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제 101장.
원매는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아니? 장준예(장합)께서 웬일이오?”
“저는 우장군을 뵙고 진언도 드릴께 있어서 왔는데, 전혀 반갑지 않은 표정이군요. 섭섭합니다.”
“하하하- 반갑소. 다만, 놀라서 그랬을 뿐이오. 자- 이리로 앉으시오.”
원매는 장합을 앉히고는 차를 권했다. 장합은 차를 마시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우장군께서 지구전을 구상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의도로 지금 군을 운용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조조군의 동태를 보니 다른 생각이 들더군요. 차라리 허창성을 공략하면 어떨까 해서요? 후방이 흔들리면 조조가 더욱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좋은 지적이오. 문제는 허창성이 굉장히 견고한 성이란 것이지. 또한, 10만 정도가 빠지면 조조를 압박하는 모양새도 나오지 않고. 좀 꺼림칙하오.”
“저는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군량보급선을 끊을 수도 있을 겁니다. 허창성을 점령하여 그 가족들을 잡는다면 분명히 흔들립니다.”
원매가 장합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 마디 했다.
“그대는 처자식이 잡히면 항복하겠소?”
장합은 흡- 하며 숨을 들이키고는 머뭇거렸다.
“솔직히 말해보시오. 처자식이 잡히면 항복하겠소? 아니면, 그대가 모함을 받아 위기에 몰리면 어찌하겠소?”
전혀 뜻밖의 질문을 정색을 하고 물어보자, 장합은 난처했다. 하지만, 상관의 질문에 대답을 안 할 수는 없기에 조심스레 대답했다.
“처자식이 중요하지만, 항복할 수는 없습니다. 모함을 받는다면 어떡하든 그것을 진실을 알리려 노력해야지요.”
원매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이오. 어떤 놈이 나를 매장시키려고 한다면 그 놈의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것이오. 조조가 얼마나 매정한지 아시오? 남양의 장수에게 기습을 받자, 조앙이라는 큰아들과 조카 조안민을 죽이고 살아남은 자요. 장준예 그대도 이 정도인데, 벌써 큰아들을 죽인 경험이 있는 조조가 처자식을 잡는다고 쩔쩔매겠소?”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좋은 의견인 것은 분명하오. 다만, 지금 내가 구상하고 있는 작전과는 다르기에 채택할 수가 없소. 적어도 6개월은 보고 있소. 조조는 밑바닥까지 흔들려서 더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야 항복하니 그대도 부대로 돌아가서 계속 압박을 하시오. 설령 전투가 벌어져도 소규모로 벌이고, 가능하면 죽이지 말고 부상을 많이 입히시오.”
장합은 원매와의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는 흘끔 원매의 막사를 노려보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나이가 어린데 어찌 저리 냉정할까? 더군다나 내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은 뭐란 말인가? 조심해야겠구나. 다른 공자들과 똑같이 생각했다가는 목이 달아나겠어.’
장합은 호위기병을 거느리고 말을 달렸다. 자신의 부대로 향할까 생각하다가 문추에게로 향했다. 문추는 장합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장합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원매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문추의 조언을 구했다.
“편하게 생각하시오. 나도 같은 생각이오. 처자식이 잡혔다고 항복할 생각도 없고, 나를 모함하는 놈이 있다면 죽여버릴 것이오.”
“모함하는 자가 감당키 어려운 자라면 어찌 하려고요?”
“내가 죽던가? 아니면 뭔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지요. 솔직히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겠소? 충신 어쩌고 하면서 죽는 놈은 뭔가 모자란 놈이오. 그리고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삼공자(원매)가 후계자가 되었소. 우리 지위를 인정해주고, 간신 같은 허유, 신평 이런 놈들을 물리치지 않았소?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두고 충성하시오.”
장합은 문추에게 감사를 표한 후 밖으로 나섰다. 생각해보니 문추의 말이 옳았다. 누군가 자신을 건드리지 않고, 일을 한만큼 대우를 해준다면 충성을 다할 생각이었다. 문추가 그것을 정확하게 끄집어 내준 것이다.
