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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16화 (116/253)

# 116

제 116장. 숨겨온 발톱을 드러내다.

양양성.

유비가 도착했을 때, 벌써 유표의 장례는 끝이 난 상태였고 분위기는 매우 흉흉했다. 후계자 자리를 놓고 유기와 채모/괴월간에 알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기가 분명 명분에서 앞섰지만, 채모/괴월이 다져놓은 기반이 워낙 단단했고, 유표의 첩 채씨까지 가세하자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해졌다.

이 때에 유표의 의제인 유비가 도착하자, 모두 유비의 입만 바라보는 형국이 되었다. 죽은 유표에 대한 관심은 없고, 오로지 후계자자리를 놓고 싸우는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유비는 후계자에 대한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유표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유비의 행동에 채모, 괴월은 안달이 났지만, 어쩌지를 못하고 속만 끓일 뿐이었다. 한숭, 두기, 부손, 왕찬등이 조용히 유비와 독대를 하며, 중재를 요청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위로했다.

도착하고 저녁이 되었을 때, 유기가 먼저 유비를 은밀히 찾아왔다.

“숙부! 한번만 도와주십시오.”

“이 사람아. 내가 의제이긴 하지만, 어찌 후계자 문제에 간섭을 하겠는가?”

“아닙니다. 지금 저와 채모/괴월과의 힘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숙부가 도와주신다면 저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지금 형주가 대호족들의 전횡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것을 개혁하고 힘을 키우지 않는다면 강한 제후들에게 결국은 모조리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그들이 형님을 도와서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있네. 조카께서 오해를 하시는 것은 아닌가?”

“오해라니요? 어찌 숙부까지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조금만 뒤를 캐도 매관매직에 소작농들 땅을 빼앗아 노비로 만드는 것까지. 정말이지 따지자면 밤을 새도 모자랍니다. 아주 악질적인 놈들입니다. 그것을 개혁하려고 하는데, 저놈들이 제 것을 빼앗기게 생겼으니 저를 막고 동생 종(유종)이를 올리려고 합니다. 그리 된다면 종이는 허수아비가 될 것이고, 형주는 그들의 손아귀에 넘어갈 것입니다. 또한, 아버님의 죽음도 의문이 갑니다. 이것도 철저하게 파헤칠 것입니다.”

당당하게 패기를 드러내는 유기를 보며 유비는 마음이 복잡했다. 형주를 개혁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는 말에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기에 그의 입에서는 돕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조카. 며칠간 말미를 주시게. 내가 생각이 정리된다면 사람을 보내겠네. 그때는 다른 사람들을 곁에 두어서는 안되네. 자네의 측근이라도 채모/괴월의 사람일 수가 있어. 내 말뜻을 아시겠는가?”

“숙부. 감사합니다.”

유기는 엎드려 절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유비의 말을 돕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유비는 그런 유기를 다독이며 달래 보냈다.

다음날. 하루를 유표를 조문하며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유비는 밤이 깊어지자, 유기에게 사람을 보내겠다고 비밀리에 연통을 보냈다. 유기는 유비의 요청대로 주위 측근을 모조리 물리쳤다.

“어서 오시오.”

유기는 곽도를 예를 다해 맞이했다. 곽도는 깊숙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그의 얼굴에서는 찰나간에 잔인한 미소가 지어졌다가 사라졌다.

“저는 곽도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유장군의 의형제이신 관우라고 합니다.”

“관우, 운장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숙부님의 의제라니 정말 믿음직스럽군요. 가히 풍모가 천하장사입니다.”

“별말씀을요.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관장군께서는 어디 불편하십니까? 얼굴색이 안좋습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관우가 불편한 듯 고개를 돌려버리자, 곽도가 얼른 끼어들었다.

“관장군께서 지난밤에 말을 안 듣는 병사들이 있어서 훈육을 하시느라 잠을 설치셨습니다. 낮에는 바빠서 잠을 못 잤으니, 피곤하실 겝니다.”

“그렇군요. 그럼 빨리 마무리를 해야 관장군께서 쉬시겠군요.”

