행군하라!”
장료는 이를 악물고 병사들을 재촉했다. 군량을 모조리 불태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장수가 가는 길목을 막아섰다. 이미 조순은 기병을 이끌고 먼저 출발했고, 장료가 보병 2만을 인솔하여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다행히 원매군의 후방습격은 없었지만, 앞으로 언제 길을 차단하고 막아설지 몰랐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조순은 5천 기병을 이끌고 급속행군을 했지만, 그래도 3일은 가야 할 거리였다. 원매군이 막아서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나온 계산이었고, 계산이 어그러진다면 도착 여부를 떠나서 살아남을지도 알 수 없었다.
조순을 날랜 기병 1백을 앞으로 보내어 정찰을 시키게 했고, 본대는 그 뒤를 따라 강행군을 이어갔다.
‘제발 주군께서 잘 버텨주셔야 할 텐데.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주군을 뵙는단 말인가?’
조순은 애가 타서 기병들을 계속 독려했다. 하루에 면수 근처 벌판에서 숙영하고는, 아침 일찍 다시 행군을 개시했다.
오전쯤 되었을까? 앞서 정찰 나갔던 기병조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조순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이를 악물었다.
“무슨 일이냐?”
“저 ... 그것이 상황이 묘한지라 주군의 명을 받고자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상황이 묘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봐.”
“일 마장(400m) 정도 가면 면수에 연한 넓은 갈대밭이 나타나고, 큰 길이 갈대밭과 평야를 끼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평야는 물이 차서 기동이 제한되고요. 길을 따라 엉성하게 엉겅퀴와 나무를 쌓아놓았고, 적병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갈대밭에서는 기름 냄새가 진동합니다.”
“길에 싸인 장애물이 어느 정도인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쌓여 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게 제대로 만든 게 아니라 엉겅퀴, 가시덤불을 베어서 길에 놓았고, 주변에 있는 나무를 베어 길에 쓰러뜨려 놓았기에 만드는 데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순은 갈등이 일었다. 적병이 보이지 않는다니 더디겠지만 치우면서 기동하면 될듯싶었다. 주변을 살피면서 치우며 나간다면 속도는 엄청나게 늦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속도를 빨리하자고, 주변 경계를 게을리했다가 기습이라도 당한다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될 것이다. 갈대밭에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니, 어쩌면 화공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보자!”
조순을 기병 조장을 따라 말을 몰아갔다. 얼마 후, 조순은 현장에 도착했고, 입에서 저절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어떤 빌어 처먹을 새끼가 이따위 계책을 낸 거야?”
그 자리에서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주변 경계를 강화하면서 장애물을 치우며 천천히 기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형적인 허허실실의 계략에 당한 것이다. 기병만이라도 빨리 이동하여 조조를 돕고자 했던 자신의 계책이 막히자, 조순은 허탈함에 눈물이 쏟아졌다.
원매군영.
“지금쯤 조순, 장료가 내 욕을 엄청나게 해대고 있겠지? 벌써 귀가 가려워. 하하하-”
“군량을 태웠으니 애를 태워줄 작정입니다. 중간중간에 병사들을 2~3백씩 매복시켜 놓았습니다. 그저 멀리서 북을 치고, 불도 피우고, 화살도 쏘다가 가까워지면 도망치라고 했습니다. 계속 이동이 지연되니 아마 열불이 나겠지요.”
“그래. 잘했어. 겨우 천명 투입해서 이 정도 성과면 훌륭한 거야. 내일 전투는 특이사항이 있는가?”
“이제 슬슬 승부를 걸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어떻게?”
“이제 조조도 상황을 눈치챘을 것이고, 조급해할 것입니다. 어제 통나무 공격을 이용해서 쏠쏠한 승리를 챙겼습니다. 아마 내일이면 이에 대해 대비를 하고 나올 것입니다. 대비한다면 뻔하겠지요. 병사들을 밀집시켜서 밀리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잠시만 기다리게.”
여기까지 듣고 원매는 생각에 잠겼다. 일각(15분)을 생각한 원매가 입을 열었다.
“밀집한 대형에 불붙은 기름통을 집어 던져서 흐트러트리고, 다시 통나무 공격을 한 다음에, 이번에야말로 기병을 진격시키면 되겠군.”