‘그거 참. 겉으로 보기에는 힘만 센 무식한 놈 같은데. 핵심을 기가 막히게 짚어낸단 말이야. 하긴 그러니 저런 위치에 올랐겠지. 만만한 놈이 하나도 없구나. 일이나 하러 가자.’
장합은 자신의 치소로 달려갔다.
원소와 조조의 대치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동안, 서주의 남쪽에서는 일이 터졌다.
“아니? 진정 미친 겐가? 왜? 그걸 못 참고 이러는 것인가?”
주유가 감정을 폭발시키며 눈물을 쏟았지만, 손책은 붉은 피가 흐르는 칼을 들고는 그대로 술을 거침없이 마셨다. 주유는 털썩 무릎을 꿇고 간언했다.
“제발 이러지 말게. 이렇게 부탁하겠네.”
“뭘 하지 말라는 것이야?”
술기운이 도는지 손책의 눈은 붉게 물들었고, 반쯤 풀어져 있었다.
“아- 이것들 말인가? 자네도 알잖아. 이놈들이 진등의 수족 노릇을 하면서 우리군을 염탐했어.”
“그래도 그렇지. 어린아이까지 모조리 죽이다니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그리하면 안되네.”
“참나. 그리 소심해서 이 난세를 어찌 살려고 그러는가? 장부란 독해야 하네. 서초패왕께서도 대의에 방해가 된다며 수십만을 죽이기도 했어. 나는 말을 안 듣는 수백을 죽인 것뿐이야. 그런 쓸데없는 소리할 시간 있으면 계책이나 짜보게.”
손책은 귀찮은 듯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주유는 힘없이 일어서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주유가 돌아가자, 손책을 술병을 집어 던졌다.
쨍그랑-
“빌어먹을! 술 맛 떨어지게 계집애같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손책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아직도 멀었느냐? 빨리 가자!”
손책의 명령에 피 묻은 칼은 들은 병사들이 곳곳에서 튀어 나왔다. 그들의 눈은 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가자! 이정도 해놓았으니 감히 진가 놈의 편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손책과 병사들이 마을에 불을 지르고는 물러났다.
마을 근처의 숲에서는 여섯 개의 눈이 낱낱이 목불인견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른 한 명과 아이 두 명이었다. 여자아이 한 명은 입을 막고 소리 죽여 울음을 터트렸다.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울지 마라! 내가 손책 저놈을 반드시 죽이고 말 것이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손책은 용맹이 대단한 자이니, 우리가 조금이라도 그의 신경을 분산시킨다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사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들을 꼭 안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래 너희나 나나 가족들이 모두 죽은 마당에 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내는 눈물을 쏟고는 아이 두 명을 데리고 그 자리를 몰러 벗어났다.
군영으로 돌아온 손책은 답답한지 장수들을 불러모아 또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정보, 황개등이 참석했으며 술자리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정보와 황개는 진등과의 전투가 뜻대로 되지 않아 꼬인 것으로 생각하고 손책을 위로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광기를 드러냈던 손책은 밤이 늦어서야 술에 취해 잠에 빠져들었다.
원매와 조조가 대치를 하고, 손책이 광기 어린 행동을 하고 있을 때.
형주 장사군 태수치소.
유비는 장사군 태수로 있는 유표의 조카 유반을 만나고 있었다.
“아니? 유목사께서 예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이제는 남도 아닌데 제가 못 올 곳이라도 왔습니까?”
“그런 건 아니지요. 그리고 백부(유표)의 의제가 되셨는데, 앞으로 숙부로 모시겠습니다. 말씀을 편히 하시지요.”
“허허허- 이거 참. 내게도 이렇게 훌륭한 조카가 생기는 것인가? 마음을 알아주니 고맙네.”
유반과 유비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던 유비의 눈에 밖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황충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난 유비는 단번에 황충이 뛰어난 무장임을 알아보았다.
“저 장수는 누구인가? 참으로 대단한 호걸인 듯 한데.”
