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제 126장. 이엄李嚴 정방正方.
원매는 이통의 수행을 받으며,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며칠을 달려가며 남군의 풍요로움에 감탄을 터트렸다.
“이곳을 애초에 유비가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겠지?”
“그렇습니다. 어떡하든 살아남는 생존근성이 뛰어난 자입니다. 그자가 형주목이었다면 ··· 휴-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그렇지. 아마 대단했을 거야.”
원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서 말을 몰아갔다. 3일을 달려가자 강릉성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던 이엄은 원매를 보자 깊숙하게 허리를 숙였다.
[이엄(36)] 무력:84, 지력:75, 정치력:76, 통솔력:83
유표, 유장 휘하에서 지방관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유비에게는 탁고대신으로 중용 받았다. 후에 제갈량을 배신하여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엄을 바라보는 원매의 시선은 담담했다. 능력만으로 본다면 문무를 겸비한 최상급 인재가 분명했지만,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하여 스스로 말년을 불운하게 만들 인물이었다. 촉의 제갈량도 이런 부분을 알아차렸지만, 극심한 인재부족에 시달렸기에 달래면서 쓸 수 밖에 없었다.
“이장군. 반갑소. 그대와 같은 뛰어난 장수가 내게 온다니, 참으로 기쁘오. 유목사에게 충성했던 것처럼 내게도 부탁하겠소.”
“명을 받들겠습니다. 자- 성으로 들어가시지요.”
이엄이 앞장서자 원매가 5백의 호위기병을 이끌고 천천히 뒤를 따랐다. 백성들이 길 옆으로 엎드려 두려움과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원매를 바라보았다. 원매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지나쳐갔다.
치소 안으로 들어가자, 이엄은 남군의 상황을 설명했고, 강릉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이장군을 말을 들으니 내가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자네가 강릉성에서 수군을 양성하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여기 이통에게 부탁하면 될 거야.”
“명을 따르겠습니다.”
이엄은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곧바로 충의롭게 대답했다. 원매는 단호한 표정으로 추가 명령을 내렸다.
“이번 수군을 양성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일세. 조금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야. 그런 부분이 잘 이뤄진다면 자네에게 더 높은 직책을 하사하겠네. 하지만, 그 부분을 게을리하여 나의 원대한 계획에 타격을 준다면 책임을 져야 하네.”
“물론입니다. 소홀함 없이 처리하겠습니다.”
원매는 매서운 눈빛을 거두고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인성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능력으로는 뛰어난 그였기에 잘 다독여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루를 강릉성에서 더 머문 원매는 이엄에게 다시 한번 수군양성에 대해서 강조를 한 후, 무릉군 치소가 있는 임원성으로 향했다.
강릉보다 훨씬 큰 임원성을 보자 원매는 입이 딱 벌어졌다.
“한때 형주의 치소였다더니 과연 그럴 만 하구나. 참으로 대단해.”
감탄을 터트리고 있을 때, 멀리서 유망지가 종사관들을 데리고 달려왔다. 그는 급히 예를 표하며, 원매를 반겼다.
[유망지(40)] 지력:75, 정치력:70
유표에게 진언을 올리다 모함을 받아 살해되었다. 진수는 ‘맑은 견식으로 저명했다.’고 평했다.
“유태수. 반갑소. 무릉군이 반쪽이 났으니 안타깝구려. 그대가 볼 때, 남쪽에 위치한 유비군은 어떻소?”
“관우, 장비가 약 3만 정도를 이끌고 들어왔는데, 매우 정예군입니다. 주군께서 보낸 병력들이 제때에 오지 못했다면 유비에게 이곳도 넘어갔을 것입니다. 북쪽이라도 남겨서 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무릉군 남쪽은 산이 험하고 산월족이 많아서 크게 득 될 곳이 없습니다. 이곳 북쪽이 중심지이니, 크게 손해를 본 것은 아닙니다.”
“그렇군.”
원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망지의 진언에 동의했다. 그의 진언은 계속 이어졌다.
