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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04화 (104/253)

# 104

제 104장 오만한 놈, 횡재한 놈, 불쌍한 놈.

히히힝- 고라니를 열심히 쫓던 손책이 말이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급히 일어서려 할 때 왼쪽 발이 삐끗했음을 알아차렸다.

“빌어먹을!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그가 주위를 둘러볼 때, 어린 소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손책은 자신의 다리를 주무를 뿐 거지꼴을 한 소녀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녀는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입을 열었는데 뜻밖에도 욕설이 튀어 나왔다.

“네놈이 손책이냐?”

“뭐라? 네놈? 이런 미친년을 보았나?”

손책은 하찮게 여긴 소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욕설을 하자, 분통을 터트리며 왼손으로 소녀의 뺨을 후려쳤다. 소녀는 데구르르 굴러가 바위 사이에 쳐 박혔다. 입에서 피나 나고, 얼굴이 긁혔지만, 손책에게 퍼붓는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손책은 아픈 다리를 이끌고 가서는 소녀를 멱살을 쥐어 잡고는 여러 대 후려치자, 그녀는 힘없이 축 늘어졌다. 그녀를 집어 던지고는 침을 뱉었다.

“재수가 없을려니까. 이런 산중에서 별 미친년을 다 만나는구나.”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손책은 축 늘어진 그녀에게 연신 발길질을 해댔다. 그때였다. 갑자기 등이 뜨끔했다. 고개를 돌리자 처음 보는 거한이 자신의 등에 칼을 꽂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우아아악-“

손책은 괴력을 발휘하며 사내를 잡아 땅바닥에 메다 꽂았다. 거한은 땅바닥에 꼬꾸라져 바르르 떨 뿐 일어나지 못했다. 깊숙이 꽂인 칼 때문에 손책의 몸이 자유롭지 않았지만, 거대한 분노가 고통을 삼켰다.

그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거한에게 달려들어 발길질을 해대며 분통을 터트렸다. 과연 이런 상황이 왜 일어났을까 하는 당연한 의문은 그의 분노 속에 파묻혔다.

그때, 소년이 달려들어 그의 등에 칼을 박았다. 소년은 잔인하게 칼을 비틀어 돌렸다. 엄청난 완력의 손책이었지만, 연속으로 칼을 맞았고, 두 번째 칼이 살 속을 휘젓자 몸을 떨 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다.

“죽어! 이 개자식아!”

소년이 뒤에서 칼을 몸에 꽂은 상태에서 마구 휘저었고, 거한도 다시 일어나 그의 배에 칼을 꽂았다.

“주군!”

“주군을 보호하라!”

뒤늦게 호위무사들이 달려들었고, 거한과 소년은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주군! 정신차리십시오!”

손책은 정신이 희미해져 갔다. 그들은 손책의 상처부위를 붕대로 감쌌고, 후방으로 빠르게 이송했다. 급하게 달려왔지만, 군영에 도착하여 의원이 살필 때에는 늦어도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손권, 주유를 비롯한 주요 장수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손책곁에 모였다.

손책이 회한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한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고 아주 힘겹게 그의 입이 열렸고, 더듬더듬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친우(주유)여- 나를 용서하시게. 이 미련한 나를 용서하시게. 주공근······ 그대가 ······ 내 뒤를 이을······ 후계자 ······ 커헉“

손책은 말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피를 한 사발 토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영웅치고는 처참한 말로였다. 당연히 손책의 죽음을 슬퍼해야 했고, 장례를 치르는데 중점을 두어야 했지만, 진짜 문제가 터졌다.

그의 마지막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주유와 손권이 당황하여 서로의 얼굴을 보는 가운데, 정보, 황개, 주치, 태사자, 여범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유가 후계자가 되란 말인가? 주유에게 후계자를 선택해서 잘 보필하란 말인가? 손씨를 후계자로 본다면 후자가 맞을 것이다. 손책의 죽음에 슬퍼하며 울음을 터트려야 할 상황이 묘한 냉기류가 흐르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주유가 담백한 성품인 것은 분명했지만, 야망이 없는 바보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는 손책에 이은 군부서열 2위였다. 손책의 동생인 손권은 서열로 보면 후계자 일순위였지만, 강동에서의 힘은 매우 미약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는 아무런 힘도 없는 백면서생에 불과했다.