“황충, 자는 한승이라 합니다.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대단한 무장입니다. 형주에서 없어서는 안될 귀한 장수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숙부님의 두 의제에 비하겠습니까?”
“아냐. 아냐. 정말 출중해.”
유비는 황충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너무 욕심이 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조카 유반의 장수였다. 쓴 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들었다.
“참. 대공자(유기)께서는 요즘 어찌 지내시는가?”
“아휴- 말도 마십시오. 겉은 멀쩡한데 머리가 문제입니다.”
유반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치며 혀를 차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백부께서 나이가 많으니 열심히 도와드려야 할 터인데,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합니다.”
“응? 무슨 말인가? 독서도 많이 하여 학식이 풍부하고, 성정이 올곧다고 알고 있는데. 뭐가 답답하다는 말인가?”
“그런 부분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고지식해서 형주 최고의 가문인 채씨, 괴씨들과 싸움을 벌인다는 게 문제 아닙니까? 그러니 백부님께서도 힘들어하시고요. 생각할수록 답답합니다. 오죽하면 채씨, 괴씨들이 막내(유종)를 은근하게 후계자로 밀겠습니까?”
“어허- 엄연히 적장자(유기)가 있거늘. 어찌 그런 일이.”
“이미 대공자와 채씨, 괴씨간의 알력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래?”
순간적으로 유비의 눈에서는 반짝하고 광채가 일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범한 눈으로 돌아왔다. 이후 유비와 유반은 형주의 앞날을 걱정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는 유비에게 유반은 황충을 소개시켜 주었다.
“황충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사람이 참으로 영광이외다. 그대를 보니 형님(유표)께서 얼마나 듬직할지 짐작이 갑니다. 부디 노고를 아끼지 말고, 우리 형님을 잘 보필해 주시오.”
“감사합니다. 그저 소장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뿐입니다.”
유비는 아쉬운 듯 황충을 바라보고는 장사성 유반치소를 떠났다. 유반과 황충은 포구까지 나와 그를 배웅했다.
복양현 조조군영.
“군량이 벌써 바닥을 드러낸단 말인가?”
정욱은 군량을 담당하는 종사관의 보고를 받고는 이마를 짚었다.
“한달 정도면 군량을 다 소모할 것입니다. 허창성에 계속 독촉을 하여 가져오는데, 그곳의 비축량도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종사관이 송구한 표정으로 보고를 하자, 정욱이 손을 내저으며 물러가게 했다. 분명히 조조에게 보고를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불같이 화를 낼 그를 생각하자, 오금이 저려왔다. 그는 걱정을 하다 곽가를 찾았다.
“큰일이로군요. 군량이 부족한 것은 알았지만, 이건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보고를 드리지요. 허창성의 군량까지 하면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길어야 6개월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군사들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원소는 40만입니다. 저들은 무리 없이 버티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까?”
“원소는 기주, 유주, 청주, 병주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서 군량을 비축했고, 원매를 통해 관중, 남양에서 계속 군량을 얻고 있습니다. 반면에 주군께서는 연주에서 얻는 게 고작입니다. 서주는 아직도 반감이 크고 전란의 후유증으로 세수를 걷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차이가 날수 밖에요.”
곽가는 정욱으로부터 설명을 듣고는 곧바로 조조에게 향했다. 조조는 곽가의 진언을 들었지만, 말이 없었다. 그는 한참을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만약에 말이야. 저놈들이 6개월이상을 버티면 어쩌는가? 기병에서 워낙 차이가 나는데다, 보병까지 차이가 나니 야전을 벌여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어. 저놈들 약점이라도 잡아낸 것이 없는가?”
“아직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남쪽에 원소군이 있어. 저놈들이 군량보급선을 끊으려고 작정하면 내가 피곤해질 텐데, 어찌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인지 당최 모르겠어.”
“지난번에 말씀 드렸다시피 물량작전입니다. 입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군량소모가 많을 테니까요.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계속 정찰을 보내고 있으니 뭔가 걸려드는 게 있을 겁니다.”
조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산을 바라보았다. 갈수록 답답했고, 한숨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