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94화 (94/253)

# 94

제 94장. 행운과 불행

전예가 미리 전령을 보내어 하동군에 주둔하고 있던 손경의 7천 예비대를 남양군으로 진군을 명령했고, 평원성에 주둔하고 있던 1만 3천의 기병은 명령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원매가 원소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을 때, 또다시 남양군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순유가 보낸 연통이었다.

“불행과 행운은 같이 온단 말인가? 어찌 이렇게 절묘할 수가 있는가?”

조독을 잃은 슬픔을 위로해주기라도 하듯이 제갈량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원매는 작은 흥분이 일어 울적했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는 죽간을 다시 작성하여 전령을 통해 남양으로 보냈다.

원매가 군을 준비하는 동안 유비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곽도가 유훈의 행동을 계속 관찰했고, 드디어 사냥을 가는 날을 알아차린 것이다.

“몰이꾼만 4천이 동원되었다 이거지? 그 외에 기병들은 얼마나 되든가?”

“호위기병이 3백정도였고, 기강은 매우 엉성해 보였습니다. 그들은 여강군과 여남군 근처인 우루현일대로 사냥을 나왔습니다. 이것은 주군에게 하늘이 내려준 기회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즉시 기병을 출동시키십시오.”

“좋아. 유훈을 사로잡고, 그 놈을 이용해서 여강군을 모조리 틀어쥐면 되겠어.”

유비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곽도가 들어온 후로 마치 준비가 되어 있던 것처럼 착착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관우, 장비에게 보병 1만을 주어 뒤를 바치게 하고, 진도에게 기병 2천을 주어 유훈을 급습하도록 명령했다. 유비는 나머지 5천을 이끌고 후방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관우와 장비는 보병을 진군시키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님. 곽도라는 저 인간이 재수없게 생겼는데, 일 하나는 제대로 하는 것 같소. 큰 형님도 완전히 곽도의 말이라면 무조건 듣지 않소이까?”

“네놈은 아직도 형님을 그리 모르느냐? 쯧쯧쯧-“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

“형님이 방통을 볼 때와 곽도를 볼 때 눈빛을 유심히 살펴보거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다. 곽도를 신뢰하고 있지 않아. 다만, 필요하니 이용할 뿐이지.”

“아니 그런 것도 아시오? 이야- 둘째 형님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사람이네.”

“이놈아! 무서운 게 아니라 유식한 거다! 유식! 왜 다른 놈들은 이 형이 똑똑한 걸 인정하는데, 네놈만 딴지를 거느냐? 따라 해보거라- 유식한 둘째 형님!”

“싫소. 어찌어찌 해서 눈치가 생긴 거지 유식한 것은 아니오. 나 먼저 가겠소.”

장비가 줄행랑을 치자, 관우가 소리를 질러댔다.

진도는 기병을 이끌고 밤낮으로 진군하여 우루현 근처에 도착했다. 정찰결과 벌써 사냥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는 기병을 이끌고 정찰병을 따라서 이동했다. 유훈은 대별산 자락인 골짜기에서 사냥을 하고는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유훈의 술자리는 비를 피하느라 난장판이 되었다.

“하늘이 돕는구나! 진격하라!”

진도가 명령에 이천기병이 좁은 골짜기를 따라 일제히 내달렸다. 거센 소나기 퍼붓는 소리가 기병의 존재를 숨겨주었다. 그들이 병사들을 도륙하는 동안에도 제대로 정보 전달이 안되어 우왕좌왕 할 뿐이었다.

“뭔 짓거리냐? 왜 술 먹고 싸움질이야?”

유훈은 술에 취하여 헛소리를 지껄였다. 진도의 기병이 자신의 병사들을 도륙하는 것을 술 먹다가 싸움 난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전투는 채 반 시진(한 시간)이 안되어 종료되었고, 유훈은 생포되어 오랏줄에 묶였다.

“네놈들은 누구냐?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느냐? 당장 이걸 풀지 못하겠느냐?”

“유훈이 아니더냐?”

“그걸 알면서 이 짓거리를 해? 죽기 싫으면 어서 풀어!”

진도는 가까이 오더니 커다란 손바닥으로 그대로 유훈의 뺨을 서너 대 갈겼다. 엄청난 힘에 유훈이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옆으로 픽 쓰러졌다. 입이 터졌는지 피가 흘렀고, 눈은 공포가 깃들었다.

