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97화 (97/253)

# 97

제 97장. 하북에 전운이 감돌다.

200년 2월. 건안 5년.

말릉성 손책치소.

“이 보게. 공근(주유). 중원의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가?”

“준비를 해야지. 지금 하북은 말 그대로 초긴장상태야. 언제든 원소와 조조는 전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니 이 기회에 최소한 서주라도 뺏자 이거지. 강동이 바깥에서 보면 매우 큰데, 실상은 부족한게 많아. 솔직히 오군, 단양군 빼고 나머지는 빈 껍데기야. 정말이지 서주만 얻어도 크게 한숨을 돌리겠어.”

“일단 세작을 통해서 중원의 상황을 살피고 있으니, 군대를 차분하게 준비해주시게. 조조의 빈틈이 보일 때 장강을 도하하여 전투를 벌인다면, 광릉군, 하비국 정도는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네. 다만···..”

“다만 무엇인가?”

“자네의 폭급한 성정이 걱정되네. 자네는 주위사람 조언도 잘 듣고, 용맹하고 지혜로워. 하지만, 뭔가 불만이 터지거나 화가 나면 그때부터는 한 세력을 이끄는 제후가 아니라, 돌격대장으로 돌변하니 그게 문제일세.”

“돌격대장이라? 자네 혼자만의 생각인가?”

“대부분의 생각이지. 다만, 나는 자네의 친우니까 이렇게라도 말을 하는 거지. 다른 장수들은 목이 떨어질까 두려워서 입이라도 열겠는가?”

주유의 진언에 손책은 충격을 받은 듯 말이 없었다. 본인도 폭급하고, 화가 나면 말릴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유로부터 직접 듣고 보니 심각한 문제인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자네와 장수들은 걱정시켰다니 미안하군. 앞으로 최대한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노력하겠네. 사실 화가 나면 나도 내 자신을 통제를 못하겠어. 뭐랄까? 내 속에 숨어있는 야수가 튀어나오는 느낌이야.”

“이번에 원소와 조조가 전투를 벌이면 우리는 서주로 진격할 것일세. 그때는 제발 자중해주시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나씩 얻어낸다면 광릉군, 하비국 정도는 얻을 수 있어. 그리고 틈을 보아서 구강군이나 팽성국으로 진출하세. 그 옛날 서초패왕(항우)께서는 팽성국의 팽성에 자리를 잡고 천하를 호령했네. 내 말뜻을 아시겠는가?”

“알다마다. 자네의 말을 듣고 보니 정신이 번쩍 뜨이는군. 나는 군대를 점고해서 전투를 준비할 터이니, 자네는 중원을 자세히 관찰하다가 때가 되면 알려주게. 서초패왕이 이루지 못한 천하재패의 염원을 내가 반드시 이뤄내겠어.”

“반드시 그리 되도록 내가 돕겠네.”

손책의 결심에 주유가 적극 지지를 표명했다.

남쪽에서 손책이 조조의 틈을 노리는 가운데, 조조는 원소와의 대전이 임박했음을 실감하고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허창성. 조조치소.

주요대신들과 장수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은 가운데,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이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인 만큼,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침묵을 깬 것은 이인자 순욱이었다. 카랑카랑한 순욱의 말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신과 장수들은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귀를 기울였다.

“유주와 병주에 있는 기병, 보병이 업성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청주의 평원에 주둔하고 있던 원매군도 업성으로 진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적어도 열흘 안쪽으로 집결이 완료될 것으로 추정되며, 보병은 30만, 기병 4만의 대군이라 추측됩니다. 군량을 나르는 지원부대까지 합하면 도합 40만의대군입니다.”

40만이라는 말에 치소 안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그럴 것이다. 라고 예측했지만, 그것이 순욱의 입을 통해서 현실화되자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다. 하지만, 그 웅성거림도 이어지는 순욱의 보고에 사라졌다.

“그에 비해 우리의 전력은 보병 27만, 기병 2만입니다. 여기서 서주 광릉군에 보병 4만을 배치하여 손책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고, 영천군/진국/패국에 3만을 주둔시켜 남양의 원매군과 여강의 유비군의 공격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 되면, 보병 20만, 기병 2만이 원소를 상대할 수 있는 실질 전력이 됩니다. 낭야국에서 별동대로 운용될 장패군을 제외했습니다.”