“맞습니다. 그리한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측 병사도 상당수가 불의 피해를 볼 것이 틀림없어.”
원매는 음울한 얼굴로 서서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그렇습니다. 안타깝지만, 아군의 희생 없이 적군에게만 피해를 강요하는 작전은 없습니다. 전투가 길어지면 결국 아군의 피해 또한 눈덩이 불어나듯 늘어날 것이니, 내일 승부를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불과 통나무 공격으로 혼란한 와중에 기병 2만을 일시에 투입하면 절대 막아서지 못합니다.”
“그래. 자네 뜻대로 하지. 한데 말이야. 저쪽도 곽가라는 책사가 있어. 우리가 하는 것을 모를까?”
“이것은 책사의 능력 부족이 아닙니다. 지금은 벌판에서 힘 대 힘으로 붙는 형국인데, 책사의 역할은 굉장히 제한됩니다. 곽가가 후방기습계책을 내놓은 것은 사실 훌륭한 계책이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받아칠 줄을 예측 못 한 게 실책이 되겠지요. 이제는 5만이 넘게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기병은 1만 5천이나 차이나고요. 아무리 뛰어난 책사가 오더라도 이런 경우에 뛰어난 계책을 내기는 어렵습니다.”
“좋아. 자네 뜻대로 하지. 밖으로 나가서 장수들에게 내 뜻을 알리고, 차질없이 진행하라고 명령을 내려두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서서가 예를 올리고 물러나자, 원매는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꼼꼼하게 내일 벌어질 전투를 예측해보았고, 서서의 말대로 될 확률이 높았다. 설령 조금 상황이 비틀어지더라도 불리해지거나 패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또다시 양측에 팽팽한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다만, 원매군 중군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투석기 수십 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급히 만드느라 조잡한 모양새였지만, 정확도가 아니라 일정한 거리의 적에 투척하면 되었기에 모양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매는 곽독, 장수의 2만과 부상병, 사망자를 제외하고 기병 2만, 보병 12만의 대군이었다. 관우가 1만 5천을 이끌고 합류하면서 조조군은 부상병, 사망자를 제외하고 기병 5천, 보병 8만이 집결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장료/조순이 이끄는 보병 2만, 기병 5천의 부족이 뼈아프게 느껴지는 조조였다.
하지만, 독이 오른 조조가 냉정하게 독려하자, 장수와 병사의 사기도 크게 진작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적군의 동태를 살피던 곽가는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투석기 수십 대를 보고, 곧바로 원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는 않았다. 투석기가 무서워서 밀집대형을 흩트리면, 또다시 통나무 공격에 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곽가는 조조가 자신을 찾는다는 전갈에 급히 달려갔다.
“주군 찾으셨습니까?”
“투석기가 등장했는데, 어찌 생각해? 저놈들이 우리가 밀집대형을 쓸 걸 예상하고 투입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돌을 투척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밀집대형이 흐트러질 테니까요. 그래도 어찌 어찌 버티는 것이 낫습니다. 통나무 공격을 받아 전열이 흐트러지면 안되니까요.”
“답답하군. 그렇다면 이제껏 준비한 계책이 헛수고가 되는 것 아닌가? 어찌하면 좋겠어?”
“오늘은 원매가 승부를 걸어올 것 같습니다. 보병의 밀집도가 가장 높고, 기병도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틈이 벌어진다면 기병이 투입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촉박하고, 수적으로 열세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계책을 내기 어렵습니다. 하후연과 5천 기병, 관우/장비 2만 5천의 군대를 예비로 돌렸다가 저들의 돌격을 최대한 저지시켜야 합니다. 어떡하든 버티는 것이 최선입니다.”
후퇴한다면 그야말로 따라잡혀 몰살을 당할 것이기에 그리하지도 못했다. 조조는 짧은 한숨을 쉬고는 곽가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관도대전도 그렇고 이번에도 물량에서 밀린다는 것이 조조에게는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명령을 내린 조조는 곧 전투가 벌어질 평원을 바라보았다. 그간의 고생이 눈앞에서 펼쳐지며,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으르렁거렸다.
“어디 끝까지 해보자!”
