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제 89장. 바보와 간신奸臣, 그리고 충신忠臣
“조자룡! 돌아오너라!”
조운은 슬쩍 원담군을 훑어보고는 천천히 뒤를 흘깃 살피며 재빨리 달려 돌아갔다. 원매는 즉석에서 술을 한잔 하사했다. 조운을 벌컥 마시고는 군례를 올렸다.
“주군의 기대에 부응해 다행입니다.”
“수고했어.”
원매는 그에게 쉬라고 한 후에 곧바로 위연을 호출했다.
“위연! 이번에는 자네가 나가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위연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타고 앞으로 나섰다. 위연은 조운처럼 조용하지 않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원담을 자극했다. 조운에 비해서 조금 덩치가 작은 위연이 나서자, 원담의 부하장수인 공상이 장창을 휘두르며 나섰다.
위연은 고함을 내지르며 공상에게 달려들었다. 공상은 맞상대를 하였지만, 5합도 넘기지 못하고 목이 달아났다. 위연의 무예가 대단하기도 했지만, 공상은 원담의 가신인 공순의 힘으로 장수에 오른 자였다. 그러니 무예로 평생을 산 위연을 당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쓰레기들 말고, 원담 네놈이 나서 보거라!”
위연이 공상의 목을 창대에 걸어 놓고 큰 소리를 치자, 원담의 군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힘도 못써보고 세 명의 장수 목이 날아간 것이다. 위연이 한동안 조롱을 한 후, 원매의 명령에 돌아왔다.
곧바로 원매가 말에 올라 앞으로 천천히 나왔다. 사마구, 조운의 호위대는 언제든지 출격하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형님! 부하들 그만 죽이고 대장끼리 한번 붙어봅시다. 내가 형님에게 지면 물러가겠소.”
“그 말 진심이냐?”
“당연하지요. 남아일언중천금입니다.”
원매의 말에 병사들이 일부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주요 장수들은 뜻 모를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특히 마초는 콧방귀를 뀌었다.
“원담 저놈이 미쳤구나. 제 놈이 우장군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형님 말이 맞소. 나도 그때 형님과 우장군의 대련을 보고 눈이 찢어지는 줄 알았소.”
마대가 마초의 말에 동의를 하자, 마초가 모두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쳤다.
“만약 우장군이 저놈에게 진다면 내가 여기서 칼을 물고 죽을 것이다!”
“하하하하하- 나도 같이하지.”
“후하하하하-“
마초의 말에 감녕등 주요 장수들이 동의하며 대소를 터트렸다. 원매의 장수들이 터트리는 웃음소리가 무슨 의미인지를 원담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비웃음이었다.
“이 쳐죽일 놈들 같으니라고. 매야- 네놈에게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보여주마!”
원담이 분노로 눈이 뒤집히자, 말을 타고 쏜살같이 튀어 나왔다. 장창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기세는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마초와의 수많은 대련을 통해 원매는 한 뼘 성장해있었다. 원매가 자신의 능력치를 떠올리자 곧바로 나타났다.
[원매(26)] 무력:95, 지력:85, 정치력:60, 통솔력:85
그간의 노력으로 무력이 2가 올랐다. 정치력, 통솔력은 최대치까지 올라왔다. 원매는 싱긋 미소를 짓고는 그대로 원담에게 달려들었다.
캉-
단 한번 창이 부딪치자 원담의 몸이 휘청거렸다. 원매는 여유 있게 상대하며 밀어 붙였다. 있는 힘을 다하지 않았는데도 원담을 궁지로 몰아 넣고 있었다.
원담은 지금의 상황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죽을 힘을 다했건만, 조금의 우위를 잡지 못하고 밀리기만 할 뿐이었다.
“잘 좀 해보시오.”
원매가 비웃음을 날리자, 원담은 피가 꺼꾸로 솟는 듯 얼굴이 붉어졌다.
우아아악—
원담이 괴성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창을 휘둘렀다. 너 죽고 나 죽자 이런 방식이었는데, 원매의 눈은 냉철하게 그의 틈을 파고들었다. 힘으로 장창을 비틀어 공중으로 띄운 다음, 그대로 원담의 말 옆구리를 창 끝으로 거세게 찍었다.
말은 비명을 지르며 날뛰었고, 원담은 힘없이 고꾸라졌다. 이때 원담을 구하기 위하여 남아있던 기병들이 일제히 몰려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마구와 조운이 호위대를 이끌고 달려들었고, 맨 앞에 있던 마초와 마대가 서량기병을 이끌고 나섰다.
