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제 98장. 원소 정벌군을 일으키다.
업성 인근 원소군 주둔지.
원소의 커다란 막사는 주요 장수와 책사만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찼다. 내부의 열기는 후끈하게 달아올랐지만, 숨소리만이 조용하게 들릴 뿐이었다.
“자네들을 보니 내 마음이 든든하군. 서있지 말고 앉을 사람은 앉아.”
원소가 막사로 들어서자, 장수, 책사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렸고, 계급이 높은 자들은 앉고 나머지는 뒤에 촘촘하게 서서 자리를 지켰다. 원소는 상좌에 앉은 후, 오만하게 주위를 둘러 보았다.
“이번에 조조에게 더는 관용이 없음을 보여줄 생각이야. 내가 보다시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하여 우장군(원매)에게 대부분의 지휘권을 위임하니, 그를 도와서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도록! 알겠는가?”
“예! 주군!”
짧고 강하게 대답하는 책사, 장수들을 기쁜 표정으로 바라보던 원소의 눈은 좌측에 시립해있는 원매에게 향했다.
“우장군. 시작하지.”
“예. 주군.”
원매는 원소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예를 표하고는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백여 개에 달하는 반짝이는 눈이 원매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되었다. 당당한 체구에 날카로운 눈빛, 무형의 위압감에 그들은 군침을 꿀꺽 삼켰다.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주군의 명을 받아 조조정벌군을 총 지휘하게 된 우장군 원매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하는 지시사항을 잘 듣고, 확실하게 이행하셔야 합니다.”
원매는 번뜩이는 눈으로 장수들과 눈빛을 교환하면서 하북에는 원매가 있음을 각인시켰다.
“여기 상황판을 보시오. 업성에서 허창으로 가려면 중간에 여러 강을 건너야 하는데, 대부분은 크지 않은 강이라 도하에 큰 어려움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에 마주하게 되는 하수(황하)는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현재 큰 포구는 연진, 백마진이 있는데 이미 조조가 이곳을 틀어쥐고 도하를 방해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도하를 강행한다면 우리군의 피해가 막심할 것입니다.”
원매는 백마진에서 위쪽으로 지시봉을 옮겨 짚었다.
“여기가 위국현인데, 그나마 유속이 느리고 도하를 할만한 지역입니다. 연진과 백마진에서 도하를 준비하여 적을 교란 한 후, 위국현 일대에서 도하하여 조조군의 측면을 공격하고, 그 틈을 이용하여 본군이 연진과 백마진에서 동시에 도하를 해야 합니다. 그 후, 지나치게 격렬한 접전을 자제하고, 대치를 하면서 물량작전을 통해 적을 고사시키는 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입니다. 질문 있습니까?”
지용을 갖췄다는 장합이 곧바로 일어섰다.
[장합(32)] 무력:90, 지력:73, 정치력:60, 통솔력:90
지용을 겸비한 무장. 역사에서는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멸망케 한 결정적인 배신을 한 인물.
“영국중랑장 장합입니다. 우장군! 우리가 저들보다 병력도 우세하고, 군량등 물자에서 훨씬 우세합니다. 굳이 지구전으로 나가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좋은 지적이오. 이번 전투는 한번에 조조를 궤멸시키기 위해서요. 만약 신속하게 싸워서 물리친다면 조조도 워낙 대군이기에 다시 힘을 모아 반격할 것이오. 그게 여러 번 반복될 것이고, 그러면 시간도 길어지고, 병사들의 피해도 길어지기에 이리하는 것이오. 대치를 하면서 적의 군량을 고갈시키고, 지쳐서 혼란이 벌어질 때 4만 기병을 투입하여 예기를 꺾고, 보병을 일제히 투입하여 다시는 고개를 쳐들지 못하도록 만들겠소. 뭐, 그래도 잔당처리, 허창성 점령, 영지 안정시키려면 족히 몇 년을 걸릴 것이오. 대답이 되었소?”
“감사합니다.”
장합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자, 안량이 신중하게 진언을 올렸다.
[안량(35)] 무력:94, 통솔력:88
하북의 맹장. 용맹하지만 성격이 급했다. 순욱은 용맹을 가진 필부라고 평가절하했다.
