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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88화 (88/253)

# 88

제 88장. 조운자룡趙雲子龍

조운은 그대로 떠나버릴까 생각했다. 관우와 장비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잘못된 부분이 유비에게 알려지면 그 둘은 항상 곤경에 처하곤 했다. 또다시 자신으로 인해 그런 것을 겪는다고 생각하자 이 같은 술수를 생각해냈으리라.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원가를 따를걸 그랬구나! 그런데, 우장군은 지금 원가 최고의 실세인데, 나 같은 사람을 거들떠나 볼까?”

조운은 고민을 하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공손찬에게 푸대접 받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공손찬에게 푸대접 받고 있을 때, 유비가 예를 다해주어서 마음을 주었는데, 또다시 외톨이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어쩔 수 있나? 가보자. 유장군과의 인연이 있으니 일단 가보고 수틀리면 그대로 떠날 것이다.”

업성.

원매는 군사들을 사열하고 내일 출발할 것이니 단단히 준비할 것을 지시하고는 잠시 막사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사마구가 말없이 찬물을 건넸다. 벌컥- 벌컥- 들이마신 원매는 빈 물잔을 돌려주며 빙긋 웃었다.

“처음에 내가 봤던 사마구는 어디로 갔을까?”

“글쎄요. 지금쯤 원가의 충신이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지 않을까요?”

“하하하하- 역시 좋아. 암- 내가 아장(호위대장)하나는 제대로 두었어.”

“아까 보니 손님이 찾아왔던데요. 유장군(유비)이 보내서 왔답니다. 그런데 그자가 범상치가 않습니다. 마초나 장비 정도의 대단한 위압감을 뿜어냈습니다.”

“뭐라고? 가만- “

원매는 잠시 생각을 했다. 유비가 보냈는데, 장비급이다. 관우는 아닐 것이다. 유비가 남양군으로 왔을 때, 잠깐 얼굴을 봤으니 사마구가 몰라볼 리가 없었다. 조운! 조운이로구나.

“어서 불러오너라! 중요한 손님이 왔구나.”

“알겠습니다.”

사마구는 원매가 기분이 좋은 듯하자,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섰다. 언제부턴가 원매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 되었다. 원매에게 여러 가지 병법을 전수받고 계속해서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무식한 도적두목에서 어느 순간 제법 장수답게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오래 기다리셨소? 우장군께서 허락하셨으니 안으로 들어가시오.”

“고맙습니다. 그런데 직책이 어찌됩니까?”

“저는 아장을 맡고 있소이다.”

“그렇군요.”

조운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사마구에게 예를 표한 후, 안으로 들어섰다.

[조운(28)] 무력:97, 지력:80, 정치력:68, 통솔력:93

자는 자룡. 설명이 필요 없는 최강의 무장. 하지만, 능력에 비해서 중용 받지는 못했다.

조운은 중앙에 버티고 서있는 원매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엄청난 위압감을 주는 무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눈을 돌렸지만, 원매 말고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저- 우장군은 어디 계십니까?”

“내가 우장군 원매요.”

조운은 말없이 한참을 원매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가의 자식 중에서 이토록 무지막지한 무력을 지닌 장수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원담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원매요. 자- 이리로 앉으시오. 유장군께서 내게 전할 물건이 있다고요?”

원매가 자리에 앉자, 조운도 쭈뼛거리며 앉고는 품에서 죽간을 꺼내 공손하게 바쳤다. 조운을 힐끔 쳐다보며 싱긋 웃어 보이고는 죽간을 죽 읽어 내려갔다.

“머리 한번 기가 막히게 쓰는구나. 이 죽간의 내용이 뭔지 알고 있소?”

“물론입니다.”

“그럼 그 내용에 동의하시오?”

조운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당당해 보일 수도 있지만, 기분 나쁘게 보일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원래 이런 성격일까? 원매는 잠시 고민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내가 우장군인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소?”

“정식으로 부하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운의 대답에 원매는 입맛을 다셨다.

“그렇군. 원하는 직책이라도 있으신가?”

“그건 우장군께서 지정해주시면 따르겠습니다.”

“지금 사마구가 아장을 맡고 있는데, 자네가 부아장을 수행하게.”

“그럼. 장비의 십 년 임대는 깨지는 것입니까?”

