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제139장. 화공火攻
위연은 산 정상에 올라서서 조심스럽게 강하군을 내려다보았다. 한눈에 보더라도 대규모의 부대가 넓게 포진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어차피 10만이 넘는 병력이 부딪치는 전투이니 상대를 완전하게 속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흠- 저 깊숙한 골짜기에 분명히 매복이 있을 것이다. 불을 질러서 모조리 통구이로 만들어주마. 설령 매복한 놈들이 없더라도 바람이 남쪽으로 불고 있으니 연합군 놈들 단단히 겁을 집어먹을 것이다.’
위연은 찡그린 얼굴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제법 세차게 불던 바람이 많이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병사들을 산개시켜 만반의 준비를 한 채,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이제 바람만. 바람만 있으면 된다!’
위연의 애타는 심정을 하늘은 모르는지 좀처럼 강한 바람이 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관우 매복지.
관우는 병력을 계곡을 따라 길게 배치하고는, 깊은 수심에 잠겼다. 냉정하게 그간의 상황을 짚어보자 장비의 말마따나 이상한 게 한둘이 아녔다. 특히나 비굴한 모습을 보이던 서황을 생각할수록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조조가 노린 것은 무엇일까? 분명히 무엇이 있는데.’
답답한 마음에 이리저리 거닐던 관우는 멀리 안륙방향의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밥을 해 먹기 위해 불을 피운다고 생각하자, 절로 푸근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곧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순식간에 푸근한 미소는 사라지고, 급히 근처의 낮은 언덕 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원매군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지만, 지금 관우의 행동에는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언덕 위에서 꼼꼼하게 계곡을 둘러보던 관우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조조. 이 개자식이 나를 가지고 놀았구나!”
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빌어먹을! 어쩐다.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 때, 저놈들이 화공을 쓴다면 모조리 불타 죽을 것이다. 그렇다고 군령을 어기고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그제야 조조의 병력배치가 완전하게 이해가 되었다. 자신을 희생시키고, 안륙일대에서 원매군을 막아서면서, 장료/조순을 이용해서 원매군 후방을 흔들어 승리를 거두려는 전략을 깨달은 것이다.
관우는 고민하다가 매복병에게 명령을 내리면 신속하게 도망치도록 명령을 내렸다. 과연 이것이 얼마나 효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하는 것보다는 많은 인명을 살려줄 것이다.
조조군과 원매군이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대치를 한 가운데, 밤새도록 고요하던 날씨는 새벽이 되면서 급변했다. 북서풍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둥둥둥둥-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미리 선별해둔 일천의 병사들이 2백 개의 조를 이루어 화톳불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조조군을 신경 쓰지 않고, 위연은 계속해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반 시진(한 시간) 후.
계곡과 산자락을 타고 불길이 솟아올랐다. 불길은 강한 북서풍을 따라 남동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마른풀과 나무를 집어삼켰다. 풀더미에 붙은 불꽃은 바람을 따라 날아다니면서 순식간에 불길을 확산시켰다.
“후퇴한다!”
이미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던 관우는 멀리서 불길이 보이자, 징을 쳐서 퇴각의 신호를 계속 보냈다. 병사들은 계곡 가운데 길로 모여들며 일제히 남쪽으로 내달렸고, 엉키며 넘어지고 그들을 밟고 뛰는 아비규환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오늘의 수모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관우는 불길을 피해 남쪽으로 도주하며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미리 대비하긴 했지만, 그래도 엄청난 병력이 죽을 것은 당연했기에, 그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를 빠드득 갈았다.
불길이 솟아오르자, 조조는 식사를 마치는 대로 기존 작전대로 움직일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전령을 보냈다. 그는 선 채로 물에 밥을 말아 그대로 입에 구겨 넣었다. 비운 그릇을 종사관에게 돌려주고는 곽가를 돌아다보았다.
“어제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새웠어. 드디어 시작되는군. 관우가 나를 많이 원망하겠지?”