순욱은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지도판으로 이동하여 지시봉으로 짚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업성에서 허창성으로 이어지는 길은 평야지대이고, 산은 없습니다. 제일먼저 그들을 막아 설 장애물은 하수(황하)입니다. 그들은 연진, 백마진을 통해서 하수를 도하할 것으로 판단되며, 우리는 그곳을 막아 도하할 때 최대한 타격을 줘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합니다. 만약 저들의 도하를 막지 못한다면 거침없이 밀고 내려올 것이며, 대단히 고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조조가 손을 들어 순욱을 자리에 앉힌 후, 입을 열었다.

“자- 모두 들었지. 순문약의 말대로 도하를 저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해. 만약 이게 실패하면 야전을 벌여야 하고, 그리된다면 기병에서 절대열세이기 때문에 어려운 전투를 할 수밖에 없어.”

그는 정광이 흐르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 후,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누규! 주령! 종요! 4만을 줄 터이니, 광릉군에서 태수 진등을 도와 손책의 침략에 대비하라!”

“예. 주군!”

“이전! 1만을 거느리고 영천군 부성현에 주둔하면서 남양의 원매군을 경계하라! 불리하면 즉시 허창으로 퇴각하여 성을 사수하라!”

“예. 주군!”

“왕충! 1만으로 진국 진현에 머물면서 여남군에 주둔한 원매군의 공격에 대비하라!”

“예. 주군!”

“만총! 구강군 수춘성을 단단히 지키면서 유비의 공격에 대비하라!”

“예. 주군!”

조조는 후방의 방어를 우선적으로 배치하고는 곧바로 원소군과 혈전을 벌일 부대배치를 시작했다.

“조인! 서황! 사환! 우금! 악진! 유연! 장료! 조홍! 보병 20만을 점고하여 만전을 기하라! 명령을 내리면 곧바로 출병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예. 주군! 명을 따르겠습니다.”

“조휴! 조순! 하후연! 기병 2만을 점고하여 출병준비에 만전을 기하라!”

“예. 주군!”

조조의 추상 같은 명령이 내려지자, 장수들은 일제히 군례를 올린 후 밖으로 나갔다. 남은 장수는 하후돈 한 명뿐이었다. 조조는 부드러운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원양(하후돈)은 허창성에 남아 순욱을 도와 성을 지키게. 비록 성에 5천밖에 없지만 워낙 견고한 성이고, 필요하면 이전이 올 것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야.”

“예? 예. 알겠습니다.”

하후돈도 다른 장수들처럼 관도대전에 참전하고 싶었지만, 조조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능력이 전투를 하여 공을 세우기보다는 후방을 안정시키는데 뛰어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순욱에게 후방방어총괄 및 군수지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임무를 맡기고 곽가와 정욱에게 관도대전에서 자신을 보좌할 것을 명령했다.

조조가 원소의 침입에 대비를 하는 동안, 원소 역시 공격준비를 차곡차곡 진행시키고 있었다. 각 지역에 흩어져있던 병력들이 속속 업성 인근으로 집결되고 있었다.

업성. 원소치소.

원소는 옷을 단단히 갖춰 입고 있었고, 화톳불을 가까이 놓아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그간은 고심을 반영이라도 하듯, 초췌해져 있었다. 종사관으로부터 원매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듣고는 구겼던 인상을 폈다.

“어서 오너라. 기다리고 있었다.”

“평안하셨습니까? 안색이 어두워 보입니다. 이번 전투가 힘드시면 제가 나서겠습니다.”

“녀석.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때가 있느니라. 지금이 그래. 내가 나서야 기주의 장수들이 불만 없이 움직일 거야. 그러니 너는 조조와의 전투 중에도 그들을 잘 파악해두거라. 앞으로는 네 사람들이 될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전별가로부터 보고를 받았는데, 조조가 단단히 준비를 한 모양이더구나. 적어도 20만이 넘는 병력이 움직인다고 했어. 내가 30만, 네가 10만이니 수적으로는 훨씬 우세한 듯 보이지만, 워낙 대규모 병력이라 큰 의미가 없어졌다. 다만, 내 군대가 훨씬 더 정예이고, 기병에서는 확실하게 우위에 있지. 뭐, 이 정도는 너도 아는 이야기일 테고.”

원소는 말을 끊고 잠시 원매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문득 조조와의 대전을 앞두고 보니 네가 지난번에 했던 이야기들이 생각나더구나. 곽도, 신평, 허유, 심배를 멀리해라. 그때는 뭔 소린가 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 이제 기주에는 허유 한 명이 남아있지. 그를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네 생각을 듣고 싶구나.”

