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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40화 (140/253)

# 140

제140장. 냉정하게, 냉철하게.

관우군영.

관우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장비만 아니라면 다 뒤집어엎었을 것이다.

“형님. 이제 그만 드시오.”

“쓸데없는 소리. 이렇게라도 마시지 않는다면 속이 터져버릴 것 같단 말이다. 너도 매복이 어찌 된 상황인지를 알지 않느냐? 조금만 늦었더라면 나도 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쫓아가서 조조의 멱을 따버리고 싶단 말이다.”

관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술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또다시 술잔에 따르려는 관우을 장비가 제지했다.

“나도 아니까 그만하시오.”

“이 얼음보다도 비정한 놈아. 형이 불에 타서 죽을 뻔했는데도, 어찌 이리 냉정하단 말이냐?”

“지금 우리를 이곳에 보내놓고, 장사에서 애타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큰 형님을 생각하면서 참으시오. 만약 연합군이 분란이 일어나서 원매에게 패배한다면 강하군은 원매에게 넘어갈 것이오. 그러면 그가 군대를 이끌고 장사로 오겠소? 아니면 여강으로 가겠소?”

관우는 발끈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장비가 다시 조곤조곤 설득했다.

“조조에게는 주유가 착 달라붙어 있으니, 원매는 반드시 장사로 군을 돌릴 것이오. 여기서 패배하여 군대는 무너졌고, 남아있는 군대를 모조리 끌어모아 봐야 5만 정도일 것이오. 유장이 도와준다 하더라도 병력이 도착하는데 최소 보름은 걸릴 텐데, 그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지금은 억울하더라도 참아야 할 때입니다.”

“네놈의 혀는 뱀같이 사악하구나.”

“칭찬으로 듣겠소.”

관우는 말없이 술잔을 바라보다가 몇 번이나 탄식을 토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앞으로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삼일의 시간을 벌었으니, 형님께서는 부상병들을 돌보고, 병사를 다독거리시오. 그 후에, 조조의 명을 받들어 원매와 싸워야지요. 당분간은 조조가 아무리 철천지원수가 되었더라도 함께 해야 하오. 나는 내일 원매와 싸우겠소.”

관우는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도 장비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우군영을 기웃거리던 한 병사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이탈했다. 그간 한참을 걸어간 후에 도착한 곳은 곽가의 치소였다. 곽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게 황금을 내어주었다.

“고생했다. 앞으로도 무슨 일이 있으면 보고하거라. 알겠느냐?”

“예. 나리. 명심하겠습니다.”

“조심해서 가봐.”

늙은 병사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는 물러났다. 곽가가 일찍부터 군수지원 명목으로 조조군을 연합군내에 배치하였고, 지금의 늙은 병사는 거기에 숨어있던 세작이었다. 곽가는 밤이 늦었지만, 조조를 다시 찾았다. 조조는 곽가로부터 첩보를 전해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불구덩이에서 기가 막히게 빠져 나왔다 싶었더니, 그런 사유가 있었군. 그런데, 관우야 그렇다 치더라도 장비가 이토록 냉철한 줄은 몰랐군. 의외야. 사실 딴짓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그것도 골치 아프지만, 저렇게 지략이 뛰어난 장수라니 솔직히 부담되는군.”

“나름 시세를 파악하는 것이지요. 저들은 죽어도 주군과 연합을 해야 합니다. 강하군은 그만큼 주군이나 저들에게나 중요한 지역이니까요. 이제는 관우, 장비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시고, 원매에게 집중하셔야 합니다.”

“그래. 그리하지. 장료/조순은 지금 고생하고 있겠지?”

“희미한 달빛을 받으며 밤새도록 행군할 테니 무척이나 고단할 것입니다. 지략과 담력이 뛰어난 장수들이니 믿어보십시오. 반드시 주군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해. 원매 이놈도 후방이 급습당해서 군량이 모두 타버렸다면 뒷골이 서늘할 거야.”

“쉬십시오. 물러가겠습니다.”

“고생했네.”

곽가가 물러나자, 조조는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까만 하늘에 별이 빛나고 있었고, 초승달이 희미하게 빛을 내어 사물을 분간하게 해주었다.

