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제 111장. 허탈한 조조.
주유는 예장군이 중립을 지키고, 단양군과 오군 북부 지역이 자신을 따르자 안심했다. 하지만, 부춘현을 중심으로 주위의 현들이 손정에게 호응하자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상대는 손책의 고향인 부춘현이었고, 얼마 전까지 이곳의 실세였던 자들이었다. 그대로 방치를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토벌을 하자니 강동에서 자신의 기반이 매우 취약했다. 어떡하면 큰 무리 없이 손씨 세력을 무너뜨릴까 고민하는 그에게 조조에게서 사신이 왔다.
“저는 거기장군(조조)의 명을 받아 온 곽가라고합니다. 주장군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곽가가 깊숙이 허리를 숙이자, 주유가 같이 예를 표했다.
“대략 이야기는 들었소이다. 원매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요? 하지만, 얼마 전까지 서로 창칼을 맞댔던 사이인데, 뭔 일로 오셨소? 설마 지원요청이라도 하러 온 것이오?”
“그렇습니다. 주군께서는 주장군께 원한이 없습니다. 또한 그때, 강동의 전 주인인 손장군께서 일방적으로 공격하셨지 않습니까? 저희는 피해자입니다. 만약 저희 주군께서 무너진다면 그 다음 목표는 주장군이 될 것입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겠소. 원매가 아무리 강해도 수군은 우리가 한 수위에 있소.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강동이 어수선하오. 그래서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드리지 못하오. 그러니 돌아가시오.”
“많은 부탁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원매에게 사신을 보내어 중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유는 중재라는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 원매가 내가 중재한다고 말을 듣겠소? 아마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주장군이 중재를 한다면 크든 작든 부담을 가질 것입니다. 공짜로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주장군께서 강동을 단단하게 정리하시려면 손씨들을 확실하게 잡아야 합니다. 그들보다 군사력에서 우위에 계시지만, 명분에서도 앞선다면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곽가는 말을 마치고는 황제의 교지를 바쳤다. 주유는 공손하게 예를 표하고는 교지를 읽었다. 그의 얼굴은 환하게 펴졌다.
“내게 대사농과 전장군을 제수하신단 말씀이오?”
“그렇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린다면 충분히 명분에서도 그들을 앞서게 됩니다. 주장군께서도 아시겠지만, 명분에서 확실하게 제압을 해야 다시는 반항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조조가 핵심을 정확하게 알고 치고 들어온 것이다. 지금 손책의 유언말고는 딱히 명분이 없었지만, 대사농과 전장군이라는 관직은 그를 일개 지방장수에서 단숨에 중안의 요직으로 바꿔주었다. 물론 난세였기에 명목상의 관직이었지만, 힘을 가진 주유로서는 충분히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좋소. 내 그리 하겠소. 강동이 안정된다면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와주겠소. 광릉군 남쪽은 내 영토요. 인정하시오?”
“물론입니다. 당연합니다. 여기 주군의 친필입니다.”
주유는 곽가의 죽간을 받아 들고는 감탄을 터트렸다. 거기에는 광릉군 남쪽을 주유의 영토로 인정한다는 조조의 친필과 인장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순욱이 여기까지 염두에 두고 주유를 설득하기 위해 곽가를 보냈던 것이다.
주유는 곽가를 돌려보낸 후, 대사농 겸 전장군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강동의 주인임을 알렸다. 단양군과 오군 북쪽의 주요 호족과 현령들은 경하의 답신을 보냈고, 예장군의 이이와 진무도 형식적이나마 답신을 보내왔다.
손정은 당연히 불같이 화를 내며 거부했다. 하지만, 중앙의 높은 벼슬을 받자 주위의 현령들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손책을 따르던 한 명의 장수였던 주유가 아니라, 대사농/전장군의 주유였던 것이다. 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고, 주요 현령과 호족들에게 심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주유는 동시에 장굉을 사신으로 삼아 원매에게 보냈다. 장굉은 배를 타고 회수-영수를 거쳐 원매에게로 향했다.
조조군영.
