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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17화 (117/253)

# 117

제 117장. 안타까운 부정父情.

유비일행을 태운 배는 면수를 따라 강하군으로 접어들었다. 조금 더 가면 황조의 치소인 서현이 나올 것이다. 곽도는 당연한 일을 했다는 표정이었고, 방통도 그다지 불편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관우는 매우 괴로운 듯 술을 들이켰다.

“그만 마시거라. 다음부터는 네게 시키지 않으마.”

‘으흐흐흐흐- ‘

유비의 말에 관우가 실성한 듯 괴이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해야지 맞는 말 아니오? 내가 아니면? 오호라~ 말 잘 듣는 진도를 시켜서 추잡한 짓거리를 하겠다는 것이오?”

“이해가 안 된다면 나를 원망해도 좋다. 언젠가는 나를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난 개인적인 욕심은 없다. 천하를 위해, 굶주린 백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가슴이 아프다.”

“빌어먹을! 관두시오!”

관우는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내가 비록 천한 출신이지만, 나름대로 의리를 안다고 생각하오. 형님으로 모셨으니 끝까지 모시겠소. 어디까지 가는지 한번 봅시다. 불쌍한 진도까지 끌어들이지 마시오. 추잡한 일은 내 손에서 끝내겠소.”

관우가 술병을 집어 던지며 일어서자, 유비보다 한 뼘은 더 컸고, 풍채는 가히 남달랐다. 슬픔은 조금 덜어낸 표정이었다.

서현성.

유비는 황조를 만나러 가면서 방통의 진언을 떠올렸다.

‘황조는 무예가 뛰어나고, 통솔력도 대단합니다. 오랫동안 강하를 지배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남다릅니다. 유기처럼 쉽게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 전에 알아낸 것인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의 아들인 황역이 오랫동안 병치레를 해서 몸이 허약하다고 합니다. 이를 노리십시오. 아주 단호하게 대처한다면 황조가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유비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치소로 향했고, 그 뒤를 초연한 표정을 한 관우와 곽도, 방통이 따랐다.

“유장군. 어서 오십시오.”

“황태수. 반갑소이다.”

유비와 황조는 무거운 얼굴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유표에 이어 유기마저 죽은 상황이라, 치소안은 적막감이 돌았다. 유비와 황조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치소로 향했다. 곽도와 관우는 슬며시 길을 틀었다.

“차 맛이 훌륭하군요. 양양에서 많이 괴로웠는데, 이 차를 마시고 나니 아픔이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유장군께서도 부디 다른 마음을 먹지 말고, 형주가 온전히 설 때까지 도와주십시오. 북쪽의 원매의 세력이 워낙 커서 불안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에 대해서 의논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드리지요. 형주를 올바르게 보존하려면 지금의 유종으로는 부족합니다.”

황조는 유비의 말에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무··· 무슨 말입니까? 이미 후계자는 결정되었는데요.”

“원매나 조조, 주유등을 상대하려면 노련하고 강한 자가 후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겨우 10살짜리가 뭘 하겠습니까? 그래서···”

유비는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황조를 보고는 쐐기를 박았다.

“제가 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뭣이라? 유장군 실성하셨소?”

“정신이 말짱합니다. 조금의 거짓도 없는 진심입니다. 제가 형주를 다스리면 원매, 조조, 주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이 죽일 놈을 보았는가?”

황조가 분노를 터트리며 칼을 뽑으려다가 동작이 멈췄다. 유비의 말에 동조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황역이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의 목에는 가느다란 붉은 실선이 보였고, 관우의 칼이 그의 목에 대여 있었다.

그때였다. 쾅-

황조는 안면에 커다란 타격을 입고는 바닥을 뒹굴었다. 급히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주먹과 발이 날아왔다.

“그만-“

황조는 얼굴을 막으며 소리를 지르자, 그때서야 유비의 주먹질이 멈췄다. 치소 안이 소란스러워지자, 밖에 머물던 호위무사가 조심스럽게 진언을 올렸다.

“주군! 무슨 일이십니까?”

유비는 손가락으로 황역을 가리키고는 한 손으로 목을 자르는 손짓을 했다.

“별일 아니다. 돌아가거라!”

아들 황역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황조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황역은 말도 못하고 오만상을 찌푸린 채 눈물을 흘렸다. 유비는 바닥에 주저앉은 황조를 다시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이제부터 자네는 내가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해야 해. 알겠는가? 만약에 거부를 한다면 자네 아들을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준다고 약속하지. 내 말을 의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어떻게 하면 고통스러운지를 잘 알거든.”

유비의 입에 잔인한 미소가 걸리자, 황조는 그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유비와 황역을 바라 보았다.

짝- 짝-

유비가 황조의 뺨을 후려치자, 그의 얼굴이 홱-홱- 돌아갔다.

“대답해. 어쩔 거야?”

황조가 말을 못할 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호위대장이 밖에서 소리쳤다.

“주군 들어가겠습니다.”

벌컥- 목소리가 들리고는 곧바로 문이 열렸다. 상황을 눈치챈 호위대장 등룡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네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이더냐? 어서 공자의 목에 댄 칼을 내려 놓거라!”

관우가 냉막한 표정으로 곽도에게 칼을 넘기고는 자신의 대도를 뽑아 들었다. 그는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곧바로 등룡에게 달려들었다. 등룡과 10여명의 호위무사들 속으로 뛰어든 관우는 무시무시한 칼질을 뿜어냈다. 순식간에 호위무사들이 도륙되었고, 등룡이 채 10합을 버티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관우가 주위를 살피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역겨운 피냄새가 진동하자, 황역이 욕지기를 해댔다.

“진정 황역이 죽어야 정신 차리겠어?”

