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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31화 (131/253)

# 131

제 131장. 이유李儒.

서서가 제일 먼저 받은 직책은 가후를 보좌하는 임무였다. 가후의 임무는 전략, 첩보수집이었는데 손대려고 하면 끝없이 일이 쏟아지는 업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서서라고 합니다.”

“어서 오게. 내가 가후일세. 하필 처음 임무를 고단한 것을 맡았어.”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단 이것부터 훑어봐. 그리고 오늘 중으로 느낀 점을 이야기해주게.”

가후는 탁자 위에 가득 쌓여있는 죽간을 가리켰다. 서서의 눈이 동그래지자, 그는 대단치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일단 능력을 봐야지. 불합격이면 바로 퇴출일세. 난 입으로 일하는 놈은 딱 질색이거든.”

“합격하면 어떻게 됩니까?”

“뭐가 어떻게 돼? 더 열심히 해야지. 절대 다른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일하게 될걸세.”

서서는 가후의 말을 듣고 뭔가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야 대놓고 착취를 하겠다고 선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가후가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빙긋 웃었다.

“잘해봐. 주군께서 자네를 내게 특별히 부탁했어. 제갈량도 잘하고 있으니, 자네도 잘하겠지. 주군께서 웬만하면 저런 부탁 안 하시거든.”

가후는 서서의 어깨를 툭- 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는 죽간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곧바로 업무에 매진하는 가후를 보며 서서는 죽간을 하나씩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죽간의 양은 대단히 많았고, 다른 제후들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기에 꼼꼼하게 읽고, 생각해야 했다. 그러니, 저녁이 되어 업무가 종료되었을 때도 읽어야 할 죽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어떤가?”

“어마어마하군요. 사실상 중원의 다른 제후들을 감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제후들도 모두 첩보조직을 운용하고 있지. 그런 두루뭉술한 내용 말고, 구체적으로 보고할만한 내용이 있는가?”

가후가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자, 서서가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열심히 읽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습니다. 아직 읽어야 할 죽간도 많이 남았고요. 시간을 좀더 주시면 모두 읽고 차분하게 정리하여 보고하겠습니다.”

“흐흐흐흐- 그렇지. 알지도 못하면서 공명심에 취해 떠들었다면 혼이 났을 거야. 그런 겸손하고, 신중한 마음을 잊지 말게. 그리고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저돌적으로 나서야 하네. 알겠는가?”

“명심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퇴청하게. 첫날부터 오래 붙잡을 수는 없지.”

서서는 좀 더 있겠다고 말하려다, 가후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는 예를 표하고 밖으로 나섰다. 그는 치소를 나와 조용히 걸으며 대신들과 종사관들의 표정을 살폈다. 표정이 다양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처소에 도착한 서서는 곧바로 모친을 찾았다.

“어머니, 처소는 어떻습니까? 불편한 것은 없습니까?”

“그전에 방랑할 때에 비하면 아주 좋아. 그래 일은 힘들지 않더냐?”

“처음부터 중요한 업무를 맡겨주셨습니다. 오늘은 처음이라 일찍 퇴청했지만, 내일부터는 늦게까지 일해야 합니다. 업무파악부터 할 일이 많으니까요.”

“그래. 옳은 생각이다. 이왕 시작한 것 최선을 다해서 높은 직위에 올라보거라. 그래야 돌아가신 네 부친께 면목이 서지 않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그날 밤 서서와 모친은 먼저 떠나간 부친을 그리며, 그리움을 담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서가 일을 시작한 지 며칠이 되었을 때, 가후는 원매에게 첩보정기보고를 드리고 있었다.

“유장의 세력에 장송, 법정을 간자로 심어놨으니 그 첩보조직도 잘 간수 해야 합니다. 그 위인들이 좀 방탕하고, 물욕이 많긴 하지만, 두뇌는 굉장히 명석한 자들입니다. 큰 힘이 될 것이니 잘 달래가면서 관리하세요.”

“제갈량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참, 서서는 어찌하고 있소?”

“명석하고, 성실합니다. 처음부터 첩보임무를 맡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자리를 잡고 앉으면 한눈팔지 않고, 죽간을 읽습니다. 아직 특별히 보고는 받지 않았는데, 지금까지의 행동만 본다면 합격입니다. 가끔 대화를 나눠봐도 뛰어난 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잘 키워보겠습니다.”

“부탁하겠소.”

원매는 싱긋 웃고는 가후의 보고서에 인장을 찍었다. 요즘은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리고 있었기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업성에서 황제 즉위식을 준비하는 것도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연주, 서주를 철저히 감시해서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었다.

가후를 돌려보낸 원매는 잠시 밖으로 나왔다. 그는 걸음을 옮기다가 무엇을 발견하고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계단에 앉아 있는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흰머리는 더욱 늘었고, 주름은 깊어진 상태였다.

“궁상맞게 혼자서 뭐하십니까?”

이유는 급히 일어나 예를 표하고는 다시 앉았다.

“그냥 옛 생각에 잠겼었습니다. 바쁘게 살 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참 부질없는 인생을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도 많이 죽였고, 욕심도 부렸고. 어찌 그리 모질게 살았는지.”

“오호- 오늘은 이별가답지 않군요.”

“흐흐흐- 하긴 이런 힘없는 모습보다는 악당처럼 구는 모습이 더 어울리겠군요.”