전투는 싱거웠다. 원담은 사로잡혔고, 나머지 군대는 성으로 후퇴한 후, 성문을 걸어 잠궜다. 원매는 한번 평원성을 노려보고는 안전거리로 물러나 원담을 대면했다. 사마구가 다시 나서서 항복을 권유했지만, 그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형님이 실권을 잡고 있는 게 아니라 곽도 저자식이 실권을 잡고 있구만. 아니 도대체 처신을 어떻게 했길래 이리 된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뭘 무슨 말을 해? 형님이 잡혔는데 저 새끼들이 지금 하는 짓을 보라고. 항복은커녕 일체 대응도 하지 않고 버티잖아? 이걸 어떻게 생각해?”
“저들이 성을 지키는 게 당연하지. 그럼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란 말이냐?”
“아 형님···.. 아니지. 야 이 돌대가리 새끼야! 지금 대장인 너를 죽인다고 하는데도 성문도 안 열고 대꾸도 안 한다고.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냐? 네가 지금껏 대장으로 앉아만 있었지, 실권은 곽도, 신평이 모조리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잖아. 이제 이해가 되냐?”
원담은 모욕적인 언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원매의 말이 이치에 맞았지만,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죽일 놈이 형한테 못하는 말이······.”
원담의 말은 거기에서 끊겼다. 원매가 분통이 터지는지 그의 면상을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몇 대 맞자 코피가 흐르고, 얼굴이 퉁퉁 부었다.
“형? 지금 업성에 계신 아버님이 어떤 상태인지나 알아? 이 죽일 새끼가 형님 대접하니까 진짜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아버님이 네놈을 죽이지만 말라고 했어. 다시 말해서 내가 널 죽기직전까지 패도 된다고. 알아? 성질 건들지마. 여봐라!”
“예. 주군.”
“사마구. 의원에게 이놈을 치료하게 하고 철저히 감시해. 만약 도주를 하려고 하면 죽도록 패. 그리고 치료해.”
“알겠습니다.”
원담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쳤지만, 사마구와 조운이 양쪽에서 끼고 나가자 질질 끌려나갔다. 원매는 그 꼴을 보다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이 멍청이가 모든 것을 뒤틀어 놓았어. 지금껏 허수아비로 있던 거야. 허수아비로.”
원담만 잡으면 끝나려니 하고 세웠던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곽도등도 잡히면 죽을 것이 뻔하니 죽기살기로 나올 것이 뻔했다. 급히 전예를 호출했다. 전예는 달려오면서 이런 저런 상황을 들었다.
“주군 찾으셨습니까?”
“그래. 이리 앉으시오. 오면서 이야기를 들었소?”
“예. 황당하군요.”
“내가 부끄러워서 전장군을 못 보겠군.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평원성은 견고합니다. 주요 통로는 모조리 봉쇄했으니 고사작전을 쓰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백성들을 탐문해보니 성안의 군량이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또한 여기 대장인 원담이 잡혀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간질을 시키고, 원담의 이름으로 설득한다면, 저들도 흔들릴 것입니다. 곽도가 모두를 장악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부분을 장악해서 통제하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또한, 항복하지 않고 성이 점령된다면 모조리 죽인다고 엄포를 놓는다면 분명히 반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좋아. 전장군에게 위임을 할 테니 그리 하시오. 당장 시작하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전예는 그날부터 병사들을 나누어 협박을 하고 회유를 했다. 또한 원담의 이름으로 계속해서 회유를 했다. 물론 항복하지 않고 버티다가 성이 점령된다면 모조리 씨를 말린다는 잔인한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고사작전이 시작될 때, 마대를 시켜서 원담을 업성으로 후송했다. 그간 치료를 했지만, 원담의 얼굴은 폭행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원소는 원담의 얼굴을 보고는 혀를 쯧쯧- 찼다.
“가서 쉬거라. 오늘부터 너는 연금상태다. 처소를 벗어났다가는 제명에 못 죽을 줄 알거라!”
“아버님. 제가 장자입니다. 어찌 매만 끼고 도십니까? 제 얼굴을 이리 만든 것도 매입니다. 아무리 법도가 땅에 떨어졌어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끄응-
원소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잡으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안량!”
“예. 주군!”
“어서 데려가. 저 꼴을 계속보고 있으면 내가 울화병이 생길 것 같아.”
“명을 따르겠습니다.”
안량은 성큼 성큼 걸어서 원담을 부축했다. 원담이 거칠게 안량을 밀었다.
“놓아라! 천한 잡놈 주제에 어디다 손을 대느냐?”
순간 안량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원소의 장자니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반성치 못하고 계속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그를 보자, 원소의 참았던 인내심이 폭발했다.
“안량! 두드려 패서라도 말을 듣게 만들어! 저놈은 내자식이지만, 반란군의 일부이고 후계자는 원매야.”
