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제 113장.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준비를.
원매치소.
문빙과 감녕은 죽간을 원매에게 바치고는 지시봉으로 회하유역 조형도를 짚어가며 진언을 올리고 있었다.
“주군. 이곳이 수수와 회하가 만나는 하비국 수릉현입니다. 넓게 늪이 펼쳐져 있고, 호수가 많습니다. 북쪽에 위치한 이 호수가 채호인데 이곳에 포구를 만들고 배를 대 놓을 수 있는 정박기지를 만들겠습니다. 전투를 치르려면 지휘함선인 누각선과 주가, 돌모가 필요합니다. 특히 주가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채호가 상당히 커 보이니 훈련을 해도 괜찮겠군. 그런데, 누각선은 뭐고, 주가? 돌모? 잘 모르겠군.”
“누각선은 전투시 지휘선이 되고, 수송선이 됩니다. 넓고 크게 만들고, 삼층 정도의 누각을 지어 누각선이라 부릅니다. 때문에 좁은 수로나 거센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는 사용이 제한됩니다. 주가는 전투함으로 보시면 됩니다. 나룻배처럼 길게 생겼는데, 적의 화살공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양쪽에 길게 나무판을 대놓은 형태입니다. 돌모는 가운데 기다란 통나무를 놓아서 상대방 배를 공격하는 용도입니다.”
“흠- 대략 감은 잡히는군.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배를 만들고, 수군을 양성하게.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회하를 건너는데 있는 게 아니라 강동의 수군일세. 그 놈들을 잡아야 천하를 통일할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럼요. 명심하겠습니다.”
“자네 둘이라면 안심이 되네. 감장군(감녕)- 훈련시키는 것은 좋은데 지나치게 살생을 하는 것은 참으시게. 지금이 난세이니 강하게 훈련하고, 군기를 잡는 것은 이해를 하겠는데 간혹 지나칠 때가 있어.”
“주군! 주군께서는 지금까지 각 장수들의 훈련방식을 존중해주셨습니다. 제가 잔인한 면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는 병사들은 보면 다른 군영보다 2배, 3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 40년을 넘게 살아왔습니다. 저보고 불 속에 뛰어 들라면 따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제 방식이고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렵습니다.”
고리눈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밝히는 감녕을 보고는 문빙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굳이 면전에서 상관에게 반박하는 모양새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원매는 잠시 생각하더니, 본인의 생각을 접었다.
“자네 방식을 인정하지. 병사들을 죽일 때 한번만 더 생각해봐. 그 이상은 간섭하지 않겠네.”
“명심하겠습니다.”
원매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감녕과 문빙을 이끌고 밖으로 나와 회하를 바라보며 수상전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빙이 침착하다면, 감녕은 열정적이었다. 굳이 대장을 선택한다면 문빙이 나았지만, 감녕은 그간 세운 공이 더 많았다. 배와 정박기지를 만드는 부분은 문빙, 병사들에게 훈련을 시키는 것은 감녕에게 맡겼다.
원매가 돌아가자, 문빙이 좀 어두운 얼굴로 감녕에게 물었다.
“감장군! 굳이 주군 앞에서 그렇게 말을 했어야 합니까? 듣는 내내 거북해서 혼났소이다.”
“할 말 있으면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제 충성심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조조를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리면 죽을 각오를 하고 공격할 의향이 있습니다. 다만, 아까 그렇게 말씀을 드린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그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군께서도 마음에 꽁하고 숨기는 것보다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의견을 밝히라고 말씀을 하셨고요.”
“물론 저도 주군을 겪어보니 성품을 알겠더군요. 하지만 사람은 언제 변할지 모릅니다.”
“잘못되면 죽기밖에 더하겠소? 난 최선을 다해 살 거고, 그 결과가 어떻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소. 그러니 지금의 내 행동에 후회는 없소이다. 후에 공신까지 오른다 하더라도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오. 그대와 같은 침착한 사람도 필요하지만, 나같이 고지식한 사람도 쓸모가 있는 법이니까.”
