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제 122장. 반란을 진압하다.
“주군. 여기는 상장 한 명을 남겨두어 마무릴 지으시고, 어서 강하군으로 진군하시지요. 아직 유비가 군을 돌려 되돌아오는 낌새는 없습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홍과 1만, 부상병을 여강군 서현에 남겨두어 마무리를 당부하고는 5만 5천을 이끌고 강하군으로 진격했다. 여강군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성들을 그대로 놓아둔 채, 치소가 있는 서릉성으로 곧장 진격했다.
조조가 5만 5천의 대군으로 서릉성을 포위했을 무렵, 유비에게도 조조의 침공소식이 전해졌다. 곽도는 그 소식을 듣고는 얼굴이 하얘졌다. 조조의 공격은 없을 것이라며 단언했는데, 어이없이 여강군을 빼앗겼고, 강하군까지 공격을 당하는 중이었다.
“곽부군사! 자네 입으로 설명해보게.”
유비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지만, 말투는 날카롭게 곽도의 온몸을 찌르고 있었다.
“소신이 오판을 했습니다. 즉시 군대를 돌리셔야 합니다.”
“야 이 멍청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조조가 5만이 넘는 군대를 이끌고 왔어. 3만을 되돌리면 겨우 얻은 장사, 영릉, 계양은 날아가. 더군다나 3만으로 조조군을 물리친다는 보장도 없고. 뭐야? 한번 당하고 나니까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거야?”
“주군. 소신이 오판을 하긴 했지만, 그간의 공이 있습니다. 이건 인신공격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곽도가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 갑자기 주변이 새카매지며 노란 별이 반짝였다. 그 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퍽! 퍽!
유비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방통이 급히 말리고 나서야 그의 구타가 멈추었다.
“야 이 개자식아- 지금 여강, 강하 두 개 군을 빼앗기게 생겼어. 그런데 그딴 소리가 나와? 뭐? 인신공격이 너무 심해? 아주 죽여줄까?”
유비가 길길이 날뛰며 분노를 터트리자, 곽도는 납작 엎드렸다. 잘못했다가는 목이 달아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비의 분노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화가 좀 누그러졌는지, 그는 자리에 털썩 앉아 술을 입에 쏟아 부었다.
“방군사. 어찌하면 좋겠어? 내가 자네 말을 듣지 않고, 저놈 말을 들은 게 뼈저리게 후회되는군.”
방통도 당장 계책이 떠오르지 않자, 난감했다. 조조가 이렇게 빠르게 여강군을 점령하고, 강하군까지 진격할 줄은 그도 생각하지 못했다. 최악의 경우로 조조의 공격을 산정했지만, 이것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쯧쯧- 자네도 대책이 없는가 보군. 역시 어리고 경험이 없는 게 자네의 단점이야.”
“주군. 장사군을 지키셔야 합니다. 서릉성이 견고하니 지키기만 한다면 나중에 틈을 보아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그 정도 생각은 나도 할 수 있어.”
“지금으로서는 병력차이가 너무 커서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장사, 영릉, 계양을 안정시키는데 주력을 하시고, 강하군의 틈을 보십시오. 현재로서는 그것이 최선이라 사료됩니다.”
“빌어먹을! 할 수 없지. 방군사가 곽부군사를 데려가서 치료해줘!”
곽도는 방통의 부축을 받으며 물러났다. 그의 두 눈에서는 쉴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이빨은 앙다물어져 있었다.
유비와 조조가 군대를 움직였을 무렵, 조조의 지원을 약속 받은 유평은 연주일대의 대호족들과 연계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 당시 호족의 힘은 어마어마했는데,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번 반란군의 규모는 십만으로 추산되고 있었다.
허창성 원매치소.
원매는 가후로부터 보고를 받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얼굴에는 제대로 당했다는 낭패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유비가 장사군을 쳤고, 조조는 여강군, 강하군을 공략하고 있다 이거지요? 나는 연주반란군을 처리해야 하니 꼼짝도 못할 테고.”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가후는 싱긋 웃음을 짓고는 다시 진언을 이어갔다.
