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제 134장. 황제등극.
200년 건안 5년 12월.
원매는 호위기병을 이끌고 업성으로 향했다. 날씨는 제법 추워지고 있었지만, 가는 길이 수월했기에 빠르게 달려서 4일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업성으로 돌아오면 항상 고향에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그가 성안으로 들어서자, 만나는 대신마다 깊숙하게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일일이 인사를 하고는 원소의 치소로 향했다. 원소를 만나는 것이 제일 급선무이기 때문이었다.
원소는 당당한 원매를 보고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강녕하셨습니까?”
“그래. 아직은 버틸 만하구나. 오느라 고생했어.”
원소는 원매의 손을 잡고 따뜻한 체온을 교환했다. 그는 원매를 자리로 이끌어 앉히고는, 따뜻한 차를 손수 따라 주었다.
“차가 좋군요. 아버님 건강은 ... ”
“그 이야기는 그만해. 내가 잘 알아서 하고 있으니까. 보는 사람마다 그 이야기를 하니 듣는 게 고역이구나.”
“죄송합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랬는데, 듣는 아버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군요.”
“괜찮아. 그리고, 여기서 머물면서 황제즉위식까지 준비해야지?”
“물론입니다.”
“내가 황제에 오르면, 네가 황태자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어. 몇 년 수업 잘 받고 곧바로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했고. 기억하느냐?”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 황제즉위식 때 너를 황태자로 선포할 터이니, 그리 알고 준비하거라. 그래야지 네가 대신들을 처음부터 휘어잡을 수 있어. 절대 만만하지 않으니,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알겠느냐?”
“좀 빠르지 않습니까? 사실 아버님께서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제가 군대를 이끌고 남쪽과 서쪽을 점령해서 천하를 통일하고, 그 후에 황태자를 내려주시면 받으려고 했습니다.”
“녀석. 남쪽과 서쪽을 마무리 짓는 것이 네 뜻대로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또한, 내 건강이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그러니 내 말을 들어. 네가 황태자가 되어 군대를 이끌고 나선다면 훨씬 위풍당당해질 것이다.”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원소를 보며 원매는 눈시울이 붉어짐을 느꼈다.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되었느냐? 참으로 든든하구나.”
원소는 말을 잇지 못하는 원매의 어깨를 두드렸다.
201년 1월 건안 6년.
1월 1일. 드디어 업성에서 황제즉위식이 거행되었다. 날씨는 매우 추웠지만, 다행히 눈은 내리지 않았다. 신하들이 두툼한 옷을 받쳐입고 나와 준비를 한 상태에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오환, 선비족들은 사신을 보내어 축하했고, 공손도 또한 사신을 보냈다.
원소가 상좌에 앉고, 원매가 바로 아래에 자리를 잡은 가운데, 행사가 시작되었다. 원소는 추운 날씨였지만, 손꼽아 기다려온 이 날을 망치고 싶지 않아, 꿋꿋하게 버티고 버텼다.
식을 주관하는 진림의 말에, 신하들이 일제히 엎드려 절을 올렸다.
진림은 새로운 나라 기冀가 건국되었음을 선포하였고, 원소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나라를 건국하고, 초대황제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간 고생고생한 것이 이 하나로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나 원소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 갈가리 찢어진 천하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그간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소. 하지만, 한漢으로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몇 년간의 고민 끝에 결국 기의 건국을 선택하게 되었소.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지만, 백성을 위한 일이기에 결코, 후회하지 않소이다. 지금까지의 내 생애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남은 생을 기冀를 위하여 바칠 것을 맹세하겠소!”
원소는 땀까지 흘려가며 열변을 토했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일지도 몰랐다.
“황제폐하 만세!”
진림의 주창으로 관리들과 백성들이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원소는 손을 흔들며 그들의 환호에 답을 하고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원매가 급히 가까이 다가갔다.
“아버님 괜찮으십니까?”
