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제 118장. 공짜로 얻어볼까?
기주 업성 원소치소.
원소는 봉기, 전풍, 저수와 회의를 갖고 있었다. 지난번에 최염을 유배 보내면서 미리 반대의 싹을 잘랐지만,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주군!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에 우장군께서 모든 장수들로부터 충성을 확인받았고, 이렇게 연판장을 작성하여 보냈습니다. 유생들과 관리들이 반대를 하더라도 결국은 군사력으로 결정납니다. 우장군이 단단하게 군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설령 또 다른 반대자가 나타나거나 유씨들이 대거 일어나더라도 큰일로 번지지 않을 것입니다.”
전풍이 죽간을 바치며 위로하자, 원소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이 정도에 눈물이라니. 내가 참으로 늙었어. 매가 군사를 이끌고 기주로 올라오는 상황은 막았으면 좋겠는데.”
“한번쯤은 올라와서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명분에 도취되어 있는 유씨들이나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꽤 많습니다. 지금이야 잠잠하지만, 황위에 올라서는 순간 마른 풀밭에 불이 붙듯 거세게 일어날 것입니다. 우장군도 그때가 되면 틈을 보여주지 않고, 제압을 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최강의 군사력이니 믿고 맡기십시오.”
저수까지 나서서 원소를 위로했다.
“휴- 내 욕심일까?”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일입니다. 이미 유씨의 힘으로는 난세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마음을 굳건히 먹으십시오.”
원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풍, 저수, 봉기에게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당부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고, 돌이키고 싶지도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정말 황제에 오르고 싶었다. 그게 너무 간절했다.
‘매야. 이 아비가 참으로 미안하구나.’
영천군 허창성. 원매치소.
회하를 경계로 하여 조조/유비와의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지자, 원매는 치소를 과감하게 업성에서 가깝고 중앙지역인 허창성으로 옮겼다. 기주나 연주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곳에 이유, 가후, 순유, 두기등 주요 관리들을 불러들였다.
“조조 이놈. 허창성을 버리고 수춘성으로 갔으니 지금쯤 꽤나 배가 아프겠구나.”
원매는 허창성을 둘러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황궁까지 마련되어 있었기에 치소로 손색이 없었다. 원소가 기冀를 세우면 이곳을 도읍으로 해도 되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원소가 업성에 대한 애착이 매우 컸기에, 그곳을 떠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허창성이 마음에 드십니까?”
고개를 돌려보니 순유가 공손하게 예를 표했다.
“순치중께서 오셨구려. 참 마음에 듭니다. 여기 황궁을 조금만 수리해서 그대로 사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대로 버려두자니 아깝기도 하고요.”
“제 생각은 주군과 조금 다릅니다. 저는 황궁을 지금이라도 해체할 것을 건의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유씨가 있던 곳이니까요. 물론 그전에도 나라가 새로 세워지면 그전의 황궁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완전히 한쪽이 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은 기冀를 세우셔도 한의 황제가 수춘성에 있기 때문에 허창성을 사용하는 것은 명분상으로도 문제가 됩니다.”
“쩝. 아깝군. 이 정도를 세우려면 재화를 얼마나 썼을지도 모르고, 백성들의 노고도 엄청났을 터인데. 재활용을 못한다니 아까워.”
“주군은 정말 못 말리십시다. 보통은 아무리 돈이 많이 들더라도 체면을 먼저 생각하는데, 재활용이라니요?”
“못할 것은 뭐 있소. 하면 되는 거지. 그런 소리는 됐고. 무슨 연유로 오셨소? 순치중이 기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은 아닌데?”
“주군께서 대장군과 조율을 해주셔야 할게 있습니다. 바로 중앙관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이것을 한번 봐주십시오.”
원매는 죽간을 펴고는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는 혹시 자신이 빠트리는 것이 없나 다시 확인하고는 죽간을 접었다.
“삼공, 삼사, 구경등을 아버님과 조율해달라는 것은 이해하겠소. 아마도 순치중과 전별가(전풍)가 이야기를 하면 될 것 같은데. 승상은 또 무슨 말이오?”