황조는 눈물을 흘리는 황역을 보자, 어쩌지를 못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유비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내 아들 황역은···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황역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치소 밖은 소란스러웠다. 황조의 수하들 천여 명이 모여든 것이다.

황조는 수하들이 모여들었지만, 전혀 기쁘지도 않았고 든든하지도 않았다. 황역을 버릴 수 없는 상황에서 백만대군이 도우러 왔더라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황조는 눈을 질끈 감았다.

황역을 버릴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황조에게 떠오른 생각이었다.

“유장군. 그대를 따르겠소.”

“잘 생각했소. 자- 그럼 밖에 모인 부하들부터 해산하고 더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좋은 선택을 하셨소.”

황조는 짧은 탄식을 터트리고는 걸음을 옮겨 문을 활짝 열었다. 소비와 진취가 급히 군례를 올리자, 교위, 사마등도 군례를 올리며 황조를 올려다 보았다.

“별일 아니니, 돌아가거라.”

황조는 짧게 말하고는 문을 닫았다. 소비와 진취는 고개를 돌려 서로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황조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 사이에 관우, 곽도, 방통은 시체들을 구석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유비가 황조를 끌고, 자리에 앉혔다.

“잘 하셨소. 내가 심한 방법을 쓴 것은 사과하겠소. 우리 힘을 합쳐봅시다. 그대가 나를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면 더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이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유종 따위로 어찌 형주를 안정시킬 수 있겠소.”

“내 아들 황역을 어찌할 것이오?”

“아- 걱정 마시오. 황역은 강하에서 편하게 머물 것이고, 황태수께서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방문하시면 됩니다.”

유비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쐐기를 박았다.

“황태수께서 군사들을 이끌고 여강군으로 가서, 그곳을 지켜주십시오.”

모든 상황을 깨달은 황조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는 유비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부디 내 아들 황역을 잘 보살펴주시오. 내가 여강군을 잘 지키겠소. 잘 부탁 드리오.”

황조는 어느새 당당한 눈빛을 띠고는 황역에게 다가가서 힘껏 안았다. 말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 아버지··· 무서워요···”

“걱정 말거라. 이 아비가 한 달에 한번은 찾아오마. 이 아비가 살아 있는 한 누구도 너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

승낙을 얻으려는 듯 유비를 바라보자, 그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하세요. 한 달에 한번씩 오셔서 보면 좋지요. 제가 역이를 친아들처럼 보살피겠소이다. 허허허- 내게도 이리 큰 아들이 생겼군.”

황조는 수더분하게 말하는 유비를 뒤로하고, 다시 한번 황역의 얼굴을 쓰다듬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 곧 호각소리와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고, 병사들을 점고하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곽도가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유비를 돌아다 보았을 때, 유비는 편안하게 앉아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일말의 후회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곽도는 문득 섬뜩함이 느껴졌다.

‘유비 이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야망이 큰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야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자다. 설마 나도?’

황조는 일이 있은 후, 이틀 만에 진취와 함께 2만 3천의 군대를 이끌고 여강군으로 향했다. 소비가 이끄는 수군 5천은 그대로 강하군에 남았다. 장비는 연통을 받고는 인수인계준비를 했고, 병사들을 점고하여 이동준비를 시작했다.

구강군 수춘성 조조치소.

순욱으로부터 형주의 상황을 전해 들은 조조의 얼굴을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그거 참. 이상하군. 유목사가 죽었는데, 얼마 안가 장자인 유기마저 자살을 해? 그리고 겨우 10살짜리가 목사로 추대가 되었다. 이거지? 자네는 어찌 생각해? 이게 상식적인 상황이 아니잖아.”

“아주 비상식적인 상황입니다. 제가 볼 때는 모종의 세력이 개입해서 유목사와, 유기를 죽인 것이 확실합니다.”

“모종의 세력이라? 그렇다면 이득을 보는 놈들이라는 건데··· 채모, 괴월이 주도했다는 뜻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이익을 본 것은 확실한데, 그 정도의 배포나 그릇은 못됩니다. 그렇다면 한 명으로 좁혀집니다. 바로 유비죠. 유비는 유표의 의제이니, 발언권도 강력하죠. 분명히 그가 개입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익을 취할 것입니다.”

“유비라··· 그가 얻는 이익이 무엇일까?”

“세작을 통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워낙 교묘하게 움직이는 지라 좀처럼 의도가 드러나지 않습니다만, 앞으로 한달 이내에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조조는 휴-하고 한숨을 쉬고는 순욱을 돌아보며 자책했다.

“내가 유비를 거둘 때, 자네 말대로 죽였어야 했어. 내가 고집을 피운 것이 이렇게 큰 역풍으로 되돌아 오는군. 인간사가 새옹지마라더니 딱 맞아.”

“그리 자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첩보에 의하면 원소가 황위에 오르려고 서두른다 합니다. 그때를 기점으로 반 원매엽합을 결성하시면 됩니다. 확실해지면 사방으로 전령을 보내어 회합을 갖고, 그들의 힘을 모으면 됩니다. 만약, 형주에서 유비의 권한이 강해지면 그가 맹주로 등극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맹주를 넘겨주더라도 얻어낼 수 있는 것은 확실하게 얻어내면 됩니다. 현재로서는 힘을 키우는 것이 최선이니, 답답하고 힘드시더라도 참으십시오. 분명히 기회가 올 것입니다.”

순욱의 진언에 조조가 고마움을 표시하며 그를 격려했다.

“고맙네. 내 자네만 믿겠네.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네. 그리고 그때가 오면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겠어! 이 조조에게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지면 그걸로 족해! 반드시 놓치지 않겠어!”

조조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악에 바쳐 소리쳤다. 순욱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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