원소는 조금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이 정도로 흥분할지는 몰랐구나. 막상 황위에 오르고 보니 가슴 한쪽에 통증이 있어.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니 식을 중간에서 끊을 생각은 말거라. 어서 자리도 돌아가.”
“보중하십시오. 식은 너무 길게 잡지 않았습니다.”
원매는 비단 손수건으로 원소의 얼굴에 묻은 땀을 닦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모든 신하가 원소의 위중한 상황을 알고 있는지라, 빠르게 진행되었다. 진림은 곧바로 연호 건신建新을 발표했다.
신하와 백성들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고, 원소가 다시 일어섰다. 그를 따라 원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은 금일 부로 기의 새로운 황제가 되었소이다. 건신은 부패한 옛것(한)을 버리고, 깨끗한 새것(기)을 추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부터는 희망차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나갈 것을 이자리를 빌어서 선포합니다.”
“황제폐하만세!”
원소는 손을 들어 좌중을 정리한 후, 원매를 지그시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우장군 일어서시게.”
원소의 명령에 원매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취했다. 원소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나라 기를 건국했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만큼, 절대로 기가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오. 이에 우장군 원매를 황태자로 봉하니, 여러분들도 내 뜻을 잘 받들어 수고를 아끼지 말고 도와주시오.”
원소가 공식적으로 기건국에 이어 황태자까지 정리하자, 주위 대신들의 모든 시선은 사실상 원매에게로 향했다.
“황제폐하만세!”
“황태자저하천세!”
곧 업성이 떠나갈 만큼 우렁찬 환호소리로 가득 찼다. 아침부터 이어진 즉위식은 3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끝이 났다. 원소가 신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내실로 들어섰고, 원매는 끝까지 자리에 남아 대신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받았다.
그날은 늦게까지 축하연회가 이어졌다. 원매는 대신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술을 마시다 보니, 엄청난 양을 들이켰고, 다음날 머리가 깨지는 고통 속에서 잠에서 깨었다.
“전하- 속은 괜찮으십니까?”
전하라는 말이 익숙지 않아서인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봉영이었다.
“편히 말하시오. 우리 둘인데, 어떻소.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군.”
“저는 전하라는 말이 참 좋은데요. 참으로 꿈만 같습니다. 상공께서 황태자전하가 되시다니요. 그럼 나중에 황제가 되실 것이고, 패가 황태자가 되실 것 아닙니까?”
봉영은 꿈을 꾸는 듯 눈이 몽롱해졌다. 원소의 삼남 원매와 결혼했으니, 괜찮은 자리이긴 했지만, 욕심을 부릴 자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황제를 바라보게 생겼으니, 정신이 붕 떠오르는 것처럼 모든 것이 꿈만 같을 것이다.
“그게 그리 좋으시오?”
“그럼요. 상공께서는 좋지 않으세요? 이보다 더한 광영이 어디 있습니까?”
“나도 매우 기분이 좋소. 이제껏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이제는 더더욱 행보를 조심하셔야 하오. 이제 기를 건국했는데, 쓸데없는 오해나 풍문에 휩쓸리기는 싫소이다.”
“걱정마시어요. 그런 바보짓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아버님께서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고맙소.”
원매는 봉영을 살짝 품에 안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해야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몸을 정갈히 하고, 봉영의 도움을 받아 의관을 정제하고 원소에게로 향했다. 이미 그의 복장은 휘황찬란하게 변해 있었다. 용이 그려진 옷을 보며 원매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가마가 대기를 했지만, 물리고 걸었다.
황궁 원소치소.
원소는 평안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폐하. 감축드립니다.”
“이 녀석. 낯간지러운 말은 벌써 수십 번은 들었으니, 그만하거라. 이리로 와서 앉아.”
“예. 아버님.”
자리에 앉자, 원매는 차를 들이키고는 편하게 말을 이어갔다.
