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제 121장. 물고 물리는 전투.
유비는 조조나 원매가 군을 움직이는 징후가 보이지 않자, 작전을 개시했다. 먼저 누각선 한 척과 주가 10척으로 진도, 장비, 관우, 정예병 3백을 싣고, 장사군 치소가 있는 임상현으로 향했다. 강하를 손건에게 2만을 주어 지키게 한 후, 3만을 하루 시간차를 두고 장사군으로 향하게 했다.
강수(장강)를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유비의 표정은 평온했다. 오히려 장비나 관우의 표정이 굳어서 유비에게 지적을 받았다.
장사군 태수인 유반은 유호와 황충을 데리고 마중을 나왔다. 유비가 유표의 의제신분이었기에, 형주에서 만큼은 어딜 가더라도 대우가 남달랐다. 유비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유반, 유호와 인사를 나누었다.
“허허- 조카들께서 이 못난 숙부를 맞이하러 예까지 나오셨는가?”
“당연하지요. 숙부님께서 오시는데요. 자- 안으로 드시지요.”
유비가 유반의 안내를 받으며 따라 나섰고, 유비의 장수와 병사들은 귀빈 대접을 받았다. 그날 밤 자리가 술자리가 마련되자, 유비가 유표, 유기 이야기를 꺼내며 유반, 유호를 위로했다.
“나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구먼. 그러니 조카들께서도 힘을 내셔야 하네. 지금 양양성에서 외롭고 힘들 종(유종)이를 생각해야지. 아 참- 이제는 형주목이 되셨는데, 나도 모르게 이름이 나와버렸군. 자네들이 용서하시게. 내가 큰 실수를 했어.”
“숙부께는 사사로이 조카가 아닙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숙부는 괜찮습니다.”
유반이 유비를 옹호하고는 약간 경직된 어투로 질문했다.
“그런데, 숙부님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강하군을 숙부가 힘으로 빼앗았다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에휴- 내가 그래서 황태수(황조)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유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한탄을 하고는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쳤다.
“양양성에서 여강군으로 돌아가려고 면수를 타고 내려오는데, 황태수가 굳이 배를 멈춰 세우고는 자신의 처소로 초대를 하더라고. 어쩌겠는가? 따라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여강군과 강하군을 바꾸자고 제안을 하더라고?”
“바꾸다니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
“말도 안되지? 그걸 들은 나는 앞이 캄캄했네. 사실 강하군 보다 여강군이 인구도 훨씬 많고, 농지도 넓고 좋아. 그걸 황태수가 알고는 욕심을 부릴 줄은 정말 몰랐네. 그래서 그건 안 된다고 좋은 말로 설득했는데, 말이 안 통하더군. 결국 칼부림까지 낫지 않은가? 내 부하들이 많이 죽었어. 결국에 황태수 말대로 바꿨다네. 에휴-”
“그래서 황태수가 군사를 이끌고 여강군으로 갔군요.”
“그 이야기는 그만하세. 황태수의 무력에 굴복해서 여강군을 빼앗긴 거나 다름없어.”
“죄송합니다. 괜한 말씀을 드려서 숙부님의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자- 술이나 마시세. 아무래도 오늘은 취해야겠어. 허허허-”
유반과 유호는 유비가 따라주는 술을 거푸 들이키다가 문득 장비, 관우, 진도가 자리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숙부님의 의제들과 부하장수는 왜 안 왔습니까? 제가 술이라도 한잔씩 돌리려고 했는데요.”
유비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갈았다.
“그 놈들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아. 말이 내 의제지 매일 술 처먹고 행패를 부려서 내가 금주령을 내렸어. 절대 한잔도 줄 생각 말게. 내가 이번 기회에 못된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을 것일세.”
유반 일행은 그날 유비와 술을 마시며 대취했다. 그간 오해가 있던 부분도 풀어냈기에 마음이 편해졌던 것이다.
황충은 중간에 일어서려고 했지만, 유비가 만류를 하는 통에 꽤 많은 술을 얻어 먹었다. 유반이나 유호도 오늘은 이곳에 있으라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켰다.
술잔을 들어 마시려던 황충은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너무 많이 마신 것이다. 그는 아랫배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자신의 상관인 유반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황충은 술은 취했지만, 기뻤다.
“어- 시원하다.”
