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35화 (135/253)

# 135

제 135장. 눈치싸움.

기주 업성에서 원소가 기冀를 건국하자, 남쪽과 서쪽의 제후들을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간의 상황을 통해서 새로운 나라가 건국되리라 짐작했지만, 실제로 이뤄지자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조조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헌제의 조서를 이용하여 주유, 유비, 유장에게 연합할 것을 요청했다. 주유는 조조가 무너지면 자신이 위태로움을 알기에 바로 응했고, 유비는 고민하고 있었다. 유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조조의 사신인 조엄이 장사군에 있는 유비치소를 방문했다. 조조에게 강하, 여강을 빼앗겼던 기억 때문인지 모두 도끼눈을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살가운 환영이 없을 것이라 짐작했기에 조엄은 덤덤하게 유비를 찾았다.

“유장군!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거기장군(조조)의 명을 받은 조엄이라 합니다. 여기 천자의 조서가 있습니다.”

유비는 얼굴은 평온한 듯 보였지만, 두 눈 깊숙한 곳에서는 푸른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역시 조조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은 것이다. 천천히 죽간을 읽은 유비가 거칠게 조서를 말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모두가 힘드니 조조를 맹주를 받들어서 원소에 대항하자 이건가?”

“정확히 말씀드리면 원매입니다. 힘을 합치지 않으면 그에게 각개격파될 것이니, 연합을 맺고 대항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 사료됩니다.”

“자네 뜻은 잘 알겠어. 그런데 내 부하 장수들의 불만이 엄청나. 그것을 풀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말씀을 해주시면 주군께 아뢰어 조치하겠습니다.”

“강하군을 내놔! 여강군은 참을 테니, 강하군을 내놔!”

조엄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 오기 전에 조조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땅을 양보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것은 제 소관이 아닙니다. 원통하고 분하신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사로운 원한은 접어두고 대의를 생각해야 합니다. 뭉치지 않으면 죽습니다. 유장군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잘 알지. 그렇다고 네놈이 감히 이따위 건방진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냐? 가서 전하거라! 강하군을 내놓기 싫다면 내게 절을 올리며 사죄를 하라고. 네 놈 입으로 사사로운 원한을 잊고, 대의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으니 조거기(거기장군 조조)가 이 정도는 들어주겠지?”

조엄은 입을 닫았다.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왜 말이 없느냐? 내가 하면 사사로운 것이고, 조거기가 하면 대의란 말이냐?”

“유장군. 감정적으로 처리하실 일이 아닙니다. 물론 분하시겠지만, 대의를 생각하시어 크게 생각하십시오. 주군께서는 원매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영토를 취한다면 유장군께 더 많이 배분해드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유비는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의 눈에서 무서운 흉광이 번뜩이자, 조엄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한참 후에 유비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고민을 하고 사신을 보낼 터이니, 그리 알고 물러가거라. 경고하는데, 조용히 물러가.”

조엄은 움찔하여 예를 표하고는 신속하게 배를 타고 수춘성으로 돌아갔다. 배를 이용하면 이틀이면 오갈 수 있었다.

조조치소.

조조는 조엄에게서 상황을 전해 듣고는 순욱을 찾았다.

“어떻게 생각해?”

“뭐, 결국은 연합을 할 것입니다. 사소한 요구쯤은 주군께서 감당하셔야 합니다. 급하긴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러지. 이제껏 기다렸는데 그까짓 것 못할까? 그런데 답답하구먼. 그때 여강군, 강하군을 얻기 위해 유비를 친 것이 실수였을까?”

“유종의 행동을 예측하지 못한 소신의 책임이지요. 그때 유종과 동맹을 맺거나 아니면 남군을 얻는 상황이었는데, 그리 쉽게 항복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게 모든 것을 틀어놓고, 상황을 뒤죽박죽 만들어 버렸습니다. 기다려보시지요. 유비라면 살아남는 방법을 아는 효웅입니다. 분명히 주군이 받아들일 만한 조건을 제시하며 연합을 해올 것입니다.”