“그렇습니다. 유장군의 뜻을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유기는 가까이 고개를 들이밀며 군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곽도가 내미는 죽간을 받아 들고는 온통 신경을 그곳에 집중하여 읽어 내려갔다. 이때 관우가 슬그머니 일어나 유기의 뒤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글을 읽는데 집중한 나머지 유기는 그런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유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죽간을 탁자 위에 내려 놓았다.

“아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종에게 후계자를 양보하라니요?”

“그것이 최선입니다. 여기 죽간에 양보한다고 써주십시오. 그러면 형주는 안정을 찾을 것입니다.”

“안정은 무슨 안정! 유장군도 대호족들 편이로구나! 어서 물러가거라! 나는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못한다!”

“진짜 죽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시는 군요. 고통스럽게 죽기 전에 여기에 서명하십시오. 그럼 육체적으로는 편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곽도의 잔인한 협박에 유기는 대노했다.

“이 쳐죽일 놈 같으니라고. 여봐······”

소리를 지르려던 유기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관우가 뒤에서 입을 틀어막은 것이다. 엄청난 힘 앞에 유기는 온몸을 비틀면 저항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곽도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더니 옷으로 쓱쓱 닦기 시작했다.

“유공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소. 여기에 서명한다면 편한 여생을 보장하겠소. 동의한다면 눈을 한번 깜박이시오.”

유기는 처음 접하는 죽음의 공포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깜박였다. 곽도의 손짓에 관우가 조심스럽게 압박을 풀었다.

“콜록- 콜록-“

유기는 엎어져 기침을 해댔다. 그의 눈에서는 연유를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곽도가 조용히 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힘들게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서명하시고 편히 사시면 됩니다. 이까짓 형주는 잊어버리시고요. 아시겠습니까? 자- 여기에다가···..”

“집어 치우시오!”

정신이 번쩍 든 유기가 죽간과 붓을 집어 던졌다. 곽도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서는 슬쩍 관우를 바라보며 눈짓을 했다. 관우는 음울한 눈으로 유기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신속하게 흰색 비단천을 그의 목에 걸고는 기둥에 걸어 들어 올렸다.

유기는 발버둥치며 소리를 쳤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못했다.

곽도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사과를 깨물었다.

우거적- 우거적-

유기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곽도가 사과를 깨물어 먹으면서 뱉어내는 소리에 파묻혔다. 격렬했던 유기의 움직임은 차츰 힘을 잃어갔고, 어느 순간 완전히 멈췄다. 관우가 조용히 내려 놓자, 곽도는 손가락으로 혈을 짚으며 맥을 짚었고, 죽음을 확인했다.

“사과 한 개 먹는 시간도 못 버티다니···.. 쯧쯧쯧- 이런 약골이 무슨 개혁을 하겠다고.”

관우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냉정한 얼굴위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곽도는 관우에게 무엇을 시키려다가 입을 닫고는 투덜거리며 자신이 일을 마무리했다.

유기를 다시 끌어 올려 스스로 목매 자살한 것처럼 위장을 시켰다.

“갑시다. 뭐, 이런 일로 어린애처럼 그러시오? 참나.”

곽도는 관우를 향해 뭐라 주절거리다가 섬뜩함에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에서는 귀신과 같은 푸른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네놈 때문에 형님이 변했고, 평생을 의협에 살고자 했던 나도 이런 멍청한 짓을 하게 되었다. 내 당장 네놈을 죽여버려야겠지만, 형님을 봐서 참는다.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말거라!”

“변하긴 누가 변해? 원래 본성이 그런 것이니 내 계책을 시원스럽게 받아들인 것이지. 나는 첫눈에 알아봤어. 그걸 몰라본 네가 멍청한 거지. 탓하기는 누굴 탓해?”

관우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특유의 냉정함으로 눌렀다. 그는 곽도를 쏘아본 후, 먼저 치소를 나섰다. 곽도는 혀를 차다가 그 뒤를 따랐다. 치소 밖은 놀랍게도 20여구의 시체들로 가득했다. 치소안이 소란스러워지자, 유기의 호위병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은 엄폐하고 있던 관우의 정예병들에게 기습을 받아 모조리 몰살되었다.

“뭣들 하느냐? 어서 치우거라!”