“평소에 원했던 자리입니다. 앉아 보니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더 어려워하더구나. 어제는 정말로 가슴에 통증이 올만큼 격하게 흥분되었어. 정말 이대로 죽어도 원이 없겠다. 이런 생각까지 들었지. 정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지.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현실임을 자각하게 되는구나. 여전히 할 일이 많다는 것이지. 솔직히 표현하자면, 그전의 대장군부가 조금 더 커진 느낌 정도이구나. 그리고, 옷이 참 좋구나. 허허허허-”
“잘 어울리십니다. 신하들이 잘 처신할 것이니, 몸을 보중하시어 오랫동안 제위에 계셔야 합니다.”
“그러마. 너는 어찌할 생각이냐? 네놈의 눈을 보니 다음 달이면 남쪽으로 내려갈 작정인 것 같은데?”
“하하- 이거 아버님을 속일 수는 없군요. 이제껏 쉬었으니 다시 토벌을 시작해야지요. 수군이 완전치 않으니, 허창으로 내려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시작하겠습니다. 빨리 천하를 통일해야 진정한 기冀의 건국이 되지 않겠습니까?”
“힘이 있을 때, 몰아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저들은 분명히 한의 황제를 중심으로 뭉칠 것이니 그 연결고리를 잘 끊어 보거라.”
원소는 말을 마치더니 휴-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이어갔다.
“이 아비가 과단성 있고, 성격이 급하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과연 그럴 때가 있던가 싶을 정도로 약해졌어. 네가 전장으로 또 달려간다고 하니까 한쪽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구나.”
“어제 기를 건국했는데 이렇게 약해지시면 안 됩니다. 안량, 문추도 순수한 무예로는 제게 안 됩니다. 전투를 하더라도 누구도 제게 위해를 끼칠 적군의 장수들은 없을 것입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허허허- 호기를 부리는 모습은 내 젊은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았구나. 그래, 이 아비가 더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게 추태겠지. 그러지 않으마. 그런데, 그동안 책사 역할을 하던 가후, 순유가 모두 여기 업성에서 있지 않느냐? 그 문제는 어찌 해결할 것이냐?”
“부어사 서서를 데려갈까 합니다. 첩보를 관리하는 직책이니 허창성에 데려가서 그대로 일을 해도 됩니다. 가후나 순유에 비해서 경험이 부족하긴 하지만, 신중하고 지략이 풍부한 자입니다. 충분히 제 역할은 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원소는 원매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독이고는 그 후, 사적인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치소를 나온 원매는 곧바로 서서를 호출했다.
“찾으셨습니까? 전하.”
“그렇소. 이번 봄에 남쪽과 서쪽의 제후들을 토벌해야겠소. 그러려면 책사가 필요한데, 그대가 맡아보는 것은 어떻소?”
“영광입니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여 저하께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미리 준비를 해두시오. 준비되면 먼저 허창성으로 가서 주변 제후들의 상황을 낱낱이 파악하시오.”
서서가 예를 표하고 물러나자, 이번에는 기주자사겸 도독인 전예를 호출했다. 어찌 보면 전예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었지만, 그만큼 원매의 신뢰가 높다는 증거였다.
“전하! 부르셨습니까?”
“어서 오시오. 기주자사겸 도독에 오르고 보니 어떻소?”
“매우 과분한 처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과분하지는 않소.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니 그대가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하오. 기주가 무너진다면 모든 게 끝이니 말이오.”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아- 다짐을 받자고 부른 자리는 아니고, 이번 봄에 내가 남쪽으로 내려가서 전투를 벌일 생각이오. 지금은 이도독(이통), 기도독(기령)이 주축이 되서 움직일 테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되면 지원을 요청할 테니, 미리 준비를 해두시오.”
“명을 따르겠습니다.”
원매는 전예의 어깨를 두드리며 신뢰를 표시했다. 전예를 기주에 남겼으니, 설령 오환, 선비족이 마음을 바꿔먹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반란이 발발하더라도 충분히 수습할 것이다. 이런 부분이 원매가 홀가분하게 마음먹고 남정을 떠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