“유비는 그렇고 유장은 어찌하는가? 이놈이 뭘 믿고 이렇게 당차게 나오는 거야?”

“야망도 크고 욕심도 많은 위인인데, 감정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이제껏 상황을 지켜보면 유비는 냉정하고, 유장은 불같은 성품입니다. 당분간은 그대로 놓아두시고, 유비와의 연합이 완료되면 그때 다시 한번 설득을 하시지요.”

조조는 순욱의 의견에 동의하고는 자리를 파했다. 북쪽에서 거센 피의 폭풍우가 몰려오는데, 그걸 막아야 할 유비, 유장은 태평하니 조조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모두 함께 죽자는 거야? 뭐야? 이 한심한 놈들 같으니라고.’

조조는 인상을 쓰며 차를 마저 마셨다.

성도 유장치소.

유장은 비관을 불러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안하무인으로 나오는 저 조조 놈을 어쩌면 좋겠어? 아주 황제를 끼고 있더니 제 놈이 세상을 다 가지고 있는 줄 알아.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주군. 고정하십시오. 너무 화를 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냉정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원매를 혼자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조조가 말하는 연합의 대의는 분명 옳습니다. 분하시더라도 따르시지요. 시기를 놓치면 원매에게 각개격파 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자네도 원매가 그리 무서운가?”

“최강의 세력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군을 포함하여 조조, 주유, 유비를 합치더라도 세력 면에서 원매가 더 우위에 있습니다. 합치지 않으면 시간의 문제일 뿐 결코 버텨내지 못합니다.”

유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네놈은 원매의 신하더냐? 내가 한 번이라도 원매와 싸워서 패배했다면 몰라도, 싸워보지도 못했어.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겁먹고 먹고 뭐 하는 짓이야? 익주에 정예 강병이 10만이 넘고, 기병도 2만이 넘어. 더군다나 천령산맥이 막아주고 있단 말이다. 에잉- 이런 겁쟁이 같으니라고.”

비관은 암담했다. 익주의 험함과 풍요로움을 믿었지만, 중원의 풍요로움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비관 자신도 예주에 접한 강하군 출신이었기에 중원이 얼마나 크고 풍요로운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정이 급하고 자존심이 강한 유장을 설득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아예 이 기회에 원매 이놈과 한번 붙어보는 것은 어때?”

놀란 비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유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악을 썼다.

“왜 자네는 매사에 부정적이야. 사실 익주가 제일 험하니 원매도 공격을 한다면 무조건 유비나 조조를 먼저 칠 거 아냐? 그때 상황을 봐서 한중이나 남군을 공격하는 것이지. 한중과 관중을 얻으면 원매도 뒤통수가 서늘할 거야. 패기 있게 계책을 세워봐. 매일 안된다. 안된다. 이러면서 궁상떨지 말고.”

“명을 따르겠습니다. 계책을 작성하여 올리겠습니다.”

비관은 치소를 나오면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생각에 잠겼다.

‘통치자와 책사의 그릇의 크기 때문인가? 머리는 내가 훨씬 좋은 듯한데, 나는 어찌 저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무조건 방어적으로 움직이려고만 했을까?’

자신의 치소로 걸으며 생각에 잠겼던 비관은 결국 답을 찾아냈다.

‘그래. 내가 너무 안정적으로 손해 안 보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어. 그러니 자꾸 저자세로 나왔던 것이지. 한중, 관중 공략이랴? 원매가 형남을 치는 상황이면 군사력이 많이 빠져나갈 테고, 그리된다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차차 준비를 해봐야겠구나.’

허창성.

서서는 원매의 명을 받아 신속히 내려온 후, 조조, 유비, 유장의 첩보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수군 전력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직은 주유와 직접적으로 붙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주유의 첩보는 이선으로 밀어 놓았다.