감녕은 싱긋 미소를 짓고는 수군을 훈련시킨다며 자리를 떠났다. 문빙은 그를 떠나 보내며 온갖 상념이 교차했다. 감녕의 불손한 태도나 그걸 개의치 않게 받아들이는 원매의 방식 또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원매를 찾았다.
“문장군이 스스로 나를 찾아 올 때가 다 있군. 자- 이리로 앉으시게.”
“예. 주군.”
문빙이 자리에 앉자, 원매는 손수 찻잔에 차를 따라 주고는 빙긋 웃었다.
“말해보시게. 할말이 있으신가?”
“지난번 감장군의 거친 언행도 그렇고, 장수들이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아- 난 또 뭐라고. 감장군이야 오랜 시간을 의협, 수적생활을 했지. 그래서 말이 좀 거칠지. 반면에,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네. 또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어려운 일을 지시해도 한번도 머뭇거림 없이 수행했네. 나를 위해 목숨을 거는데, 그런 사소한 불편은 내가 참아야지. 안 그런가?”
문빙의 흔들리는 눈을 보며 원매가 재차 자신의 생각을 이어갔다.
“자네도 언제든 할말이 있으면 내게 오게. 지시하면 그대로 따르는 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야. 언제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지. 나는 문장군에게도 그것을 원하네.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최선의 답안을 찾아내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일세.”
잠시 주저하던 문빙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제가 형주에 있을 때 배운 방식에 지금까지 길들여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채모가 항상 명령을 내렸는데, 말대꾸하는 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항상 복종하는 것을 처음부터 보고 자라다 보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주군의 방식은 달랐고, 그래서 고민도 했지만, 좀처럼 물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내 사고방식이 좀 독특하지. 사실 대부분의 지휘관이 채모와 비슷하다고 보면 돼. 아무튼 이렇게 와줘서 고맙네. 앞으로도 필요한 게 있으면 자주 오게.”
원매는 문빙을 격려하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문빙이 원매에게 항복한지도 1년이 넘었지만, 이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믿고 맡길 수 있는 장수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원매였다.
기주 업성.
전풍은 경직된 얼굴로 치소를 방문한 최염을 떨떠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하북에서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까?”
“무슨 일이냐니? 자세히 말씀해보시게.”
“지금 은밀하게 대장군을 황제로 옹립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연줄을 대려고 난리인데 설마 전별가께서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전풍은 말없이 최염을 노려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다 알고 온 듯한데,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아니?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니요? 진정 몰라서 되물으시는 겁니까? 지금 이것은 우장군이 앞장서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찌 한의 신하로서 막지 않고 있습니까?”
“한이 백성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달이 차면 기우는 법. 이제는 한이 무엇을 할 때는 지났네.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해. 그게 조씨나 유씨, 주씨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주군이 적격이라고 판단했네. 자네가 볼 때, 이 난을 극복하고, 유씨들에게 권력을 돌려주면 제대로 정치를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미쳤군! 미쳤어!”
최염이 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전풍이 무서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며 매섭게 질책했다.
“책이나 읽었다고 건방 떨지 마라. 주군은 물론이거니와 우장군의 행동을 보지 못했느냐? 백성들을 위해 스스로 몸을 낮췄고, 능력이 있으면 설령 천민이라도 발탁해서 등용했다. 오로지 대호족들만 바라보며 백성들이 죽건 어쩌건 관심 없던 유씨들과는 달랐단 말이다.”
전풍은 최염을 노려보다가 다시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갔다.
“계규(최염). 이 사람아. 자네도 그 동안 고통 받는 백성들을 돌봐야한다며 주군께 많은 진언을 올렸고, 병사들이 나쁜 짓을 하면 말렸지 않은가? 지금 천하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위해서 정치를 하실 분은 주군과 우장군일세. 특히 우장군은 충분한 자격이 있어. 군사통솔능력이 뛰어나니, 주변의 강대국과의 관계도 확실히 정립할 테고, 대신들에게 항상 귀를 기울이니 독재나 폭정을 일삼지 않을 것일세. 또한, 지금 본부인 봉씨 한 명뿐이니 여자에 빠져서 나라를 망치지도 않을 것이야. 어떤가? 이정도 인재가 또 있다고 보시는가?”