“이곳은 서쪽으로 익주 건위군과 접하고 있습니다. 만약 유비가 유장과 접촉하여 도움을 얻으려고 한다면 건위군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지형이 워낙 험하고 이민족들이 분포하는 광범위한 지역이라서 큰 도움을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실 익주와의 교통은 강수(장강)를 따라서 파군-성도로 이어지는 교통로가 제일 좋습니다. 그곳은 주군께서 장악하고 계시니, 사실상 유비와 유장의 연결통로를 막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구려. 사실 유장과 유비가 손잡을 까봐, 아니 유비가 익주를 점령할 까봐 좀 꺼림직한 부분이 있었소. 지금의 말을 들으니 참으로 안심이 되오.”
“유장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를 우둔하다고 손가락질 하지만, 만만히 보시면 안됩니다. 그가 조용하게 웅크리고 지내는 연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분명히 칼을 뽑아 들것입니다.”
원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알기로 유장은 좋게 말하면 사람이 좋았고, 나쁘게 말하면 어리숙했다. 그런데, 유망지가 전혀 새로운 평가를 내놓은 것이다. 익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무릉군 태수로서 오랫동안 지켜봐 온 것이니 의견이 틀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뭔가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유장마저 속을 썩이면 안 되는데. 그곳은 지형이 험해서 골치가 아프단 말이야.’
원매는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유비, 조조, 주유를 무너뜨리면 유장 정도야 회유나 협박을 해서 끝내겠다는 심산이었는데, 듣고 보니 이놈도 괴물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까지 본심을 숨기고 조용히 있는 거라면 더욱 무서운 적일지도 몰랐다.
원매는 고개를 흔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떨궈냈다. 닥치지도 않는 위험에 대해서 미리부터 걱정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망지를 들여보내고는 사마구, 조운을 거느리고 망루에 올라 멀리 보이는 장사군과 무릉군 남쪽을 꼼꼼하게 훑어보았다. 그래도 유비가 얻은 땅이 개발이 덜된 지역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주군. 이 기회에 유비를 공격해서 지도상에서 없애버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조운의 당당한 진언에 원매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좋은 생각이야. 당장이라도 허창성의 군대를 불러모아 유비와 조조를 격파하고 싶네. 하지만, 겨우 6개월도 안 남았어. 큰 일을 앞두고 무모한 전투를 벌이는 것은 곤란해. 그래서 자제를 하는 것이야. 참, 자네는 유비를 잘 알겠구만.”
“제가 공손태수(공손찬)휘하에 있을 때부터 따뜻한 위로도 해주고, 인간적으로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의협출신으로 결단력도 대단하고, 필요할 때는 상당히 냉정해집니다. 제후로서 가져야 할 성품은 잘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말 잘했어. 한가지가 빠졌군. 그것은 인내심이야. 고래 쇄심줄 같은 인내심을 가지고 있지. 한번 전쟁을 벌이면 쉽게 안 끝나. 그래서 기를 건국한 후에 승부를 걸려고 하는 것이지. 이제 내 뜻을 이해했는가?”
“예. 주군.”
“사마아장!”
“예. 주군!”
“자네가 볼 때, 조조와 유비 중 누가 더 위험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가?”
“주유는 아예 배제하십니까?”
“나이가 어리니까. 똑똑하긴 한데, 한계가 분명하지. 영토도 그렇고.”
“저는 조조가 더욱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비도 뛰어난 인물이고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조조에게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풍부한 책사와 관리들입니다. 사실 유비나 주유가 조조에게 밀리는 부분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조조가 더 두려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원매는 사마구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자 싱긋 웃으며 어깨를 다독였다.
강하군 조조치소.
조조는 강하군을 점령한 후, 서릉성에 임시로 치소를 설치한 후, 원매와 유비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서릉성을 함락하고, 주위 현령들을 항복시키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유비군 움직임을 살피면서 남군으로 군대를 움직이려는 시기에 원매가 유종을 항복시키고는 불쑥 들어왔다.
“햐- 일이 꼬이는 건지. 일해서 돈 버는 놈, 돈 쓰는 놈 따로 있다더니. 내가 죽도록 싸워서 여강, 강하군 얻으니까 이 죽일 놈이 슬그머니 남군을 꿀꺽해버리네. 나 참, 기가 차서.”