“안량입니다. 우장군의 전략은 멋진 계획입니다. 지금 기병을 보면 서량기병이 1만 6천, 유주/병주 기병이 2만 4천 정도인데, 이들의 지휘권을 어떻게 편성할 생각이십니까?”
“기병은 내가 직접 지휘할 생각이오. 각 장수들이 자신의 기병들을 점고하여, 언제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오. 때가 되면 내 명령하에 조조군으로 일제히 돌격하여 그들의 예봉을 꺾어야 하오. 그때 나도 기병대장으로서 선봉에 설 것이오. 대답이 되었소?”
“우장군께서 직접 선봉에 서신단 말씀입니까?”
“이것이 지금까지 내 방식이오. 이각, 장윤등을 이 손으로 목을 베었소. 믿음이 안 가시오?”
“그럴 리가요? 알겠습니다.”
안량이 앉자, 장수들이 가볍게 술렁거렸다. 대부분 기주, 유주, 병주출신의 원소예하 장수들이었다. 그들은 원매가 선봉에 선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듯했고, 어떤 이는 처신이 가볍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장수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순우경이 나섰다.
[순우경(43)] 무력:77, 지력:58, 정치력:62, 통솔력:78
서원팔교위에서 좌군교위를 맡았고, 원소군내에서 막강한 발언권을 지녔다. 오소 전투에서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결국 조조에게 져서 참형에 처해졌다.
“순우경입니다. 40만대군이 움직인다면 군량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복안이 있습니까?”
“순우중간(순우경)께서 맡아주시겠습니까? 보병 1만으로 단단하게 지키고, 기병 2천을 근처에 배치하여 적의 기습에 대비한다면 문제 없을 것입니다.”
“지키기만 한다면 1만으로 충분합니다. 굳이 기병 2천이 필요합니까?”
“군량이 모두 불타버리거나 빼앗기면 이번 전투는 패배합니다. 당연한 조치입니다. 군량창고는 최상의 경계를 유지해야 하고, 내게 매일 전령을 보내어 직접 보고를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명을 따르겠습니다. 소장의 역할이 매우 막중하군요.”
순우경이 자리에 앉자, 원매가 묵묵히 의견을 청취하고 있던 문추에게 시선을 돌렸다.
[문추(34)] 무력:94, 통솔력:88
안량과 더불어 원소의 맹장. 순욱으로부터 필부의 용맹이라는 혹평을 들었다.
“문장군은 궁금한 것 없으시오?”
“글쎄요. 다른 장수들이 잘 해주고 있어서 소장은 일단 경청하겠습니다. 나중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따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알겠소.”
원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상당히 묵직한 사내였다. 안량도 그렇고, 문추도 그렇고 순욱의 평가는 참으로 박했다.
그 후, 원매는 다른 장수들의 질문을 받아 하나씩 하나씩 풀어서 설명했다.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는 은은한 질타를 띠며 강력하게 주문을 했다. 원소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고, 저수와 전풍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원매가 장수들과 작전계획을 토론하는 가운데, 전풍이 작은 목소리로 저수에게 물었다.
“어떻소?”
“깜짝 놀랐습니다. 나이는 어리시지만, 장수들을 휘어잡는 솜씨가 대단하군요. 주군께서 괜히 후계자로 내세운 게 아니란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대는 잘 모르겠지만, 우장군께서는 삼 년 전부터 꾸준히 나를 찾아왔소.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느끼는 건데, 마치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 있는듯했소. 또한, 몸에서 풍기는 무형의 위압감은 나날이 더해갔소. 정말이지 어디까지 올라갈지 볼 때마다 기대가 됩니다.”
이때 봉기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이 사람들아. 중원전체를 통 털어도 우장군만한 인재는 없네.”
대놓고 사위(원매)자랑에 저수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전풍은 빙그레 웃었다. 원매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이기도 했고, 초반에 원매가 속을 썩일 때 봉기가 얼마나 맘 고생을 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회의는 두시진(네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워낙 대규모 전투였고, 원매에 대한 궁금증에 장수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길어졌기 때문이었다.
원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회의 결과를 반영하여 출정명령을 하달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소 출정군.
-책사: 전풍, 저수, 봉기.
-제 1군: 장합. 보병 10만 연진 도하 후 본진 합류.
-제 2군: 문추. 보병 10만 백마진 도하 후 본진 합류.