“주군의 상을 치릅시다. 그게 우선이오.”

주유가 정신을 차리고 명을 내리자, 태사자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 돌아가셨으니 후계자를 세워야 합니다. 장례를 치르는 일도 후계자가 주관하셔야 하고요.”

태사자가 무섭게 주유와 손권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가자, 손권은 입술이 파래지며 부르르 떨었다. 실권이 없는 그로서는 상황이 어찌 변할지 몰라 두려웠던 것이다.

“주군께서는 마지막에 주장군을 후계자로 거론하셨소. 마지막 명령이자, 유언이니 주장군께서는 이를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태사자의 진언에 주유는 말이 없었다. 주치, 여범은 내심 손권이 후계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손책의 마지막 말은 분명 주유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있었다. 말이 조금만 길었다면 다른 의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만 본다면 후계자는 주유였다.

“아니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신 겁니까? 주군께서 주장군을 후계자로 봉하셨는데, 다른 분들은 아무 말씀이 없으시오? 설마 주군의 마지막 명령을 거역하려는 것이오? 이는 반역이오!”

반역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들의 얼굴도 헬쑥해졌다. 묘하게 흐르던 분위기는 정보, 황개가 태사자의 진언에 동의를 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손견에 이어 손책을 모시고 있던 그들은 그의 마지막 유언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태사자가 제일먼저 절을 하자, 정보/황개가 뒤를 따랐다. 주치와 여범도 눈치를 보다가 엎드렸다. 주유는 눈을 감고 말이 없었다.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왜이리 상황이 꼬인단 말인가? 손권이 두려움에 떨며 눈치를 보다가 같이 무릎을 꿇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주유는 말없이 일어났다. 일단 손권이 동생의 명분으로 손책의 장례를 주관했다. 며칠 동안 주유가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무장들은 주유를 지지했다.

손책의 친구이고, 지용을 갖춘 명장이었으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가진 주유를 내심 숭상하고 있었기에, 주유를 그들의 주군으로 기쁘게 받아들였다.

손책의 망나니 행동으로 손가에 대한 적개심이 무장들 사이에 공공연히 퍼진 것도 손권이 아닌 주유를 밀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주유치소.

주유를 설득하기 위해서 태사자, 황개, 정보가 이곳을 방문했다. 이들의 명분은 분명했다. 손책의 유언이었다. 주유가 고민하는 것은 손견-손책으로 이어졌고, 그런 순리로 본다면 다음은 손권이 이어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친우 손책의 가업을 송두리째 빼앗는 것 같은 참담함이 든 것도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이유였다.

“주장군! 결단이 늦어질수록 혼란은 가중될 것입니다. 당장 이곳에서 군대를 철수해서 강동으로 돌아가서 그곳의 혼란을 바로잡고, 주군께서 못 다 이루신 패업을 이루셔야지요.”

가장 나이 많은 황개가 앞장서서 진언을 올리자, 정보와 태사자도 같은 의미의 진언을 올렸다.

“나도 알고 있소이다. 하지만, 주군께서 좀더 힘이 남아있어서 유언을 제대로 했다면 손권을 지목하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군의 어린 아들을 지명할 수도 있고, 손권이 될지, 손익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요. 더군다나 그들이 후계자로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혼란이 가중될지는 생각해보셨습니까? 이미 주군의 유언을 모두 들었습니다. 또한, 하급장교들이나 병사들까지 알고 있고, 주장군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더는 미루실 일이 아닙니다. 그리 마음이 불편하시면 나중에 손가를 잘 돌봐주시면 될 것입니다.”

이들의 간곡한 진언과 손책이 이뤄놓은 강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주유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들의 진언을 가납했다.