“계속해서 형주에서 첩보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조조는 여강군을 점령했고, 강하군을 포위했는데 유비가 되돌아 와서 구원할 여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번 전투를 통해서 조조는 여강, 강하군을 얻고, 유비는 장사, 계양, 영릉군을 얻을 것입니다. 문제는 무릉군입니다. 유비는 잃어버린 영토를 만회하기 위해서 무릉군을 얻으려고 할 테고, 유종은 이를 막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유종을 언제 설득하는 것이 좋겠소? 곧 아버님께서 황위에 오르실 터인데, 전쟁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소이다.”
“지금은 유종이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비가 무릉군을 점령하고 압박을 하면, 괴월, 채모가 유종에게 항복을 권유할 것입니다. 그때 남군을 얻으시면 됩니다. 반드시 그리 될 터이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참, 제갈량이 괴월과는 인척관계이니 소칙과 함께 움직이라고 하시오.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가별가 생각은 어떠시오?”
“괜찮은 생각입니다. 그리 추진하겠습니다.”
“남쪽은 그리 추진하고, 연주의 반란군은 처벌해야지. 생각해둔 계책이 있으시오?”
“저들이 십만의 규모라고 하지만, 대부분 호족들의 사병이고, 농민들입니다. 한번 전투를 벌여서 기세를 꺾어 놓으면 자동적으로 소멸할 것입니다. 상장에게 병력을 딸려 보내서 전투를 하게 하시지요. 굳이 주군께서 움직이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원매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치며 생각에 잠겼다. 이런 저런 생각을 거듭하다 방침을 굳히고는 입을 열었다.
“알겠소. 가별가께서는 형주에 더 신경을 써 주시오. 반란군 정도는 뛰어난 장수를 보내서 내가 해결하겠소.”
“명을 따르겠습니다.”
가후가 물러가자, 원매는 장합, 기령을 호출했다. 전예가 제일 믿음직스러웠지만, 계속 전예를 쓸 수 없는 노릇이어서 예비대로 남겨두었다.
눈치가 빠른 장합과 한때 원술의 상장을 했던 기령은 원매가 호출을 하자, 오면서 이런 저런 상황을 알아봤다. 그들은 원매의 치소로 들어왔을 때 매우 밝은 표정이었다.
“자네들 얼굴표정을 보니 내가 왜 불렀는지 아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연주의 반란군을 척결하는 임무를 저희에게 내리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자- 이리로 앉으시게.”
장합과 기령이 자리에 앉자, 원매는 차를 따라서 한잔씩 밀어주고는 이야기를 꺼냈다.
“십만쯤 되는데, 농민군이거나 사병이니 크게 어려운 전투는 아닐 것이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스럽게 전투를 치르면 크게 피해를 입는 일은 없을 것일세. 자네들에게 각각 보병 4만, 기병 5천씩 주겠네. 동등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상장은 기장군이야.”
기령의 얼굴은 환해졌다. 드디어 원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머리가 좋은 장합은 굳이 싫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장장군. 자네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 자네가 뛰어난 장수이기에, 이렇게 독립적인 부대를 운용할 수 있게 보내는 것이야. 아시겠는가?”
“물론입니다. 전 아무렇지도 않은데 괜히 혼나는 기분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기장군과 의논을 하며 반란군을 격멸시키겠습니다.”
원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령을 바라보았다.
“기장군. 한때 원공로(원술) 휘하에 있을 때, 자네가 상장을 했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믿고 이렇게 일군을 맡기는 것이니 반드시 저들을 일망타진해야 하네. 막강한 권한 뒤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법일세. 그러니 신중하게 작전을 입안하고, 적을 격멸하게.”
“명심하겠습니다. 이렇게 인정을 해주시는데, 어찌 소홀히 하겠습니까? 만약 실패를 한다면 제 목을 내놓겠습니다.”
기령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시키지도 않은 군령장을 작성했다. 장합은 잠시 억울한 표정을 짓다가 군령장을 썼다. 원매는 군령장을 받아 서랍에 보관하고는 방덕과 송과에게 기령과 장합을 따라 출전할 것을 지시했다.
기령은 치소를 물러나와 장합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 친분이 있지도 않았고, 이렇게 공동으로 작전을 펼치는 것도 처음이었다.
