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29화 (129/253)

# 129

제 129장. 제갈량 능력을 발휘하다.

익주 광한군 신도현.

제갈량은 일부러 오후 늦게 성도를 출발하여 저녁때가 되자 신도현에 도착해 쉴 곳을 찾아 객잔에 들어섰다. 좋은 자리를 잡은 제갈량은 몸을 정갈하게 씻고, 차분하게 성도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성과는 좋았다.

유장의 전력을 대부분 알아낸 것이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유장을 대처할지에 대해서 고민에 잠겼다. 얼굴이 수심이 가득했지만, 때로 밝아지기도 했으며,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어르신,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호위병이 아뢰자, 제갈량은 알 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으며, 죽간을 정리하곤 입을 열었다.

“드시라고 해라.”

“예.”

곧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키가 큰 젊은이가 들어섰다. 반듯해 보이는 용모였지만, 광대뼈가 지나치게 솟고 눈이 찢어진 것이 주위 사람을 상당히 피곤하게 만드는 유형일 것이라 추측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법정, 효직이라 합니다. 장별가(장송)로부터 연통을 받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저는 제갈량, 공명입니다. 자- 이리로 앉으시지요.”

“그럼. 실례 하겠습니다.”

법정은 제갈량이 가리키는 의자에 앉아, 그가 내주는 차를 조심스럽게 마셨다. 제갈량이 그를 유심히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익주목(유장)에게 불만이 많으시다고요?”

“장별가에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솔직히 저보다 훨씬 못한 놈들이 위로 올라가고 있는데, 저는 이곳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겨우 신도현령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일을 보러 태수부로 가면 그놈들이 저를 업신여기는데, 울화통이 터집니다.”

“그렇군요. 솔직히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알아보니 법효직께서는 큰 뜻을 품고 계시는데, 저희 주군을 따르는 것은 어떻습니까?”

“설마 형주로 가자는 말씀은 아닐 테고, 이곳에서 할 일이 있습니까?”

“역시 바로 알아들으시니 이야기를 하는 것이 편하군요. 사실 이대로 주군께 간다면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습니다. 다시 말해 높은 직책을 얻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주요정보를 파악하여 형주로 보내주십시오. 장사꾼들이 많이 오가니 가능할 것입니다. 장별가도 그리 협조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지요.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그런데 우장군께서 제게 어떤 식으로 확신을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갈량은 빙긋 웃으며 금두꺼비 한 마리를 꺼내서 슬쩍 밀어주었다. 법정의 두 눈은 순간 탐욕으로 물들었다.

“제가 다음에 또 올 것입니다. 만약,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저희 측 관리를 장사꾼으로 위장하여 주군의 친필이 담긴 죽간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제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법정은 빤히 제갈량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야지요. 여기서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모험적이긴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주군께서는 법효직을 절대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제갈량은 법정의 두 손을 꼭 쥐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밀담을 나눈 후 새벽이 되었을 때, 법정이 조심스럽게 객잔을 빠져나갔다.

제갈량은 장송에 이어 법정까지 원매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자 안심이 되었다. 그는 쏟아지는 피로감에 잠시 눈을 붙였다가 뜨니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급히 호위병들과 함께 주가를 타고 장강을 따라 형주 강릉성으로 내려왔다.

강릉성 원매치소.

“주군 다녀왔습니다.”

“고생하셨네.”

원매는 환한 웃음으로 제갈량을 맞이했다. 그가 잠시 성 주위를 걷고 있었기에 제갈량도 따라 걸으며 그간 파악한 것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원매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큰 표정의 변화 없이 묵묵히 들으며 걷고 있었다. 한동안 듣기만 하던 원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아주 골치 아픈 놈이야. 유비와 유장이 손잡으면 골치 아파지겠어.”

“그게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유장이 형님을 하겠다고 합니다. 자존심 강한 유비가 그걸 허락하겠습니까?”

원매는 잠시 하늘을 보며 뭔가를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자네의 단점은 너무 곱게 자란 것이야. 사람이란 말이야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자식까지 잡아먹는 법일세. 너무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뭔 짓을 할지 모르는 인간들이 세상에는 셀 수도 없이 많다는 말이지. 당장 죽게 생겼는데, 그까짓 자존심은 아무것도 아닐세. 자네처럼 많이 배웠고, 체면이 중요한 유학자들은 자존심이 매우 중요하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생각해두게.”

“제가 스스로 사고의 한계를 그어 놓았군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이 사람. 정색하지 말게. 자네는 정말 잘해주고 있어. 지금도 자네가 승상감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야.”

“계속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간자를 심어두었습니다. 인성이 그리 좋지 않아서 주요 보직을 꿰차지 못하고 한직에 머무는 자들인데, 놀라울 정도로 똑똑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설마 장송, 법정을 만난 것인가?”

제갈량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원매는 실언을 깨닫고는 어흠-하고 헛기침을 하며 다시 걸었다.

“장송과 법정이 맞습니다. 주군께서도 아는 인물입니까?”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네. 자네가 그리 했으면 잘한 거야.”

원매가 말을 안 하려고 했기에, 제갈량도 더는 캐물을 수가 없었다. 그제야 이유가 했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주군은 사람의 능력을 알아보는 묘한 재주가 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뒤를 따랐다.

원매는 이통을 강릉에 머물게 하면서 유비와 조조를 견제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또한, 이엄에게 수군육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 후, 제갈량을 데리고 허창성으로 올라왔다.

허창성.