황충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리현상을 해결하자 조금 정신이 차려졌다. 문득 싸한 느낌이 들어 재빨리 몸을 돌리자, 관우가 대도를 뽑아 들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칼을 뽑아라! 빈손인 네놈을 죽이고 싶지 않다.”
관우의 말에서 짙은 살기를 느꼈고, 황충은 재빨리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칼끝이 조금씩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자꾸 술을 권하던 유비가 떠올랐다.
“이 죽일 놈들이 작정을 했구나!”
황충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관우가 곧바로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평상시에 최상의 상태에서 대결을 한다 하더라도 관우와의 대결은 어려운 싸움이었다.
창- 창-
관우가 일 합마다 온 힘을 기울여 공격했고, 황충은 끝없이 밀렸다. 술이 황충의 균형감각을 무너뜨렸고, 이것은 결정적이었다.
20여합을 넘기면서 오히려 관우의 칼은 더욱 위력을 더해갔고, 황충의 목이 하늘높이 솟구쳤다. 그의 눈은 부릅뜬 채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관우가 발로 차서 황충을 넘어뜨렸다. 피가 관우의 몸에 뿌려졌다. 피가 아니라 황충의 억울한 눈물이었는지도 몰랐다.
“빌어먹을.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관우는 병사들에게 황충의 몸을 치우게 하고는 그의 머리를 보자기에 싸서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이미 그곳은 더는 연회장이라 볼 수 없었다. 피가 낭자했으며 유반과 유호는 벌써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밤늦게 그들의 부하들이 유비의 부름에 속속들이 집합을 하고 있었다. 직책이 교위, 사마인 그들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며 유비를 바라보았다.
“나는 전 형주목의 의제이자, 현 형주목의 숙부가 되는 유비다. 유반과 유호, 황충이 작당을 하고 나를 죽이려 했으며, 형주목을 죽여 형주를 훔치려고 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반역이고, 역모이다. 내 말로 충분히 달래려고 했지만, 오히려 술을 먹이고 공격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이들을 처단했다.”
유비는 말을 잠시 끊고 교위와 사마들을 노려보았다. 유표의 의제이자, 유종의 숙부를 앞세워 이야기하자 그의 말에는 강한 힘이 실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반역까지 거론하자, 교위, 사마들은 감히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쾅-
문이 열리며 유반의 호위대장 진충이 5백여명의 정예병을 이끌고 나타났다. 유비는 평온한 얼굴로 소리쳤다.
“네놈이 역적 유반의 호위대장 진충이냐? 병력을 이끌고 와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역적이 되겠느냐? 아니면 형주목께 충성을 다 바치겠느냐?”
악을 쓰지 않고 유비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것이 호위대장에게는 더욱 공포로 다가왔다. 이미 유반, 유호, 황충이 죽은 상황이었고, 군대를 움직이는 교위, 사마들이 경계의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칼을 버리지 못하겠느냐? 역적으로 죽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유비가 매섭게 호통을 치자, 진충의 부하들이 하나 둘씩 칼을 버리며 그 자리에 엎드렸다. 진충이 몸을 부르르 떨며 항복하지 않자, 장비, 관우, 진도가 일제히 달려들었고, 진충과 버티던 20여명의 부하들은 제대로 싸움도 못해보고 이승을 하직했다.
유비는 교위, 사마들을 달래고 위협했다. 그들에게서 충성을 서약 받았을 때쯤, 어느새 희뿌옇게 날이 밝아 오고 있었고, 3만에 달하는 무리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강하에서 출발한 유비군이었다.
유비는 차분하게 명령을 내리며 장사군을 장악하고, 관우에게 1만을 주어 영릉군으로, 장비에게 1만을 주어 계양군으로 보냈다.
여강군 치소 서현.
유비가 장사군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들은 순욱은 연주의 유평에게 연통을 보내 궐기할 것을 지시했다. 그 후, 조조는 7만을 이끌고 여강군을 전격적으로 침공했다. 조조는 순욱의 계책대로 작은 성은 우회를 하고, 곧바로 서현성으로 진군했다.
황조는 경계병력을 나누어 놓았기에 서현성에는 겨우 4천이 있을 뿐이었다. 하나씩 무너뜨리며 왔다면 많은 시간이 걸렸을 테지만, 곧바로 서현성으로 왔기에 조조의 병력은 그대로 였다.