조조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순욱의 계책을 허락했다. 그도 원매가 이끄는 40만 대군을 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순욱의 계책대로 거대한 회하를 경계로 삼아서 버틴다면 충분히 원매의 공격을 몇 년간은 버텨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원매의 추격에 대비하여, 방책을 그대로 두었고, 강변에 보병 1만을 정상적으로 배치하여 경계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또한, 기병을 남겨두어 혹시라도 있을 추격에 대비했다. 그리고 나머지 병력들은 야간을 이용하여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허창성은 중요한 물건을 빼내어 여수를 통해서 내려갔다. 이때 황제도 힘없이 조조의 명령을 따라 나섰다.
“참으로 허망하구나. 내가 연주와 허창을 버리고 원술의 영토인 수춘성으로 들어갈 줄이야.”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조조를 순욱이 위로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넘게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고생길이 훤히 열리겠지만, 희망을 놓지 마시고 버티십시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남을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래. 고맙군. 그런데 한가지 의아한 게 있어. 원소의 건강상태 말이야. 내가 젊었을 때부터 그를 봐왔기에 아는데, 그는 겉으론 멀쩡해도 속으론 골병이 들었어. 지금 원매가 저리 날뛰는 것을 보니 모든 것을 물려주고 요양하는 것일까?”
“제가 좀더 알아보겠습니다. 아직 요양중인 것은 아닌 것 같고, 건강이 안 좋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응? 순문약 자네가 웬일로 조심하는가?”
“이건 확실치 않습니다. 좀 황당한데 원소가 황제를 욕심낸다고 합니다.”
순욱이 경멸이 담긴 눈빛을 쏘아내며 날카롭게 이야기하자, 조조가 흡- 하고는 입을 닫았다. 원소라면 충분히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고, 자신도 힘만 되면 황제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순욱의 눈빛을 접하고는 매우 민감한 문제임을 직감한 것이다.
“그래. 자네가 허창성의 군량과 물품들이 수춘성까지 잘 도착하도록 수고해주시게.”
“예. 주군.”
순욱이 돌아서서 물러가자, 조조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가 있던 자리를 노려보았다.
‘순문약. 어디서 함부로 그런 눈빛을 내비치느냐? 나도 힘을 갖는다면 당연히 황제가 될 것이다. 형주의 유표도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마당인데, 나라고 못하겠느냐?’
원매군영.
가후가 촌로등을 동원하여 영수의 상황을 낱낱이 파악했고, 원매는 그 동안 병사들에게 휴식을 부여하며 간단한 훈련등을 통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번 전투를 통해서 조조를 끝장낼 계획이었다.
이때, 주유가 보낸 장굉이 사신으로 원매를 찾았다. 원매는 뜬금이 없었지만, 장굉을 내치지 않고 맞이했다.
[장굉(47)] 지력:86, 정치력:95
장소와 함께 동오의 원로. 내정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원매는 장굉의 뛰어난 능력치를 확인하자, 쓴 입맛을 다셨다. 꼭 데려다가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매요. 어쩐 일로 오셨소?”
“대사농 겸 전장군인 주군의 명을 받들어 왔습니다.”
“대사농? 전장군? 아니 주장군께서 언제 그런 벼슬을 받으셨소?”
“강동으로 입성하신 후, 폐하로부터 제수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조조를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오?”
“조조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전쟁 때문에 힘들어하는 백성들을 생각해주십사 하고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지금 전투로 인하여 연주, 예주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고, 다쳐서 죽고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이런 부분을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주장군께서 조조를 편들어 주시겠다? 이런 말씀이오?”
“고통 받는 백성들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뿐입니다. 주군께서는 누구의 편도 아니시며, 오로지 백성만 바라보고 계십니다.”
혼자만 착한척하며 말을 빙글빙글 돌리는 장굉을 보자 원매는 화가 나서 한대 후려칠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알았으니 돌아가시오.”
“부디 백성의 고통을 잊지 마십시오.”
장굉이 예를 올리고 물러나자, 원매의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하여튼 배웠다는 놈들은 뭔 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는지. 쳐죽일 놈의 새끼 같으니라고.”
원매가 찻잔을 집어 던지자, 쨍그랑-하고 박살이 났다. 하지만, 화풀이는 거기까지였다. 장굉에게 매질을 한다거나 목을 베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주군께서 심기가 많이 불편하신가 보군요. 아- 때를 잘못 맞춰왔네. 좀 있다 다시 오겠습니다.”