“자네를 얻었으니 그리해야지. 자네 정도의 장수를 얻는다면 뭐든지 할 용의가 있으니까.”

“왜 그렇습니까? 공손백규(공손찬)도 저를 하찮게 여겼고, 관우, 장비도 저를 내쳤습니다. 제 성격에 결함이 있어서 그런다는 것을 압니다. 타고난 성격이라 고치기도 어렵고, 고칠 생각도 없습니다. 분명히 우장군의 얼굴에는 불편함이 나타나는데, 왜 이런 환대를 하십니까?”

“능력! 내게는 이게 최고니까. 필요하면 내가 자네에게 맞추겠네. 그러니 능력을 보여주면 될 거야. 물론 기량미달이면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도 내칠 걸세.”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의 조운을 보며 원매는 입을 뗐다.

“천하가 손가락질하던 이유도 내가 품었네. 내 주요장수들은 산적출신이야. 아까 자네를 안내한 사마구도 산적이었지. 내가 그들을 품은 이유는 간단해. 충성과 능력. 그거면 되네. 자네도 내게 충성하고 능력을 보여준다면 나도 그에 대한 보상을 하겠네. 어떤가? 대답이 되었는가?”

“원가에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우장군이었군요.”

“그런 말이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내가 화를 내면 어쩌려고 그리 막 나오시는가?”

“능력이 우선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제게 맞춰주신다고요?”

“응? 하하하하- 자네가 미움을 받는 이유를 알겠어. 너무 솔직해. 암- 내가 맞춰줘야지. 어때? 이제는 내게 충성을 다하는 부하가 되겠는가?”

조운은 자신의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는 원매를 기이한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고는 소리쳤다.

“신 조운. 우장군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고맙네. 자네를 얻으니 한고조가 번쾌를 얻은 심정을 알 것 같군. 열심히 일해보세.”

원매는 조운을 일으켜 세우고는 그를 격려했다. 조운은 잠시 후, 약간 홀가분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사마구가 엄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이제는 내가 자네의 상관일세. 자네는 부아장, 즉 부호위대장일세. 목숨을 걸고 주군을 모실 생각을 하게.”

“알겠습니다. 장군. 저에 대해서 궁금한 것은 없습니까? 하나도 물어보지 않는군요.”

“살다 보면 알게 되겠지. 나는 그저 주군의 그림자로 사는 게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세. 주군께서 자네를 내 부장으로 주었다면 그만한 뜻이 있을 터. 그저 충실히 일을 해주면 끝일세. 가세. 호위대를 소개하지. 기병 5백, 보병 1천정도인데, 모두 정예병이지.”

사마구는 조운의 등을 두드리며 그를 안내했다. 조운은 원매조직의 새로운 방식에 기이함을 느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기병 1만 3천이 앞장섰고, 그 뒤를 7만 5천의 대군을 따라 행군했다. 원매는 물 묻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흙먼지를 삼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이 장수의 운명이었다. 며칠을 걸려 진격하는 동안 원담의 군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평원성.

“큰일났습니다. 삼공자의 대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기병은 대략 1만이 넘고, 보병은 8만쯤 된다고 합니다.”

전령이 급히 들어와 상황을 보고하자, 원담의 치소는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병력수가 많았다. 원담 스스로도 군사통솔능력은 있다고 자부했지만, 그간 알아본 정보를 보면 원매의 통솔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원매가 자신보다 세배 정도되는 병력을 이끌고 오는 것이다.

“지난번에 나를 그토록 부추기더니 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게요? 진짜 석두가 되셨소?”

원담의 비아냥에 곽도가 발끈했다.

“모두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은 모두를 힘들게 합니다. 어서 그 말씀을 거두어주십시오!”

“거두긴 뭘 거둬. 네놈들을 믿고 이렇게 나댄 내가 멍청이지.”

원담이 투덜거리며 화를 내자, 신비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짧게 탄식을 했다. 원담의 성격이 저런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막 나갈 줄은 몰랐다.

“대공자. 진정하십시오. 저들의 병력이 워낙 많으니 성에서 버티면서 저들의 틈을 보아야 합니다. 이곳 평원성이 워낙 견고하니 버티려고 작정하면 저들도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빌어먹을! 겨우 수성전이나 하면서 시간을 축내라 이건가? 세 명의 머리에서 겨우 그것밖에 계책이 안 나와?”