‘하늘이여- 원가에게만 기를 나누어주지 마시고, 내게도 조금의 기회를 주시오.’

조조는 간절함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솟았다.

이튿날.

날이 밝을 무렵부터 양쪽에서는 밥을 짓는 뿌연 연기가 낮게 깔리며 하늘을 뿌옇게 덮고 있었다. 아침 일찍 조반을 챙겨 먹은 양군은 곧바로 전투대형을 가져갔다. 엄청난 군대가 동원되었기에 서로의 진형은 일찌감치 파악되었다. 누가 상대방을 잘 속이냐가 아니라, 효율적으로 부대를 운영하는가에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원매는 정면으로 문추/위연의 9만 대군을 배치했고, 장수에게 3만을 주어 유기적으로 지원하도록 했다. 또한, 마초/방덕의 2만 기병과 조운이 이끄는 호위기병 1천은 자신의 근거리에 두고 상황을 주시하다가 투입할 계획이었다.

넓은 뜰을 꽉 채우고 있는 조조군을 보며 원매는 가슴 한끝이 아려왔다.

‘이 전투로 또 수많은 병사가 희생되겠구나.’

전투할 때마다 드는 이런 연민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나타나 괴롭혔다.

조조는 정면으로 조인/주태/장흠과 7만을, 우측에 서황과 1만을, 좌측에 장비와 1만를 배치했다. 또한, 기병 5천과 보병 1만은 자신의 곁에 두어 비상시에 대비했다.

냉정하게 수적으로 본다면 원매가 우세했지만, 둘 다 10만을 넘는 대군이었기에 수적우세는 사실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기병이 2만 대 5천으로 우세한 상황은 원매가 언제든지 전투를 자신에게 유리하여지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원매, 조조가 공통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조조는 병사들이 서로 마주 보며 대치한 상황을 실눈으로 바라보았다.

“곽봉효!”

“예. 주군!”

“원매가 기병을 언제 투입할까? 정예기병 2만이라? 이거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는군그래.”

“원매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 아니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간의 행적을 유추해볼 때, 처음부터 밀어 넣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병 간의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을 때, 전과를 확대하기 위하여 기병을 투입하거나, 밀리는 경우 보병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투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이는 어린데, 생각하는 것은 늙은이나 다름없습니다. 서두르지를 않으니 더 두려운 인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 생각과 같구먼. 일단 보병전투를 며칠을 하더라도 거기서 밀리면 안 돼. 분명히 틈이 나면 전과를 확대하기 위해 투입할 거고, 그러면 끝이야. 하후연의 기병이 5천인데, 그걸로 2만을 막는 것은 무리야.”

조조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고, 곽가도 굳은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둥둥둥둥-

원매군영에서 북소리가 울리며 문추/위연군이 진격을 개시했다. 9만 대군이 방패와 창을 들고 진군하자 땅이 흔들릴 정도였다. 원매가 먼저 선공을 가하자, 조조도 재빠르게 북을 치며 맞불을 놓았다. 하후연의 기병 5천은 후방에서 대기했다.

뿌연 먼지가 날렸고, 강한 바람 때문에 조조군이 조금 더 지쳐 보였지만, 전투의 승패를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점차 가까워지던 그들의 간격은 순식간에 좁혀졌고, 엄청난 굉음을 내며 부딪쳤다.

창과 방패가 부딪치는 소리, 애간장을 녹이는 비명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뒤에서 계속해서 밀어붙이면서 전방에서 맞붙은 병사들은 피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창을 휘둘러가며 싸워야 했다.

죽거나 다쳐서 땅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밟혀 죽기 때문이었다.

대규모 보병이 맞붙는 전투는 참혹한 물량 싸움이었다. 누가 더 많은 군대를 가지고 있고, 더 강하게 밀어붙이냐의 싸움이었다. 전투가 시작하여 생긴 피의 전선은 고착되어서 바뀌지 않았다. 조금씩 밀거나 밀릴 뿐이었다.

오전에 시작된 전투는 오후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양측에 막대한 피해를 준 채 종료되었다. 원매가 징을 쳐서 후퇴를 지시했고, 조조도 더는 어렵다는 판단이 들자 징을 쳐서, 철수를 지시했다.