둥둥둥둥-
원매군영에서의 북소리를 시작으로 전투는 다시 시작되었다. 초반의 양상은 이제까지와 같았다. 보병들간의 혼전이 이어졌다. 얼마간 격렬한 혼전이 이어지다가 조조의 밀집대형을 파악한 원매가 투석기 공격을 명령하면서 판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욱-
슈우우우욱-
불이 붙은 기름단지가 날아가는 소리는 돌이 날아가는 소리와는 다르게 매우 기분 나쁘게 들렸다. 태양 빛을 받으며 날아오는 단지는 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쾅-
쾅-
곳곳에 단지가 떨어지면서 기름이 퍼졌고, 불이 붙었다. 순식간에 밀집대형은 혼란에 빠졌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불을 꺼라!”
하급장교들이 독려하면서 불을 끄려고 노력했지만, 원매가 계속해서 불이 붙은 단지를 쏘아댔고, 기름불이라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돌격하라!”
문추와 위연은 곧바로 통나무 부대를 진격시켰다. 하루 전에도 큰 위력을 발휘한 통나무 돌격은 오늘은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불 때문에 조조군의 대열이 완전히 흐트러졌기 때문이었다.
“나를 따르라!”
위연과 문추가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여 틈을 파고들어 돌격했고, 이제는 전선이 사라지고 거친 백병전이 난무했다. 불길에 원매군도 손해 입었지만, 퇴각명령은 없었다.
원매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갑옷을 단단하게 챙겨입었다. 조운이 몇 번이나 꼼꼼하게 확인했고, 말의 마갑까지 확인했다.
“전하. 소장이 반드시 적으로부터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래. 조장군이 한다면 믿어야지. 시작해볼까?”
“예. 명을 따르겠습니다.”
조운이 눈짓하자, 신호를 담당하는 병사가 호각을 길게 불었고, 귀를 찢을 듯한 고음의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호각소리는 몇 번을 반복하며 계속 이어졌다.
마초와 방덕이 호각소리를 신호로 각각 7천의 기병을 이끌고 보병이 만든 틈을 따라 돌격을 감행했다.
“비켜라!”
마초의 명령을 하자 보병들은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마초의 명령을 잘 들었다기보다는, 무시무시한 기병이 돌격하는 말발굽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모두 비킨 것이다.
좌측에서는 마초가, 우측에서는 방덕이 파고들었고 기병과 부딪치는 곳에서는 피가 튀고, 애끊는 비명이 계속 이어졌다.
원매는 조운과 6천 기병에게 돌격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하후연의 5천 기병이 조조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놈 참! 조심성이 많구나. 기병과 보병의 돌격으로 난리가 났는데도 참고 있어. 뭐, 그래 봐야 곧 튀어나오겠지.”
원매는 조심스럽게 긴장을 풀면서 기다렸다. 그의 생각대로 기다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높은 망루 위에서 경계하던 정찰조장이 급히 달려서 보고했다.
“전하! 후방에 있던 기병이 이동했습니다.”
“그래? 알았다.”
“조자룡!”
“예. 전하!”
“돌격한다! 선봉을 맡아라!”
“영광입니다.”
조운이 3천의 기병을 이끌고 내달렸고, 원매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3천의 기병으로 뒤를 따랐다. 그들은 측면의 약해진 보병을 그대로 돌파하여 후방에 있는 조조 군영을 그대로 습격할 계획이었다. 아마도 하후연이 조조 군영이 습격한 것을 알아차리고 되돌아오려고 한다면 마초와 방덕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끝장을 내주마! 조조야- 한漢과 함께 사라지거라. 앞으로는 기冀의 천하가 될 것이다. 지긋지긋한 한漢과도 이제는 끝장을 봐야겠구나.’
조운이 측면의 보병을 뚫고 들어가면서 피가 튀었고, 수많은 보병은 제대로 막아서지도 못하면서 흩어지고 도망치기 바빴다. 감히 조운이 이끄는 3천의 정예기병을 막을 장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보병대장들은 겨우 기병 수십 기를 가지고 지휘를 하는 상태였기에 감히 막아서질 못했다. 원매가 조운이 뚫어 놓은 길을 따라 계속해서 진격했다. 이제는 끝을 내겠다는 마음을 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