“예. 그것은 새로운 기冀를 건국해도 주군께서 바로 황태자로 등극하셔야 하고, 대장군을 도와서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황태자겸 승상으로 일을 시작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승상이라? 이거 노골적으로 욕심내는 것으로 보이지 않겠소?”
“노골적인 것이 맞습니다. 이미 새로운 기冀를 세우는 상황입니다. 주위의 눈을 의식도 해야 하지만, 권력에 대해서는 과감하고 전격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몇 번 사양하다가 받는 그런 것은 이번에 할 수 없습니다. 시간도 없고, 잘못하면 반대파들에게 명분만 심어줄 테니까요. 만약 대장군의 건강이 좋으시다면 이러지 않습니다. 몇 년 계시다가 황위를 넘겨주지 않겠습니까? 미리 대비를 하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동의하오. 아버님 건강문제는 나도 인지하고 있으니 그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삼가 하시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소.”
“소신이 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내가 조만간 업성으로 가서, 아버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전별가와의 만남을 주선하겠소. 단단히 준비를 하고 가야 할게요. 전별가가 정말 만만한 사람이 아니오.”
“면식은 없지만, 소문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강직한 순유의 표정을 보자, 원매는 믿음이 들어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의견을 수락했다. 구경은 황제직속 문관들이었기에 정말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가슴이 벅차 올랐다.
‘이러다가 내년 1월에 나라를 세우고, 황태자에 오르면 심장이 터져버리는 것 아닌가?’
원매는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는 자신의 치소로 돌아왔다.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일을 마무리하려고 할 때, 별가를 맡고 있는 가후가 들어왔다.
“주군. 퇴청을 준비하고 계셨습니까? 급한 일로 보고드릴 게 있으니, 조금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중요한 일인가 보군요. 퇴청할 시간에 급히 들어오는 것을 보니. 자- 이리 앉아서 편히 이야기 해보세요.”
“예. 형주에서 들어온 소식입니다. 유표, 유기가 죽고 이제 10살인 유종이 새로운 목사로 취임했습니다. 유표가 죽은 것도 놀랍지만, 대공자인 유기가 자살하고 생뚱맞게 유종이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참 희한한 일이구려. 뭔가 냄새가 나는데, 가별가는 어찌 생각하시오?”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채모, 괴월이 이 일에 관련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 둘의 눈을 피해서 이런 일을 저지를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들이 과연 이 정도의 배짱을 가졌나? 따져보면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 3자가 개입을 한 것이고, 그렇다면 유비가 분명합니다. 유표의 의제이며, 여강군태수입니다. 발언권이 매우 큽니다.”
“오호~ 가별가께서는 자연사가 아니라 타살로 보고 계시구려?”
“당연하지요. 아마 그곳의 유씨들은 유비와 채모, 괴월이 두려워 제대로 분통도 못 터트릴 것입니다. 그리고 강하군에서 대략 2만의 병력이 여강군으로 이동하는 것이 포착되었습니다. 황조가 아무리 강해도 절대 유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럼 2만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유비가 채모/괴월과 어떤 거래를 했을 테고, 그 대가가 강하군이 아닐까요?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의미심장한 부분입니다.”
“계속 이야기해보시오.”
“예.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유비의 야망이라면 주군도 알다시피 매우 큽니다. 그가 겨우 강하군 하나 받고 만족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채모/괴월 대 유비의 전투가 벌어질 것이고, 그렇다면 유비가 이길 확률이 높습니다.”
“가만···”
원매는 가후의 입을 막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을 종합해보고, 형주의 지도가 눈앞에 그려지자 그도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양양성과 남군을 통째로 얻을 수가 있겠구려.”
“역시 주군이십니다. 이제는 제가 은퇴를 해도 되겠습니다.”
“나야 가별가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놓았을 뿐이오. 내 추론을 듣고 맞는지 판단해보시오.”
“예. 경청하겠습니다.”
