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12화 (112/253)

# 112

제 112장. 내부를 단속하다.

200년 5월.

조조가 회하 이남으로 물러간 지도 어느새 2개월이나 흘렀다. 회하는 도도하게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원매와 조조를 갈라 놓았고, 중원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전쟁이 끝이 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전투가 멈췄으니 평화는 평화였다.

2개월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에 회하 북쪽은 완벽하게 원매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조조가 도주를 한 마당에 더 이상 버틸 현령과 태수는 없었다.

원매는 여남군 치소인 평여성에 치소를 차리고, 회하/면수로 이어지는 조조/유비/유표를 경계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회하와 면수가 가로막아 공격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회하 상류인 대별산맥을 넘어서 공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년 1월에 예정되어 있는 원소의 황제즉위식 때문에 사실상 방어체계로 전환한 것이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일이라 할 일이 많았기에, 이미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 업성에서의 행정적인 부분은 전풍과 저수가 처리하고 있었고, 원매가 군사부분을 확실하게 처리해야 했다.

원매의 소집명령에 주요 장수들이 모두 집합했다. 원매의 부하들은 물론이고 원소의 무장들까지 집합하자 넓은 치소가 비좁을 정도로 북적였다. 원매는 차분하게 한 명, 한 명을 바라 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모두를 불렀소이다. 내가 말하는 도중에 궁금한 것이 있더라도 참고 들었다가 질문을 하시오.”

원매는 헛기침을 하고는 본론을 꺼내 들었다.

“황건적의 난 이래로 수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고, 칼에 맞아 죽었소. 앞으로 얼마나 전쟁을 더 벌어야 이들을 구원할 수 있을지 가늠도 되지 않소이다. 하지만, 나라를 이렇게 만든 원흉인 황제는 지금도 수춘성에서 조조와 함께 떵떵거리며 호의호식을 하고 있소이다.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받는 이때, 황제가 나서서 한 게 무엇이 있소이까? 나는 그 동안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소이다. 무엇이 진정 백성들을 위하는 일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고, 질문을 던지면서 결국은 답을 찾아냈소. 그것은···.”

원매는 말을 멈추고는 장수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친 후, 확신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것은 이미 기운이 쇠한 ‘한’을 멸하고 새로운 ‘기冀’를 세울 것이오.”

장수들은 놀란 눈을 부릅뜨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눈치 빠른 이들은 대략 감을 잡고 있었지만, 실제로 원매의 입에서 한을 멸하고 기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말이 튀어나오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백성들을 위한 고뇌의 찬 결단을 하신 우장군께 진심으로 경하 드립니다.”

장합이 제일 먼저 선수를 치고 나섰다. 장합에 선수를 빼앗기긴 했지만, 전예를 비롯한 장수들이 일제히 한쪽 찬성을 표시했다. 장합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마초와 마대는 다소 떨떠름한 얼굴로 찬성을 하였다.

문추가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우장군! 좋은 취지에는 적극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리 되면 주유-조조-유비-유표-유장으로 이어지는 반대세력이 연합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것은 아닙니까? 한 세력이라도 더 깨부수고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대의 말이 옳소. 하지만, 명분보다 중요한 것이 있소. 황제로 등극하실 대장군(원소)께서 건강이 매우 악화되셨다는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서둘러도 결국은 내년 1월에야 가능할 것이오. 그런 우려는 알고 있으니 더는 문제제기 하지 마시오.”

“명을 따르겠습니다.”

문추가 수긍하고 물러서자, 원매는 다시 당부를 이어갔다.

“나는 여기 있는 여러분들과 평생을 함께 할 것이오. 공이 있다면 반드시 포상을 할 것이고, 능력이 된다면 진급을 시킬 것이오. 또한, 대장군께서 황제에 즉위하면, 내가 황태자를 제수 받아 중원을 통일할 것이오. 그때 여러 장수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니, 나를 믿고 힘을 보태주시오. 분명히 이에 반대하는 유씨의 세력들이 일어날 것이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이 나를 도와준다면 무엇이 두렵겠소? 아니 그렇소?”