원소는 학을 띤다는 표정으로 뒤돌아 섰다. 정말이지 아들만 아니었다면 몇 번을 죽여도 시원치 않을 인물이었다. 제 놈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니 생각할수록 한심했고, 처량함에 눈물이 났다.
원소가 사라지자, 안량이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이었다.
“대공자 가시지요. 소장도 바쁜 몸입니다.”
“때가 되면 갈 것이다. 내가 원가의 장남이야. 네놈이 감히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안 된단 말이다. 알겠느냐?”
안량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무서운 얼굴로 원담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곱게 가시겠소? 맞고 가시겠소?”
“뭐라 했느냐? 이 잡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어? 앙?”
원담이 주먹을 뻗어 치자, 안량을 그가 내뻗는 주먹질을 막지 않고 몸으로 받아냈다. 거대한 탑처럼 버티고 서서 무섭게 자신을 노려보는 안량을 보자 원담은 그제야 두려움이 들어 한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때였다. 곰 같은 안량이 빠르게 달려들어 원담을 들어 메다 꽂았다.
쾅-
원담은 개구리 뻗듯 엎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량은 그런 그의 멱살을 틀어 쥐고는 일으켜 세웠다.
“대공자. 가시지요. 한 번 더 거부하시면 그때는 저도 뭔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섬뜩한 기운에 원담은 고개를 무의식적으로 끄덕이고는 안량을 따라갔다. 안량은 처소를 단단하게 방비하게끔 명령을 내렸다. 50명이 처소를 지켰으며, 원담이 도주라도 한다면 모두 목을 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평원성.
곽도와 신평, 신비는 어두운 얼굴로 자리를 마주했다. 전예의 교묘한 신경전에 평원성은 둘로 쪼개졌다. 아직은 곽도의 힘이 우세했지만, 어찌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가장 큰 문제는 관통과 왕수였다.
관통은 오로지 충성밖에 모르는 무장이었고, 왕수는 충의지사였다. 이들이 곽도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빌어먹을! 왕수야 별거 아닌데, 문제는 관통 이 자식이오. 지금 관통의 군대가 5천이나 성안에 있단 말이오. 그 놈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그땐 끝이오! 끝!”
신평이 탁자를 내리치며 분통을 터트리자, 곽도가 싸늘하게 말을 이어갔다.
“차라리 이 기회에 관통을 처리합시다.”
“어떻게 처리를 한단 말이오? 오천의 군대를 처치하는 게 쉬운 줄 아시오? 일부라도 살아남아서 성문이라도 열면 끝이오.”
“내게 좋은 수가 있소. 귀를 대보시오.”
곽도는 그들에게 은밀하게 계책을 꺼내 놓았다. 신평은 그것을 듣고 안색이 밝아졌다. 신비는 이런 암중모략이 횡행하는 평원성이 싫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발을 빼기 늦은 상황이었다. 그는 밖으로 나서며 눈물을 쏟았다.
관통은 요즘 들어 없는 화병이 생길 지경이었다. 원담은 원매에게 잡혔고, 평원성은 곽도의 주도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2만 5천을 지휘했고, 관통이 지휘하는 병력은 5천이었다. 동래군 태수인 관통은 이 같은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며 고민을 거듭했다.
‘어찌한다? 대공자께서 죽은 것 같지는 않은데, 여기서 분란이 일어난다면 성이 삼공자에게 넘어갈 것이다. 이는 대공자께서 바라지 않는 일.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어쩌란 말인가?’
관통이 병사들을 다독이고 훈련시키고 있을 때, 곽도가 보낸 종사관이 그를 찾아왔다.
“대공자를 구출할 계획을 의논하자.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곽별가(곽도)께서 그리 전하고, 속히 뵙자고 하셨습니다.”
“알았다.”
관통은 종사관을 보내고는 곽도의 치소로 향하려다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늘었다. 뭔가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기분 나쁜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는 왕수를 먼저 찾았다.
“왕숙치(왕수). 저들이 대공자를 구할 계책을 의논하자고 하는데, 안 갈 수도 없고. 뭔가가 께름칙하오.”
“지금은 대낮인데 저들이 뭔 짓을 벌이겠습니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소. 만약에 대비해서 장수들과 병사들을 대기시켜놓으시오. 문제가 생기면 왕숙치가 모든 것을 책임지시오.”
왕수는 그제야 뭔가 불안함을 느꼈다.
“호위병을 데려가시고,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나오십시오.”
“알겠소.”
관통이 멀어져 가자, 왕수는 불안한 표정으로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그 후, 주요 장수들에게 병사들을 점고하고, 비상시에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