“유비가 강하군까지 접수하면 분명히 장사군을 노릴 것이오. 요충지이기도 하고, 형주 군사력의 절반이 그곳에 있으니까 말이오. 또한 그곳을 얻는다면 계양, 영릉군을 얻을 수 있소. 양양의 채모, 괴월이 남군은 지켜도 무릉군까지는 힘드니, 결국 무릉도 유비에게 넘어갈 것이오. 그렇다면 채모/괴월이 당했다는 배신감과 남군마저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것이니, 우리가 틈을 노려서 잘 설득하면 항복할 것이다. 이게 내 추론이오.”
짝짝짝-
“멋진 추론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여 남양군에 보병 5만, 기병 1만을 배치하고, 소칙을 그곳에 두어서 서로 연락을 주고받게 하십시오. 소칙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매는 소칙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관중의 현령을 감시하는 암행어사 역할을 하였는데, 성정이 올곧고 지혜로워서 책략이 뛰어났다.
“그래 소칙이라면 충분할 거요. 오랫동안 힘든 일만 맡겨놓았어. 이거 나를 원망이나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려.”
“그럴 리가요? 아무튼 불러 올리겠습니다. 상황을 알려주면 바로 임무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아차릴 것입니다. 음- 형주목 취임에 대한 축하사절 정도로 보내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즉시 시작하시오.”
가후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군사부분은 고람에게 명령을 내렸다. 현재 장수와 곽준이 남양을 2만으로 지키고 있었는데, 안량과 기병 1만, 이통과 보병 3만을 추가로 진군시켰다. 이들은 남양군 신야성부근에 주둔하며 만일의 상황에 대비토록 지시했다.
며칠 후, 소칙이 원매를 찾았다.
소칙은 원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해 듣고는 잠시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오다가 가별가를 통해서 대략적인 상황은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축하사신자격으로 양양성으로 가서 저들과 연분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자주 드나들다 보면 분명히 틈이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주군의 뜻대로 저들이 고립되고, 힘들어지면 설득하겠습니다. 잘하면,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거대한 남군을 손에 넣을 수 있겠군요.”
“아- 너무 앞서가지는 마시오. 일단 가봐야 알겠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소이다. 전적으로 소문사(소칙)의 판단에 맡길 것이니, 스스로 잘 판단해 처리하시오. 중요한 것만 따로 적어서 이곳 허창성으로 연통을 보내면 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반드시 형주 남군을 얻어내겠습니다. 이정도 상황을 처리 못하고 어찌 나라의 녹을 먹겠습니까?”
“어려운 상황이오. 신중하게 움직이고 결정하시오.”
원매는 자신감 넘치는 소칙에게 다시 한번 당부를 하고는 축하사신으로 삼아 형주 남군 양양성으로 보냈다.
소칙은 축하사절로 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것은 기회다. 남군을 얻어낸다면 주군께 인정을 받을 것이고, 내 능력을 펼칠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회를 만들어준 유비가 고마울 지경이로구나.’
문무의 자질이 충만했던 소칙은 말을 타는 것도 능숙했다. 그는 능숙하게 말을 몰아 5일만에 번성에 도착했고, 배를 타고 양양성으로 넘어갔다. 수행원 20명과 비단, 황금등 축하물건을 가득 가져갔다.
원매로부터 축하사절이 오자, 양양성의 대신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상대는 축하사절이었는데, 이런 것으로 원매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기 싫었던 그들은 소칙을 입성시켰다. 소칙은 들어서며 여러 대신들과 눈인사를 하며 안면을 익히기 바빴다.
유종의 치소로 들어서자, 뒤에 채씨가 수렴청정을 하고 있었고, 채모와 괴월이 옆에 시립해 있었다.
“형주목 등극을 감축 드립니다. 이것은 우장군께서 보내는 선물입니다.”
소칙이 예를 표하고, 선물을 보내자 채씨의 눈에서는 욕심이 번뜩였다. 고급비단, 서책(죽간), 황금등이었기에 만족스럽게 그것을 받았다.
“우장군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역시 듣던 대로 통이 크시군요.”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우장군께서는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하여, 자주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소칙이 달콤한 말로 채씨의 마음을 녹였다. 채씨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소칙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소칙은 앞으로도 더 많은 비단, 황금등을 바칠 것을 맹세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침묵하던 괴월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 원매가 이토록 저자세로 나올까? 나중에 알아볼 필요가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