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제 95장. 제갈량 공명 諸葛亮 孔明
원매는 순유와 함께 사마구와 호위병을 거느리고 제갈량을 찾아가고 있었다. 완성에서 신야가 멀지 않았기에 천천히 유람을 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주위경치를 감상하며 느긋하게 이동하는 원매에게 사마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번에 대단한 인재를 얻으실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순유는 뭔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홱- 돌렸다. 원매도 더 이야기를 해보라며 그를 응시했다.
“지금 주군께서는 중원에서 가장 탄탄한 세력을 가지고 있고, 대장군의 지원까지 받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어떡하든 연줄만 있으면 주군께 출사를 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지금 만나러 가는 제갈량이라는 젊은이는 오히려 자신을 찾아오라며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이건 오만한 자만감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젊은이만이 가질 수 있는 패기라고 생각합니다.”
원매와 순유의 눈이 흥미를 띠자 사마구의 진언이 힘을 발했다.
“또한, 제갈현이 유표로부터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제갈량은 유표에게 출사를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보면 제갈량은 주군께 출사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지라고 볼 수 있는데, 다른 인재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부분을 볼 때, 자신감과 더불어 역발상을 생각하고 과감하게 실천할 수 있는 뛰어난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 가지만 보더라도 주군께 반드시 필요한 인재입니다.”
원매는 눈이 동그래졌다.
‘혹시 이놈도 나처럼 회귀를 한 놈인가?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나?’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상태창을 떠올렸다.
[사마구(33)] 무력:81, 지력:75, 정치력:62, 통솔력:70
처음에 만났을 때, 지력, 정치력은 표시도 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75, 62를 찍고 있었다.
“자네 형제가 있는가?”
“아주 어릴 적에 부모님께서 난으로 돌아가시고, 저는 유랑생활을 했기에 형제가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자네는 정말 일취월장하는군. 다음 번에는 얼마나 놀래킬지 기대가 되는군.”
원매는 사마구를 칭찬하며 순유를 돌아보았다.
“어떻소? 사마아장(아장 사마구)의 말이.”
“좋은 방향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제가 제갈량의 도발에 말려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홍복이로군. 자- 어서 갑시다. 제갈량을 꼭 얻어야겠어.”
원매가 기분 좋은 듯 웃음을 터트리며 앞장을 섰고, 순유를 비롯한 신하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미 호위기병을 통해 기별을 넣었기에 제갈량은 융중의 처소에서 문 밖까지 나와서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원매를 확인하고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예를 올렸다.
“반갑소. 내가 원매요. 직접 찾아오라고 해서 이렇게 왔소이다.”
“제갈량입니다. 오는 길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도 이런 풍광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시름과 근심을 잊습니다.”
딴소리를 해대는 제갈량을 보고 원매가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냈다.
“나는 그대가 매우 욕심이 나는데, 출사를 하시오.”
“원래 성격이 급하십니까? 그래도 대화도 나누어 보고, 사람됨됨이를 확인해야지요.”
“그런 것이야 여기 순치중이 확인했고, 나는 순치중을 전적으로 신뢰하니 생략해도 되오.”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역시 제갈량이 일단 거절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삼고초려가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세 번은 만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바빠서 그러니 생각을 말해보시오. 몇 번을 찾아오면 되는 것이오? 아니면 벼슬이 낮을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오?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봅시다.”
돌직구 같은 원매의 대답에 제갈량의 눈은 이채를 띠었다. 대부분 배웠다는 사람들은 체통을 중시했는데, 그런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제가 앞으로 두 번을 더 찾아달라고 말씀 드리면 그리 할 것입니까?”
“이런 방자한 놈 같으니라고!”
사마구가 나서자 원매가 말렸다. 지금 제갈량의 행동은 그를 좋게 평가했던 사마구마저 분노하게 만들 정도로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갈량을 알고 있는 원매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는, 제갈량은 집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싸리문을 열고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자- 이제. 세 번째 방문이오. 또, 요구사항이 있소?”
“우장군께서는 반드시 임관시키려고 하시는군요.”