“심배처럼 관중으로 보내주십시오. 허유는 워낙 개인비리가 많은 자입니다. 혹시라도 그거 때문에 켕겨서 중요한 군사기밀을 조조에게 누설이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지. 어차피 전투가 끝나면 정리해야 될 대상이었어.”

원소는 원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허유의 처결을 약속했다.

“이번 전투에서 전풍, 저수의 의견을 많이 참조해주십시오. 물론 그들의 의견이 아버님과 다를 수도 있지만, 절대 손해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책사 가후를 데려왔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지구전을 주장할 것입니다.”

“지구전이라? 병력부분에서 우리가 확실히 우세해. 군량도 부족하지 않고. 그런데 왜 지구전을 택하느냐?”

“조조를 피를 말려 죽이는 것이죠. 제가 조조를 계속 관찰했는데, 홍수와 가뭄등이 많아서 수확량이 대폭 줄어 군량이 넉넉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많은 전투를 치렀으니 사기가 그리 높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조조가 기병으로 힘들어하는 것도 아버님과 제가 북쪽의 좋은 말을 꽁꽁 묶어뒀기 때문 아닙니까? 이제는 군량으로 압박을 하는 것이지요.”

원소는 원매의 진언이 그리 탐탁지 않았다. 그의 본성은 결단력이 빠르고, 지나칠 정도로 과감했기 때문이었다. 우유부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요즘 건강이 안 좋아 지면서 과격했던 모습이 많이 순화되었다. 원매는 예상했다는 듯, 계속 진언을 이어갔다.

“이것은 아버님을 빠르게 황제에 추대하기 위함입니다. 처음에는 느려 보일지 몰라도 군량으로 압박을 하면 조조군 곳곳에서 군량이 부족하여 불만이 속출할 것입니다. 10만이나 추가로 징병을 한 상태입니다. 절대로 버티지 못합니다. 혼란스러워질 때, 대장군의 명으로 사신을 보내어 후방을 교란시키고, 태수와 현령들을 회유해야 합니다. 버티고 버텨서 조조가 무너지는 틈이 보이면 그때 기병을 투입해서 예기를 꺾고, 보병을 투입해서 끝을 내면 됩니다.”

“네놈은 나이도 어린데, 어찌 노인네처럼 생각하느냐? 이놈아- 누가 들으면 네놈이 부친인줄 알겠다.”

원소가 실소를 흘리며 싫지 않은 표정으로 원매를 가볍게 힐책했다. 황제에 추대한다는 말이 통한 것 같다.

“남쪽의 손책도 움직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이 길어질수록 조조는 궁지에 몰릴 것입니다. 물론 낭야국의 장패가 조조의 사주를 받아 청주를 유린할 것인데, 이는 북해국의 엄경과 평원군의 왕수를 중심으로 하여 단단히 지키게 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피해는 감수를 하고, 오로지 조조를 궁지로 모는데 총력을 기울이면 됩니다.”

“물량작전이라는 것이 조조도 타격을 크게 받겠지만, 나도 만만치 않게 타격을 받아. 40만을 먹여야 하는데, 아무리 군량이 넉넉해도 피가 마르는 일이야.”

“알고 있습니다. 지금 남양에 약 130만섬을 비축해 놓았습니다. 필요하면 그것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이런 독한 놈! 언제 그 엄청난 군량을 모아 놓은 것이냐? 네놈이 내 아들인 게 다행이구나. 적으로 두었으면 아주 골치가 아팠겠어.”

원소는 고개를 흔들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결심한 듯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이번 전투에 나와 같이 움직이자. 내가 판을 깔아줄 터이니 네가 마음껏 움직여봐. 전체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은 내가 하겠지만, 책사들과 장수로부터 의견을 듣고 결정이 되면 내게 보고를 해. 웬만한 것은 네 뜻에 따라주마.”

“감사합니다. 아버님. 기대에 반드시 부응을 하겠습니다.”

“단, 만약에 실패를 한다면 분명한 책임추궁이 있을 것이다.”

“당연합니다.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지 말고. 최악의 경우 조조에게 졌다고 하더라도 1년정도 힘을 모으면 다시 정벌군을 일으킬 수 있어. 내가 조조보다 훨씬 강력한 기반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서 나가서 준비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보고해!”

“예. 아버님!”

원매는 자신을 신뢰하고 힘을 실어주는 원소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40만이 넘는 대군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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