“까불지 말고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 너를 죽일 생각은 없어. 하지만, 지금처럼 자꾸 딴짓을 하면 죽도록 패주겠어. 알겠어?”

유훈이 대답이 없자, 진도는 또다시 두툼한 손을 들어 몇 번이나 면상을 후려쳤다. 그제야 유훈이 ‘예-‘를 반복하여 때리지 말 것을 애원했다.

진도는 유훈을 말에 태우고는 그 길로 골짜기를 내려왔다. 유훈을 앞세우고 우루현으로 들어서자, 현령은 곧바로 항복했다. 이틀을 이곳에서 머물면서 기다리자, 유비가 이끄는 본대가 도착했다.

유비는 유훈을 앞세워 서현성을 점령했고, 그의 이름으로 현령들을 모조리 소집했다. 그 후에 그들로부터 충성맹세를 받아냈다. 현령들은 자식들을 인질로 바치고 나서야 돌아갈 수 있었다.

또한, 유훈이 데리고 있던 3만의 부대 중에서 사냥에서 죽거나, 저항하다가 사살된 5천을 제외하고 2만 5천을 확보했다. 시간이 들인다면 그들은 유비의 충성스런 부하들로 변신할 것이다.

또한 서현성을 새로운 치소로 삼았다. 여남군에는 유훈의 종제 유혜에게 5천을 주어 지키게 했다. 여남군은 사방으로 트여있어 불안했고, 여강군은 장강과 회하를 끼고 있으면서 유표와 조조, 원매에게 경계를 이루고 있었기에 원매가 공격을 하더라도 대비할 수가 있었다.

유비가 유훈을 격파하고 여강군을 얻어 자신의 영지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 원매는 원소의 허락을 득하여 기병 1만 3천을 이끌고 남양군으로 들어섰다.

“주군! 어서 오십시오.”

이유를 비롯하여 주요 대신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렸다. 원매도 하마하여 예로 그들을 대했다.

“고생하셨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서 내가 이렇게 왔소이다. 자- 들어가십시다.”

원매는 대신들과 함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성안으로 들어섰다. 대신들은 모두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치소로 돌아갔고, 원매는 이유, 가후, 순유, 두기와 자리를 가졌다. 첩보를 관장하는 가후가 입을 열었다.

“생각밖으로 일이 꼬였습니다. 조독이 죽고 주군께서 이곳으로 내려온 시간이 한달 조금 넘습니다. 그사이에 유비가 유훈을 공격하여 여강군을 함락시켰습니다.”

“아니? 여강군이 얼마나 큰데 그리 쉽게 함락되었단 말이오? 또한, 유훈의 군사력이 유비보다 클 터인데.”

“그것이 참.”

가후는 쓴웃음을 지으며 유비와 유훈의 전투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기가 막힌 전투결과에 원매는 할말을 잃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붙어있길래 이리 기가 막힌 계책을 연이어 내는 것이오?”

“방통이라는 젊은 애송이가 일찍부터 붙어 있었고, 최근에 곽도가 합류했습니다.”

“곽도 이 쳐죽일 놈이 들어 붙었구나!”

원매의 입에서 분통이 터져 나왔지만, 그뿐이었다. 곽도가 도망을 쳤고, 그렇다면 조조나 유비에게로 갔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잘 들었소. 이별가. 그럼 어찌했으면 좋겠소? 여강군을 점령했으니 내가 데려온 병력이 부족해 보이는데 말이오.”

“지금 유비가 여강군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 대부분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고요. 여남군 동쪽에는 겨우 5~6천이 주둔하고 있는데, 그것도 유혜라는 유훈의 종제가 지키고 있습니다.”

“응? 그건 무슨 뜻이오? 장비나 관우가 지켜도 시원치 않을 판에 유혜라니?”

“여남군 동쪽의 땅은 평지이고, 주군과 조조에게 둘러싸인 섬과 같은 곳입니다. 지키기 어려우니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면 여강군으로 가려면 거대한 회수를 건너야 합니다. 그러니 여강군을 단단히 지킨다면 유비로서는 제법 안정된 영지를 확보하는 셈이 됩니다.”