“안 간다면 끌고라도 가겠소! 난 고리타분하게 명분을 따지는 것은 딱 질색이오. 솔직히 나 정도면 그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이지 않소? 이 정도했으면 못 이기는척하고 받아들이시오. 내 주위에 사람도 있는데 나도 난감하오.”
“하하하하- 원가에 별나신 분이 계시다고 들었는데, 이건 소문을 뛰어넘으시는군요. 안으로 드시지요. 이렇게까지 마음을 보여주시는데 더는 결례를 드리면 안될 것 같습니다.”
원매는 제갈량이 마음을 열자 환하게 웃으며, 사마구와 호위기병들을 근처에서 쉬게 한 후에 제갈량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내주는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순유의 말대로 대단한 기억력이었고, 뛰어난 통찰력이었다. 하지만, 제갈량을 알고 있는 원매로서는 조금 아쉬웠다. 뭐라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부족한 것이 느껴졌다.
‘그래. 아무리 천재라도 이제 19살이다. 좀더 경험을 쌓아야 할 것이다. 신야에서 유비에게 임관되어 천하삼분지계를 설파했을 때가 27살이니. 아직은 조금 부족하겠지.’
원매가 나름대로 평가를 하고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앞으로 천하는 어찌되리라 생각하시오?”
“원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남쪽의 두 유씨(유표, 유장)는 더는 원가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조조가 위력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무너질 것입니다. 우장군께서 경계 해야 할 세력은 강동의 손책입니다. 장강을 끼고 있고, 많은 백성과 넉넉한 군량, 그리고 강한 수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큰 골치거리가 될 것입니다.”
“유비는 어찌 생각하시오?”
“교묘한 수를 써서 여강군을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평가를 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지금까지의 상황대로 흘러간다면 조조가 격파되면, 자연히 유비도 격파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무슨 재주를 부릴지 모르니 저도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궁지에 몰리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은 확실합니다.”
“좋소. 유비에 대한 생각은 나랑 같군. 나랑 같이 완성으로 갑시다.”
원매가 손을 내밀자, 제갈량은 공손하게 제의를 받아들이고는 큰 절을 올렸다.
“따르겠습니다. 제가 도발을 했는데도 큰 도량으로 넘겨주심은 감사 드립니다.”
“고맙소. 내 그대를 얻었는데, 무엇을 또 바라겠소.”
원매는 제갈량의 등을 다독이며 격려했다. 조금 긴장이 풀어지자, 원매는 상태창을 띄웠다.
[제갈량(19)] 지력:100, 정치력:95, 통솔력:98
자는 공명. 군사, 내정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원매는 제갈량을 데리고 완성으로 돌아왔다. 제갈량의 첫 직책은 두기 휘하에서 내정을 돌보는 일이었다. 뛰어난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내정부터 차차 섭렵하게 한 후, 중원을 통일했을 때, 승상으로 쓸 생각이었다.
계책을 내는 책사는 이유와 가후, 순유로도 충분했다.
허창성 인근 훈련장.
허창성 인근의 벌판에는 수많은 훈련장이 만들어져 있었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병사들이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쏟아내는 함성소리는 쩌렁쩌렁 크게 울리고 있었다.
요즘 들어 조조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밖으로 나와 병사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날도 일을 끝내고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허중강(허저)! 네가 볼 때는 어떠냐?”
“많이 좋아졌습니다. 내년이면 원소와의 일전을 겨뤄 볼만 합니다.”
“내가 말한 게 그게 아니잖아.”
조조의 다소 짜증 섞인 말투에 허저가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무겁게 입을 뗐다.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해서 어려운 싸움이 될듯합니다.”
“그렇지. 경험이 부족해. 경험이. 아무리 열심히 훈련을 하면 뭘 하나? 실제 전투를 치러봐야 비로소 병사로서 눈을 뜨는 것이지.”
“그래도 전투초반을 잘 극복하면 신병들도 적응하지 않겠습니까? 노련한 전투병과 신병들을 잘 섞어서 배치하고, 힘들더라도 버텨내면 수가 생길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빌어먹을 원가 놈들!”
조조는 기분이 안 좋은지 입을 닫았다. 허저도 자동적으로 입을 닫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때, 순욱이 조심스럽게 조조의 곁으로 다가왔다. 조조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뗐다.
