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25화 (125/253)

# 125

제 125장. 서천의 우둔한 용.

형주 장사군 유비치소.

전령으로부터 소식을 들은 유비는 얼굴이 하얘졌다. 유종을 압박하면 더 많은 영토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원매라는 변수가 생긴 것이다.

“이런 멍청한 놈을 보았는가? 제대로 싸워볼 생각도 못하고 원매에게 넙죽 엎드려 꼬리나 흔들다니?”

유비는 중얼거리면서 치소 안을 서성거렸다.

“이를 어쩐단 말인가? 만약 원매가 대군을 이용해서 공격한다면 지금은 상대하기 힘들다.”

그는 갑자기 치소를 벗어나 방통에게로 달려갔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군신간의 예절 따위는 집어 던졌다. 방통은 치소로 숨가쁘게 들어오는 유비를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주, 주군. 어인 일이십니까? 아-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휴-”

털썩-

의자에 엉덩이를 걸친 유비는 불안한 눈을 들어 방통을 바라보았다. 방통은 재빨리 머리를 회전시키며 조심스럽게 반대쪽 의자에 몸을 기댔다.

“원매군 때문에 그러십니까?”

“어쩌면 좋겠어? 지금의 군사력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야. 곽도는 더 이상 믿음이 안가. 자네가 계책을 내봐.”

“사실 유종이 너무 빨리 원매에게 항복했습니다. 아마도 채모, 괴월등 대호족들의 뜻이겠지요. 이제 10살인 그가 뭘 알겠습니까?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 내려온 병력이 5만 정도입니다. 추가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제 생각으로는 올해는 전투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음- 원소가 황제에 오른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것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큰 일을 앞두고 대규모 전투를 벌이거나 공사를 일으키는 무모한 일은 고래이래도 없었습니다. 일단은 힘을 키우는데 총력을 기울이십시오. 올해는 없더라도 내년에는 반드시 큰 전투가 일어날 것입니다. 앞으로 일년이 주군에게 제일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유비는 안심이 된 듯, 의자에 편하게 등을 기댔다.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오는 듯 관자놀이도 지끈거렸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문지르다가 한가지 생각이 들어 입을 열었다.

“일년을 단단히 준비하면 막을 수 있을까?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가진 땅이 넓긴 한데, 아직 개발이 덜되었어. 산월족도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고. 그리고 지형도 대부분 평탄하니 아무래도 불안해.”

휴우-

방통도 짧게 탄식을 터트렸다. 같은 부분을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부분은 저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내년까지 준비를 하더라도 과연 막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조조와 주유가 발벗고 나서서 도와준다면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처럼 조조는 믿기가 힘듭니다. 그렇다면 다른 쪽을 생각해봐야 하는데 ···”

유비는 군침을 꿀꺽 삼키며 방통의 입만 바라보았다.

“서천(익주)을 정벌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사실 이게 모험수라서 그간 추천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서천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방어에 매우 유리하고, 안쪽으로 넓은 평야가 자리잡고 있어서 물산이 풍부합니다. 소금, 철도 풍부하니 국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유장이 우둔하다고는 하나, 그게 가능할까? 그렇게 방어에 유리하다면, 내가 공격할 때도 매우 어렵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유장도 원매의 영토가 급팽창하는 것을 깨닫고 불안해할 것입니다. 그러니 주군께서 유장과 우호를 다져놓으시면서 익주를 염탐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원매의 공격으로부터 익주를 보호해주겠다고 설득을 하셔야지요. 그것만 성사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계책은 제가 짜놓겠습니다.”

“그래. 내가 한번 힘을 내보지. 장강을 원매가 장악하는 바람에 서천으로 가는 길이 매우 어려워졌어.”

“어쩔 수 있습니까? 산을 넘어서 건위군을 통해서 성도로 가야지요. 오히려 건위군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유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는 방통의 치소를 빠져 나왔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서천정벌이라? 서천을 얻기만 한다면 좋기는 한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자, 꼬리를 물며 일어나서 그를 괴롭혔다. 그는 좌우로 머리를 흔들고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의협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편안함을 얻고자 여기서 멈춘다면 내게 돌아오는 것은 허무한 파멸뿐이다. 도전한다. 설령 그 끝이 죽음일지라도 도전한다!’

익주 성도.

성공영은 성도에 도착하자,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대신들을 만날 때마다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촌뜨기처럼 어설프게 두리번거렸다.

“서량보다는 볼게 많지요?”

유장의 지시로 성공영을 맞이하러 나온 비관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같이 내뱉었다.

“하하- 제가 서량 촌 사람이라서 ··· 아무튼 굉장하군요.”

“너무 낮추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대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비관의 날카로운 눈빛에 성공영은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이곳이 번화하니 놀란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너무 과장되게 행동했군요.”

“네. 지금의 당당하신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자- 가실까요? 주군께서는 한장군(한수)에게 두려움 반, 호기심 반 가지고 계십니다. 서량의 각종변란에는 한장군이 개입된 것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원매에게 밀려서 힘들게 고생하시다가 의지를 하러 내려오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런 부분을 잘 생각하시어 주군을 설득하시면 무난하게 그대의 뜻대로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찌 처음 보는 제게 이런 귀한 조언을 해주십니까?”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너무 조용하니 따분했습니다. 앞으로는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아서 매우 기쁩니다. 대답이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비관은 빙그레 웃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성공영은 그제야 익주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음을 실감했다.

유장치소.

성공영은 치소로 들어서자 허리를 깊숙이 숙여 예를 표하고는 고개를 천천히 들며 유장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적당히 살이 찌고, 키가 작은 볼품없는 외모. 후덕한 외모를 지녔지만, 결코 잘생겼다고 볼 수 없었다. 문제는 길고 가늘게 찢어진 눈이었다.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불길한 눈이었다.