“말씀이 심하지 않습니까?”

“심하긴 뭘 심해. 내가 이런 것들을 믿고 뭘 하고 있는 건지. 당장 나가서 한판 붙어봐야겠어. 천하의 원담이 어린애처럼 무서워서 꼭꼭 숨어야 한단 말인가? 자네들은 수성전을 준비해. 나는 나가서 일전을 겨뤄야겠어!”

원담은 그들의 의견을 더 이상 듣지 않고, 그대로 치소를 나가버렸다. 곽도, 신평, 신비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원매의 대군이 평원성 앞에 당도하여 진을 쳤다. 원매는 전예, 이통, 문빙을 불러 삼면으로 성을 포위했고, 주요 길목을 모조리 차단했다.

사마구가 성문 앞으로 나가 크게 소리쳤다.

“우리는 역적 곽도, 신평, 신비를 잡으러 왔을 뿐, 대공자와는 아무런 감정이 없소이다. 대공자께서는 어서 대장군의 뜻을 받들어 성문을 열고 역적들을 내어주시오!”

“이런 죽일 놈을 보았는가?”

원담이 사마구가 떠드는 소리를 듣다가 분통이 터지는지 활을 쏘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긴 화살이 날아오자 사마구는 칼을 들어 내리쳤다. 거리가 멀었기에 활 끝에는 힘이 없었다.

“내게 활을 쏘는 것은 우장군, 대장군께 대항하는 것과 같소! 대공자. 어서 죄인들을 내주시오!”

“말을 준비하라!”

원담은 사마구가 계속 떠들어대자 울화통이 터져 출전하기 위해 말을 대령케 했다. 부하장수들이 막았지만, 한번 세운 원담의 결심은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이윽고 성문이 열리며, 원담이 나섰고, 그 뒤를 수많은 장수들이 에워 쌓다. 원매는 사마구를 불러들이고는 장수들을 데리고 앞으로 나섰다.

“형님. 강녕하셨소? 나는 아버님의 명을 받들어 이곳에 왔소이다. 어서 역적놈들을 내어주시오.”

“역적? 매야- 네놈이 실성을 한 게로구나. 감히 내 자리를 꿰찬 주제에 뭐가 어째고 어째? 어서 나서거라. 내가 이번에야말로 네놈을 죽여주마!”

“아직도 정신 못 차리셨군. 조자룡! 나가서 싸워라!”

조운은 뒤에 있다가 군례를 올리고는 장창을 비껴 들고 앞으로 나섰다. 원매가 장수를 내보내자, 원담의 맹장인 유헌이 나섰다. 유헌이 욕을 하고 큰소리를 쳤지만, 조운이 말이 없었다. 그는 원매를 힐끔 보고는 곧장 말을 내달렸다. 유헌도 곧바로 달려왔고, 둘은 마주쳤다.

캉- 캉-

몇 번 서로의 창이 어우러졌다. 유헌이 맹장이었지만, 상대는 조운이었다. 10여합 정도를 교환하여 상대의 능력을 파악하자, 곧바로 무지막지한 힘으로 유헌의 창을 공중으로 날려버리고는 목을 베었다.

우아아아아아아-

조운이 천신처럼 우뚝 서있는 가운데, 유헌이 그대로 말에서 굴러 떨어졌고, 원매군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원담은 얼굴이 시커멓게 경직되어 할말을 잃었다. 뛰어난 무장인 그는 단번에 조운이 얼마나 무서운 장수인지를 파악한 것이다.

‘도대체 원매 이 자식은 어디서 이런 괴물들을 데려오는 거야?’

이때 옆에 있던 유헌의 형인 유순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안돼!”

원담이 말렸지만, 벌써 유순은 조운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유순이 유헌보다 고수였다. 하지만, 조운에게는 부족했다. 20여합을 버티던 유순의 목이 떨어지며 몸뚱이가 힘없이 땅으로 꼬꾸라졌다.

우아아아아아아-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우렁찬 함성소리가 들렸다. 원매는 이걸 기회로 기병들을 돌격시킬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원담을 바닥까지 철저하게 뭉개줄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순, 유헌이 죽자 원담의 얼굴은 시커매졌다. 평상시였다면 분노를 터트리며 달려나갔겠지만, 조운의 엄청난 무예를 보고는 그저 마른침만 꿀꺽 삼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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