“그렇습니다. 오직 주군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반대를 하는 놈들은 모조리 목을 베어 오겠습니다.”

감군 고람이 큰 소리로 외치며 원매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원매군 서열 1위인 고람이 다시 한번 충성을 맹세하자, 다른 장수들도 충성을 다짐하였다. 원매의 눈짓을 받은 고람은 죽간을 꺼내들었다.

“자- 이것은 충성을 맹세하는 연판장입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우리 중 누구라도 이에 반대를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서명을 하시고, 이것은 대장군께 드릴 것입니다. 바로 우리 군부의 충성심을 표시하는 것이지요. 저부터 서명을 하지요.”

고람이 제일먼저 이름을 쓰자, 장합, 문추, 전예등 장수들이 자신의 이름을 수결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은 공신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것과 같았다. 부와 명예를 차지할 수 있는 길이었다. 마초와 마대를 뺀 모든 장수들이 서명을 하자 고람은 조심스럽게 말아서 원매에게 바쳤다. 원매는 죽 훑어보고는 마초를 돌아보았다.

“마초, 마대. 자네들은 왜 안 하는가? 여기에 서명을 하며 공신으로 올라서는 것이야.”

“제가 동맹군으로 왔습니다.”

“알아. 그런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자네들은 내 부하들이나 다름없어. 생각해보게. 앞으로 대장군께서 황제가 되시고, 중원을 통일하실 것이야. 그 후에는 자네들도 정식적으로 내 부하가 되겠지. 그렇지 않겠는가? 그리 알고, 미리 해두게. 그래야 공신으로 이름을 올릴 수가 있고, 서량에 계신 마장군(마등)도 후일에 높은 관직을 내어드릴 수가 있네.”

“동맹군 장수인 저희들이 정말로 이름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원매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죽간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마초와 마대는 마지막 줄에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이름을 기입했다. 원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죽간을 조심스럽게 말아 쥐었다.

“조자룡!”

“예. 주군!”

“호위기병 5백을 이끌고 업성으로 달려가서 이것을 아버님께 전해드리게. 매우 중요한 것이니 절대 분실하면 안되네. 그래서 자네가 직접 가는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조운이 조심스럽게 죽간을 비단천으로 두르고는 갑옷 안으로 단단하게 마무리했다. 조운이 물러가자, 원매가 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일은 함부로 발설하지 마시오. 물론 알만한 사람은 안다 할지라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소. 또한 그대들은 이제부터 ‘기冀’의 공신임을 잊지 말고, 행동하시오. 곳곳에서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무리들이 나타날 것이고, 소요를 일으킬 것이오. 그런 일이 생기면 신속하게 보고를 하시오. 선조치후보고도 상관없소.”

“예! 우장군!”

“예! 주군!”

“나가서 일들 보시오. 중요한 일이 있으면 또 부르거나 전령을 통해 전달하겠소.”

장수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리며 밖으로 나서자, 원매는 끓어오르는 희열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나 바랬던 황태자란 말인가? 그것이 이제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많이 기쁘십니까?”

사마구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암. 정말 기쁘구나.”

“저는 주군의 이런 모습이 좋습니다. 가식적인 모습보다는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멋지게 보입니다.”

“고맙네. 자네가 항상 옆에서 나를 보좌해주니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내치지만 않는다면 생을 다할 때까지 모시겠습니다.”

“내가 자네 몫은 반드시 챙겨놓겠네. 그 마음 변치 말게. 참, 조자룡은 어떤가?”

“반듯합니다. 지나치게 원칙주의자라서 충돌을 일으키는 단점이 있지만, 주군께는 저런 장수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약삭빠르게 눈치나 보는 놈들보다는 조운처럼 좀 답답해도 할 말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 좋지요.”

“그건 그래. 내가 복이 많아.”

원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섰다. 사마구가 조용히 뒤를 따르는 가운데, 드넓게 펼쳐진 평야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들판은 푸른색이 무성했다. 아마도 몇 달 후면 누렇게 곡식이 익어갈 것이다.