“내가 유비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어. 내 실책이야. 내 실책.”

원매가 자책을 하자, 이유가 빙그레 웃고는 위로하며 진언을 이어갔다.

“주군께서 요새 너무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셔서 보기 좋습니다. 흐흐흐- 이렇게 하시지요. 회하를 건너서 전투를 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엄청난 무리수입니다. 여남군으로 군대를 보내십시오. 요란하게 행군을 한다면 아마도 유혜는 성을 버리고 도주할 것입니다. 유비도 지키기 어렵고, 버리자니 아까운 곳이니 이런 식으로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조독의 복수는 다음으로 미뤄야겠군. 고감군!”

“예. 주군!”

“호거아의 3천 기병을 합하여 기병 1만 6천, 손경의 보병 7천으로 대군을 편성하여 내일 부로 여남군 동쪽을 공략하시오. 그대가 직접 병력을 지휘하여 점령하시오. 추후에 지침을 하달하겠소.”

“명을 받들겠습니다.”

고람이 군례를 올리고 나가자 두기가 또다시 우는 소리를 시작했다.

“주군. 여남군 전투가 절대로 길어지면 안됩니다. 진짜 군량이 빠듯합니다.”

“이별가 말대로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 염려 마시오. 이러다가 두부조(두기)의 명이 짧아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벌써 일년은 짧아진듯합니다. 에휴-“

원매는 미소를 짓고는 순유를 돌아보았다.

“제갈량을 만나고 왔다고요?”

“예. 뛰어난 인재인 것은 분명하나, 매우 건방진 놈입니다. 주군께서 직접 오셔야 임관을 하겠다고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습니다.”

“몇 번이나 찾아가면 임관을 하겠답니까?”

“아니? 몇 번이라니요? 그 건방진 놈에게 직접 찾아가실 생각입니까?”

“한 세 번까지는 생각하고 있소. 내가 바쁘니 잘 애기해서 한번 방문하는 것으로 끝냈으면 좋겠는데 말이오.”

이유가 내 말이 맞지 않냐며 순유를 보고 눈을 찡긋했다. 순유는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주군께서는 제갈량이 뛰어난 인재임을 확신하십니까?”

“확신하다마다요. 무조건 데려와야 합니다. 지금 여기 계신 책사들의 나이가 최소 40살을 넘었소. 그런데 제갈량은 겨우 20살이니 세대교체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인재이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소이다. 그리고 순별가 입으로 뛰어난 인재가 분명하다고 하지 않았소?”

순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유의 말을 믿지 않았는데, 원매에게는 정말로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원매는 책사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밖으로 나왔다.

그는 조독과 그 하급장교들의 가족들을 위로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것이 그들의 슬픔을 완전히 치유하지는 못하겠지만,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원매는 이런 부분이 마음이 아팠다. 그럴수록 유비에 대한 증오심이 끓어올랐다. 유비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야망이 있으니 그리 움직였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원매가 아끼는 조독을 유비가 죽였다는 것이다.

‘일단은 참는다. 조조를 물리치고 나면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네놈을 반드시 죽이고 말 것이다.’

다음날.

고람은 기병 1만 6천, 보병 7천을 이끌고 유혜의 치소가 있는 평여성으로 진군했다. 북을 치고, 가는 곳마다 평여성을 공략하기 위한 원매군이라는 소문을 내면서 이동했기에 진군속도는 매우 느렸다.

평여성의 유혜는 원매가 대군을 진군시켰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대로 싸워볼 생각도 하지 않고 여강군으로 후퇴를 결정했다. 이미 유비로부터 모종의 지시를 받은 상황이었기에 미련 없이 움직인 것이다.

고람은 이유의 계책대로 손쉽게 여남군이 점령되자, 손경과 7천의 보병을 평여성에 남겨서 여남군을 지키게 하고, 기병들을 쪼개 여러 현의 항복을 받아냈다. 항복을 한다는 각서를 받았고, 그들의 자식을 인질로 확보하여 평여성으로 보냈다.

이제서야 여남군 전체가 원매의 품으로 들어왔다.

원매가 움직이는 동안 조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원소와의 일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그로서는 여남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아니 원가의 입김이 강한 여남군에 애초부터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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