“어서 오시게. 한장군께서 보내셨다고?”

“예. 그렇습니다. 원매가 군량으로 압박을 하는 통에 매우 고생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굶어 죽느니 차라리 유목사께 의지하고 싶어서 한걸음에 이곳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렇구만. 한장군은 동물로 치면 늑대야. 수많은 늑대를 거느린 거칠고, 흉폭한 우두머리 늑대지. 지금은 굶주렸기에 내가 주는 밥이라도 꼬리를 흔들며 감사를 표하겠지만, 배가 부르고 난 후에도 과연 마음이 같을까? 솔직히 걱정이 되는군.”

유장은 탐색전 없이 곧바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다행이 비관에게 들어서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성공영도 차분하게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아무리 흉폭한 늑대지만,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순한 개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순한 개라? 아하하하하-”

유장은 고개를 젖혀 웃음을 터트리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그는 눈에서는 살기인지 뭔지 모를 안광이 흘러나왔고, 성공영은 가슴을 졸이며 유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무리 다급하다지만 한장군이 순한 개가 되겠는가? 자네의 말이 지나치군.”

“의심이 된다면 단단한 줄로 묶어 놓으셔도 됩니다.”

“단단한 줄이라?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력을 쪼개 놓는 것이지요. 남쪽, 동쪽, 북쪽으로 나누어서 갈라 놓고 경계를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설령 다른 마음을 먹었더라도 세력이 갈라져 약해졌으니 반란을 일으키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이제 유목사를 보니 전투를 하더라도 한장군이 감히 적수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네 혓바닥이 아주 달달하군. 내가 생각을 해볼 터이니, 이곳에서 며칠 푹 쉬었다가 가시게.”

“예. 명을 따르겠습니다.”

며칠을 머무른 성공영은 유장으로부터 한수가 익주에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을 얻고, 서량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 험한 산골짜기를 따라 서량으로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유장도 만만치 않았지만, 비관, 장송, 법정, 오의. 모두 좌시할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묘한 일이로다. 어째서 유장이 우둔하다고 소문이 퍼졌을까? 어째서 익주에서 웅크리고 그대로 있었을까? 지금 보니 가슴 깊숙이 흉폭한 성정을 감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거 호랑이를 피하려다 삵을 만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성공영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진저리를 쳤다.

양양성.

원매는 호위기병을 이끌고 번성에서 배를 타고 양양성으로 들어섰다. 거대한 양양성은 참으로 절묘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삼면이 한수에 둘러싸여 있었고, 뒤쪽으로는 산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제껏 본 성 중에서 가장 공략하기 어려운 성이로구나. 수군까지 강하지 않으면 절대 공략할 엄두를 내지 못하겠어. 이런 어려운 성을 거저 얻고, 남군까지 획득했으니 유비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기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양양성으로 이동할 때, 유종을 위시하여 채모, 괴월들 대신들이 모두 마중을 나와 도열하고 있었다. 원매는 말에서 급히 내렸다.

“이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나오시다니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존안을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유종의 인사에 대신들이 일제히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원매는 유종의 손을 잡아 흔들며 격하게 반가움을 표했고, 나와 있는 대신들과 모두 악수를 하며 위무하는데 집중했다. 대신들은 한번이라도 원매에게 눈도장을 찍으려고 노력했다. 원매는 다소 번잡할 수 있는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자- 안으로 들어갈까요?”

원매가 앞장서자, 채모와 괴월이 지근거리 보좌를 하며, 수행했다.

“괴별가, 채호군의 충심은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소.”

“참으로 광영된 말씀이십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채호군께서는 형주를 잘 아시니 이곳에서 유목사를 잘 보필해주셔야 하오이다. 형주는 채호군만 믿겠소이다.”

“걱정 마십시오.”

“괴별가께서는 나와 함께 허창성으로 가시지요. 내년부터 관직이 개편될 터인데, 제가 중앙 쪽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 놓겠소이다.”

“감사합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채모와 괴월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마치자, 원매의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그들의 충심을 얻는 것이 제일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문득 생각난 듯, 채모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나중에 틈을 봐서 형주목을 제수할 터이니, 그리 알고 지금 유목사를 도와서 형주를 다스리는데, 최선을 다해주시오.”

채모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원매는 유종을 동생처럼 여기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그의 처지가 볼수록 안타까웠고 동정이 일었지만, 그뿐이었다. 난세를 살고 있는 한 명의 야망가로서 더 이상의 감정은 사치였다.

첫째날은 양양성에서 유종을 비롯한 대신들과 환담을 나누고, 주연을 가지며 그들을 달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런 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이통을 찾았다.

“내가 좀 늦었네. 서운하지 않으신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갈수록 주군의 정치력이 더해지는 것 같아서 저는 매우 기쁩니다.”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군. 상황을 보고해주겠는가?”

“예. 현재 남군을 온전히 점령했고, 무릉군도 북부지역은 확보했습니다. 유비는 우리가 군대를 이끌고 진군해오자, 무릉군 남쪽에 머물면서 더 이상의 진격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격에서 방어로 전환한 모양새입니다.”

“자네 생각하기에 유비는 어찌 나오리라 생각하는가?”

“형주 남쪽이 개발이 덜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불안하겠지요. 형세를 관망하며 힘을 키울 것입니다.”

“다른 생각은?”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곧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시오. 내년에 아버님의 황위등극이 있기에 가능하면 전투는 피하고, 첩보를 수집하여 요령껏 대치하시오.”

“알겠습니다.”

원매는 이통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고, 양양성에서 며칠을 더 머무른 후, 남군과 무릉군 북부지역을 순시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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