-제 3군: 전예. 보병 10만 위국현 일대서 도하 후, 조조군 측면타격. 본진 합류.
-예비대: 장기. 보병 5만.
-기병: 안량-유주기병 1만 2천, 곽원-병주기병 1만, 방덕/마초-서량기병 1만 6천.
-군량창고: 순우경. 보병 1만, 기병 2천.
원매의 요청에 따라 원소의 명령이 내려졌고, 장수들은 일제히 흩어져서 병력을 점고하기 시작했다. 원소는 동시에 허유를 하동군 별가로 임명했다. 사실상의 좌천인사였고, 허유는 눈물을 흘리며 하동군으로 떠났다.
이튿날.
날이 밝으면서 40만에 이르면 대규모의 병력이 일제히 남쪽으로 진군을 개시했다. 조조도 원소군이 움직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진과 백마진 일대에 대규모 군대를 급파하여 방책을 치고, 원소군의 도하를 대비했다.
조조군영.
“새까맣게 내려오는 구나. 이거야 한 놈당 화살 한발만 쏴서 맞춘다고 하더라도 40만발이 필요하잖아. 기가 막히는군.”
조조는 북쪽에서 뿌옇게 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내심 평온해 보였지만, 그는 지금 매우 긴장한 상태였다. 현재 연진, 백마진에 병력을 총 집결해 놓았기에 만약 다른 곳으로 도하를 한다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봉효(곽가). 저놈들이 이리로 올까?”
“세작들이 탐지해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연진, 백마진 방향으로 각각 10만에 이르는 군대가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동쪽으로 약 15만이 이동했는데, 목적지를 알 수 없어 계속 추적을 하고 있습니다.”
“15만이 따로 움직여?”
조조는 눈을 떼굴떼굴 굴렸다.
“빌어먹을. 멀리 우회를 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잖아?”
“제가 볼 때, 우회하여 도하한 15만이 전투를 벌이는 틈을 이용하여 본군이 연진, 백마진을 이용해 도하하는 작전이라 판단됩니다. 사실 그 넓은 하수(황하)를 모두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회한 병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느냐에 따라서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고, 원소에게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길게 늘였다가 잘못하면 각개격파 당할 우려가 있어. 지금 연진에 7만, 백마진에 7만, 예비 5만이 배치되어 있고. 그렇다면 저들을 추격하는 병력이 3만이란 소린가?”
“그렇습니다.”
“15만인데, 3만으로 되겠어?”
“일단 도하하기 좋은 목지점은 별로 없습니다. 하여 강 건너편에서 저들이 목지점으로 도하할 때, 타격을 주고 신속하게 빠져 나오라고 지시했습니다. 만약 병력이 뒤엉킨다면 전멸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20만이면 엄청난 병력인데, 원소 저놈이 40만을 동원하니까 엄청 적게 느껴지는군. 나 참. 기가 막혀서. 참! 장패는 어찌하고 있는가?”
“별동대를 조직했는데 규모가 약 3만이라 합니다.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북해국, 평원군일대를 휘저어 놓을 것입니다. 원매의 신경을 분산시켜주기만 해도 대성공입니다.”
조조는 곽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표정은 매우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최대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매는 전예의 제 3예비대 10만과 기병 3만 8천을 이끌고 계속해서 동진을 하고 있었다. 위국현일대로 나아갈 때, 사마구가 급히 다가와 진언을 올렸다.
“주군. 강 건너편에서 2~3만에 이르는 병력이 우리와 보조를 맞추며 동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주군께서 도하를 할 때, 저지를 하려는 목적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번에는 조조가 잘못 짚었다. 위국현 일대는 넓은 모래밭이 길게 늘어선 지역이야. 보병 10만을 일제히 도하시키고, 기병을 이어서 도하시킬 거야. 어느 정도 피해는 발생하겠지만, 2~3만으로는 어림도 없지.”
원매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무려 40만을 지휘했다. 질래야 질 수가 없는 병력이었다. 더군다나 곽도, 신평, 허유등 필요 없는 놈들은 사라진 상태였기에 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 대단했다.
“어서 가자!”
원매의 재촉에 기병들이 속도를 냈고, 보병들도 급속행군으로 따라 붙었다. 바야흐로 원소와 조조의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