조조는 남군과 무릉군 북쪽을 원매에게 빼앗긴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입맛을 다셨다.
“주군. 여강, 강하군을 얻었으니 여기서 만족하시지요. 개발도 안된 남쪽으로 밀려난 유비는 지금 분통이 터질 것입니다. 남군까지 얻었으면 좋겠지만, 원매가 워낙 발 빠르게 움직였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순욱이 위로하자, 조조의 표정도 풀어졌다.
“그렇지. 얻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지. 덕분에 확실히 그전보다 안정된 전력을 유지할 수가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순문약! 유종과는 동맹을 맺거나 그 땅을 뺏으려는 게 원래 계획이었잖아. 이제는 주유만이 동맹인데, 내년에 원매를 상대할 수 있을까?”
“해봐야지요. 남쪽은 북쪽과 다릅니다. 늪과 호수, 강이 많지요. 기후도 습기가 많고 덥고요. 원매가 어찌 나올지 모르지만, 그도 분명히 고생을 할 것입니다. 일단 주유와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군대를 전력을 다해 육성해야 합니다. 매우 어려운 싸움인 것은 분명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 끝까지 버텨야지요.”
“답답하군. 천하의 조조가 이렇게까지 한탄을 하게 될 줄은 진정 몰랐어.”
“강하게 마음을 먹으십시오.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기회가 옵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이제 4개군을 거느리게 되었는데, 군량은 어떻게 되는가? 부족하지 않겠는가?”
“여강은 유비가, 강하는 황조가 잘 가꿔놓았습니다. 주군께서는 이번 가을에 추수만 하면 되니 참으로 운이 좋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농토를 잘 관리하면 군량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 두 개를 빼앗긴 유비는 분통이 터질 뿐만 아니라, 군량도 부족하다 이거군.”
“그렇지요. 꽤나 고생할 것입니다. 당분간 강하군에서 머물면서 주변의 동향을 파악하겠습니다.”
조조는 순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와 성을 거닐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 여강군을 공격할 때는 기분이 좋았다. 빠르게 강하군까지 점령했고, 유비를 장사로 쫓아냈을 때는 형주를 모두 차지하겠구나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주유에게 유비를 치게 하고, 자신은 유종을 쳐서 형주 대부분을 차지하려던 계획은 원매의 개입으로 무산된 것이 못내 아쉽고 또 아쉬웠다. 이런 좋은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기에 아무리 좋게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종종걸음으로 훈련장으로 향했다. 서릉성 외곽의 넓은 벌판에서는 한창 병사들의 강훈련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략 6만에 육박하는 보병들은 장수들의 호령에 맞추어 힘겹게 훈련을 소화하고 있었다.
조조가 나타나자, 장수들이 군례를 올리고는 훈련에 전념했다. 이들을 총 지휘하고 있는 조인이 대표로 조조에게 군례를 올리고는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7만이 조금 안됩니다. 약 3만이 신병과 항병인데, 적어도 두 달은 독하게 훈련시켜야 정예병으로 거듭날 듯 합니다.”
“그래. 그건 자네에게 모두 맡기지. 그 여강에서 항복한 진취는 어때? 쓸만해?”
“용맹이 대단히 뛰어난 것도 아니고, 지략이 좋지도 않습니다. 그저 5천 에서 7천정도의 군사를 거느리고 전투를 할 정도는 됩니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시면 안될 것 같습니다.”
“아깝군. 제대로 된 한 명의 장수가 아쉬운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황조가 아까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훈련하는 병사들을 지켜보았다. 그에게는 아직 뛰어난 장수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었지만, 원매를 상대하고 보니 장수면에서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멀리서 북을 치며 강훈련을 시키는 장료가 눈에 들어왔다. 그를 보자 조조의 눈매가 선해졌다.
‘원매에게 유일하게 이긴 게 장료를 뺏기지 않은 것이로군. 영토마저 모두 빼앗겼는데, 장료마저 빼앗겼다면 분통이 터져서 잠을 못 이뤘을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