수춘성 조조치소.

조조가 수춘성으로 들어온 이후로, 군량부족을 겪고 있었다. 허창성에서 군량을 옮겼지만, 배로 옮기는 데는 한계가 뚜렷했다. 더군다나 군사가 10만이나 되었고, 황실까지 운영했기에 군량을 책임지고 있는 한호는 항상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황제에게 지원되던 쌀, 비단등 여러 품목들이 대폭 축소되거나 아예 폐지되었다. 황제를 모시던 이들이 불만을 품었지만, 워낙 조조의 기세가 흉폭하여 감히 드러내지는 못했다. 실제로 조조는 구강군으로 들어온 이후, 자신에게 옳은 소리를 하는 양수를 옥에 가두고 매질을 하기까지 했다.

그 동안 입바른 소리를 곧잘하여 조조의 심기를 거슬렸던 양수였기에 조조는 이 기회에 죽이려고 하였으나, 순욱이 결사반대하자 옥에 가두는 선에서 그쳤다.

“빌어먹을! 내가 수춘성에서 술이나 먹으면서 시간이나 축내고 있다니.”

조조는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자,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다행히 주유가 자신을 도와주었기에 이렇게 나마 버티는 것이었지만, 불과 6개월전에 연주, 서주, 예주 절반을 다스리며 큰소리칠 때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주군. 봉효입니다.”

곽가가 조심스럽게 들어서자, 조조는 입에서 술병을 떼고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뭔 일이야?”

“유비와 동맹을 맺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단호하게 반대를 하는지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죽일 놈의 새끼! 사사건건 딴죽을 거는 구만. 원매보다 더 얄미운 놈 같으니라고.”

조조은 다시 술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곽가는 차마 술을 줄이라는 진언을 하지 못하고, 새로운 진언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지금 북쪽에 매우 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호족들이나 장수, 대신들이 쉬쉬하고 있지만, 내년 초에 원소가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 황제로 추대된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돌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굉장한 정보라고 생각해서 보고했는데, 조조는 싱겁게 응수했다.

“알고 계셨군요. 그렇다면 원매는 올해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입니다. 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에 오르려면 준비할 것이 워낙 많거든요. 또한 반대하는 놈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니 내년까지는 숨죽이고 지낼 것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주군께서 폐하를 모시고 있으니, 주유-유비-유표-유장으로 이어지는 반원매연합을 만들어 맹주가 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힘을 통해서 원매와 동등한 위치에서 다시 한번 전투를 벌일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절대로 지금처럼 당하진 않을 것입니다.”

“반원매연합이라? 흐흐흐흐- 이제야 곽봉효다워졌군. 멋진 생각이야. 이것은 원소의 황제즉위에 맞춰서 만들 수 있도록 계획하고 실행해봐. 이것은 자네에게 전적으로 위임하지.”

곽가는 조조가 순욱을 들먹이지 않고, 자신을 믿어주자 눈물이 핑-돌았다. 이번 전투를 통해서 쓰라린 패배를 하였지만, 조조의 신뢰를 얻은 것이다.

“신명을 다 바치겠습니다.”

“그래. 이것은 순문약과 관계없이 나에게 직접 보고하게. 지나치게 순문약에게 업무가 집중되고 있어. 그리고 자네도 지난 전투를 통해서 많이 깨달았을 거야. 머리만 믿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이 또 반복될 거야. 그러니 부단한 노력을 하게. 자네는 이번 전투를 패배한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갑자기 이야기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자, 곽가는 움찔했다. 패배의 원인 중 하나는 자신의 계책을 원매가 알아차리고 역이용했다는 것이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이곳에 와서 생각해보니, 결국은 경험문제였어. 순유도 40을 넘었지만, 가후는 50을 넘었다는군. 자네는 이제 30이야. 이제 큰 경험을 했으니, 부단히 노력해서 순유, 가후를 넘어서보게. 가능하면 순욱도 넘어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조는 할 이야기가 끝났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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