조조는 곧바로 공성전 준비를 하면서 황조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쉽게 항복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조조의 은근한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황조는 조조의 사신을 목 베어 죽였을 뿐만 아니라,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전투준비에 몰입했다.
성밖에서 항복을 종용하는 사자에게는 활을 쏘아대며 강력하게 저항했다.
“공격하라! 황조의 목을 베는 자에게는 엄청난 재물을 하사하겠다!”
조조가 황금을 번쩍 들어 보이며 성안에는 몇 천밖에 없으니, 반드시 공격해서 무너뜨려야 한다고 강하게 독전을 거듭했다.
우아아아아-
조조의 명령에 1만의 예비대를 남겨두고, 6만의 대군이 3만씩 나누어 차륜전을 통해 공성전을 개시했다. 그들은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 올랐고, 궁수가 주변에 포진하여 활을 쏘아 공성전을 지원했다.
조조군이 정예군이었고, 조조까지 직접 나서서 독전했기에 서현성이 금방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황조가 악착같이 버티고 또 버티었다.
하루 종일 공격을 했지만, 성과가 없자 조조는 징을 쳐서 군사를 물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네놈들이 그러고도 내부하라고 할 수 있어? 겨우 몇 천밖에 없는 저 성하나를 무너뜨리지 못한단 말이냐?”
조조가 전례 없이 강하게 질책하자, 장수들의 얼굴이 파래졌다.
“내일 아침에 다시 공격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시간싸움이야. 유비가 군대를 돌려 되돌아 오기 전에 끝을 내야 한단 말이다. 내일도 성을 점령하지 못한다면 모조리 각오해! 알겠어?”
“예. 주군! 반드시 성을 점령하겠습니다.”
조인이 장수들을 대표하여 급히 대답했다. 조조는 다시 한번 강조를 한 후, 자리를 파했다. 장수들은 처음에는 난감함을 드러냈지만, 어쩔 수 없는 막바지에 몰렸음을 깨닫자 비장함이 맴돌았다.
아침이 되자, 장수들은 독전병을 운용하며 강하게 병사들을 다그쳤다. 도망치는 자들을 직접 목을 베며 독려하자 전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해졌다.
오후에 접어들면서 양쪽이 모두 지쳤고,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져들자, 장료, 조인이 직접 성벽을 기어 올랐다. 궁수들이 지원했고, 다른 병사들도 그것을 보고 힘을 내어 전투를 개시했다.
조인과 장료가 성벽의 모퉁이를 점령했고, 그 뒤를 이어 병사들이 꾸역꾸역 기어 올라왔다. 한번 뚫린 서현성은 더 이상 난공불락의 성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피를 뿌리는 전투가 이어졌고, 황조의 병사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멀리서 북을 치며 지휘하는 황조를 발견하자, 장료는 호위병 2백을 이끌고 돌파를 시도했다. 무지막지한 장료의 위력에 물살이 갈라지듯 병력들이 옆으로 밀려났다. 황조가 그제야 장료를 눈치채고는 칼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황조는 장료의 상대가 아니었다. 20여합만에 가슴에 대도가 꽂혔다. 그는 힘없이 무릎을 꿇고 엎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맑고 투명한 액체가 그의 눈에서 흘러 내렸다.
‘내··· 아들···’
황조는 마지막으로 황역을 떠올렸다. 그는 억울한 듯, 눈을 감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황조가 죽으면서 서현성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병사들은 무기를 던지고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으며, 진취는 항복했다.
조조의 독전으로 이틀 만에 서현성이 떨어진 것이다. 조조가 10배가 넘는 병력을 가졌고, 정예병이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는지도 몰랐다.
장료가 황조의 목을 가져다 바치자, 조조는 설명을 들으며 황조의 머리를 돌려보았다.
“이놈이 왜이리 끈질기게 버틴 거야? 원래 유비의 부하도 아니었잖아?”
장료가 대답을 하지 않자, 순욱이 입을 열었다.
“황조의 아들 황역이 강하군에 남아 있다고 하는데, 평소 아들사랑이 지극했다고 합니다.”
“이놈도 난세를 살 자격이 없는 놈이군. 치워라!”
조조는 불편한 듯 소리치며, 황조의 무덤을 만들어 줄 것을 지시했고, 그의 병부를 이용해서 여강군의 현령들을 집합시켰다. 빨리 여강군을 점령하고, 강하군을 접수해야 하기 때문에 조조는 급히 서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