전쟁으로 죽거나 실종된 5천을 제외하고 4만 5천의 병사들이 빼곡하게 배열한 가운데 주유가 여러 장수들에게 둘러싸여 단위로 올라섰다. 엄중한 책임감으로 그의 얼굴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 주유는 돌아가신 주군의 명을 받들어 강동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대들의 주군으로서 이 주유가 명령한다. 즉각 군사들을 점고하고, 준비가 되는대로 강동으로 돌아간다!”

주유의 선언에 장수들과 병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땅을 구르고, 검을 높이 치켜들며 한참 동안이나 환호성은 지속되었다.

손권은 그것을 몰래 지켜보며 분함에 눈물을 훔쳤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형님! 어쩌자고 그런 유언을 하셨습니까? 이제 강동의 주인은 손씨가 아니라 주씨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장수나 병사들이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어쩌면 형님의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십시오. 하지만, 저는 분하고 억울합니다.’

주유는 출병준비를 명령하고는 장수들을 소집했다. 그의 명령에 정보, 황개, 주치, 여범, 손권이 치소로 들어왔다. 주유는 상좌에 앉아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5천의 병사들을 희생하여 얻은 광릉군 남쪽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소이다. 장강과 연한 광릉성에 5천의 병사들을 남겨두어 지켜야겠소. 주장군(주치)!”

“예. 주군!”

“그대에게 5천을 줄 터이니, 광릉성을 지키면서 영토를 관리하시오. 손권 자네도 남아서 돕도록 하게.”

“예? 저- 주군. 강동으로 돌아가서 어머니를 뵙고 싶습니다. 그 후에 광릉성으로 돌아오면 안되겠습니까?”

강동으로 돌아간다면 반전의 수가 생길 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모친 오씨가 큰 실권을 잡고 있고, 손씨들도 곳곳에 포진되어 있었다.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손권이 입을 떼었지만, 이미 주유의 생각에 거기까지 미쳐 있었다.

“강동으로 돌아가면 혼란스러울 것이야. 3~4개월 정도 기다리게. 안정이 되면 자네를 바로 부르도록 하지.”

“하지만, 형님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실 어머님을 생각하면···..”

쾅-

주유가 탁자를 내리치자, 손권이 기겁하여 말을 중단했다. 주유가 냉막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경고를 날렸다.

“나를 시험하려고 하지 마라. 내 인내심은 여기까지다. 지금부터 강동을 흔드는 어떠한 행위도 용서하지 않겠다. 알겠느냐?”

손권이 찔끔하여 대답을 못하자, 주유가 대답을 재촉했고, 결국 그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복종했다.

“자- 광릉성에 주장군, 손권이 남았으니 다른 분들은 최대한 빨리 병사들을 점고하여 강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주시오. 시간이 얼마 없으니 서둘러 주시오!”

주유의 명령에 장수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리고 밖으로 나섰다.

진등군영.

주유의 명령으로 주유군이 일제히 남쪽으로 철수하자, 정찰병이 확인하고는 급히 진등에게 달려갔다.

“무엇이? 저들이 후퇴를 한다 이거지?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자세히 말해보거라!”

“손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속하게 강동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알았다. 돌아가서 정보를 더 정확하게 알아오너라!”

정찰병이 물러가자, 진등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곳에는 약 3만 3천의 병력이 있었다. 손책이 죽었고, 그의 군대가 강동으로 돌아가는 마당에 이 많은 병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주령, 누규, 종요와 병력 2만 5천을 조조에게 보냈고, 전령을 먼저 보내어 이곳의 상황을 자세하게 알렸다. 진등의 이 판단은 원매와의 전투로 힘들어하는 조조에게 결과적으로 큰 힘을 보태준 셈이 되었다.

또한 정찰을 통해 광릉성에 주유군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무리해서 광릉군 남쪽을 되찾으려 하지 않았다. 하여, 8천의 군대를 평안현에 계속 주둔시키면서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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