“그렇지요. 이별가는 강한 모습이 더 보기 좋습니다. 그런데,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특별한 일이야 있겠습니까? 요즘은 고문직으로 물러나면서 하는 일도 줄었는데요. 가별가나 순치중이 힘들다 그러면 몰라도, 제가 그런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나이도 있으시니, 천천히 일하고 건강을 돌보라고 고문직을 드린 것입니다. 고생했으니, 이제는 호사를 누리셔야지요.”

원매의 위로에 이유는 고개를 좌우를 천천히 흔들었다. 후회가 가득한 눈을 들어 원매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가 밥값이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또 이러십니까? 봉록이 부족합니까? 올려드릴까요?”

“흐흐흐- 농담이라도 고맙습니다. 그간 배려를 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백성들의 존경도 받아봤고, 관리들로부터 인정도 받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 은혜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이유는 예를 표하고는 말없이 그 자리를 떴다. 원매는 불길한 예감에 몸서리를 쳤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이유를 신경 쓰지 못했는데, 큰일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그는 고민하다가 곧바로 의원을 불러들였다. 의원은 원매의 입에서 이유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어 말을 잇지 못했다.

“왜 말을 못 하는가? 이별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말해보게.”

“그것이 머릿속에 혹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항상 두통을 달고 살았는데, 이제는 증상이 심해져서 가끔 혼절까지 하는 듯합니다.”

원매의 안색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심각하다는 것은 의원의 얼굴을 보고 알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네 이놈!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이것이 불치의 병이고, 이별가께서 절대 입 밖으로 발설하면 안 된다고 하셔서 그랬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의원이 급히 엎드려 부복하자, 원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잡념이 떠올랐다. 현대의학으로도 고치기 힘든 병이 틀림없다. 허무했다.

“일어서거라. 그럼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았느냐?”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6개월을 넘기기 힘드실 것입니다.”

“알았으니, 물러가.”

의원이 돌아가자, 원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직은 이유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그에게 의존했고, 관중/한중/서량의 일을 조정하는 데는 이유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그간 고생했으니, 이제 부와 명예를 누리게 하려고 했더니, 참으로 야속하시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이유를 찾았다.

“흐흐흐- 아니 주군께서 어쩐 일로 이 늙은이를 두 번이나 찾으십니까? 설마 제가 엉성하게 일하나 감시하려고 오신 겁니까?”

“그냥 왔습니다.”

자리에 털썩 앉은 원매는 다소 음울한 눈으로 이유를 바라보았다. 속마음을 숨기는 데 익숙하지 못한 그로서는 표정에 마음이 그대로 묻어났다. 이유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 알고 오셨군요.”

“언제부터 아팠습니까?”

“한 3~4년 되었습니다.”

이유가 한참을 바쁘게 일할 시기였다. 그 당시에 이유가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넘겼는데, 그런 부분이 후회되었고, 이유가 아픈 것이 자신의 책임인 것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말을 하시지. 참나. 나만 나쁜 사람 만들고.”

“주군. 이렇게라도 마지막에 좋은 일을 하고 가니, 저는 참 뿌듯합니다. 악인으로 죽지 않고, 기의 개국공신으로 이름을 올릴 것 아닙니까? 당장 죽는 것도 아니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십시오. 내년에 기를 건국하는 것을 꼭 볼 테니까요.”

“약도 잘 챙겨 드시고, 이제부터는 일도 그만하시오.”

“일을 그만두면 더 빨리 죽습니다. 적당히 욕심부리지 않고 하겠습니다. 이제 그만 표정을 푸시지요. 주군께서 이렇게 위로해주시니 제가 헛산 것은 아니군요. 흐흐흐-”

원매는 가만히 이유의 얼굴을 보았다. 확실히 수척해져 있었다. 그간 바빠서 제대로 확인을 못 한 것이 마음이 아팠다.

“업성에서 기를 건국하는 것은 꼭 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족들은 잘 보살피겠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약을 잘 먹고, 몸을 잘 챙기세요.”

“알겠습니다.”

원매는 이유에게 건강을 챙기라고 재차 당부한 후, 그의 치소를 나왔다. 바로 치소로 향하지 않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볼 때, 문득 조독이 떠올랐다.

고람의 군영에서 업성으로 돌아가다가 도적 떼를 만나 고초를 겪을 때, 조독이 기병 5백을 이끌고 왔고, 그때 얼마나 든든했던가? 조독은 그날 이후로 원매의 분신처럼 살았다. 가끔 급한 성정에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언제든 원매의 명령에 수긍하고 복종했다.

‘참, 사람의 일이라는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한순, 조독에 이어 이별가까지 내 곁을 떠나려 하다니. 무심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호방하게 웃던 조독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그래. 이번에 공신목록에 한순, 조독도 같이 올려야겠어. 그간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보살피기는 했지만, 이것이 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지.’

원매가 처연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사마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마음이 많이 아프십니까?”

“그래. 아주 많이.”

“이별가도 반드시 황제즉위식을 볼 것입니다.”

“그럴 거야. 사실은 한순, 조독이 생각났다네. 그래서 마음이 아팠지.”

“주군께서 그들의 가족들을 잘 보살펴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식읍도 2백이나 주었으니,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주군을 보고 있다면 좀 더 강한 모습을 원하지 않을까요? 하루빨리 천하통일 하는 것이 그들의 숙원을 풀어주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난세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죽을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렇지. 난세가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갔군.”

원매는 잠시 말없이 먼저 걷다가 사마구를 뒤돌아보았다.

“자네는 너무 빨리 내 곁을 떠나지 마시게.”

“저는 오래 살아남아서 호사를 누릴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억울해서 눈이라도 감겠습니까?”

사마구가 빙긋 웃음을 지었기에, 원매도 따라 웃었다.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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