“그럴 것입니다. 불같은 성정이라고는 하나, 함부로 주군께 덤벼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동 측으로 우회하여 원매군 후방을 급습할 장료/조순군의 성공 여부입니다. 그것만 제대로 성공한다면, 공격하는 원매군의 발길을 묶을 수 있을 것이고, 협공으로 승리를 가져올 것입니다. 반드시 승리할 터이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조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미 여러 번 확인한 계책이었다. 설령 사소하게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더라도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문추는 빠르게 식사를 해결하고, 진격을 명령했다. 전방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기에, 병사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선두에선 병사는 갈퀴, 도끼, 괭이 등 진화 도구를 손에 쥔 채,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한시 진(두 시간)을 걸어서 발화지점에 도착했을 때, 후끈한 열기가 덮쳤고, 매캐한 연기와 잔불이 눈에 들어왔다.
“불을 끄고, 길을 터라!”
문추의 명령에 천여 명으로 이루어진 부대가 앞장서서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힘들어했기에, 반 시진 단위로 교체해주었다. 문추는 땀을 닦으며 건너편을 바라보자, 그곳에서는 위연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길을 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위장군이 참으로 용맹스럽구나. 저러니 주군께 무한한 신뢰를 받을 수밖에.”
문추는 감탄을 하며 천천히 진군했다. 여전히 매캐한 연기 때문에 눈이 아프고, 기침이 났지만, 행군을 늦출 수는 없었다.
잔불을 끄며 행군했기에 속도는 더뎠다. 문추/위연군이 계곡의 하류지역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병사가 연기에 질식되고, 불에 데 죽어 있었다. 문추는 곧 숨이 끊어질 듯 고통스러워하는 병사를 보자 위엄있게 명령을 내렸다.
“고통 없게 보내주어라!”
“예. 장군!”
간신히 숨을 붙이고 있던 병사들은 차례대로 목숨을 잃었다. 오후가 되어 문추와 위연이 이끄는 선발대 3만이 안륙의 북쪽으로 나왔고, 7만의 대군이 뒤를 이어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불은 벌판까지 태워서 곳곳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둥둥둥둥-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연기 속에 가려졌던 조조군이 일제히 문추/위연군에게 달려들었다.
“물러서지 마라! 나를 따르라!”
문추와 위연은 물러서지 않고, 조조의 연합군과 부딪쳤다. 문추/위연군을 압박한 것은 조인/주태/장흠이 이끄는 보병 4만과 장비가 이끄는 보병 1만이었다. 서쪽에 포진해있던 서황, 하후연의 2만 5천은 이쪽으로 몰려오는 상황이었다.
문추와 위연이 앞장서서 전투를 벌이자, 병사들이 용기백배하여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전투를 벌였다.
처음에 수적으로 불리했던 원매군이 점차 7만의 대군이 증강되면서 균형을 이뤘다. 오후부터 시작된 백병전은 저녁때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양측 모두 막심한 피해를 본 대혈투였다. 문추와 위연이 경계를 철저히 하며, 주둔지를 편성했을 때, 원매의 본군이 계곡을 넘어 도착했다.
“문장군! 위장군! 참으로 고생했어! 내일 아침이 되면 다시 한번 붙어보자고. 전투를 겪어보니 조조군의 상황이 어때?”
“전하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불길이 남쪽으로 쓸려 내려오는 바람에 고생했고, 또 연기를 많이 마셔서 그런지 체력이 그다지 우월하지는 않았습니다. 백병전도 비슷하게 진행되었고요. 내일 전투를 벌인다면 충분히 우세하게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어서 가서 병사들을 다독이고, 다친 병사들은 후방으로 보내게. 부족한 병사나 무기 등은 종사관을 통해서 보급받게.”
“예. 전하!”
문추와 위연이 씩씩한 걸음걸이로 자신의 군영으로 돌아갔다. 서서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원매에게 다가왔다.
“전하. 전투 성과가 이 정도면 만족하셔도 됩니다. 저들도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있었지만, 바람이 아주 거셌기 때문에 그 효과가 반감되었을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전투를 벌여서 저들의 기세를 꺾는 데 성공한다면 이번 강하군전투는 전하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
“듣기 좋은 말이군. 그런데, 동쪽의 좁은 샛길을 통해서 저들이 우회 공격을 할까?”