원매가 돌아와서 순유를 호출 했다. 관직개편이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순유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전의 관직으로 할 때는, 서로 양보가 되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관직을 개편하면서 여러 직책을 신설했고, 그에 대해서 업성과 약간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매우 민감한 문제이니 주군께서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우리 측에서 조금만 욕심을 접읍시다. 그러면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오.”

원매의 말에 순유가 정색을 하고 진언을 올렸다.

“이미 많은 양보를 했습니다. 높은 직책은 7 대 3의 비율로 저들이 더 높습니다. 사실 여기에 대해서 관리들의 불만이 굉장합니다. 그들이 대의를 몰라서 불만을 터트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이제껏 고생했고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고 싶은 것입니다. 무조건 양보만 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관직은 한정되어 있고, 할 사람은 많으니 문제입니다.”

“내가 그 부분은 생각이 부족했군. 알겠소. 최대한 불협화음이 나오지 않도록 잘 배려해서 작성해주시오. 어차피 나중에는 내 세상이 될 것이니, 그런 것도 넌지시 알려주면서 처리해주시오.”

“알겠습니다. 형주에 갔다 오신 일은 괜찮았습니까?”

“뭐, 특별한 것은 없었고 생각도 못 했던 유장이 변수로 떠올랐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 생각하오.”

순유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진언을 올렸다.

“제가 촉군태수 직을 제수받아 익주로 가려 했기 때문에 그곳 사정을 조금 압니다. 유장이 그 아비인 유언을 닮았다면 굉장히 호전적이고 직선적일 것입니다. 또한, 물산도 풍부하고, 백성은 많으니 강병을 육성하기 안성맞춤입니다. 어쩌면 유비, 조조보다 어려운 상대가 될 수 있으니 방심하지 마십시오.”

“알겠소. 제갈공명이 그곳에 간자를 심어두었다고 하더이다. 허참...”

“대단하군요. 어린 나이지만, 정말 일 처리하는 것은 탁월합니다. 주군께서 승상으로 점찍은 것이 이해가 됩니다.”

“고맙소. 관직개편에 대해서 잘 마무리 지어 주시오.”

“예. 주군.”

순유가 물러나자, 원매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 세력이 커지자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았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강동 말릉성 주유치소.

부춘현에 모여있던 손씨들이 결국 뿔뿔이 흩어지며, 강동의 호족들이 주유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회계, 오가 완전하게 복속되었으며, 예장군에서 중립을 지키던 이이, 진무가 귀부를 해왔다.

“아직도 부족하긴 하지만, 일 년 정도만 강동을 확고하게 다진다면 확실하게 내 영토가 될 것이오.”

“그렇습니다. 이제껏 잘 참으셨으니, 조금만 더 참으시면 될 듯합니다.”

장소가 주유의 말에 동의하며 진언을 올리자, 주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런데, 조조와의 관계는 이대로 유지하면 되겠소? 그는 우리한테 도움만 받고 있지 않소이까?”

“옳은 지적입니다. 지금의 상태로 본다면 조조가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없다면 원매의 공격을 홀로 막아내셔야 합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 다소 힘들더라도 조금만 버티시면 다른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알겠소. 남아있는 손씨들은 어찌하면 좋겠소? 웬만하면 그대로 놓아두고 싶은데, 저리 반란까지 일으키니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소.”

“손익, 손권을 말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소. 손익 이놈은 무식하고 힘만 세니 그리 큰 위협은 아닌데, 손권이 불안하오. 아주 영특하단 말이오. 더군다나, 지금 광릉성에 있소이다. 내 생각엔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은데, 그대 생각은 어떠시오?”

“불안하시면 이곳으로 데려오시지요. 손익과 함께 이곳에 두고 감시하시면 큰일은 없을 것입니다.”

주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씨일이니 만큼 가능하면 독단적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신하들의 의견을 물어서 처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손책과 친구였던 만큼, 불편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런 일로 세간의 비난을 받는 것을 피해 보고자 하는 얕은 수이기도 했다. 그래도 신하들의 의견을 들어서 처리하면 비난이 나누어졌기에 주유의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서주 광릉군 광릉성.

주유로부터 말릉성으로 오라는 소환통보를 받은 손권은 하늘이 노래졌다. 그는 얼굴을 붉힌 채, 눈물을 흘리며 주유를 원망했다. 이때, 주치가 슬그머니 손권의 손을 잡아끌었다.

“왜 이리 바보처럼 굽니까? 이런 행동을 한다면 그의 감시는 더욱 강해질 테고, 결국 새장 속에 갖힌 새처럼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치의 강한 충고에 손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일단은 주군의 명을 따르시어 얼른 말릉성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충성을 다하시면 됩니다. 인생은 길고 깁니다. 언젠가는 냉정한 그도 실책을 할 것이고, 그것이 공자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주장군은 어찌 제게 이렇게 잘해주십니까?”

“아무리 주군의 유언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저는 어쩔 수 없는 손가의 사람인가 봅니다. 부춘현의 반란이 실패했고, 그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많이 괴로웠습니다. 이제 공자마저 잘못된다면 제가 어찌 선주군(손책)을 뵙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반란을 일으켜서 강동에 피해를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자를 도울 수 있을 때까지는 돕겠습니다.”

손권은 감격스러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주치의 손을 잡으며 재차 감사를 표했다.

다음날.

강동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손권은 의연한 표정으로 광릉성을 뒤돌아보았다.

‘치기 어리고 부족한 손권은 죽었다.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결단하며, 기다리고 살 것이다. 주장군(주유)! 당신 머리가 좋은 것은 알지만, 나도 부족하지는 않소. 내 결코 포기하지 않겠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