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제 100장. 물량작전物量作戰
원매는 기병을 앞세워 정찰을 하면서 신중하게 진격하고 있었다. 혹여 기습이라도 당하는 날이면 대승을 하여 높아진 사기가 다시 떨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5일동안 행군하자, 조조군영이 육안으로 식별되는 복양현까지 이르렀다. 조조도 이를 알고 있었는지, 방책을 단단하게 치고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원매는 복양현에 주둔지를 편성하고는 가후에게 정찰을 지시했다. 거대한 주둔지를 편성하는 동안 가후는 기병을 이곳 저곳에 보내어 차분하게 조조군영을 살폈다. 평야지대였기에 적을 관찰하는 것은 용이했다. 물론 조조군도 원매군을 쉽게 알아차렸다.
정찰결과를 토대로 상황을 정리한 가후는 저녁이 되어서 원매를 찾았다. 원매는 여유 있게 차를 마시다가 가후를 보고는 자리를 권했다.
“저만 초조하게 아등바등거렸군요. 이거 웬지 억울합니다.”
“이별가(이유)에게 그런 것을 배우셨소?”
“그럼요. 죽간에 적어놓고 매일 탐독하고 있습니다. 허허허허-“
“별로 말수가 없던 가별가께서 이리 농담도 다하시고, 잘됐습니다. 너무 조용히 있는 것도 좋지 않아요. 그래. 정찰결과는 어찌 되었소이까?”
“역시 조조답습니다. 아직도 연진, 백마진에서 병력을 빼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예비대를 이용해서 방책을 쳤는데, 매우 견고합니다. 총공격을 한다면 나무로 만든 방책이기에 무너뜨릴 수 있지만 피해가 막심할 것입니다. 주군의 기조 또한 지구전이니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계획을 변경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작전변경을 요청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연진, 백마진에 버티고 있는 장합/문추의 20만 대군을 이곳 복양현일대로 이동시켜서 도하를 시키는 것입니다. 이미 주군께서 적군을 격파했기에 도하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흠, 일리 있는 말이오. 그런데, 군량도 옮기고 그러면 큰 배가 드나들어야 할 텐데, 이곳 하수 유역은 그런 시설이 없소. 또한 연진이나 백마진을 그대로 텅 비어놓으면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업성에서 가까운 곳이 백마진이니 장기가 지휘하는 예비대 5만을 그곳에 주둔시켜서 만약의 상황에 대비를 하시고, 뗏목이 많으니 그것을 부수어 간단하게 포구를 만드시지요. 보병 10만이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그럼 북쪽에서는 장합/문추가 포구를 만들고 남쪽에서는 내가 만들고. 하하하- 이거 참. 포구가 그리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것이오?”
“당연히 어렵지요. 이것은 임시방편입니다. 나무를 물속에 박고, 덧대어 배를 접안 할 수 있게 만들면 됩니다. 그저 튼튼하게 만들면 됩니다. 모양이 예쁠 필요도 없고요.”
원매는 잠시 고민을 하다 가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소 황당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지구전이 목적이니 괜찮을 듯싶었다. 이렇게 한다면 병력손실은 없으니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때부터 뗏목을 분해하여 나무를 얻고, 길고 곧은 나무를 잘라와서 배를 이용해 물속에 나무를 박고, 덧대며 포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원매의 지시를 받은 북쪽에서도 포구가 만들어 졌다.
조조군영.
조조는 망루에 올라 원매군이 포구를 만드는 것을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저놈은 정말 별난 놈이야. 생각을 종잡을 수가 없어.”
“그렇습니다. 설마 포구를 새로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포구가 그리 쉽게 만들어지나?”
“뭐, 배를 접안 하는 시설만 만든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병력이 10만도 넘는데, 그 정도는 쉽게 되지 않겠습니까?”
“빌어먹을. 울화통이 터지는구만.”
조조는 물끄러미 포구작업공정을 지켜보다가 곽가에게 툭-던졌다.
“그런데 저놈이 뭔 생각일까? 내가 단단하게 방책을 쳤다고는 하지만, 너무 얌전하게 있잖아.”
“연진, 백마진에 있던 놈들이 오면 그때 압도적인 수적우세를 이용해서 공격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리 되면 굉장히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다른 생각은 없나? 지금처럼 포구를 만들 줄은 예측을 못했잖아?”
