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제 114장. 욕망을 드러내다.
형주 양양성.
괴월은 누군가를 불러 단단하게 주의를 주고는 은밀하게 황금을 쥐어 주었다. 의원으로 보이는 그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두려운 눈빛으로 그것을 받아 챙겼다.
“할 수 있겠느냐?”
“주군께서 돌아가신다면 그 실체를 조사하려 들것이고, 그렇다면 반드시 탄로가 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죽은 목숨입니다.”
“내가 뒤에 있는데, 무엇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이냐? 시키는 데로 하거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족은 무사할 것이다. 만약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괴월이 말을 끊으며 날카롭게 노려보자, 의원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머리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괴대인만 믿겠습니다. 부디 소인을 버리지 마십시오.”
괴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원을 돌려보냈다. 양양성에서 감히 괴월과 채모의 명을 거절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있다면 유기와 그의 세력 정도였다.
괴월과 의원의 만남이 있은 후, 유표는 점점 쇠약해져 갔다. 유표가 평소에 신장이 좋지 않아, 피로감을 많이 호소했는데 의원이 교묘하게 약을 바꿔 치기 하면서 피로가 더욱 증폭되었다. 의원은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나날이었지만, 괴월이 두려워 감히 도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유종처소.
유표의 첩이자, 채모의 누이인 채씨는 유종을 데리고 괴월을 만나고 있었다. 유종은 아직 어리지만, 눈은 총기가 가득했다. 괴월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삼공자. 책을 열심히 읽으시고, 옛 성현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예. 매일 매일 열심히 글을 읽고 있습니다.”
“장하십니다.”
괴월은 유종을 칭찬하고, 격려한 후 채씨와 따로 만남을 가졌다. 이미 채모로부터 상황을 전달받은 채씨는 괴월과 단둘이 남게 되자 욕심을 드러냈다.
“이제 그 늙은이(유표)는 기름 떨어진 등잔불과 같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행이군요. 저도 막을 터이니, 혹여라도 의원을 의심하는 놈이 있으면 단단히 단속해주십시오. 이것이 비틀어지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물론이지요. 그런데, 기(유기)를 어찌하실 것입니까? 그 늙은이가 죽더라도 기가 모든 것을 물려받으면 지금까지 한일이 모두 물거품이 되지 않습니까? 차라리 이 기회에 그 놈도 제거를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채씨가 눈은 희번덕거리며 유기제거를 언급하자, 괴월은 섬뜩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것은 유장군(유비)께서 처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도 어떤 방식을 쓸지 모르겠는데, 호언장담을 했으니 믿어야지요. 그때 가서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뜻대로 하시지요. 유기가 제법 세력이 크다고는 하나, 밑의 종사관들을 비롯하여 하부조직은 우리 대호족들이 모조리 잡고 있습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채씨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조바심을 드러냈다.
“만약 유비가 유기와 손잡는다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흐흐흐흐- 걱정 마십시오.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자는 이번 일을 통해 강하군을 노리고 있습니다. 만약 대공자(유기)가 후계자가 된다면 강하군을 얻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 됩니다. 그러니 대공자를 도울 일은 없대 없습니다.”
“그렇군요. 욕심 많은 놈이니. 우리 종(유종)이가 후계자가 되더라도 유비를 바짝 경계하셔야 합니다. 처음에야 서로 돕는 형국이지만, 얼마 안가 이빨을 들어낼 것이 자명합니다.”
“저는 걱정하는 수준이었는데, 채부인께서는 단언을 하시는군요.”
“유비와 저는 같은 부류입니다. 욕심이 많고,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제가 종이를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지아비의 죽음을 방관하는 것처럼, 그자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상상도 못한 수로 이빨을 드러낼 것입니다. 항상 경계하고, 또 경계하세요. 어쩌면 중원에서 가장 위험한 자일지도 모릅니다.”
괴월은 채씨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자신의 치소로 돌아오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채모도 독했지만, 그의 누이 채씨는 더 독한 괴물이었던 것이다. 이 여자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신에게도 칼을 들이밀 것 같았다.
‘주위에 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진절머리가 나는구나.’
괴월을 고개를 살래살래 젓고는, 자신의 치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여강군. 유비치소.
유비는 초조해지려는 마음을 다 잡으며 멀리 북쪽을 바라보았다. 곽도를 통해서 괴월과 협상을 한지도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특별한 연락이 없었다. 유비가 미간을 찌푸린 채 치소 안을 서성일 때, 방통이 다가와 진언을 올렸다.
“주군. 침착 하십시오. 조만간 괴월로부터 반드시 연통이 올 것입니다.”
그제야 방통의 존재를 알아차린 유비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짧은 탄식을 쏟아냈다.
“내가 자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네. 잘되겠지?”
“물론입니다. 채씨, 괴씨들은 욕심 많은 대호족들입니다. 옳거니 하고 미끼를 덥석 물것입니다.”
“자네는 내가 비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고 비웃을 것이야.”
“공자, 맹자를 찾으면서 혼자 글을 읽고, 아이들이나 가르친다면 손가락질이 두렵겠지요. 하지만, 주군께서는 반드시 천하를 통일하여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사명을 하늘로부터 받으셨습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그런 사치스러운 감정을 빨리 벗어 던져야 합니다. 오직 주군만이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고맙네.”
이 말을 끝으로 유비는 방통에게서 등을 돌렸다. 방통은 한편으로는 쓸쓸해 보이는 유비의 등을 보며 웬지 모를 서러움이 밀려왔다. 왜인지는 자신도 몰랐다. 세력이 약해서일까? 아니면 모질고 독한 짓을 할 수 밖에 없어서 일까? 그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지독하게 서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날이 더워지고 폭염이 지속되는 7월로 접어들면서 유비가 기다리던 소식이 양양에서 날아들었다. 연통을 받아 든 유비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오는구나.’