“아마도 한다고 가정하면, 밤을 도와 기동하지 않겠습니까? 곽독이 잘 처신할 터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마십시오. 무모한 친구가 아니니, 당해내기 어렵다 싶으면 바로 수현성으로 도주할 것입니다. 군량을 잃는 것은 아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마음에 쏙 드는 말이군. 첫 전투를 밀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솔직히 화공을 하더라도 저놈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예측할 것으로 생각해서 솔직히 걱정이 많았거든.”
“전하. 소신을 믿지 않고 걱정하셨다니 섭섭합니다. 제가 가승상(가후), 순상서(순유)에 비해서 연치가 어리지만,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했기에 계책을 내는 것이 그렇게까지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서가 작심하고 서운함을 드러내자, 원매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이유는 능글맞아 비위를 잘 맞췄고, 순유는 말이 없었다. 가후는 냉정하게 일 처리를 하고, 조심스럽게 진언을 올렸다. 이런 책사진에 익숙해 있다 보니,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서서에게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전태부(전풍)와 쏙 빼닮았군. 그것참. 왜 몰랐을까?’
원매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부어사. 믿으니까 자네를 데려온 것이 아니겠는가? 앞으로도 자네의 계책을 전적으로 신뢰할 테니 마음껏 역량을 펼쳐봐.”
“예. 전하! 맡겨주십시오.”
서서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탕탕 치고는 물러났다. 원매는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조조군영.
조조는 장료/조순군을 밤이 되자 우회 기동시켰고, 장수들로부터 전투 성과를 보고받고는 기분이 괜찮았다. 대등하게 전투를 벌였고, 막판에 하후연이 이끄는 5천의 기병이 급습하여 원매군의 피해를 키워놓았기 때문이었다.
관우와 장비가 불이 나자 재빠르게 골짜기를 빠져나온 것은 의외였다. 덕분에 전투할 병력이 늘어났다.
그는 장수들을 위로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원매군과의 일전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장수들이 물러가자 곽가를 가까이 불렀다.
“관우와 장비를 어찌하면 좋겠어?”
“일단 부르셔서 고생했다고 위로를 해주십시오.”
“기가 막히게 빠져나온 걸 보니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느낌인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래 봐야 어쩌겠습니까? 솔직히 관우 제 놈이 자원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 전투에서 이겨야 강하군을 유비에게 바칠 수 있으니, 감히 대놓고 주군께 저항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일신의 무예가 뛰어나니 내일 전투에 선봉으로 삼으십시오. 가차 없이 밀어붙여야 합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는 곧바로 관우, 장비를 불렀다. 얼마 후, 더욱 붉어진 얼굴의 관우와 장비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참으로 고생하셨네. 원매가 이토록 치졸하게 나올 줄 몰랐어.”
“진정 모르셨습니까?”
“이 사람아. 나도 사람인데, 어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예측하는가? 만약 화공을 할 줄 알았다면, 자네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네.”
관우가 욱하고 나서려 하자, 장비가 빠르게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
“거기장군. 불길을 피하느라 병사들이 많이 다쳤소. 후방으로 부대를 이동하여 치료한 후, 돌아왔으면 합니다. 2~3일 정도면 충분할 듯한데, 이 정도는 해주실 수 있겠지요?”
“허허허허- 불구덩이를 빠져 나왔으니 고생했겠구먼. 그리 하게. 이 조맹덕이 좁쌀 같은 인간은 아닐세.”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3일 후에 뵙지요.”
장비가 예를 올리고는 관우를 끌고 나갔다. 그들이 밖으로 나서자, 곽가가 급히 다가왔다.
“주군. 어찌 저들의 청을 쉽게 들어주셨습니까?”
“관우의 눈빛을 못 보았는가? 그걸 들어주지 않았다가는 앞뒤 안 가리고 난장판을 만들 분위기였어. 처음부터 없던 전력이었으니, 그리하자고. 3일 후면 올 테니, 그때 써먹자고.”
곽가는 아쉬웠지만, 조조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