곽도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치자, 병사들이 시체를 치우기 시작했다. 제법 소란이 일었지만, 더는 병력이 출동하지도 않았고, 관리들도 오지 않았다. 이미 채모와 괴월이 밖에서 조치를 다한 것이다.

다음날. 새벽에 계획대로 시녀에 의해 유기의 사망이 알려졌고, 의원이 급히 달려가 검진한 후, 자살임을 알렸다.

유비가 유기의 장례를 주관했고, 대신들과 장수들, 종친들을 불러모아 유종을 후계자로 삼을 것을 건의했다. 이미 대부분의 대신들과 장수들은 채모/괴월의 사람들이었기에 찬성을 하였지만, 종친들은 유기의 죽음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반대했다.

종친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유반, 유호는 장사군에 있었기 때문에 종친들의 힘은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종친들이 장사군으로 연통을 보내려고 했지만, 그것은 채모가 지닌 군사력에 의해 모조리 막혔다.

또한, 채모와 괴월이 손을 써서 그들이 장사군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손을 써 놓았기 때문에 종친들의 노력은 처음부터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었다.

결국 유종이 새로운 형주목으로 올라섰다.

며칠 동안 혼란한 상황을 잘 마무리한 유비는 여러 대신들과 장수들의 배웅을 받으며 물러났다. 괴월은 배가 멀어져 가자, 채모를 붙잡고 주변의 눈을 피해 은밀할 곳으로 끌고 갔다.

“이거 아무래도 조짐이 좋지 않소. 대공자를 어찌 처결하나 하고 살펴봤는데, 참으로 치밀하고 냉정했소.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사로이 조카이거늘 어찌 그리 무 자르듯 단칼에 처리하는지 참으로 무서웠소.”

“그렇지. 아무래도 내가 유비를 너무 얕잡아 본 것 같소. 여기서 일 처리를 하는 것을 보니, 조만간 강하군은 저놈에게 넘어갈 것이 분명하오.”

“이거 늑대가 무섭다고 호랑이를 끌어들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뭐, 일은 잘 처리되었소. 설령 저들이 강하군을 갖는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남, 무릉, 장사, 계양, 영릉 5개군이 있소이다. 이를 잘 지키기만 하면 유비가 감히 우리에게 칼을 들이밀지 못할 것이오.”

채모의 호언장담에도 괴월의 얼굴을 펴지지 않았다. 여러 번 채모가 추궁하자, 괴월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지금은 강하로 만족하겠지만, 반드시 다른 군도 노릴 것이오. 특히 내가 걱정이 되는 것은 장사군이오. 지금 형주 군사력의 절반은 장사군에 있소이다. 그곳이 넘어가면 계양, 영릉도 자동으로 넘어가는 것이오. 그게 제일 걱정이 되오이다.”

“하하하- 그것은 문제없소. 유반, 유호는 유기와는 다른 자들이오. 장수로서의 무예와 통솔력이 뛰어나고 욕심도 대단한 자들이지. 유기처럼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것이오. 나한테도 고개를 빳빳이 드는 놈들인데, 유비가 달래고 얼러봐야 소용없소. 또한, 유기처럼 암살하는 것도 불가능하오. 그러니, 신경은 쓰이겠지만 너무 걱정은 하지 맙시다.”

괴월은 채모의 격려에도 불안감을 떨구어내지 못했다.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끄물끄물 맴도는 불안감은 그의 온전한 정신을 삼키고 있었다.

괴월은 채모를 돌려보내고 처소로 들어와 술을 병째로 입에 쏟아 부었다. 괴월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한 병을 다 마신 괴월의 눈은 반쯤 풀려있었고, 그의 입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잘못하다가는 형주를 엄한 놈에게 다 들어 바치게 생겼구나. 돗자리나 치던 놈에게 겁을 먹는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어찌한다? 그 놈은 호랑이야. 앞으로 어찌 대처를 하란 말인가? 내 실수야. 내 실수.’

괴월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술을 퍼부으며 폭음을 계속했다. 몸이 비명을 질렀고 토악질을 해댔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말짱했다.

‘크크크크- 다 끝날 것이다. 양떼 속에 호랑이가 한 마리 들어왔으니 다 끝날 것이다. 크크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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