“우려되는 상황이 있긴 합니다만.”
조조는 계속 말하라며 눈짓을 했다. 곽가는 무겁고 진중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물량작전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적당히 포위하면서 버티는 것이죠.”
“쌀이 남아돌아? 40만 대군이 먹는데 그 쌀을 어찌 감당하려고? 지금 나는 20만이 먹는 쌀도 감당이 안되 난리인데.”
“제 생각이 틀리길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원매가 좀 희한한 놈이라서 예측이 어렵습니다. 지금 주군께서 기병육성에 곤란을 겪는 것도 원매가 북쪽의 좋은 말을 공급하지 않아서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그와 같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물량작전이면 대책이 전무합니다.”
조조는 생각도 하기 싫은지 입을 다물었다.
장기가 5만의 대군으로 백마진을 지켰고, 며칠 만에 뚝딱- 만들어놓은 포구를 통해 장합/문추의 20만 대군이 도하를 통해 본진에 합류했다.
마지막으로 순우경이 이끄는 부대가 부지런히 군량을 날랐다. 군량까지 모두 실어 나르는 데만 10일이 소요되었다.
원매는 장합과 문추를 조조군 남쪽에 배치를 시켜놓고, 느긋하게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병사들을 주기적으로 교대시키며 행군을 시켰고, 경계병을 제외하고는 가벼운 훈련을 하면서 하루 일과를 보냈다.
원매의 조조 피말리기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어느덧 원매와 조조가 서로 마주보고 대치를 하는 상황도 한 달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군량에서 여유가 있었던 원매는 전령을 보내서 남양에서 50만섬을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원소치소.
“아버님. 건강은 어떻습니까?”
“괜찮아. 벌써 이곳 복양현에 주둔지를 편성한지도 한 달이나 됐구나. 이 아비는 슬슬 조바심이 나는데 너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구나.”
“쉬면 좋지 않습니까? 싸워봐야 다치기만 할텐데요.”
“녀석. 말하는 것하고는. 하지만, 병사들이 나태해지면 곤란해. 전염병이 돌지 않도록 잘 막아야 하고.”
“걱정 마십시오. 깨끗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부대 위치를 변경하고 있습니다. 행군도 시키고, 가벼운 훈련을 시키고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조조가 얼마나 버티느냐입니다. 제 생각보다 오래 버틴다면 상황이 꼬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를 예상하느냐?”
“최소 3개월. 최장 6개월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흔들린다면 한번 전투를 치러야지요. 굳이 흔들리지도 않는데 무리해서 공격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아버님께서 조조의 후방을 흔들어 주십시오. 대장군의 명으로 태수, 현령을 설득하면 조조의 타격이 꽤 클 것입니다.”
“그건 걱정 말거라. 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중원에서 이 아비를 따라올 자가 없느니라. 조조의 후방을 호되게 흔들어주마. 참. 낭야국의 장패란 놈의 움직임은 없더냐? 그 놈이 청주를 공격할 것이라 예상했잖느냐?”
“사실 그쪽은 생각 안하고 있습니다. 왕수, 엄경이 막아야지요. 알아도 군사를 돌릴 수가 없기에 신경을 끄고 있습니다.”
“독한 놈 같으니라고. 쯧쯧- 답답하지만 처음에 약조한대로 네 뜻에 따라주마. 나는 쉴 터이니 물러가서 마음껏 지휘해봐.”
“고맙습니다.”
원매는 원소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이제 3월말이라 그런지 낮에는 제법 따뜻했다.
원소와 조조가 복양현일대에서 대치를 하며 피 말리는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손책이 움직였다. 그는 5만의 군대를 동원하여 서주 남쪽에 위치한 광릉군으로 진격해온 것이다.
손책군의 기세는 대단했다. 순식간에 장강에 연한 강도, 여국, 광릉, 해릉, 당읍현이 제대로 힘도 못써보고 점령당했다. 손책은 쉽게 광릉군 남부를 점령하자, 주유의 신중하게 움직이라는 간언을 무시하고 북쪽으로 진군을 거듭하다가 평안현일대에서 진등, 주령이 이끄는 조조군에게 막혔다.