가후가 짐짓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려고 하자, 원매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 참. 겁도 없는 양반이 이정도 상황을 가지고 뭘 그러시오. 빨리 들어와서 보고하시오.”
“저 겁 많은데요. 흐흐흐흐흐-“
“앉으시오. 장굉이란 놈 때문에 화가 나서 그랬소. 이 죽일 놈이 나를 뭘로 보고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해서.”
원매는 장굉과 나눈 이야기를 가후에게 들려주었다. 가후는 곰곰이 듣더니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쳤다.
“이거 당했군요. 조조휘하에 순욱이란 책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참 대단하군요. 완전히 당했습니다.”
“자세히 말해보시오.”
“5일전부터 조조가 허창성의 군량과 주요물품을 실어서 남쪽으로 이동했고, 병사들도 밤을 이용하여 남쪽으로 보냈습니다. 영수강변에 경계병을 평소와 다름없이 똑같이 세우고, 방책도 그대로 놓아 두었기에 깜빡 속았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지도를 보며 추정한 결과, 저들은 구강군으로 가는 것이 분명합니다.”
“구강군? 수춘성이 있는 곳 아니오? 왜 거길 가는 것이오?”
“영수로는 주군을 도저히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곳을 미련 없이 버리고 구강군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곳은 회하가 흐르고 있는데, 회하는 하수(황하)만큼 큰 강입니다. 또한 하수는 강폭이 넓고 중간 중간 모래섬이 많아 도하가 용이한데, 회하는 강폭은 하수보다 작지만 수심이 깊고, 중간의 모래섬도 별로 없습니다. 아마도 회하를 장애물로 삼아서 버틸 것입니다.”
“그렇다면 겨우 구강군, 광릉군, 하비국 남쪽만 차지하는 것이로군. 아- 그래서 당했다고 하셨군요. 그리 되면 장강을 사이에 둔 주유가 수군을 거느리고 회하를 지켜준다면 조조로서는 힘을 모을 수가 있고, 나는 몇 년을 수군을 양성하면서 끙끙댈 테니 말이오.”
“현명하십니다. 바로 수군이 문제입니다. 뭐 그래도 나쁜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조가 남쪽으로 도망쳤으니 회하 북쪽의 현령, 태수들을 설득하는 것은 더욱 쉬워졌습니다. 영토를 공고히 하시면서 서서히 힘을 키우시고, 수군을 양성하시면 될 듯 합니다. 병사들도 그간 고생을 했으니 휴식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요.”
원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덕분에 회하 북쪽을 쉽게 점령하게 됐지만, 조조를 살려두었다는 것이 내심 불편했다.
가후를 물러가자 원소를 찾았다. 그에게 현재의 상황을 보고하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매야. 어찌하면 좋겠느냐? 2~3년이면 수군을 양성하고 남은 놈들을 물리치면 될 터인데, 내게는 그 짧은 기간도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구나.”
“아버님. 회하 북쪽은 더 이상 조조의 영토가 아닙니다. 구강군, 광릉군 일대는 아버님의 영토에 비하면 아주 작습니다. 올해 내에 회하 북쪽 영토를 확실하게 안정시키고, 내년 1월에 황위에 오르시지요. 제가 영토내의 불만세력들을 색출하는 동시에, 아버님의 지지자들을 확실하게 단속하겠습니다. 또한 곳곳에 정예병을 남겨두어 반란을 일으키는 놈들을 응징하겠습니다. 처음에 일어나는 놈들을 확실하게 처리하면 반란세력도 수그러들 것입니다.”
“내 욕심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구나.”
“나중에 황위에 오르려고 그러는데요. 제가 욕심이 아주 많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이 녀석. 그리 말해주니 조금은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구나. 그럼 이 아비는 업성으로 돌아가겠다. 이제는 알 수 있어. 십 년은 어림도 없고, 잘해야 5~6년 살 거야. 그것도 골골대면서 말이지. 돌아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겠어.”
“어머님은 아버님을 많이 사랑하십니다.”
“알아. 미안하다는 표현도 할 것이고, 좋은 곳도 함께 다닐 생각이다. 마무리 짓고, 가을쯤에 보자꾸나.”
“살펴가십시오.”
원매는 멀어져 가는 원소의 쓸쓸한 등을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정말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