병사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물러나자, 가운데는 시체들이 뒹굴었고 그 피가 내를 이룰 정도였다. 그 와중에 상처를 입은 병사들과 무기, 갑옷 등은 모조리 챙기고 있었다. 원매군이나 조조군 모두 암묵적인 합의를 한 듯, 묵묵하게 갑옷을 벗기고, 무기를 챙겼다.

한 명이라도 적군을 더 죽이겠다고 설쳐대는 놈이 없었다. 모두 지친 얼굴로 일을 할 뿐이었다. 그저 일이 빨리 끝나서 돌아가 밥을 먹고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고, 오늘 살았으니 행운이라는 표정이었다.

저녁이 되자, 다친 병사들을 모은 막사에서는 끊임없이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경험 많은 병사들은 조금씩 공급되는 술을 마시며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풀었다.

원매치소.

문추, 위연, 장수, 마초, 방덕, 서서가 모였다. 조운은 호위기병들을 단속하며 철통같이 지휘소를 지켰다. 원매는 덤덤한 얼굴로 그들을 주시했다.

“오늘도 전투하느라 고생했어. 워낙 대군이라 그런지 쉽지가 않구먼.”

원매의 말에 마초가 불만인 듯 입을 열었다.

“전하! 기병에서 조조보다 훨씬 우세한데, 어찌 사용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병을 투입했다면 전투는 훨씬 유리해졌을 것입니다.”

“알아. 조금만 참아. 지금 기병 투입할 시기를 계산하고 있으니까. 대충 투입해서 우세한 전투를 벌이는 것에 만족하고 싶지 않아. 만약 기병을 투입한다면 끝장을 볼 거야. 그러니 자네들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 그때는 나도 참전을 하지.”

“전하! 안됩니다.”

서서가 큰소리로 외쳤기에 원매는 깜짝 놀랐다.

“부어사의 목청이 이리 큰 줄은 몰랐군.”

“전하. 웃으실 일이 아닙니다. 옥체를 보존하셔야지요. 이처럼 전방으로 나와서 전투를 지휘하시는 것도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부디 기병을 이끌고 전투에 참여한다는 말은 철회하여 주십시오.”

원매는 서서의 간절한 표정을 보고는 싱긋 웃었다.

“이보게. 부어사. 자네만 말리고 있어. 다른 장수들을 보라고.”

그제야 서서는 지휘소 안의 상황이 기묘함을 느꼈다. 맹장 마초와 방덕이 원매의 전투참여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상했다. 마초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고, 방덕이 자세히 설명했다.

“전하를 걱정하는 부어사의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전하의 현재 무예는 중원에서 대적할 자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물론이고, 여기 마장군도 버겁습니다. 또한, 막강한 조자룡이 곁에서 물샐틈없이 지킬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초가 빙그레 웃으며 거들었다.

“보병이 감히 기병을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전하의 기병은 정예중의 정예이고, 무예가 출중한 조운이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전하의 무예는 정말 대단합니다. 처음 접했을 때는 제게 백초지적 정도 되셨는데, 이제는 목숨을 걸고 싸워도 승부를 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제가 장담하는데, 조운의 호위기병이 호위하는 한 전하께서 다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암요.”

마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연이 맞장구를 쳤고, 문추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가 놀라 동그란 눈으로 원매를 쳐다보았다. 사실이냐고 묻는 눈치였다.

“그거참. 보여줄 수도 없고. 걱정하지 마시게. 여기 마장군, 방장군등이 이토록 열심히 변호하지 않는가? 내 목숨 정도는 스스로 충분히 챙길 수 있으니 그리 알고, 적들의 상황을 잘 살펴서 계책을 짜시게. 알겠는가?”

“예. 전하.”

원매의 명령에 서서는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아직도 그의 눈은 원매가 나서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원매는 그런 서서의 바람을 외면했다. 처음부터 무예의 끝을 보기로 한 원매였기에 이런 좋은 기회를 허투루 날리기는 싫었다. 또한, 듣기로 장비나 관우가 합류했다 하니 잘하면 그들과도 일전을 벌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무예를 증진 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관우나 장비 한 명이라도 붙어봤으면 좋겠구나. 마초보다 강할까? 궁금해서 미치겠구나. 미치겠어.’

원매는 새로운 목표가 생기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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