평양현은 중독수 주변에 위치하여 주변에 늪과 호수가 많은 곳이었다. 손책군은 늪과 호수를 이용하여 치고 빠지는 전술을 택한 조조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 쳐죽일 새끼들! 정정당당하게 힘으로 붙을 일이지. 숨어서 매복이나 펼치고 도망가다니. 이런 멍청한 새끼들 같으니라고!”
손책이 몇 번을 당하자 울화통을 터트렸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호수와 늪을 고기잡이 배를 이용하여 숨었다가 나타나서 공격하고 도망치는 통에 제대로 된 반격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신중하게 접근하자고 했잖은가? 차라리 하비국 방향으로 우회를 했어야 했어. 지금은 완전히 저들에게 유리한 지형에서 싸우는 통에, 조조군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꼴이 되었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광릉성에 1만을 두어 지키게 하고, 우회하여 하비국 수릉현으로 돌아가세.”
“안돼. 이 손책이 겨우 진등 따위가 무서워서 피해간단 말인가? 자네 설마 진심으로 그런 계책을 내놓는 것인가?”
“진심일세. 한번만 내 계책을 받아주게. 지금 이곳에서 싸워봐야 절대 이길 수가 없네.”
“계책을 짜내 봐. 나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어!”
손책이 무시무시한 안광을 뿜어내며 단호하게 계책을 거부하자, 주유는 안타까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도 말했잖은가? 화를 내면 돌격대장으로 변한다고? 지금이 그런 상황일세. 제발 차분하게 판단하게. 저들은 이곳에서 싸우기 위해서 광릉군 남쪽을 아예 포기했어. 우리를 여기로 유인한 것이야. 그런데 왜 여기서 싸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는가?”
“안된다면 안돼! 자네는 책사의 역할에 충실하게. 죽으면 죽었지 내가 등을 보이는 일은 없을 것이야!”
손책은 호통을 치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도 주유의 진언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진등에게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도저히 물러날 수가 없었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버텨서 한번쯤은 격파하고 돌아가야 했다.
주유는 끙-하고 자리에 앉았다. 불리한 이곳에서 어찌 계책을 내놓으란 말인가? 사방이 호수이고 늪이니 화공은 꿈도 못 꾸고. 수공을 쓰자니 얼마나 오랜 기간을 작업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조조군영.
“주군 광릉군 태수 진등이 손책을 잘 막고 있습니다. 남쪽을 내주기는 했지만, 평안현에서 발목을 단단히 붙잡았습니다. 이제 손책은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정말 다행이야. 원매가 속을 썩이는데, 손책마저 서주에서 활개를 쳤다면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야. 그런데, 진등이 계속 막아줄 수 있을까? 손책 그 놈이 제 아비 손견을 닮아서 아주 용맹하고 성정이 거셀 텐데.”
“성정이 거세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스스로 서초패왕(항우)에 비교하교 다닌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생각이 유연하지 못합니다. 불리하면 빠져 나와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끝까지 싸워서 무조건 이기려고 하는 것이지요. 꽤 오랜 기간을 붙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곽가의 진언을 듣자 마음이 안정이 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차를 들이켰다. 곽가의 진언은 계속 이어졌다.
“손책의 걱정은 접어두시고, 이제부터는 군량도 조절해야 합니다. 원매의 계책이 결국은 물량작전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 맞아. 이 죽일 놈! 이 따위 작전을 들고나오다니. 장패는 어찌하고 있어? 별동대를 이끌고 청주를 공략하면 원매도 흔들릴 텐데.”
“북해국의 엄경, 평원군의 왕수가 단단하게 지키기만 할 뿐, 장패의 별동대에 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약탈도 하고 마을에 불도 질렀지만, 꿈쩍도 않으니 장패도 답답한 듯 합니다. 원매는 일체의 지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야- 이거 진짜 독한 놈일세. 청주의 백성들이 죽어도 상관없다 이거야?”
“주군과의 싸움이 끝나기 전에는 쇠심줄처럼 버티고 또 버틸 요량으로 판단됩니다. 주군께서 물량이 부족해서 흔들릴 기미가 보이면 공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빌어먹을! 생각할수록 열받는군. 뭐, 이런 치사한 개자식이 또 있을까?”
조조의 자조적인 물음에 곽가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매의 계책을 분쇄할 마땅한 계책을 진상하지 못하니 할말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