최염은 빨개진 눈으로 전풍을 노려보다가 이를 악물었다.
“나도 우장군의 능력과 인품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별개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하더라도 이것은 반역일 뿐입니다.”
“말조심하게. 반역이라니. 조금 더 침착하게 생각해보시게.”
“놓으십시오.”
최염은 경멸의 시선을 던지고는 전풍의 치소를 빠져 나왔다. 전풍은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찼다.
‘아까운 인재 한 명을 잃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최염의 행동은 결국 맹대를 통해서 봉기에게로 전해졌다. 봉기는 ‘기冀’를 세우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기에, 최염의 이런 행동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최염을 호출했다. 최염은 봉기의 호출에 딱딱한 안색을 한 채 치소로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자네. 요즘 이상한 말을 하고 다닌다며?”
“이상하다니요? 잘못을 잘못이라 지적한 게 이상합니까?”
“네놈이 실성을 한 것이냐? 지금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 지나 알고 그런 소리를 나불거리는 것이냐?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이냐? 백성들을 위해서 제대로 된 정치를 펴겠다는 것이야? 주군과 우장군의 인품이나 능력이 어떤지를 잘아는 네놈이 어찌 그런 말을 서슴없이 지껄인단 말이냐?”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하셔도 이것은 반역입니다.”
뜻을 굽히지 않는 최염을 보고 봉기는 이를 갈았다. 그는 휑하니 치소를 나왔고, 곧바로 원소를 찾았다.
“바쁜 봉호군이 어쩐 일이신가?”
“주군. 건강은 어떻습니까?”
“계속 나빠지고 있지. 아직은 견딜만해. 내 건강상태 알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닐 테고?”
“저 사실은 최계규(최염)가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원소는 편하게 등을 기대고 있다가 자세를 곧추세웠다. 그의 눈에서는 은은한 노기가 흘러 나왔다.
“지금까지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말이 없었는데, 감히 최염이 딴죽을 걸고 나섰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아직 여러 사람에게 말을 퍼트린 것은 아니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기에 빠른 조치를 하셔야 합니다. 혹여라도 일이 커질까 우려되어 이렇게 급히 찾아뵈었습니다.”
원소는 주먹을 말아 쥐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어차피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어. 자네는 어찌 했으면 좋겠는가?”
“계규가 풍채가 좋고 인품이 훌륭한 인재입니다. 하여 이런 인재를 내치는 것이 애석할 일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둔다면 불순세력들이 주위로 몰려들 것입니다. 처음에는 작을지 몰라도 그것이 제대로 구심점을 이룬다면 실로 무시무시한 태풍이 됩니다. 이런 것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최계규를 유배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이지 말고, 유배를 보내자 이거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꽤 있습니다. 명망도 높고요. 유배를 보내시는 것으로 충분히 경고가 될 것입니다. 만약 그 무리들 중에서 주제를 모르고 나서는 자가 있다면 그들에게는 가차없는 처결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잠잠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소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최염이 명망이 높았기에 죽인다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곧 최염에게는 헛소문을 퍼트려 원소를 모욕했다는 죄가 덧씌워져 유주 대군 상간현으로 유배되었다. 북쪽 사막지역에 위치한 변방지역으로 유배된 것이다.
최염은 평소와 다름없이 원소 치소를 향해 절을 올리고, 당당하게 유배길에 올랐다. 그를 따르는 많은 종사관, 유생들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고 대범함을 유지했다.
전풍은 유배를 떠나는 최염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다.
‘잘 가시게. 때가 되면 반드시 자네를 다시 데려 오겠네. 제발 그 고지식함을 버리고 오시게.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거늘, 어찌 한漢이 영원하리라 착각하시는가? 참으로 안타까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