“장장군. 잘 부탁하오. 이번에 주군의 명으로 내가 대장이 되었지만, 큰 틀을 만들 때를 빼고는 장장군이 독립적으로 부대를 움직일 수 있도록 재량권을 주겠소. 우리 힘을 합해서 반드시 반란군을 끝장내 버립시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명령을 내리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사분란 하게 군을 움직여 반란군을 격파하는 일이니까요.”
기령이 먼저 수그리자, 장합도 자세를 낮추었다. 기령은 방덕, 송과와도 인사를 나누고는 곧바로 총 9만의 대군을 이끌고 허창성을 출발했다.
현재 연주반란군은 유평의 본거지인 동평국, 산양군, 제음군 일대를 휩쓸고 있었는데, 초반의 기세가 대단했다. 조조가 남쪽에서 교란해줄 것을 확신했는지, 거칠게 관청을 습격하고 현령을 죽이는 등 돌아올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끊어 버렸다.
연주 제음군 정도현.
유평은 이곳에 5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주둔하고 있었다. 그는 사방에 전령을 보내어 현령에게 항복을 종용하고 있었다.
“조장군(조조)이 남쪽에서 공격을 하고, 내가 연주를 장악한 상태에서 버틴다면 원매 네놈도 결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네놈의 시커먼 속을 호족들이 모두 아니, 곧 구름처럼 많은 호족들이 나를 지원할 것이다.”
유평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일부 현령은 성에 틀어박혀 항복하지 않고 버텨서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호족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장군.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적어도 6만은 넘어 보입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부하장수가 급히 보고를 하는 통에, 유평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이놈들 이번에 끝장을 내주마!”
유평은 소리치고는 급히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대군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좀 이상했다. 치중을 실은 수레를 앞세우고 전진하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것들을 보았는가? 내 살다 살다 치중을 앞세우는 놈들은 처음 보는구나. 볼 것도 없다. 공격하라!”
유평의 명령에 공격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5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대형을 갖추어 공격을 개시했다. 유평군이 가까이 다가갔지만, 치중을 앞세운 원매군은 대형을 바꾸지 않았다.
우아아아아-
유평군이 달려들자, 기령군은 초반에 접전을 벌이다가 치중을 버리고 냅다 도주를 했다. 쌀과 재물들이 쏟아지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병사들이 그것을 줍고, 싸우면서 대형이 흐트러졌다. 이때쯤 되자 아무리 경험이 부족한 유평이었지만, 불길한 느낌이 들어 급히 후퇴를 명령했다.
징-징-
연달아 징을 쳤지만, 정규군이 아닌 유평군은 빠르게 태세전환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징소리에 빠르게 반응을 한 것은 기령군이었다.
“공격하라!”
둥둥둥둥둥둥-
계속해서 울리는 북소리에 뒤에 숨어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 나와 교전을 벌였다. 처절한 접전이 벌어졌고, 유평군이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빠드드드득-
유평은 이를 갈며 예비로 빼놓았던 3만을 앞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 유평에게는 5천이 남아 있었다. 초조하게 전투를 지켜보며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4만 5천을 앞세워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확연하게 기령군에게 밀리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유평은 손톱을 질겅질겅 깨물었다. 깊은 고민을 할 때마다 나오는 그만의 독특한 버릇이었다.
‘제발 이겨야 할 텐데. 조조군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버터야 해!’
으아아악- 크악-
갑자기 유평 주위에서 비명이 터졌기에 그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슨 일이냐?”
“크 ··· 큰일났습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기병이 기습했습니다. 장군 어서 피하십시오.”
그제야 유평의 눈에 방덕, 송과가 이끄는 기병들이 자신의 병사들을 학살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유평군은 당연히 대부분 보병이었기에 정예기병 1만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유평은 망설임 없이 호위기병을 거느리고 달아났다. 그는 내달리면서 계속해서 뒤를 돌아다 보았다. 방금 전에 있었던 곳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고, 먼지 속에서 끊임없이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렇게 도망을 치다니. 크흑-”
유평은 눈물을 쏟으며 전력으로 도망쳤고,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군사부분에 대해서 무지하고, 안일하게 처신했던 가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