서서가 허창성에 내려온 지 얼마 후에 원매도 따라 내려왔다. 그는 검은색의 평범한 복장에 가벼운 갑옷을 착용한 상태로 호위기병의 보호를 받으며 내려왔다. 사마구가 금군을 이끌며 업성을 지키고 있었기에 조운이 그를 수행했다.

“전하! 어서 오십시오.”

“부어사(서서). 고생이 많구먼.”

“전하. 그런데 복장이 너무 평범하신 것 아닙니까? 기의 황태자전하신데 어찌 .... 이것은 평범한 호족들이나 입는 것입니다.”

민망한 듯 제대로 말을 못 잇는 서서를 보고는 원매가 조운을 돌아보았다.

“금군부대장(조운)! 자네 생각도 그런가?”

“저는 괜찮은데요. 사실 예법을 따지자면 부어사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전투하러 오셨지 않습니까? 화려한 복장은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평범하게 다니시면 많은 이들이 검소함을 칭찬할 것이며, 사치를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원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서에게 고개를 돌렸다.

“들었는가? 금군부대장이 제대로 내 뜻을 알고 있구만. 어떤가? 이제는 자네도 내 뜻을 알고 따르겠는가?”

“소신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고맙네.”

원매는 서서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많은 종사관과 신하들이 마중 나와 예를 표했다. 원매는 또다시 높아진 자신의 위상을 깨달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속물이라 비웃을지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상황실로 들어서자, 서서는 원매에게 자리를 권한 후, 곧바로 보고를 시작했다.

“조조가 유비, 유장, 주유에게 사신을 보내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의 황제가 수춘성에 있으니 자신을 중심으로 뭉쳐서 전하께 대적을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주유와 조조는 순망치한(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관계이므로 끈끈한 동맹관계가 유지될 것으로 예측되지만, 유비와 유장은 쉽지 않으리라 판단됩니다.”

“유비는 강하, 여강을 빼앗기고 개발이 덜 된 장사, 영릉, 계양으로 쫓겨왔는데 쉬울 리야 없겠지.”

“그렇습니다. 그 부분 때문에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연합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각개격파되면 죽음 말고는 다른 게 없으니까요.”

“그렇지. 그러면 그 두 놈이 손을 잡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 예를 들어 두 놈의 간격이 벌어지도록 이간질을 해보는 것은 어때?”

서서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바로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이 불경스럽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고, 조조나 유비가 야망이 크지만 냉철한 인물입니다. 생존에 아주 강하지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

원매는 더는 고집부리지 않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유장은 어때? 그놈도 순순히 조조의 요구에 응할까?”

“장송의 보고에 의하면 조조의 사신을 거만하게 내쫓았다고 합니다. 그의 책사인 비관이 유장을 설득하고 있어서 아직은 이렇다 하고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원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익주에 있던 제갈량이 한중-장안으로 이어지는 험한 산을 넘어 무지하게 조조를 공격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험한 길이지만,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말이야. 유장이 한중을 거쳐 장안을 공격하면 어쩌겠는가?”

“예? 그게 ... 무슨 말씀이십니까?”

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관중과 익주사이에는 천령산맥이 가로막고 있었는데, 얼마나 험한지 잔도를 통하지 않으면 통행이 불가능 할 정도였다. 서서도 그런 상황을 알았기에 매우 놀란 표정을 지은 것이다.

“전혀 생각도 못 한 눈치구만. 한중중랑장 파재에게 연통을 보내서 익주와 연결되는 통로를 확인하고, 적들이 공격하면 어디로 올지 예상로를 생각해서 보내라고 해. 그리고 다시 이야기해보자고. 하나라도 무시하면 안 돼.”

“알겠습니다.”

서서는 원매의 말에 즉각 복명했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했다. 의문을 품는 생각과는 반대로 행동은 빨랐다. 즉시 죽간을 작성하여 한중중랑장 파재에게 유장의 공격시 방어대책을 강구하여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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