그는 죽간을 말아 쥐고는 즉각 장수들을 집합시켰다. 양양에서 온 죽간을 모두에게 회람시킨 후, 유비는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익덕(장비)아! 네가 여강군을 단단히 지키거라. 이곳은 우리의 목숨과 같은 곳이니 절대로 다른 놈을 한발자국이라도 들여놓게 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손건! 미축! 자네들은 익덕을 도와서 여강군을 안정시키게.”
“예. 주군!”
“운장(관우)! 진도! 방통! 곽도! 나와 함께 양양성으로 올라간다. 배를 타고 올라갈 것이니 단단히 준비하라! 정예병 3백을 선발하라! 준비가 되는 대로 출발할 것이니 당장 서둘러라!”
“예. 주군!”
유비의 단호한 명령에 장수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리며 자리를 떴다. 그날 밤 어둑어둑해질 무렵 유비는 주가 20척을 이끌고 양양으로 향했다. 누각선이 크고 더 편했지만,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다소 불편함을 감수하고 주가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주가의 장점은 신속성에 있었다. 길게 생겼기 때문에 누각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형주에서 본격적으로 일이 터지고 있을 때, 비교적 잠잠하던 강동에도 드디어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주유는 그 동안 호족들과 현령들을 어르고 달래면서 인자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오군과 회계군의 많은 현들이 그의 휘하로 돌아섰다. 이제 대세는 확실하게 주유에게로 넘어왔지만, 손씨의 거점인 부춘현을 중심으로 오군/회계군의 8개현은 단호하게 주유를 거부했다. 또한, 주태, 동습, 하제가 군대를 이끌고 합류하고 있어서 제법 기세가 험악했다.
이들을 이끄는 수장은 손견의 동생 손정이었는데, 무장으로서의 자질이 있고, 통솔력이 있었다. 주태, 동습, 하제도 이런 손정의 설득으로 합류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기세는 꺾이기는커녕 강해지고 있었다.
주유치소.
황개, 정보, 능조, 태사자, 송겸, 장소, 장굉이 모여 주유와 함께 강동에 대한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이들이야 말로 주유를 지탱하는 무장과 문신들이었다. 손정의 기세가 날이 갈수록 강력해지자,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자 모인 것이다. 그들의 표정은 칼날처럼 단호했다.
“주군! 이제 더는 손정에게 유화책을 쓰는 것은 안됩니다. 오군 부춘현을 함락시키지 않는다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지 모릅니다.”
태사자가 부춘현에서 반란을 일으킨 손정을 공격할 것을 건의하자, 황개, 정보, 능조, 송겸이 동의했다. 이제껏 주유가 참고 또 참으면서 그들을 설득하는 것을 옆에서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그들이었다. 특히 강경파인 태사자는 빨리 손정을 치고, 반란군을 일소할 것을 매일 같이 건의할 정도였다.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주유가 장소, 장굉을 돌아보자 장소가 짧게 탄식을 터트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 동안 저희 의견을 받아들여 유화책을 취해주신 것은 깊이 감사 드립니다. 저도 더는 유화책을 쓰라고 말씀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태사장군의 말대로 공격을 하시지요. 이정도 시간을 주고, 달랬으면 충분합니다. 부춘현이 정리 되야 예장군의 무리들을 압박할 수 있습니다. 예장군의 진무/이이는 주군께서 확실하게 손씨세력을 꺾어 놓으면 따를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당근을 거둬들이고, 매를 들 차례입니다.”
장소의 말에 장굉까지 동의하자, 주유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내 주군이었고, 친우였던 백부(손책)를 봐서 그 동안 무던히 참아왔소. 손정의 반란이 참으로 괘씸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어떡하든 품고 가려고 했소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을뿐만, 아니라 강동을 흔드는 상황까지 왔소이다. 이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태요. 여러분들의 뜻대로 군사를 일으켜 손정을 토벌하겠소. 태사장군!”
“예. 주군!”
“그대에게 군사 3만을 줄 터이니, 손정을 토벌하고 주모자를 모조리 색출하여 말릉성을 끌고 오시오. 만약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즉각 참하라! 반란을 진압하는데 있어 어떤 온정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오! 알겠소?”
“예. 주군!”
“능조! 송겸! 장소! 조기에 반란을 진압할 수 있도록 태사장군을 도우시오!”
“예. 주군!”
“정보! 황개! 두 장군은 말릉성에서 예비대를 운용하면서 비상상황에 대비하시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태사장군이 여의치 않으면 정보장군이 1만 5천을 이끌고 가서 태사장군을 돕고, 황장군은 1만 5천으로 산월족의 경계에 최선을 다하시오. 앞으로 가능하면 산월족과도 유화책을 써서 껄끄러운 관계를 청산하려고 할 테지만, 손정이 손을 뻗었을지 모르니, 단단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오.”
“명심하겠습니다.”
주유는 옆에 놓아두었던 고정도와 병부를 꺼내서 태사자에게 건넸다. 태사자는 황공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받았다. 3만의 생사여탈권을 부여 받은 것이다. 주유가 냉정한 눈빛으로 다시 한번 강조했다.
“태사장군! 이것은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기요. 잘 마무리를 한다면 전공을 인정받아 승진을 하고 높은 직책에 오르겠지만, 실패를 하여 그들의 기를 살려준다면 그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명심하시오.”
“주군! 제가 그들을 진압하지 못한다면 목을 내놓을 것입니다.”
주유는 긴장한 표정으로 태사자를 격려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6만의 병력중 3만을 내어준 것이다. 태사자를 믿었지만, 만약 그가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강동은 정말 끝을 알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들 것이고, 그렇다면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조조나 유비에게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 주유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