“웬 일이야? 부르지도 않았는데 다 오고?”
“생각이 번잡해서 잠시 나왔습니다. 병사들 훈련하는 것은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긴. 더 답답해.”
“그래도 저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조조는 다시 무겁게 입을 다물었다. 한참을 그렇게 훈련을 지켜보던 조조가 순욱을 찾았다.
“순문약. 그런데, 유비가 여강군을 점령했잖아.”
“원소의 책사였던 곽도가 그의 휘하로 들어갔는데, 아마의 그의 계책이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콧대 높던 원매가 대단히 분노하여 직접 남양군까지 왔다고 하더군요. 여남군은 되찾았는데, 여강군은 거대한 회하가 가로막고 있어서 어찌하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흐흐흐흐- 아주 속이 다 후련하군. 원매 그 애송이 놈이 고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말이야. 이번에 유비와 다시 동맹을 맺어 보는 것은 어때? 내가 원소를 막는 동안 그가 남양군을 공략해주면 원매도 신경이 쓰여 발이 묶이지 않겠어? 아니면 군대를 보내 도와준다면 더욱 좋은 일이고.”
“좋은 쪽만 생각하시는군요.”
순욱의 냉담한 반응에 조조는 고개를 홱 돌려 무서운 얼굴로 순욱을 바라보았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유비가 그 정도 힘을 갖게 된 것은 원매가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줬기 때문입니다. 병사 일만을 주었고, 그걸로 여남군을 점령하게 한 후에 절반을 주었지요. 이 정도면 원매가 큰 은혜를 베푼 셈이지요. 물론 원매야 주군을 견제하기 위한 속셈이겠지만, 어쨌든 은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의 장수를 죽였고, 기병과 보병을 흡수한 후, 여강을 점령했지 않습니까?”
순욱의 말이 길어지자, 조조는 짜증을 내려다가 급히 입을 닫았다. 무슨 뜻인지를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나보고 뒤통수를 조심하라 이거야?”
“그런 뜻도 있고,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 남양에 2~3만 정도가 지키고 있는데, 유비는 4만정도의 군대가 있습니다. 절대 남양을 공략하지 못합니다. 또한, 지원군으로 보냈는데 그 놈들이 결정적일 때 배신한다면 어쩌겠습니까? 작정하고 배신하는 놈들은 막기 어려운 법입니다. 그들을 품에 안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큽니다.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힘을 기르는데 집중하고 있으니 당분간 회하를 건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장강 건너편에 있는 손책은 어찌하면 좋겠는가?”
“광릉태수로 있는 진등에게 막게 해야지요. 최악의 경우 서주의 남쪽을 내준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원소를 막는다면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습니다.”
“자네가 볼 때, 손책은 어때? 무예도 대단하고, 지략도 남다르다고 하던데.”
“대신 폭급하지요. 은원관계가 분명하여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들에게는 가차없이 형벌을 가하고 죽입니다. 충분히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위험성으로 따진다면 유비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진등에게 맡겨야 합니다. 주군은 원소를 상대해야 하니까요.”
“이번에 원매가 청주목이 되었어. 원소가 공격하면 같이 보조를 맞추겠지?”
“그럴 것입니다. 골치 아파졌습니다. 원소가 유주, 병주의 기병을 적어도 2만을 동원할 것입니다. 원매는 서량기병 1만정도를 움직일 것이고요. 그러니 적어도 정예기병이 3만을 넘습니다. 그게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최대 변수가 될 것입니다. 주군의 기병은 모두 합해도 2만이 되지 않습니다. 정예기병은 1만 3천 정도이고요.”
“자네는 어찌 남 말하듯 그리 아픈 데를 콕콕 찌르는가?”
“설마 제게 아첨을 바란 것은 아니겠지요?”
“휴- 하긴 그건 더 안 어울리는군. 순문약. 자네가 아첨을 한다면 정말 화가 날 거야.”
조조는 순욱의 진언을 듣자 더욱 답답해졌다. 그 놈의 기병이 문제였다. 원소와 원매가 북쪽을 장악하고는 좋은 말은 아예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돈이 있어도 말을 구입할 경로가 막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